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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 전몰용사 67년만에 조지아 고향으로

by 뉴스앤포스트 posted Jun 20,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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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슬리 R. 서튼 육군대위, 24일 중부조지아 로셸에서 장례

 

1950년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실종된 레슬리 R. 서튼 육군 대위의 유해가 67년만에 고향인 조지아주로 돌아온다.

 

육군은 1953년 12월 서튼 대위를 사망자로 처리했지만 가족들은 그가 실종된 이후 지금까지 시신이 없어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있었다.

 

사망 처리된 이후로 64년이 지나서야 그의 유해가 확인돼, 오는 24일 그의 고향인 로셸에서 장례식을 갖게 됐다고 육군이 공식 발표했다.

 

참전 당시 24세였던 서튼 대위는 1950년 10월말경 제1 기갑사단 제99 야전포병대대 C 포대 일원으로 전투에 참여해, 한국군 제11,12 연대가 점령한 북한 운산 인근에 파견됐었다.

 

파견 명령이 떨어지고 몇 시간이 되지 않아 중국 인민군과의 격전이 벌어졌고 1950년 11월 1일 퇴각 명령을 받기에 이른다.

 

당시 중국 인민군에 의해 많은 사상자와 포로가 발생했는데, 생존자 파악에만 몇일이 걸릴 정도였다. 서튼 대위는 11월2일부로 실종자 명단에 올려졌다.

 

서튼은 전쟁 중에 중국이나 북한군이 발표한 포로 명단에 이름이 올라있지 않았다. 전쟁 후 귀환한 포로 명단에도 서튼의 이름은 없었다.

 

여러 상황과 정보에 기초해 육군은 1953년 12월 31일 서튼 대위가 사망했다고 결론내렸다.

 

2000년 7월 미국과 북한 합동조사단은 북한측 증인들이 제공한 정보에 따라 북한 운산군 화옹리 인근에서 유해발굴작전을 펼쳤는데, 발굴 현장에서 조사단은 군용 장비와 개인 소지품 및 유해들을 발견했다.

 

이 유해들은 2000년 7월24일 국방부 산하 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국(DPAA·Defense POW/MIA Accounting Agency) 연구소에 수납됐고, 유전자 감식을 통한 신원 확인 작업 중 서튼 대위의 유해도 확인됐다.

 

현재 한국전쟁에서 유해로 수습됐지만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미국인은 7745명에 이른다.

 

국방성은 최신 과학기술을 사용해 신원확인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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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10월말 중공군과의 격전에서 전사한 레슬리 R. 서튼 대위. 그는 실종 67년만에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가, 24일 조지아주 로셸에 안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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