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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리포트] 8.15  제71돌, 일본 교토(Kyoto)에서 윤동주 시인을 만나다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 일본 교토 도시샤 대학 (同志社大学) 윤동주 시비 찾아, 한민족 직계 조상인 고(故) 윤동주 시인의 애국애족 정신 기려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icon_mail.gif 기사입력 2016/08/01 [07:57]
 
 
【Kyoto(Japan)=Break News GW】
2016 세계한국어교육자협회(WATK) 포럼 참가 차, 현재 고국 방문 중인, 몽골 캠퍼스 방학을 이용해 짧은 고국 방문에 나선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본지 몽골 특파원 겸 KBS 몽골 주재 해외 통신원)가, 포럼 개막 및 8.15 광복절 제71돌을 앞두고, 7월 31일 일요일 오후, 일본 교토(Kyoto=京都) 시를 전격 방문했다.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 교수, 일본 도시샤 대학 윤동주 시비 앞에 서다.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는, 7월 31일 일요일 오전, 대한항공 KE723편으로 일본 오사카(大坂) 간사이 공항에 내린 뒤, 곧바로 JR(일본철도) 간사이 특급 열차 '하루카' 편으로 신속하게 교토(Kyoto=京都) 시로 이동해, 교토(Kyoto=京都) 시 입성에 성공했다.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 교수, 일본 도시샤 대학 윤동주 시비 앞에 서다.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이어,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는, JR(일본철도) 교토에키(京都駅)에서, 교토 가라스마선(烏丸線) 지하철로, 이마데가와에키(今出川駅)로 신속하게 이동한 뒤, 교토의 도시샤 대학(同志社大学) 캠퍼스를 방문, 캠퍼스 내에 세워진 윤동주 시비를 찾아, 한민족 직계 조상인 고(故) 윤동주 시인의 애국애족 정신을 기렸다.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 교수, 일본 도시샤 대학 윤동주 시비 앞에 서다.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시인 윤동주(尹東柱, 1917년 12월 30일 ~ 1945년 2월 16일)
한국의 독립운동가, 시인, 작가이다. 아명은 윤해환(尹海煥), 본관은 파평(坡平)이다. 중화민국 지린 성에서 출생,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였으며, 숭실(崇實)중학교 때 처음 시작을 발표하였고, 1939년 연희전문 2학년 재학 중 소년(少年) 지에 시를 발표하며 정식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일본 유학 후 도시샤 대학 재학 중, 1943년 항일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후쿠오카 형무소(福岡刑務所)에 투옥, 100여 편의 시를 남기고 27세의 나이에 옥중에서 요절하였다. 그의 사후 일본군에 의한 마루타, 생체실험설이 제기되었으나 불확실하다. 사후에 그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출간되었다. 일본식 창씨 개명은 히라누마 도슈(平沼東柱)이다. 일제 강점기 후반의 양심적 지식인의 한사람으로 인정받았으며, 그의 시는 일제와 조선총독부에 대한 비판과 자아 성찰 등을 소재로 하였다. 그의 친구이자 사촌인 송몽슈 역시 독립운동에 가담하려다가 체포되어 일제의 생체 실험 대상자로 분류되어 의문의 죽음을 맞는다. 1990년대 후반 이후 그의 창씨 개명 '히라누마'가 알려져 논란이 일기도 했다. 송몽규는 고종 사촌이었고, 가수 윤형주는 6촌 재종형제 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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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샤 대학(同志社大学) : 일본 교토 시와 교토 부 교타나베 시에 캠퍼스가 있는 명문 사립 대학으로서, 일본 간사이 지방의 4대 사립으로 불리는 간칸도리쓰(関関同立=간사이 대학, 간세이가쿠인 대학, 도시샤 대학, 리쓰메이칸 대학) 중 하나이자, 와세다 대학, 게이오기주쿠 대학과 함께 일본의 3대 사학으로 알려져 있다. 창립자인 니지마 조의 유지를 받들어 각국의 유학생을 활발하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일본 문부과학성의 글로벌 30 대학에 선정된 것을 계기로, 국제화 추진에 나서, 서울에 사무소를 운영 중이다. 교토 대학, 오사카 대학 등 상위 국립 대학에 낙방한 학생들이 많이 입학하기 때문에 간사이 지방에서의 이미지와 레벨은 사립대 중에서 가장 높다. 도시샤 대학은 1875년 조합교회 신자인 니지마 조 (新島襄=Niijima Jo)가 교토 시에 창립한 도시샤 영학교(同志社英学校)가 전신으로서, 전문학교 시절을 거쳐, 1920년에 시행된 대학령에 따라, 공식적으로 일본 서부의 최초의 대학이 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일본의 무조건 항복 이후인 1948년에, 새로운 교육 제도에 의한 신제 대학으로서 다시 출발하였다. 일본을 대표하는 역사 관광 도시인 교토 시 가미교 구와 그 위성 도시인 교토 부 교타나베 시에 캠퍼스가 있으며, 2005년에는, 교토 부 소라쿠 군 세이카 초에 새로운 캠퍼스 건립 터를 마련했다. 도시샤 대학은 개신교 계열 대학이긴 하나, 교내 채플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는 대한민국의 일부 개신교 계열 학교들과는 달리, 교내 채플 선택권을 인정, 재학생들에게 일방적인 신앙을 강요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참고로, 바로 이 도시샤 대학에는, 우리나라의 윤동주 시인 이외에, 정지용 시인과 오상순 시인이 재학한 바 있다. ▲교훈 :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Veritas liberabit vos), ▲설립 : 1875년, ▲종류 : 사립 대학, ▲총장 : 마쓰오카 다카시(Matsuoka Takashi Matsuoka=松岡敬), ▲캠퍼스 : 이마데가와(今出川) 캠퍼스(교토 부 교토 시) & 교타나베(京田邊) 캠퍼스(교토 부 교타나베 시).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 교수, 일본 도시샤 대학 윤동주 시비 앞에 서다.  도시샤 대학 이마데가와 캠퍼스에는 클라크 기념관이 존재한다.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교토(Kyoto=京都) 시내의 이마데가와에키(今出川駅)에서 내려 1번 & 3번 출구로 나온 뒤, 도시샤 대학 정문으로 향하면서, 본 기자는 윤동주 시인이 썼던 ‘길’이라는 시(詩)를 떠올렸다.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 교수, 일본 도시샤 대학 윤동주 시비 앞에 서다.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 교수, 일본 도시샤 대학 윤동주 시비 앞에 서다.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잃어 버렸습니다. /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 길에 나아갑니다. //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 긴 돌담을 끼고 갑니다. //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通)했습니다. // 돌담을 더듬어 눈물 짓다 /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 내가 사는 것은, 다만, /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윤동주 시인은 1942년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도교 릿교(立敎) 대학 영문과에 입학하였다가 6개월 후 바로 이 교토 도시샤 대학 문학부로 전학하였다. 1943년 여름 방학 때 고향에 가기 위해 역에서 열차를 기다리다가 그를 감시하던 일본 형사에게 검거되었다. 한글로 시를 쓴 사상범으로 1944년 징역 2년을 선고 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투옥되었다가, 1945년 2월 16일 해방을 6개월 남기고 형무소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그가 유명을 달리 한 지 50년 째 되는 1992년 2월 16일 목요일에, 도시샤 대학 교우 모임인 코리아 클럽의 발의로, 윤동주 시비가 도시샤 대학 교정에 세워지게 되었다고 MBC 문화방송 뉴스데스크는 전한다.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 교수, 일본 도시샤 대학 윤동주 시비 앞에 서다.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윤동주 시인은, 35년 동안의 일제강점기(1945-1910=35) 시절에, 시(詩) 쓰는 것 이외에는 민족을 위한 독립운동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며, 스스로, 괴로워했던 시인이었다. 그가 썼던 시(詩) 구절 구절에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 미움, 괴로움의 심정이 절절이 배어 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 짓다 /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길), ▲무화과 잎사귀로 부끄런 데를 가리고 (또 태초의 아침),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별 헤는 밤), ▲인생(人生)은 살기 어렵다는데 / 시(詩)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 부끄러운 일이다. (쉽게 씌어진 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서시),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참회록), ▲어렸을 적처럼 부끄러워지나니 (코스모스),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화원에 꽃이 핀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 미워져 돌아갑니다. (자화상), ▲괴로웠던 사나이, /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 모가지를 드리우고 /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십자가)"

하지만, 본 기자의 판단으로는, 그렇게 괴로워할 필요가 없었다고 본다. 왜냐! 적어도, 윤동주는 끊임없는 자아성찰로써, 한민족 정체성이라는 의식의 끈을 결코 놓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진짜 부끄러운 짓을 했으면서도 부끄러운 줄 몰랐던, 요컨대, 내선일체, 황국신민을 외치며 한민족 동포를 짓밟고 친일을 도모했던 인간 족속들이야말로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며, 괴로워했어야 마땅했음에야.

한편, 윤동주 시비 오른쪽 5m옆에는 또 하나의 시비가 서 있는데, 윤동주보다 20여년 앞서 도시샤 대학 영문과를 졸업한 정지용 시인의 시비이다. 정지용 시인의 시비는 그의 고향 충청북도 옥천군에서 화강암에 그의 시 “압천(鴨川)” 을 새겨 보내 2005년에 세운 것이라고 역사는 전한다.

 
▲일본 도시샤 대학 이마데가와 캠퍼스에는 정지용 시인의 시비도 존재한다.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 교수가 정지용 시비 앞에 섰다.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일본 도시샤 대학 이마데가와 캠퍼스에는 윤동주 시비(왼쪽)와 정지용 시비(오른쪽)가 약 5m 간격으로 서 있다.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일본 도시샤 대학 이마데가와 캠퍼스 정지용 시인의 시비 오른쪽에 만들어진 인공 연못에는 잉어떼가 한가롭게 노닐고 있었다.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윤동주(尹東柱, 1917년 12월 30일 ~ 1945년 2월 16일) 약력
▲1917. 12. 30. 만주 간도성 화룡현 명동촌에서 아버지 윤영석과 어머니 김용의 맏아들로 출생하다. 아명은 해환(海煥).
▲1925. 04. 04. 명동 소학교에 입학. 같은 학년에 고종 사촌 송몽규, 당숙 윤영선, 외사촌 김정우, 문익환 등이 존재하다.
▲1927. 명동소학교 5학년 때에 급우들과 함께 『새 명동』이라는 등사 잡지를 만들다.
▲1931. 03. 15. 명동소학교 졸업. 학교에서 졸업생 14명에게 김동환 시집 『국경의 밤』을 선물하다. 명동소학교 졸업 후 송몽규, 김정우와 함께 명동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중국인 소학교 화룡 현립 제일소학교 고등과에 편입하여 1년간 수학하다.
▲1932. 04. 룽징의 기독교 학교인 은진중학교에 송몽규, 문익환과 함께 입학하다. 명동에서 20리 정도 떨어진 이 곳으로 통학하는 윤동주를 위해 가족 모두가 룽징으로 이사하다.
▲1934. 12. 24. 『초 한 대』, 『삶과 죽음』, 『내일은 없다』등 3편의 시를 쓰다. 이 시 3편이 오늘날 찾아 볼 수 있는 윤동주의 최초 작품이며, 이 때부터 자기 시 작품에 시작(詩作) 날짜를 기록하기 시작하다.
▲1935. 09. 01. 은진중학교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평양 숭실중학교 3학년 2학기로 편입하다.
▲1935. 10. 숭실학교 YMCA 문예부에서 내던 『숭실 활천』제15호에 『공상』이 실려 그의 시가 처음으로 활자화하다.
▲1936. 03. 숭실학교에 대한 신사참배 강요에 항의하여 자퇴하고 고향 룽징으로 돌아와 5년제인 광명학원 중학부 5학년에 편입하다.
▲1936. 11~12.간도 옌지에서 발행되던『가톨릭 소년』에 동시「병아리(11월호)」와「빗자루(12월호)」를 윤동주(尹東柱)란 이름으로 발표하다.
▲1937. 『가톨릭 소년』에 동시「오줌싸개 지도(1월호)」, 「무얼 먹고 사나(3월호)」를 윤동주(尹東柱)란 이름으로, 「거짓부리(10월호)」를 윤동주(尹東柱)란 이름으로 각기 발표. 동주(童舟)라는 필명이 이 때 처음 사용되다.
▲1937. 08. 100부 한정판으로 발행된『백석 시집 : 사슴』을 구할 길이 없자 필사하여 소장하다.
▲1937. 09. 진로 문제로 문학을 희망하는 윤동주와 의학을 선택하라는 아버지 윤영석이 갈등하나, 할아버지 윤하연의 권유로 아버지가 양보하여 문학으로 진로가 잡히다. 『영랑시집』을 정독하다.
▲1938. 02. 17. 광명중학교 5학년 졸업.
▲1938. 04. 09. 서울 연희전문학교 문과 입학해, 대학 생활관  거주 개시. 같은 해 송몽규도 윤동주와 함께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하다. 외솔 최현배 선생에게 조선어를 배우고 이양하 교수에게서 영시를 배우다.
▲1939. 조선일보 학생란에 산문「달을 쏘다(01.23)」, 시「유언(02. 06)」, 「아우의 印象畵(10. 17)」를 윤동주(尹東柱)와 윤주(尹柱)라는 이름으로 발표하다.
▲1939. 03. 동시「산울림」을 『소년』3월호에 윤동주(尹東柱)란 이름으로 발표하다. 새로 연희전문에 입학한 하동 출신 재학생 정병욱(1922~1982)을 알게 되어 친해지다. 정병욱과 함께 이화여전 구내 형성교회에 다니며 영어 성서반에 참석하다. 이 무렵 릴케, 발레리, 지드 같은 작가들의 작품을 탐독하며, 프랑스어를 독습하다.
▲1941. 05. 정병욱과 함께 생활관에서 나와 종로구 누상동 9번지의 소설가 김송의 집에서 하숙하기 시작하다. 하숙생이 되면서 김송과 우연히 알게 되다.
▲1941. 06. 05. 연희전문학교 문과에서 발행하는 『문우(文友)』지에 「우물 속의 自畵像」, 「새로운 길」을 발표하다.
▲1941. 09. 요시찰인 김송과 학생들에 대한 일본 경찰의 주목이 심하여 그곳을 나와 북아현동의 전문적인 하숙집으로 들어가다. 서정주의『화사집』을 즐겨 읽다.
▲1941. 12. 27. 전시 학제 단축으로 3개월 앞당겨 연희전문학교 4학년 졸업하다. 졸업 기념으로 19편의 작품을 모아 자선 시집(自選詩集)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를 77부 한정판으로 출간하려 했으나 당시 흉흉한 세상을 걱정한 주변인들의 만류로 뜻을 이루지 못하다. 시집을 3부 작성하여 한 부는 자신이 가지고, 이양하 선생과 정병욱에게 1부씩 증정하다. 본래 이 자선 시집의 제목은 『병원』이었으나「서시(序詩)」를 쓴 후 바꾸다. "병원"은 병든 사회를 치유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다. 윤동주 자신의 유학을 위한 일본 입국 수속을 위해 성씨를 "히라누마(ひらぬま=平沼)>"라고 창씨개명하다.
▲1942. 01. 24. 고국에서 쓴 마지막 작품이 된 시 「참회록」을 쓰다.
▲1942. 04. 02. 도쿄 릿쿄(立敎)대학 문학부 영문과 선과에 입학하다. 송몽규는 일본 교토 제국대학 서양사학과에 입학하다.
▲1942. 04~06. 「쉽게 씌어진 詩」등 이 때 쓴 시 5편을 서울의 친구에게 보내다. 이 시 5편은 오늘날 볼 수 있는 윤동주의 마지막 작품이 되다. 여름방학에 마지막으로 고향에 다녀가다. 동생들에게 "우리말 인쇄물이 앞으로 사라질 것이니 무엇이나 악보까지라도 사서 모으라"고 당부하다.
▲1942. 10. 01. 일본 교토 도시샤(同志社)대학 영문학과 선과에 편입하다.
▲1943. 07. 10. 송몽규가 일본 교토 시모가모 경찰서에 독립운동 혐의로 검거되다.
▲1943. 07. 14. 고향에 가려고 준비하던 윤동주도 송몽규와 같은 혐의로 검거되고 많은 책과 작품, 일기가 압수되다. 당숙 윤영춘(가수 윤형주 아버지)이 일본 교토로 윤동주를 면회하러 가서 윤동주가 일본 형사와 대좌하여 우리말 작품과 일기를 일본어로 번역하고 있는 것을 목격하다.
▲1944. 03. 31. 일본 교토 지방재판소에서 '독립 운동'이라는 죄목으로 2년형을 언도 받다.
▲1944. 04. 13. 송몽규 역시 같은 죄목으로 2년형 언도 받고 윤동주와 송몽규는 이후 일본 규슈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되다.
▲1945. 02. 16. 일본 규슈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사망하다. 이어, 3월에 송몽규도 사망하다.

이로써, 지난 2014년부터 일본 후쿠오카, 중국 룽징 명동촌 등을 돌며, 윤동주의 흔적을 찾아 헤매던, 본 기자의 거룩한 문학 순례가 일본 교토 여정으로 일단락됐다.

7월 31일 일요일 오후에 전격적으로 이뤄진, 본 기자의 도시샤 대학(同志社大学) 윤동주 시비 방문은, 2년 전인 지난 2014년 8월 7일에 단행된, 윤동주 시인이 숨졌던 일본 후쿠오카 구치소 방문과, 지난해 2015년 6월 18일에 단행된, 윤동주 시인이 태어났던 중국 룽징 명동촌 방문에 이은, 윤동주 시인의 흔적을 찾는, 거룩한 문학 순례의 여정으로서, 이것의 궁극적인 목적은 한민족 정체성 확인 및 애족애족 정신 고취 및 함양에 있다.

본 기자는 진심으로 윤동주 시인의 명복을 빌었다. 아울러, 몇 년 전의 제16회 재외동포문학상(賞) 국제 공모전 수상을 계기로, 화려하게 개시된, 본 기자의 시인으로서의 활동을, 윤동주 시인이 하늘에서 음우(陰佑)하고 외호(外護)해 주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숭실(崇實)고등학교 출신인 본 기자는 학연(學緣)으로는 윤동주 시인의 직계 후배이기도 하다.

본 기자가 도시샤 대학 캠퍼스를 나서던 오후 3시 50분부터 하늘에서 여름비가 퍼붓기 시작했다. 본 기자는 이 비가 윤동주 시인의 눈물이라고 생각했다. 마치, "아이고, 이 사람아! 그렇게 힘들게 찾아와 놓고 어찌 이리도 무정하게 서둘러 되돌아나가는가! 그래도 내가 자네 선배라고, 일본 후쿠오카, 중국 룽징, 이번에는 교토까지 찾아다니며, 나를 기억해 주니 나는 그저 고맙네! 그저 고마워!"라는 윤동주 시인의 흐느낌이 들리는 듯했다. 빗줄기는 정확하게 1시간 55분 동안 퍼붓다가 오후 5시 45분에야 잠잠해졌다.

 
☞관련 기사 : 윤동주 시인이 죽음을 맞은 일본 후쿠오카 방문 관련 기사(2014. 08. 07)
(사진 누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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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기사 : 윤동주 시인이 태어난 중국 룽징 명동촌 방문 관련 기사(2015. 06. 18)
(사진 누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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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alex1210@epost.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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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교토 도시샤 대학 캠퍼스 내 윤동주 시비 제막(1995. 02. 26.수)


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Prelude
Let me have no shame
under the heaven
till I die.
Even winds among the foliage
pained my heart.

With a heart that sings of the stars,
I'll love all dying things.
and I must fare the path
that's been allotted to me.

Tonight also
the winds sweep over the stars.

序诗
至故一天,仰眄天空
一无羞耻
摇动枯叶的爽籁
我深心疚

以供星心
疼爱断气的一切
并走去吾特定的一路

今晚亦然,爽籁捎掠星光

Пролог
До самого дня своей смерти живу,
без стыда небеса наблюдая,
хоть шелест ветра в листве
болью в душе отражался.

Сердцем, поющие слышащим звезды,
любить буду то, что всё постепенно угаснет,
и уйду тем путем,
что мне предначертан.

А ночью сегодня опять ветер меж звезд пронесётся.

序詩
死ぬ日まで天を仰ぎ
一点の恥もないことを
葉群れにそよぐ風にも
私は心を痛めた.

星をうたう心で
すべての死んでいくものを愛さねば
そして私に与えられた道を
步んでいかねば.

今宵も星が風にこすられ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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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tius, Altius, Fortius (Faster, Higher, Stronger)
<편집자주> 국제 회의 동시 통역사인 알렉스 강 기자는 한-몽골 수교 초창기에 몽골에 입국했으며, 현재 몽골인문대학교(UHM) 한국학과 교수로서 몽골 현지 대학 강단에서 한-몽골 관계 증진의 주역이 될 몽골 꿈나무들을 길러내는 한편, KBS 라디오 몽골 주재 해외 통신원으로서 각종 프로그램을 통해 지구촌에 몽골 현지 소식을 전하고 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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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8/01 [07:57] 최종편집: ⓒ 2018brea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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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3 기타 한우물중공업, 베트남 기업과 업무협약 체결 라이프프라자 19.05.11.
1612 기타 우석대, 베트남 하노이국립대학 국제교류 협약 체결 라이프프라자 19.05.11.
1611 기타 홍성 명품 딸기 ‘아리향’, 베트남에 50톤 수출한다 라이프프라자 19.05.11.
1610 기타 베트남 시장진출 전략 설명회 개최 라이프프라자 19.05.11.
1609 기타 '이제는 MSI다'...SKT, 결전지인 베트남 출국(종합) 라이프프라자 19.05.11.
1608 기타 서울시, 베트남‧덴마크‧브라질‧프랑스 '외교 교육강좌' 개설 라이프프라자 19.05.11.
1607 기타 지란지교소프트, 베트남 DLP 시장 공략 라이프프라자 19.05.11.
1606 기타 효성, 베트남에 ‘학교’ 선물 라이프프라자 19.05.11.
1605 기타 K-패션소재, 베트남 시장 노린다 라이프프라자 19.05.11.
1604 기타 V SHOPPING, 베트남서 홈쇼핑 방송...현지 최대 공영방송과 손잡아 라이프프라자 19.05.11.
1603 몽골 오송 전(前) 주 몽골 대사, 신임 주 포르투갈 대한민국 대사로 전보 발령 file GWBizNews 19.05.04.
1602 기타 “까다로운 비자 정책이 관광산업 발목 잡는다” 라이프프라자 19.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