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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에서 제1호 몽골 국적 가톨릭 사제 서품식 열렸다
 
바타르 엥흐 요셉(Baatar Enkh Joseph) 부제, 8월 28일 일요일, 몽골 역사 상 최초의 몽골 현지인 가톨릭 사제로 서품돼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icon_mail.gif 기사입력  2016/08/29 [15:40]
 
 
【UB(Mongolia)=Break News GW】
8월 28일 일요일, 울란바토르 성 베드로 바오로 주교좌 성당(St. Peter & Paul Cathedral) 에서 몽골 현지 제1호 몽골 국적 가톨릭 사제 서품식이 열렸다. 

우리나라에 유학했던 로마 가톨릭 몽골 울란바토르 지목구 바타르 엥흐 요셉(Baatar Enkh Joseph) 부제가 8월 28일 일요일 오전 10시  30분부터 열린 서품식을 통해 몽골 역사 상 최초의 몽골 현지인 가톨릭 사제로 서품 됐다. 요컨대, 우리나라로 치자면, 김대건 신부 같은 역사적 인물이 된 셈이다.

 
▲몽골 현지 제1호 몽골 국적 가톨릭 사제 서품식 현장.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몽골 현지 제1호 몽골 국적 가톨릭 사제 서품식 현장.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몽골 현지 제1호 몽골 국적 가톨릭 사제 서품식 현장.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몽골 현지 제1호 몽골 국적 가톨릭 사제 서품식 현장.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몽골 현지 제1호 몽골 국적 가톨릭 사제 서품식 현장.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몽골 현지 제1호 몽골 국적 가톨릭 사제 서품식 현장.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몽골 현지 제1호 몽골 국적 가톨릭 사제 서품식 현장.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몽골 현지 제1호 몽골 국적 가톨릭 사제 서품식 현장.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몽골 현지 제1호 몽골 국적 가톨릭 사제 서품식 현장. 바타르 엥흐 요셉(Baatar Enkh Joseph) 사제가 바이블을 높이 치켜든 외국인 사제의 뒤를 따라 입장하고 있다.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몽골 현지 제1호 몽골 국적 가톨릭 사제 서품식 현장. 사제단이 입장하고 있다.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몽골 현지 제1호 몽골 국적 가톨릭 사제 서품식 현장. 바타르 엥흐 요셉(Baatar Enkh Joseph) 사제가, 뒤를 따르는 육신의 부모와 성당 안으로 입장하고 있다.  근접 촬영을 하고 보니 바타르 엥흐 요셉(Baatar Enkh Joseph) 사제는 신장이 180cm 정도 되는 건장하고 준수한 용모의 몽골 청년이었다.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바타르 엥흐 사제(Baatar Enkh)는 지난 2008년 9월 한국에 들어와 한국어를 배운 뒤, 이듬해인 2009년 대전 가톨릭대학교에 입학해, 5년 뒤인 2014년 12월 가톨릭 대전교구에서 부제 서품을 받은 바 있다. 그러고 나서, 그로부터 1년 8개월 만인 올해 2016년 8월 28일 일요일 몽골 가톨릭 교회 몽골 현지인으로서는 최초로 사제 서품을 받은 것이다.

상황이 이러하므로, 본 사제 서품식에는, 우리나라의 대전교구 교구장 유흥식 주교와 대전가톨릭대학교 총장 곽승룡 신부 등이 자리를 같이 했다.

본 가톨릭 사제 서품식은, 1992년 몽골과 바티칸 외교 관계 수립 이후 몽골 현지에 가톨릭 교회 설립의 자유가 허용된 데 이어, 2002년 7월 지목구로 설정돼 올해로 교구 설정 14주년을 맞는 해에 이뤄졌다는 측면에서, 몽골 가톨릭 교회 측면에서는, 지극히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한국 유학생 출신의 몽골 현지인 가톨릭 사제 배출은 오랫동안 외국 종교로 인식돼 온 몽골 가톨릭 교회 공동체에 ‘주인 의식’을 심어주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것이 국내외의 평가이다.

 
▲몽골 현지 제1호 몽골 국적 가톨릭 사제 서품식 현장. 울란바토르 지목구(知牧區)장인 필리핀 국적의 웬체슬라오 파딜랴 주교(Bishop Wenceslao Padilla)가 성당 안으로 입장하고 있다.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서품식 영어 인사말에 나선 울란바토르 지목구(知牧區)장인, 필리핀 국적의 웬체슬라오 파딜랴 주교(Bishop Wenceslao Padilla)는 “몽골 현지 제1호 몽골 국적 가톨릭 사제 서품식에 자리를 같이 해 주신 내외 귀빈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전제하고, “1992년 몽골과 바티칸 외교 관계 수립 이후, 오늘은 몽골 가톨릭 교계 측면에서 참으로 역사적인 날"이라고 본 몽골 현지 제1호 몽골 국적 가톨릭 사제 서품식에 의미를 부여했다.
 
▲몽골 현지 제1호 몽골 국적 가톨릭 사제 서품식 현장. 몽골 불교 지도자들도, 축하 차, 자리를 같이 했다.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본 몽골 현지 제1호 몽골 국적 가톨릭 사제 서품식이 열린 현장에는 몽골 불교 지도자들도, 축하 차, 자리를 같이 했다.

아울러, 바타르 엥흐 요셉(Baatar Enkh Joseph) 사제가, 지난 2014년 12월 가톨릭 대전교구에서 부제 서품을 받았던 관계로, 우리나라에서 몽골을 방문한 가톨릭 교회 신자들은 물론, 몽골 주재 한인 동포 사회의 가톨릭 신자들도 현장에 총출동해 자리를 같이 했다.

 
▲몽골 현지 제1호 몽골 국적 가톨릭 사제 서품식 현장. 우리나라에서 몽골을 방문한 가톨릭 교회 신자들이 자리를 같이 했다.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몽골 현지 제1호 몽골 국적 가톨릭 사제 서품식 현장. 함석규 칭기스 여행사 대표 내외(왼쪽)가 자리를 같이 했다.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몽골 현지 제1호 몽골 국적 가톨릭 사제 서품식 현장. 민학기 세종식당 대표(왼쪽)와 조윤경 민주 평통 몽골 분회장(오른쪽)이 자리를 같이 했다. 뒷쪽에 흰 양복을 입은 최배술 몽골한인외식업협회 회장의모습도 보인다.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몽골 현지 제1호 몽골 국적 가톨릭 사제 서품식 현장.  강구철 몽골국립대 법대 교수(오른쪽)와 김미라 민주 평통 몽골 자문위원(뒷줄 가운데)이 자리를 같이 했다.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몽골 현지 제1호 몽골 국적 가톨릭 사제 서품식 현장. 몽골 울란바토르 한올(Khan-Uul) 성당의 허웅 프란치스코(許雄 Francisco) 주임 신부(왼쪽)가 현장 입구에 섰다.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몽골 현지 제1호 몽골 국적 가톨릭 사제 서품식 현장.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몽골 현지 제1호 몽골 국적 가톨릭 사제 서품식 현장. 성당 입구에는 결실의 계절 가을을 재촉하는 코스모스와 해바라기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가톨릭의 역사
예수 그리스도가 친히 세운 종교로서,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베드로가 제1대 교황에 임명된 후, 현재 제266대 교황인 프란치스코(Franciscus, 1936년 12월 17일 ~ ) 교황(재위: 2013년 3월 13일 ~ )까지 266대에 걸쳐 끊임없이 이어져 오고 있다. 교회 창설 때부터 311년까지 로마 제국은 그리스도교를 참혹하게 박해했으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313년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에 대한 관용을 선포하여 기독교에 대한 박해를 종식시키고, 사실상 로마 제국의 정식 종교로 공인했다. 또한 교회의 압류된 재산을 돌려 주고 이에 대한 국가의 보상을 정했으며, 325년 제1차 니케아 공의회를 소집하여 기독교의 발전에도 기여했다. 마침내, 392년 그리스도교는 로마 제국의 국교로 공인돼 세계의 그리스도교화를 이루게 된다. 하지만, 1054년에 콘스탄틴의 총주교가, 가톨릭 회의 교황권을 거부하여, 동방 정교회(東方 正敎會=그리스 정교회=Greek Orthodox Church)를 세움으로써, 서방 로마 가톨릭 교회와 1차 분열이 일어난다. 그리고, 그로부터 약 500년 뒤인 1517년 가톨릭 신부인 마르틴 루터를 비롯한 종교 개혁자들이 로마 교황권에 반대하고 이탈하여 프로테스탄티즘(개신교=改新敎=Protestantism)을 세움으로써, 로마 가톨릭 교회는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티즘으로 2차 분열이 일어나게 된다. 그 뒤, 20세기에 들어와 교황 요한 23세(1958~1963)는 가톨릭 교회의 현대 세계에 대한 적응을 목적으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 종교적 문제를 다루기 위해 교황이 소집하는 전 세계의 가톨릭 주교들의 회합)를 소집하였다. 가톨릭 교회는 안으로 자각과 밖으로 개방을 목표로 '아조르나멘토' (Aggiornamento=적응=개혁과 쇄신)란 담대한 표어로써 오늘날 세계와 대화 중에 있으며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인류 구원의 사명을 다하고 있다.

☞몽골의 로마 가톨릭 교회
▲13세기 : 몽골 제국 시대에 전파됨
▲1368년 : 원나라 멸망으로 사라짐
▲19세기 :  제2차 아편전쟁이 발발 이후 몽골에 대한 새로운 선교 활동이 시작됨
▲1921년 :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모든 활동 중지됨
▲1991년 : 몽골 정부, 민주주의 도입
▲1992년 : 몽골과 바티칸, 외교 관계 수립
▲2016년 08. 28 : 사상 최초로 몽골 국적 바타르 엥흐(Baatar Enkh) 사제 서품식
▲2016년 현재 : 몽골 가톨릭 신자 730명 정도로 집계됨
▲2016년 현재 : 대한민국 주재 교황 대사가 몽골 주재 교황 대사를 겸임 중.

현장 취재에 나선 본 기자는, 성당 안에서, 성당 안으로, 육신의 부모와 같이 입장하는 바타르 엥흐 요셉(Baatar Enkh Joseph) 사제와 조우(遭遇)했다. 사진으로만 봤던 바타르 엥흐 요셉(Baatar Enkh Joseph) 사제는, 근접 촬영을 하고 보니, 신장이 180cm 정도 되는 건장하고 준수한 용모의 몽골 청년이었다.

순간, 본 기자는, 17세기 영국의 작가 존 버니언(John Bunyan, 1628. 11. 28 ~ 1688. 08. 31)이 썼던 '천로 역정(天路歷程=Pilgrim Progress)'이라는 소설을 떠올렸다. 등장인물의 이름을 수다장이, 게으름, 허영, 크리스천등으로 표현한 우화 형식의 본 소설은, 주인공인 크리스천(Christian)이 멸망을 앞둔 장망성을 떠나서 하늘나라 시온성(城)을 향하여 여행하는 내용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총 2부로 구성(1부는 그리스도인의 모험, 2부는 아내 크리스티아나와 자녀들의 모험)으로 구성되어 있다.

존 버니언의 생전에 이미 11판까지 나왔고, 판마다 각각 1만 부씩이나 인쇄되었다고 역사는 전한다. 이 부수는 당시로서는 엄청난 숫자였는데, 존 버니언의 인생을 불사른 자서전적 책으로서,원본은 사람들에게 뜨거운 감격을 줄뿐만 아니라,크리스천들에게 은혜(Grace)의 개념이 무엇인지 알리고자 쓴 소설로서,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요컨대, 주인공 크리스천이 인생 여정에서 수많은 욕망(慾望)과 싸우고, 사탄의 도전 앞에서 거룩함을 이뤄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는데, 소설의 주제는 구원(救援)의 영성(靈性)이다.

'천로 역정(天路歷程=Pilgrim Progress)'을 떠올리면서, 본 기자는, 바타르 엥흐 요셉(Baatar Enkh Joseph) 사제에게,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상황임에도, 정말이지, 묻고 싶었다. "그대, 정녕,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정녕?"

주지하다시피, 바이블은 “악(惡)에게 지지 말고 선(善)으로 악을 이기라(Do not be overcome by evil, but overcome evil with good.)”라고 갈파하고 있는데, 실상,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면서(Fight the good fight of the faith), 구원(救援=Salvation)에 이르는, ‘칭의(稱義=Justification=)=>성화(聖化=Sanctification=)=>영화(榮化=Glorification=)의’ 여정은 참으로 멀고 고독한 길 이기 때문이다.

신부가 되는 길은 일반적인 성직자급 중에서 가장 힘든 과정이라 볼 수 있는데 과정의 어려움과 긴 기간(각 지역 가톨릭 신학대학 입학이 그 시작인데, 세례 성사를 받은 지 3년 이상 되고 견진 성사까지 받은 학생에 한해서만 지원 자격이 주어짐. 수능 점수 및 내신 역시 일정 수준은 충족해야 함. 교구에서 권장하는 내신 평균 점수는 대략 평균 80점 이상임)은 둘째 치더라도 평생 동안 독신(獨身)의 금욕(禁慾)과 청빈(淸貧)의 삶을 이어가야 한다. 이는 자기 자신과 하느님 간의 서원이자 언약이다. 물론 서원(부제, 사제서품) 뒤에는 금욕(禁慾)의 삶은 확실히 제약이고 의무이긴 하나 이는 본인 스스로 선택한 것이니 누구를 탓할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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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빈의 의미는 신부가 받는 급여가 월급개념이 아닌 활동비이다 보니 모을 수 있는 돈 자체가 얼마 안 된다는 의미이다. 김수환 추기경의 경우 월급이 정확하게 200만원이지만 추기경으로서의 직책과 업무량과 명성에 비하면 거의 자원봉사 수준의 월급이었다고 역사는 전한다. 그나마도, 여기저기 다 나눠주다 보니, 선종한 후 남긴 재산은 1,000만 원이 채 못 되었다고 한다. 소형차 1대 값이나 될까 말까 한 돈이었다.
 
▲몽골 현지 제1호 몽골 국적 가톨릭 사제 서품식 현장. 취재에 나선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본지 몽골 특파원 겸 KBS 몽골 주재 해외 통신원)가 역사적인 현장에 굳건히 섰다.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몽골 현지 제1호 몽골 국적 가톨릭 사제 서품식 현장 취재에 나선 본 기자는, 2,000년 가톨릭 역사의 한 가운데,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구속사(救贖史=History of Redemption=창세 전부터 정하신 하느님의 작정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중심으로 타락한 죄인들은 구원하는 전 역사)의 한 복판에 서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가슴이 울렁거렸다.

하지만, 하마터면 본 현장 취재에 나서지 못할 뻔했다. 이호열 시몬(Simon) 신부, 함석규 보니파시아(Bonifacia) 칭기스 여행사 대표 등 두 분이 본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왔으나, 하필이면, 본 기자가 자리를 비운 통에, 전화를 받지 못했던 고로, 본 취재는 하마터면 그냥 넘어갈 뻔했다. 취재 현장으로 따뜻하게 본 기자를 이끈 사람은, 다름 아닌, 정종선 다미아노(Damiano) 에코 가스 대표였다. 이 기회를 빌려, 정종선 다미아노(Damiano) 에코 가스 대표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좌우지간, 8월 28일 일요일, 울란바토르 성 베드로 바오로 주교좌 성당(St. Peter & Paul Cathedral) 에서 열린 몽골 현지 제1호 몽골 국적 가톨릭 사제 서품식을 통해, 몽골 가톨릭 교회는 새 역사를 썼다. 세계 가톨릭 역사는 이 날을 두고 두고 기억하리라! 향후 몽골 가톨릭 교계의 계속적인 발전과 바타르 엥흐 요셉(Baatar Enkh Joseph) 사제의 앞길에 영광이 있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alex1210@epost.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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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tius, Altius, Fortius (Faster, Higher, Stronger)
<편집자주> 국제 회의 동시 통역사인 알렉스 강 기자는 한-몽골 수교 초창기에 몽골에 입국했으며, 현재 몽골인문대학교(UHM) 한국학과 교수로서 몽골 현지 대학 강단에서 한-몽골 관계 증진의 주역이 될 몽골 꿈나무들을 길러내는 한편, KBS 라디오 몽골 주재 해외 통신원으로서 각종 프로그램을 통해 지구촌에 몽골 현지 소식을 전하고 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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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8/29 [15:40] 최종편집: ⓒ 2018brea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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