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일 추도사 논란

 

뉴스로=임지환기자 nychrisnj@yahoo.com

 

 

문재인 대통령이 현충일 추도사(追悼辭)에서 베트남 참전용사에 대한 발언한 내용이 외교적 논란을 빚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6일 현충일 추도사에서 “베트남 참전용사의 헌신과 희생을 바탕으로 조국경제가 살아났다”며 "대한민국의 부름에 주저 없이 응답, 폭염(暴炎)과 정글 속에서 역경을 딛고 묵묵히 임무를 수행했다. 그것이 애국이다. 이국의 전쟁터에서 싸우다가 생긴 병과 후유장애는 국가가 함께 책임져야 할 부채로, 합당하게 보답하고 예우하겠다. 그것이 국가가 해야 할 일“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7일 러시아 미디어 스푸트닉은 서울발 기사로 베트남전쟁 참전용사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면서 애국심을 강조하느라 베트남 국민들에게 자칫 상처를 줄 지 모르는 언급을 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고 보도했다.

 

스푸트닉은 “미국의 요청으로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한국은 그 댓가로 경제발전을 이뤘다는 좀 상식적인 얘기였지만, 수백만이 전사한 베트남 사람들이 들으면 기분 좋을리 없는 얘기인 데다 대통령이 지나치게 ‘애국'을 강조하는 모습이 위험한 ‘국가주의' 인상을 남겼다는 비판”이라고 덧붙였다.

 

허석렬 충북대 교수(사회학)는 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문 대통령의 발언은) ‘조선 전쟁에서 조선인들이 서로 싸워 흘렸던 피 덕분에 우리 일본의 조국경제가 살아났습니다'라고 일본 수상이 했을 법한 말”이라며 “실제로 비슷한 식으로 말한 수상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허 교수는 “문재인 대통령의 그 연설문 귀절은 누가 써준 것일까"라며 "대통령이 당연히 검토했을 것인데, 베트남 민중의 감정을 생각이나 해 보았을까”라고 반문했다.

 

한 네티즌도 “갑자기 여공(여성 공장노동자)을 끌어들여 애국자로 둔갑시킨 일도 그렇고, 큰 취지에서 보면 국가운영과 국가주의적 편향(偏向)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문 대통령의 발언을 비판했다.

 

이에 대해 한베평화재단(이사장 강우일)은 7일 성명서를 통해 “한국의 베트남 전쟁 참전에 대한 인식에 걱정과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우리는 문재인 정부가 베트남 전쟁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진상규명을 바탕으로 국가적 책무를 다할 것을 간절히 바라고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12일엔 베트남 외교부가 자체 홈페이지를 통해 “한국 정부가 베트남 국민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양국 우호와 협력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언행을 하지 않도록 요청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논란이 확산되는 조짐을 보이자 우리 정부도 대응에 나섰다. 외교부 조준혁 대변인은 13일 정례 브리핑에서 “한국은 베트남과의 관계를 매우 중시한다. 현충일 추념사는 과거 국가의 명에 따라 헌신한 국민들에 대해서는 그로 인한 개인적 희생에 대해 적절한 처우가 있어야 한다는 취지의 언급”이라고 해명했다.

 

일부에서는 “베트남 전쟁 기간중 일어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문제가 여전히 미해결인 상황에서 대통령의 연설문은 부적절했다”면서 “차제에 국군의 베트남전 참전과 민간인 학살 문제에 대한 공론화와 재평가 작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글로벌웹진 뉴스로 www.newsro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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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월 백마부대 장병들 www.ko.wikipedia.org 

 

 

<꼬리뉴스>

 

박정희정권, 베트남전쟁 8년간 31만여명 파병

 

국군의 베트남전 참전(參戰)은 박정희 정부하에 1964년 9월 11일 1차 파병을 시작으로, 1966년 4월까지 4차에 걸쳐 이뤄졌다.

 

박정희 정부는 차관 마련 등의 군사, 경제적인 이유로 집요한 파병제안을 했으나, 당시 미국 정부는 베트남전에 한국군을 파병할 경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도발할 가능성과 중국, 소련 등의 공산권 국가를 자극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제안을 거절했다. 그러나 원래 구상했던 SEATO(동남아시아조약기구)를 중심으로 구상했던 베트남 지원 계획이 프랑스와 파키스탄의 반대로 어려움에 빠지자 1964년 5월 9일 ‘남베트남 지원’을 호소하는 서한을 발송하게 된다.

 

이에 대한민국은 미국의 요청에 따라 대한민국 최초로 1964년에 국군을 해외 파병하여 베트남에 군대를 파병했다. 한국이 공산침략을 경험한 국가로서 아시아지역의 안보와 자유수호를 위한다는 명분도 있었다. 한편 야당인사인 윤보선, 장준하, 김준연 등은 한국군 파병에 반대하거나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했으나 모두 묵살됐다. <자료 위키피디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