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최고권위 고려인학자…역대대통령 6명과 깊은 인연

 

모스크바=뉴스로 노창현기자 newsro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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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대통령이 올해는 꼭 모스크바에서 푸틴대통령은 만나길 바랍니다."

 

러시아에서 가장 권위있는 고려인학자인 김영웅박사(러시아과학원 극동연구소 수석연구원)는 한국의 대통령들과 특별한 인연(因緣)을 갖고 있다. 김영삼 대통령을 시작으로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5명의 대통령 취임식에 초대된 인연을 갖고 있다.

 

그는 우리나라가 1990년 9월 소련과 역사적인 수교를 맺을 때 소련 연방 국회의원으로서 막후 역할을 맡았다. 1989년 옴스크지역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된 그는 당시 노태우 대통령을 비롯, 1991년 소련 붕괴 전후로 한국의 북방정책과 러시아와 한반도정책이 교집합(交集合)을 이룰 때 없어선 안될 중요한 인물이었다.

 

박근혜 대통령과의 인연도 특별하다. 대통령이 되기전 여러 차례 박대통령과 면담의 기회를 가졌고 단독 회동을 통해 긴밀한 대화도 주고받았다. 그는 박대통령 취임이후 한러발전에 대해 큰 기대를 품었다고 했다. 2013년 박대통령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유라시아 지역 국가들의 동반 성장과 평화통일의 기반을 다지는 원대한 구상으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북한의 잇단 핵실험과 장거리로켓 발사 등 동북아 정세가 꼬이면서 남북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고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도 심각한 위기에 직면한 상황이다. 최근 모스크바 극동연구소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김영웅 박사는 한러발전과 양국의 미래를 위한 솔직한 속내와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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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올해 박대통령이 모스크바에 오지 않으면 한러 수교후 러시아를 방문하지 않은 유일한 대통령이 된다. 2013년 푸틴대통령이 방한했던 것을 고려하면 답방이 지나치게 미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개성공단 중단에 대해서도 안타까움을 표했다. 그는 "북한은 개성공단을 위해 2개 사단을 철수시켰다. 휴전선이 그만큼 뒤로 물러났고 전략적 이익을 포기한거다. 개성이 원래 누구 땅인가. 38선 이남의 개성을 사실상 남한에 양도한 것은 김정일의 유훈(遺訓)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북 제재와 관련, "한국정부가 하산-나진 프로젝트 물러나가는 것도 러시아한테는 설명이 안된다. 엄밀히 말해 북한과 아무 관계 없는 것이기때문이다. 러시아가 북한땅 임대해서 러시아 물건 보내는건데 그것도 안하겠다니 답답하다"고 말했다.

 

김영웅 교수는 "박근혜 대통령을 지금도 높이 평가한다. 다만 대통령이 되는 과정에서 너무 많이 보수파를 불러들여서 그사람들한테 응답할 필요도 있을거다. 미국하고 어떤 말이 오갔는지 알 수도 없고..노무현 대통령도 취임 전후 비교하면 많이 달라지지 않았냐"고 옹호했다.

 

1941년 사할린에서 태어난 김영웅 박사는 이르크츠크 국립대학 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동 대학에서 정치학 교수(국제교류)로 강단에 섰고 옴스크 국립대학과 모스크바 국립대학에서도 학생들을 가르쳤다. 소련연방 인민대의원, 소련연방 최고(국회) 의원, 최고회의 국가건설위원회 부위원장, 러시아국회 러-한 외교협회 사무국장, 국제고려인연합회장 등을 역임했다. 2003년부터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극동연구소 한반도 연구센터에서 수석선임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다음은 김영웅 박사와의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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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님이 어떻게 사할린에 갔나

 

"우리가 경주 김씨다. 조부가 함경남도 부자였는데 일본 탄압을 피해 보천보(普天堡)로 이주했다. 1937년 독립군이 일제를 공격한 보천보전투가 벌어졌을 때도 살고 있었다. 1939년에 3형제중 둘째였던 아버지가 사할린으로 피신했고 1년후 어머니(최임순)가 따라갔다. 위로 누나가 있고 내가 3남3녀중 둘째다. 소련국적을 받은 것은 1958년이다. 그전까지는 미국적이었다. 사할린의 많은 동포들이 미국적이었는데 한국전쟁끝나고 일본으로 넘어간 사람도 있고 북한에 간 사람들도 있다. 큰아버지가 이북에서 당서기를 했기 때문에 아버지한테도 북한 영사관에서 와서 북으로 갈 것을 권했지만 거절했다."

 

- 왜 돌아가지 않았나?

 

"내가 소련에 남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우리도 스탈린 독재정권을 거쳤지만 북한도 김일성독재정권이었다. 그래서 가지 않았다. 그때 고등학교를 졸업했는데 소련국적이 없으면 다른 지역의 대학교에 가기 어려웠다. 그래서 소련 국적을 받고 1959년 이르쿠츠크 대학에 갔지만 역사학부 입학이 좌절돼 건설회사에서 막노동을 하면서 러시아말을 배우고 이듬해 입학했다."

 

- 사할린에서 태어났는데 러시아말이 서툴렀나?

 

"해방전까지 남사할린은 일본의 지배를 받았고 소련으로 넘어간 후에도 동포들끼리 모여살아서 러시아어가 능숙하진 않았다. 13살에 7학년 졸업하고 다른 도시에서 러시아 고등학교 입학해서 러시아어를 늦게 배웠다. 대학에 가서는 러시아사람들하고만 있다보니 다시 한국말을 잊었다. 만18세에 군대를 가야했는데 대학생은 군대 징집이 면제됐다. 대학 졸업하고 군사훈만 련하면 소위계급을 다는데 그만 폐렴에 걸려서 3년을 치료했다. 전공은 원래 역사학부였지만 1969년 대학원에 가서 신생독립국중 미얀마 네윈과 가나 사람들의 사상 비교를 연구했다. 그것으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 옴스크대학엔 언제 갔나?

 

"1977년 옴스크대학 초청을 받았다. 서시베리아의 옴스크는 위성발사기지와 탱크공장도 있는 군사도시라 90년까지 외국인들이 못들어갔다. 대학에서 5년에 한번씩 교수를 재임용하는데 1978년에 학술회의를 할때 내가 한 말이 문제가 되서 쫒겨날뻔한 일이 있었다. '지금 소련에서 조금 잘못된게 있다. 레닌 당서기가 타지키스탄 방문해서 현지 노동자들이 일 잘한다고 말하니까 노동자들이 레닌 당서기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했는데 이건 좀 잘못됐다.노동자를 대표해서 당서기가 된건데 노동자들이 감사해야하는게 아니라 노동자의 지지를 받아야 하는거다.' 이렇게 말한게 거슬렸던 모양이다. 사실 이르쿠츠크라면 큰 문제가 안됐는데 옴스크는 달랐다. 탈락후에 내가 러시아 교육부에 편지를 보내 이러한 사정을 설명했더니 학교로 이사람을 다시 임용해라 공문이 왔다. 내가 연구활동과 사회활동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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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재권력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인데 북한은 어떤가

"물론 북한에 비판할 내용 많다. 하지만 이웃나라이고 러시아 입장에서 중요한 건 북한이 유엔에서 한번도 러시아를 반대한적 없다는거다. 언제든지 러시아 지지했다. 이웃나라하고는 좋은 관계여야 한다. 그게 러시아의 입장이다. 원래 소련정책은 다른 나라는 자기 생각으로 가는거니까 평가할 수 없다는거다. 물론 어떤 사람들이 보기에 북한 주민 불쌍하지만 각 민족이 민주주의로 가는 것은 자기 길로 가야한다. 한국도 미국이 많은 영향을 미쳤지만 이승만독재도 있었고 박정희정권도 있었고 전두환 군사정권도 있었다."

 

- 교수에서 국회의원이 된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그전에도 고려인중에 최고인민의원(국회의원) 여럿 있었다.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에 수십만명이 살았으니까 이 지역을 대표해서 고려인을 한명씩 뽑았다. 그런데 항상 농민이었다. 우리 고려인중에 학자도 많고 의사 박사도 많은데 지역만 안배(按排)하다보니 다른 전문가로 소련 국회의원이 배출되지 않았다. 그래서 한번 해보자, 시작했다. 옴스크 주에 3개 선거구가 있었는데 우리 구 유권자가 22만명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민주선거를 했는데 옴스크시장과 연구소장 등 14명이 후보로 나왔다. 고려인은 100명도 안됐지만 내가 62%를 받았다."

 

- 고려인에 대해 차별이 없었나

 

"그런건 없다. 내 여권 이름도 김영웅이다. 아버지가 족보 보고 지어주신 이름인데 항렬이 길 '영(永)'자에 수컷 '웅(雄)'을 쓴다. 국회의원이 되면서 모스크바에 살 집을 만들어줘 오게 됐다. 그 후 다른 형제들도 하나씩 모스크바로 이주해 지금 가족 모두가 모스크바에 있다."

 

- 국회의원을 오래 하지 못했는데

 

"본래 임기는 5년인데 89년 국회의원 되고 91년에 소련이 붕괴했다. 그다음에 구성된 러시아 의회에선 국회의원 보좌관을 했다. 한국에선 이상한 일이지만 여기선 상관없다. 94년에 고려인으로 정홍식 국회의원이 됐는데 3선을 하는 내내 같이 일했다. 2003년 그분이 타계한 후 극동연구소의 초청으로 오게 됐다."

 

- 한국과의 인연은 언제부터인가

 

"내가 처음 만난 한국인이 1989년 5월 김영삼대통령의 측근이었던 정재문 전의원이다. 5선의원으로 국제회의동맹 부의장도 했다. 그때만해도 한국말을 잘 못해서 통역 통해서 얘기 많이 나눴다. 만날때마다 러시아와 한국 정책을 서로 설명했다. 2003년 정재문 의원이 '소련은 그리 먼곳이 아니었다'는 책을 냈는데 이걸 보고 번역하면 좋겠다해서 극동연구소에서 출판했다. 정재문 의원 통해서 김영삼대통령이 2011년 모스크바 방문하고 싶다고 해서 우리 연구소에서 초청하게 됐다. (극동연구소에 있는 김대통령 흉상을 소개하며) 2013년에 김대통령이 한러발전에 기여한 여러 업적으로 극동연구소에서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하게 됐는데 건강이 좋지 않아 우리가 직접 서울에서 전달하게 됐다. 그 답례로 김대통령 흉상(胸像)과 사진을 보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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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인으로서 박근혜 대통령을 가장 많이 만났다

 

"러시아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개인적으로 면담한 사람 별로 없을 거다. 지금 보면 대통령 되기전 받은 느낌과 조금 변화됐다. 아마 지도자니까 책임져야 할 일이 많고 대통령 되면서 많은 보수파를 끌어왔으니 보수파 의견을 반영할 수 없는 부분이 있을거다. 소련 국회의원을 지내고 러시아의회에서 일하면서 국회단의 일원으로 한국에 자주 갔는데 1998년 박근혜의원을 처음 만난 것으로 기억한다. 그뒤로 몇 번 만나고 그때 서울에 한러관계연구소라고 있었는데 러시아 인사들도 참여하고 박근혜의원이 연구소 공동의장이었다. 서울서 행사하고 국회에서 한러협력문제 세미나도 몇 번 했고 그래서 여러번 만나게 됐다. 박근혜의원이 2002년 북한 방문할때 서울에서 두시간 브리핑하기도 했다. 북한가서 어떤 방법이 좋고 어떤 얘기하면 좋고 등등.. 2004년에 당이 어려운 상태였을 때도 만났고 커터칼테러를 당한 다음해인 2007년 7월 한국방문했을 때도 만나게 됐는데 50분동안 단독대좌를 했다.

 

-어떤 얘기를 했나?

 

"자세히 말 할 수 없지만 좋은 분위기속에 잘 됐다. 그때 재밌는거 하나는 내가 '한국이 미국과 동맹관계니까 긴밀한 관계를 가질 수 밖에 없지만 이명박대통령이 너무 미국을 잘 돌봐주는거 같다'고 했는데 당시 박근혜 의원이 잘 이해하고 있었고 국민들 생각도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5년 있다가 다시 한번 한나라당 후보로 나올거니까 한러발전 위해 만들어보자고 했다. 저희 힘이 모자란것도 있지만 이명박 대통령과 전략적 동반자(?) 관계라서 러시아측이 박근혜 의원 만나주면 그쪽에서 조금 잘못 볼 수 있으니까 조심스러웠다."

 

- 수교이후 역대 한국대통령 취임식에 빠짐없이 참석했는데

 

"88년 노태우 대통령 취임식은 참석못했지만 여러번 만났고 93년부터 역대 대통령 취임식에 다 참석했다 93년 김영삼 대통령 취임식때는 제일 높은 로열박스에 앉았는데 그다음부터 점점 내려갔다. (웃음)"

 

- 가족을 소개해달라

 

"아내는 고려인 아버지와 러시아인 어머니사이에서 태어났다. 장인이 1937년 카자흐스탄으로 고려인이 강제 이주될 때 카자흐스탄으로 갔는데 1942년 독일과의 전쟁에 소집되어 가다가 모스크바 남쪽 툴라시에서 노동인력으로 차출(差出)됐다고 한다. 전쟁 끝난후 카스트라마 목재산업에서 일할 때 젊은 사람들이 많이 왔는데 예쁜 러시아 여자에게 반해 결혼했다고 한다. (웃음) 아내가 대학 다니면서 나를 만나 결혼했고 지금 아들이 둘이다. 아들 이름은 항렬이 봉으로 시작하는데 첫째가 헌법 '헌(憲)'자를 써서 봉헌. 둘째는 법률 '률(律)'자로 봉률이다. 이름값을 하는지 둘다 법대를 졸업했다. 장남은 법연구전문가가 되어 기업에서 일하고 차남은 2006년에 한국에 가서 석사학위 받고 올해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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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 어떤 계획이 있나

 

"나이가 75세인데 뭐 할게 있겠나. 소망이 있다면 러시아와 한국의 관계가 더 발전하는거다. 수교후 25년이 경과했지만 솔직히 큰 성과가 없다. 한국이 미국 일변도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그게 안된다. 한국이 하고 싶어도 미국 때문에 못하는 것 같다. 1995년에 러시아 국회에서 산업 (인더스트리)위원회 대표단이 한국방문할적에 대표단 서기로 갔다. 당시 최대석유사인 로스니프지 부회장이 동행해서 미국 일본도 주식을 갖고 있는 '사할인 원 프로젝트'의 러시아 주식 40% 중 한국에 19%를 주겠다고 제안했다. 사할린 원 프로젝트 공장건설을 미국측이 했는데 한국이 만일 제안 받았으며 그 프로젝트의 주인 되고 액화가스 더 많이 받을 수 있었는데 그걸 안했다. 그것도 미국측에서 반대한거 같다 국무총리까지 만나서 제안하고 설명했는데 6개월지나도록 답이 없더라. 그래서 19%를 인도회사에 팔았다 아주 이익 많은 사업이었는데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지금 러시아의 극동개발에서 제일 중요한건 어업 생산가공 보관 인프라인데 한국에서 러시아에 1센트도 투자를 안한다 그게 한국정책이다. 지금 일본놈들이 러시아 석유개발 투자하겠다하는데...한국의 이익을 해치면서까지 제재할 필요 있나. 개성공단 중단은 정말 잘못한거다. 개성공단은 김정일 유훈이다. 북한이 두 개 사단 물러났다. 휴전선이 후퇴한거다. 처음에 한국에서 산업공단 만들자 할 때 신의주를 생각했는데 김정일이 '개성에 하십시오' 권했다. 처음엔 한국측이 공단엔 항구가 있어야 한다고 거절했다. 신의주는 한국인들이 거기서 살기 쉽지않지만 개성은 출퇴근도 가능하고 전기공급도 문제 없다. 제일 중요한건 그땅이 1950년까지 누구땅이냐? 남쪽 땅이었다. 50년간 그 땅을 한국에 임대해서 주는거다. 전쟁하지 않고 남한이 소유하는거다 그걸 생각하지 않는건지, 못하는건지 모르겠다.."

 

- 박근혜 대통령을 원래 높이 평가했는데

 

"지금도 박대통령을 높이 평가한다. 대통령선거때 너무 많이 보수파를 불러들여서 그사람들한테 응답하고 미국입장도 있고 그런거 같다. 노무현 대통령도 취임전 후 미국에 대해 말하는거 들어보면 많이 다르다. 지금 남중국해와 사드로 중국과 미국 갈등이 있는데 거기서 한국이 뭐해야 하나. 한국이 중국에 무역 45% 의존한다. 이게 잘못되면 한국 경제 어떻게 되냐.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건 2013년 푸틴 대통령 방문이후 박대통령이 2년이상 답방(答訪)을 안하고 있다.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났다. 올해 놓치면 수교후 모스크바 못오는 첫 대통령 된다. 지난해 70주년 전승절 행사도 참석 못한거 이해하지만 국무총리도 아니고 국회의원 한사람 보낸것은 러시아가 무시받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런 상태에서 한국정부가 하산-나진 프로젝트 물러나는것도 러시아한테는 설명이 안된다. 하진-나산은 북쪽하고 아무 관계없다. 우리가 북쪽과 임대해서 러시아 물건 보내는거다. 북쪽 통해서 나가는 것인데 그것도 안하겠다고 한다. 25년간 한국에서 러시아에 25억달러 투자했다는데 서비스산업과 소비재 투자가 대부분이다. 러시아에서 보면 큰 의미가 없다. 중공업 에너지부터 노후(老朽) 원전처리 기술까지 러시아로부터 얻어낼 수 있는 전략산업이 얼마든지 있다. 지금이라도 전향적으로 여러 문제들을 해결해나가고 진정한 국익을 따져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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