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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에 대한한국 임시정부 주 파리 위원부가 활동을 시작했는데, 이는 임시정부 차원의 공식적인 성격의 활동이었다. 

이로부터 8개월 후인 11월에는 홍재하를 포함한 한인 근로자 35명이 샬롱-쉬르-마른느(Châlons-sur-Marne) 도 스위프(Suippes)의 ‘전지 수선 공사’에서 제1차 대전 중 폐허가 된 지역의 복구 사업을 시작했다. 이들이 중심이 되어 프랑스 한인회의 시조(始祖)라 할 수 있는 재법한국민회(在法韓國民會, 여기서 ‘법法’은 프랑스의 중국식 표현)를 조직하였는데, 이는 프랑스뿐만 아니라 유럽최초의 한인 단체이자 최초의 한국 이민자들이었다.

이들을 프랑스로 이주 시키고 재법한국민회를 결성하도록 이끈 주역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파리위원부 서기장이었던 황기환이었다.

1918년 11월 11일 제1차 세계대전이 종전 되고, 베를린에 있던 황기환은 김규식의 제안을 받고 1919년 6월 3일 파리에 도착, 한국대표부 서기장으로 임용되었다. 

영어에 능숙했던 그는 김규식을 도와 파리강화회의에 독립청원서를 제출하였고각종 강연회·토론회를 개최, 한국독립의 정당성과 일제의 침략사실을 폭로 규탄함으로써 한국문제를 세계 여론화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무엇보다 한인들의 프랑스 정착과정에서 황기환의 노력은 실로 대단하였다.  

 

한인 노동자의 스위프 이주 과정

 

러시아 무르만스크에 있던 한인들의 스위프(suippes) 까지의 이주 과정은 임시정부 자료집에 소개된 ‘구주의 우리 사업’을 통해 알 수 있다.

1913년, 일본 제국주의의 탄압을 피해서 중국의 만주 간도 지방에 이주해 있던 일부의 한인들이 세계 1차 대전 당시 북 러시아 북해(北海)에 접한 무르만스크(Murmansk) 항에 도착해 철도 부설 공사장에서 7년간 고된 노역을 했다. 1919년에 이곳을 점령한 영국군은 제1차 대전이 종결되고 이곳을 철수하면서 남아 있던 500여명의 한인 노동자들을 일본으로 송환할 계획이었다. 

 

1919년 10월 무르만스크의 한인 노동자들은 파리위원부에 자신들의 강제 귀환을 막아달라는 청원을 해왔고, 주 파리 위원부는 영국에 먼저 도착한 이들 200여명을 구출하려고 한인들이 계류하고 있던 영국의 에딘버러(Edinburgh)에 황기환을 급파해 영국, 프랑스 당국과 협상을 벌였다. 

 

그는 협상을 관철하기 위해 영국 외무부와 국방부에 이들이 무르만스크에서 영국군과 연합군의 지휘하에서 노동하였음을 강조했다. 또한 일본의 압력과 요구에 의해 일방적으로 한인 노동자들을 중국 청도(靑島)를 통해 강제귀환 시키려던 영국 당국의 방침에 대해 로이드 조지(Lloyd George) 영국 수상에게 서신을 보내어 강제귀환은 인권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항의하여, 비록 일부분이긴 하지만 한인 35명의 프랑스 이주를 관철시켰다. 

 

이들은 프랑스 르 아브르 (Le Havre) 항을 경유하여 파리에 도착했고, 프랑스 노동부의 지정으로 전원이 11월 19일부터 마른느 도 스위프(Suippes) 시 소재 전지수선공사 (전후 폐허가 된 지역의 복구 공사장)에서 일하게 되었다.

당시 프랑스 노동부가 현지인들의 외국인 혐오를 구실로 내세워 한인 노동자의 입국을 거부하던 방침을 철회하고 노동허가를 받아낸 사실은 온전히 황기환의 노력이었다. 

 

황기환은 미국에서 1906년 공립협회 레드렌드 지방회 부회장을 지냈고,  대한국민회에도 참가한 인사였다. 그리고 미주에서 대한국민회 지부의 설치 과정을 직접 경험한 바 있었다. 대한국민회는 미국 각지 뿐 아니라 멕시코, 시베리아 등지에도 지부를 설치하며 조직을 해외 한인사회로 확대해 나갔다. 그리고 이들은 해외 어디에서나 도산 안창호가 강조한 것처럼 근면, 청결을 생활지침의 모범으로 삼았다. 스위프의 한인들 역시 근면 청결하고, 예의 및 품행이 방정해 현지에서 환영을 받았다는 사실은 이를 증명한다. 1920년 노동 헌신의 증표로 프랑스 정부로부터 동메달을 수여 받았던 사실도 그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볼 때 재법한국민회는 황기환의 지도 아래 대한국민회의 프랑스 지부를 겸해 설치된 것이라고 해도 크게 무리가 없을 것이다. 재법한국민회가 첫 사업으로 1920년 3월 1일 3·1운동 기념 경축식을 거행한 뒤 이 사실을 미국의 ‘신한민보’에 알렸던 것은 그와 같은 배경에서였다. ‘신한민보’에서 전하는 경축식의 진행이나 광경 역시 대한국민회 지부에서 일반적으로 거행하는 경축식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재법한국민회의 조직

 

스위프에서 재법한국민회가 결성된 것은 한인들이 프랑스에 도착한 1919년 11월 19일로 알려져 있다. 자료상으로 보면, 1919년 10월초부터 시작해 이듬해인 1920년 2월까지 총 8차례에 걸쳐 32명의 한인들이 스위프에 들어온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여성과 아이들은 자료상에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이들을 합치면 그 숫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한인들이 가장 많이 도착했던 시기가 11월 19일경이었기 때문에 황기환은 ‘구주의 우리 사업’을 통해 임시정부에 재법한국민회가 이날 결성된 것으로 보고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당시의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명확한 사실을 파악할 수는 없지만, 대부분 연구에서는 재법한국민회 초대 회장으로 홍재하(洪在夏)를 거론하고 있다. 하지만 스위프의 한인 노동자가 아닌, 1920년 초 유학생으로 파리에 건너와 스위프에 합류한 허정(許政, 1896∼198?)이 맡았다는 설도 있다. 한인들이 보다 조직적으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미주에서 대한국민회의 경험을 한 인물인 허정을 앞세웠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1920년 3월 1일 제 1주년 3·1절을 기념하기 위해 재법한국민회가 스위프에서 유럽 각지의 한인들을 초대할 당시 ‘국민회’ 이름으로 초청하였는데, 허정이 국민회 지부장 자격으로 초청한 것을 근거로 하고 있다. 

 

하지만 스위프에 처음 도착했던 시기에는 홍재하가 실질적인 리더 역할을 했고, 대외적인 행사를 앞두고는 1920년 초에 스위프에 도착한 허정이 대회장을 맡다가 1920년 7월 그가 미국으로 떠난 뒤 홍재하가 다시 공식적인 대표를 맡은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재법한국민회의 초대회장을 두고 갑론을박이 있을 수는 있지만, 당시의 열악한 상황에 비추어 한 단체의 회장이라는 직책의 의미보다는 한인 공동체의 리더로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홍재하는 1919년 12월 첫 급료를 받을 때 부터 모금을 시작하여 1920년 6월까지 모금을 계속해 파리위원부에 전달한 것으로 전해진다. 

재법한국민회의 회의록 같은 직접적인 자료는 없지만, 홍재하가 보관하고 있던 황기환의 편지(1920년 6월 3일자, 7월 9일자), 주철조(朱喆祚)의 편지에서 이들의 활동상을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다. 

머나먼 프랑스 땅에서 고향을 떠난 지 수 년이 지난 한인들을 규합해 전 유럽에 있는 한인들을 초청해 3·1절 1주년 기념식을 거행한 점도 재법한국민회가 매우 조직적이고 계획적으로 사업을 추진해 갔다는 점을 증명해주고 있다.  

재법한국민회는 1923년 6월까지 활동했고, 이어 파리한인친목회(巴里韓人親睦會)가 결성되어 4~5년 간 지속되었다.

 

 

‘한인사회의 역사속으로’는  프랑스한인100년사에 소개할 자료 중 일부를 발췌해 소개합니다. 내용중 오류나 정정 내용이 있으면 프랑스존 이메일로 제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한인사에 소개할 중요한 자료가 있으신 분들의 제보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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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파리)=한인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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