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프에 세워진 한국인의 기념비

새로운 출발점이자, 한인사회 미래의 이정표가 되길

 

 

2019년 11월 1일은 프랑스 한인사회에 있어 역사적인 날로 기억될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꼭 100년 전, 35명의 한인들이 처음 밟았던 쉬프에 그 후예들이 그 자리에 섰기 때문이다.

1919년 11월 19일, 이곳에서 처음 결성됐던 재법한국민회는 프랑스한인회의 시작이자 유럽한인사회의 시발점으로서, 쉬프는 이제 우리 한인들에게는 영원한 상징적 장소가 됐다.

역사적인 땅 쉬프에서 프랑스 한인 이주 100주년을 맞아 11월 1일(금) 14~18시 기념비 제막식과 함께 쉬프 시가 마련한 기념식, 대한민국 국립합창단의 축하공연이 거행됐다.

 

 

 

쉬프 땅을 밟은 다시 밟은 프랑스 한인들

 

오전 9시에 파리 이탈리 광장에 모인 재불교민 100여명은 2대의 버스에 나눠타고 쉬프로 출발했다.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부는 만추의 쌀쌀한 날씨였지만, 쉬프로 향하는 교민들의 표정은 기대감으로 가득찼다. 

파리에서 A4를 타고 랭스(Reims)를 지나 10여분을 달리면 나타나는 쉬프는 주민 4000여명 이 사는 작은 꼬뮌이다. 

버스가 지방도로를 들어서자 아기자기한 마을 풍경이 들어왔고, 시청 앞에는 태극기가 휘날리며 멀리에서 달려 온 한국인들을 반겼다.

 

 

 

프랑스 한인 이주 100주년 기념비 제막식

 

기념비 제막식은 오후 2시, 쉬프 시청 인근에 새로 건립된 메디아테크 정원에서 거행됐다.

쉬프 유니온 뮤지칼 관현악대의 주악에 맞춰 한국의 애국가와 함께 프랑스 국가가 연주됐다.

장 레이몽 에곤 쉬프 시장 최종문 주불대사, 한우성 재외동포재단 이사장, 나상원 프랑스 한인회장, 오들 뷔로(Odle Bureau) 마른도 부지사, 유제헌 유럽한인총연합회 회장 등 내외 귀빈들이 기념비에 감싸인 흰 색 휘장를 벗겨내자 날개 모양의 하얀 동상이 드러났다.

이 작품은 재불 조각가인 백승수 작가의 작품으로 프랑스한인회가 지난 7월부터 공모해 당선작으로 선정됐다.

작품은 쉬프 한인들이 세운 강인한 뜻처럼 하늘로 솟은 청동재질의 사각형 기둥으로, 기둥 중간부에는 굴곡진 그들의 삶을 형상화시킨 선들로 겹겹이 쌓아 올린 공간이 있다.

기둥 위 반쪽짜리 날개 형태의 조형물은 머나먼 이국 땅에서 조국을 향한 그리움, 날개의 반쪽은 조국에 남겨져 오가지 못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새로운 시작이자 삶의 끝자리가 되어버린, 그럼에도 한민족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지키며 살아온 그들의 발자취를 상기시킬 수 있는 조형물이다.  

참가자들은 기념비에 헌화한 후, 기념촬영을 하며 100년 전 우리 조상들이 밟았던 그 시절을 떠올리며 오늘의 소중한 역사를 기록에 담았다.

 

 

쉬프 시가 마련한 시가행진

 

쉬프 시청 앞에 모인 참가자들은 공식 기념식이 열리는 SALLE GENEVIEVE DESVIGNES까지 1km 거리의 시가행진을 펼쳤다.

한인외인부대원 협회 기수단을 필두로 쉬프 유니온 뮤지칼 관현악대가 연주를 하며 재불교민들과 대회 관계자들이 뒤를 따랐다.

이날 퍼레이드는 쉬프 시의 제안으로 이루어졌다. 4000명 정도의 주민들이 사는 한적한 꼬뮌에서는 낯선 방문자들을 환영하며 오랫만에 활기가 돌았다. 마을 주민들은 행렬을 바라보며 박수를 보냈고 손을 흔들며 정성껏 환대했다.

 

 

 

엄숙하게 거행된 공식 기념식

 

공식 기념식이 열린 SALLE GENEVIEVE DESVIGNES는 400명을 수용하는, 쉬프에서는 가장 큰 스포츠 센터이자 행사장이다.

오후 3시, 국민의례로 기념식이 엄숙하게 개막됐다.

나상원 한인회장은 개회사에서 “프랑스 한인사회 역사상 이처럼 의미있고 숭고한 역사를 되찾게됨을 무한한 감사와 영광으로 생각한다며, 오늘의 이 자리는 지나간 100년의 역사를 되새기고 다가올 100년의 미래를 설계하는 새로운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장 레이몽 에곤(Jean Raymond EGON) 쉬프 시장은 환영사에서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쉬프는 4년간이나 전쟁이 벌어졌던 격전지로서 지금까지도 군사지역으로 보호되고 있는 곳”이라며 당시의 한인들을 비롯한 노동자들이 오늘의 쉬프를 만든 주역들이라고 감사의 말을 전했다. 

이어 최종문 주불대사, 한우성 재외동포 이사장, 오들 뷔로(Odle Bureau) 마른도 부지사의 축사가 이어졌다.

또한 이날은 특별히 당시 재법한국민회 1대 회장이었던 홍재하씨의 차남 홍푸안 씨가 연단으로 나와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국립합창단의 수준 높은 축하공연에 관객들 환호

 

기념식에 이어 한국을 대표하는 합창단, 국립합창단의 축하공연이 펼쳐졌다.

국립합창단의 이번 공연은 지난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연주회 '동방의 빛'과 8월 15~16일에 선보인 '2019 광복절기념 합창대축제‘에서부터 이날 쉬프까지 이어지는 연장선상에 있었다.

국립합창단은 방아타령, 에헤라디야, 자진방아타령과 명태 등 다양한 한국 전통민요와 이태리 가곡들을 선보이며 객석을 가득 메운 청중들을 사로잡았다.

특별히 프랑스 관객들을 위해 프랑스 작곡가인 가브리엘 포레의 ‘장 라신느의 찬가’를 연주하자 뜨거운 환호가 터져나오기도 했다.

마지막 앵콜곡에 앞서 국립합창단 예술감독이자 상임 지휘자인 윤의중 씨가 청중들의 뜨거운 호응에 감사의 인사말을 전했다.

그는 “한국에는 아름다운 전통 민요들이 많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세계적으로 알려진 명곡이 아리랑이다.”라며 “아리랑은 떠나가는 사랑에 대한 애절함, 나라를 잃은 국민들의 슬픔, 고향을 그리워하는 이방인들의 애타는 마음으로, 100년 전 이곳 땅에서 일했던 35명의 한국인 노동자들도 분명 이 노래를 불렀을 것”이라며 아리랑을 연주하자 재불한인들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모든 공연이 끝나고 쉬프 시가 정성껏 마련한 축하 리셉션에서 참석자들은 서로 격려하며 화기애애한 시간을 가졌다. 

 

 

 

쉬프 시와의 관계 설정, 한인사회 앞으로의 과제

 

이제 프랑스 한인사회와 쉬프 시는 또 하나의 혈연관계로 이어지게 됐다.

이번 행사가 결코 일회성 행사로 끝내선 안될 것이다. 이제부터 이를 잘 살려가는 것이 프랑스한인회에게 새로이 던져진 과제다. 

나상원 한인회장은 “쉬프와 한국의 한 도시와 자매결연하는 길을 모색해 보겠다.”며 “프랑스 내 한인단체들과도 협력해 이곳에서 한국문화 행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노르망디 순례처럼 프랑스 한인역사를 찾아서 떠나는 역사 기행 프로그램을 만들어 연례화하는 방법 등 다양한 방법들을 모색해 보아야 할 것이다.

쉬프 시에 세워진 기념비가 빛 바래지 않도록 우리 모두 함께 잘 가꾸고 보존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오늘의 이 기념비가 새로운 출발점이자, 한인사회의 미래를 비춰줄 이정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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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파리)=한위클리】 이석수 편집위원 / 사진 : 이루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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