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발생한 한국의 국가적 재난사태, 세월호 참사는 프랑스의 베르사이유 궁전과 루브르 박물관에까지 미묘한 파장을 일으켰다. 세계적인 권위를 지닌 두 명소가 부도덕한 침몰여객선 소유주로부터 거액의 후원금을 받았다는 데에 피가로나 르몽드 등 주요 일간지들이 문제를 제기했던 것은 지난 6월 중순경이다. 프랑스 유력경제전문지 샬랑쥬는 9월 최근호를 통해 비리혐의를 받고 도주하다 사망한 한국인 부호에게까지 ‘후원금 사냥’에 나섰던 두 명소의 실태를 파헤쳤다. 



사실상 베르사이유나 루브르뿐만 아니라 ‘궁전’, ‘박물관’이라 이름 붙는 모든 명소들이 메세나 운동을 통해 민간 지원금을 거둬들이고 있는 실정이다. 


프랑스는 경제, 재정위기로 문화예술분야 전반에 걸쳐 국가지원금이 대폭 감축된 상황이다. 베르사이유는 2013년 국가지원금이 4천만 유로로 대폭 줄었는데 2014년 다시 반절로 절감됐다. 루브르는 국가지원금이 9천8백만 유로로 1년 예산액의 49%를 차지하지만 2001년은 75%까지 이르렀던 상황이다. 


2013년 베르사이유 궁전은 7백만 명이 입장, 4천9백만 유로의 수입을 거뒀다. 갈수록 늘어가는 방문객들이 뒤푸르 입구에서 너무 오랫동안 줄서지 않도록 보수공사는 불가피한 상황으로, 여기에 1천5백만 유로가 투자될 예정이다. 루브르는 2013년 930만 명이 방문, 입장료 수입에서 6천만 유로를 거둬들였다. 2010년보다 2천만 유로가 늘어난 수입이다. 하지만 1989년 4백만 명을 기준으로 설계된 피라미드 입구는 한계에 이르렀고 원활한 방문객 입장을 위한 시설확장비로 5천3백만 유로의 예산이 불가피하다. 


두 명소의 지붕 만해도 엄청난 면적에 이르며 건물유지비로 매년 막대한 비용이 소요된다. 루브르가 소장한 예술품은 약 46만 점, 대부분 전시공간이 부족하여 지하창고에 보관되었으며 여기에도 많은 인력과 관리비가 요구된다. 베르사이유 궁전은 2,300개 방을 지니지만 역시 인력과 재정부족으로 대다수가 폐쇄된 상태이다. 


두 명소에 전시된 엄청난 분량의 장식품들이 훼손되지 않도록 관리하자면 입장료 수입과 국가지원금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계산이다. 2013년 베르사유가 메세나 운동을 통해 거둬들인 민간지원금은 1,550만 유로로 1년 예산액의 13%, 루브르는 1,500만 유로로 약 8%를 차지했다. 


2012년 루브르에 이슬람관이 개설될 때 사우디아라비아 부호가 1천7백만 유로, 중동 오만국왕이 5백만 유로를 후원했다고 한다. 이처럼 두 명소는 일본, 미국 대기업체에 이르기까지 세계각처로부터 후원금을 받고 있다. 베르사이유 정원 라톤느 분수대는 스위스 필랑트로피아 재단 후원으로 복원사업이 착수되어 올 가을 완공될 예정이다. 30년 동안 폐쇄되었던 ‘왕비의 집’은 디오르가 기증한 5백만 유로로 재건된다.


세계부호와 굴지의 기업체들만이 거액의 후원금을 기부하는 것은 아니다. 베르사이유는 정원에 세워진 조각상, 벤치, 나무들의 복원작업에서 메세나 운동을 대대적으로 펼치고 있다. 2011년 베르사이유는 50개 벤치 복원사업에 착수하며 벤치 당 3,800유로의 후원금을 모집했다. 이 후원금으로 복원을 마친 각 벤치에는 후원자 이름이 새긴 작은 명판이 부착됐다. 같은 해에 베르사이유는 보리수나무 446그루를 새로 심으면서 구입비, 운반비, 인건비, 1년 관리비로 그루당 1천유로 후원금을 받았다. 후원자들은 궁전을 마음대로 방문할 수 있는 1년 회원제와 감사장을 기증받았다. 


베르사이유 정원의 나무 한 그루를 입양하는 범국민적인 메세나 운동은 1999년 12월 프랑스를 강타한 폭풍우가 계기가 된다. 이때 베르사이유 정원의 2만 그루 나무들이 훼손되거나 뿌리째 뽑혀졌다. 고풍스런 정원의 옛 모습을 되찾기 위해 즉각 1만 그루를 다시 심어야하는 상황에서 메세나 운동이 전개됐다. 당시 그루당 후원금은 150유로였다.


이러한 범국민적인 메세나 운동에는 국가의 소중한 유산을 보존한다는 차원에서 전국 각 지방, 시, 마을도 동참했다. 시민단체들도 회원들의 작은 성금을 보아 국민운동에 참여했다. 프랑스정부는 메세나 운동을 더욱 촉진시키기 위해 2003년 아이야공(Aillagon)법을 마련하고 후원기업체는 후원금의 60%, 개인은 66%까지 세금을 감면해주고 있다.




▶ 영화촬영, 파티장소로 대여, 대기업체의 특별손님들을 위한 장소로도...




베르사이유와 루브르는 민간지원금 이외에도 영화촬영장소 대관료로 짭짤한 부수입을 올린다. 지난 4월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2015년에 개봉될 숀 맥나마라 감독의 ‘달과 태양’이 촬영됐다고 한다. 루이 14세역을 맡은 피어스 브로스넌이 화려한 가발과 의상을 걸치고 1주일 동안 오후 6시부터 새벽 5시까지 촬영에 임했는데, 하루 대관료는 25,000유로. 루브르는 2005년 6월 ‘다빈치 코드’ 제작팀에 장소를 대여하며 대관료뿐만 아니라, 박물관내부의 모습이 영화장면에 삽입되도록 고액의 이미지 저작권료도 받아내어 당시 화제를 모았었다. 


두 명소는 또한 세계적인 갑부나 스타들의 개인 파티 연회장으로도 대관된다. 루브르는 2012년에 각종 연회장으로 장소를 제공하고 120만 유로를 거둬들였다. 베르사이유 궁전에서는 루이 14세로 분장하고 싶은 욕망을 지닌 일부 부호들에 의하여 18세기 가면무도회도 심심치 않게 열린다고 한다. 최근에는 랩가수 카니예 웨스트와 배우 킴 카다시안이 궁전에서 거나하게 허니문 파티를 열면서 하룻밤 대관료로 2만 유로를 지불했다.


루브르가 기획전시회를 개최하는 기간 중에 특별히 휴관일인 화요일 아침에 특별손님으로 초대받았다고 치자. 입구에 줄을 설 필요도 없이 엄숙한 고요함이 흐르는 명소의 문턱을 즉시 넘자면 친절한 안내원이 따끈한 커피와 크르와쌍이 마련된 아늑한 살롱으로 먼저 안내한다. 이쯤이면 완벽한 VIP대접이다. 


베르사이유와 루브르는 휴관일 월요일 혹은 화요일에 각각 특별손님들을 위해 특별개방하는데 이 또한 지극히 관례적인 행사이다. 두 명소뿐만 아니라, 바토무슈도 특별손님들을 태우고 다른 유람선들이 몰려들기 이전 주말오전 센 강을 전세 내어 한 척만이 유유히 운행하는 경우도 있다. 


베르사이유 궁전이 문 닫는 월요일에 자신을 위해 특별히 문을 열었고, 자신을 태운 유람선이 센 강을 통째로 전세 냈다고 여긴다면 누구나 어깨에 힘이 들어가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VIP인 것처럼 표시내고 우쭐댔다가는 망신살이 뻗칠 수 있다. 프랑스에서 이들 명소의 특별손님이 된다는 것은 결코 특수사회계층에 허락된 특혜가 아니기 때문이다. 가령 BNP파리바 은행주식을 1주라도 지닌 소액주식가들 중에 혹시 배우자나 친구도 끼여 있다면 이들을 따라 월요일은 베르사이유, 화요일은 루브르에 초대받는 행운을 쉽사리 안을 수 있다. 


프랑스 기업체들은 주식투자가들의 환심을 사기위해 유명한 명소방문 등 다양한 이벤트 행사를 펼치고 있다. 파리, 마르세이유, 리옹 등 대도시의 내로라하는 명소들은 이들 대기업체들이 벌이는 각종 이벤트행사에 적극 동참하고 있으며, 여기에 일반서민들도 얼마든지 VIP대접을 받을 기회가 주어진다. 


 


▶ 참다운 메세나 정신은?




베르사이유 궁전과 루브르 박물관은 세계적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그만큼 천문학적인 숫자에 가까운 유지비가 요구되며, 그러다보니 인정사정없는 ‘후원금 사냥’으로 자칫 빈정거림을 받을 수 있다. 지금도 베르사이유 궁전 나무를 입양하고 싶다면 1,000유로, 자기이름이 새겨진 작은 명판이 달린 벤치를 소유하고 싶다면 2,900유로부터 가능하다.


사실 세월호 실소유주 유 씨는 프랑스의 메세나 제도를 철저하게 악용했다고 볼 수 있다. 후원금이라는 명목아래 두 명소를 거액으로 대관하여 사진전을 열고 마치 대단한 사진작가였던 것처럼 행세한 점, 맹목적인 추종자들에게 전시 사진들을 고액으로 되 팔았다는 점에서 메세나 정신과는 전혀 동떨어진 것이었다. 


여기에서 아무런 대가성 없이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지원하는 순수한 메세나 정신을 지닌 소액의 후원자들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짚고 넘어갈 필요성이 생겨난다. 베르사이유가 정원 조각상들의 복원작업에 착수했을 때, 한 익명의 평범한 의사는 ‘의사의 신’을 상징하는 에스퀼라프 조각상에 기꺼이 후원금을 지불했다고 전해진다. 




【한위클리 / 이병옥 ahpari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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