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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농 성(Château de Chinon)은 비엔 강과 다리 건너 마을을 굽어보며 자리한 성으로, 유유한 세월에 녹아내린 벽들로 황폐한 모습을 드러내는 요새 성이다. 이처럼 낡아가고 허물어져가는 성을 많은 사람들이 찾는 이유는 백년 전쟁 때 ‘프랑스를 구하라’는 신의 계시를 받은 잔 다르크가 샤를 7세를 회견한 곳으로 중요한 역사의 한 장을 장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농성의 역사



마을의 광장을 지나 성으로 가는 표지판을 따라가다 보면 성의 입구에 엘리베이터가 기다리고 있다. 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바로 성으로 들어 갈 수 있는 티켓 판매소에 도착하게 된다. 

시농 성은 블루아 백작이었던 테오발 1세(Theobald 1)에 의해 954년 요새로 세워졌다. 그 후 12세기에 앙리 2세가 이곳에 체류하며 성의 많은 부분을 개축했고, 앙리 4세 때는 감옥으로 사용하다 나폴레옹 3세 때 부분적으로 이전의 성으로 다시 복구했다. 

그러나 440여개의 방이 있을 정도로 루아르 계곡의 고성 중에서 가장 큰 성이지만, 프랑스 대혁명 때 약탈을 당해 지금은 대부분의 방이 비워있으며 건물은 허물어 가는 중으로 옛 영화는 찾아보기 힘들지만, 지극히 소박한 자연스러움이 남아있다.

성은 동쪽에 있는 조르쥬 요새(Fort St. Georges), 가운데에 있는 밀리외성(Château du Milieu), 서쪽에 있는 쿠드레 요새(Fort du Coudray) 등으로 나뉘며, 쿠드레 요새는 템플 기사단원들의 막대한 재산과 권력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필립 4세가 이단과 부도덕이란 죄목으로 템플 기사단원들을 잔인하게 탄압했던, 1307년에 기사단원들이 유폐되어 있던 곳이다. 그 때의 흔적은 기사단원들이 새겨놓은 벽의 낙서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밀리뢰 성 옆에는 성을 지키며 사냥에 동행하던 황실견의 사육장으로 사용하던 개 타워 (tour des chiens)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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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농 성에서의 잔 다르크와 샤를 7세의 만남



백년전쟁은 1337년부터 1453년까지, 116년 동안 영국과 프랑스 간의 전쟁으로 이 기간 동안의 휴전과 전쟁이 반복되었지만, 프랑스가 전쟁터였다. 긴 전쟁으로 폐허가 되어가던 프랑스에서 전쟁이 종결 될 수 있던 것은 잔 다르크의 출현 덕분이다. 

잔 다르크는 1429년 3월 8일, "프랑스를 구하라"라는 신의 계시를 듣고 자신이 태어난 알자스-로렌 지방의 작은 마을인 동레미(Domrémy)에서부터 시농 성까지 400km가 넘는 거리를 달려왔다. 시농 성에 온 이유는 왕세자 샤를 7세가 있었기 때문이다. 샤를 7세는 샤를 6세의 아들로, 어머니인 이사보가 왕의 동생 오를레앙공과 관계를 맺어 태어났을 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받아 영국 왕 앙리 5세에게 왕위계승권이 돌아가자 상심하여 시농 성에서 세상과 멀리하며 살고 있었다. 

샤를 7세는 신의 계시에 따라 자신을 만나러 잔 다르크가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녀가 도착했을 때 화려한 의상을 입은 가짜 왕자를 세우고는 자신은 허름한 옷으로 변장을 하고 신하들 사이에 서 있었다. 잔 다르크는 한 번도 보지 않은 샤를 7세지만 가짜 왕세자는 쳐다보지도 않고 변장하고 있는 왕세자 앞에 무릎을 꿇어 왕과 신하들을 놀라게 했다. 이 날이 1429년 3월 8일이다. 이 역사적인 날 잔 다르크는 자신감 없는 샤를 7세를 설득하는데 성공해 군사를 이끌고 영국군과 싸워 오를레앙에서 첫 승리를 거두며 루아르 강 유역을 지켜냈다. 이 승리를 시작으로 승승장구하던 잔 다르크 군대는 큰 전투 없이 랭스에 입성했다. 랭스는 전통적으로 프랑스 왕들의 대관식을 치르던 곳으로 잔 다르크의 힘에 의해 샤를 7세는 이곳에서 대관식을 치르고 정식 프랑스 왕위에 오르게 된다. 

이 때 샤를 7세는 잔 다르크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원하는 것을 물었고, 그녀는 고향인 동레미 마을의 세금을 영구히 면제해 줄 것을 청했다. 이때 받은 면세 특권은 왕정이 폐지 될 때까지 유지되었다. 

그러나 샤를 7세는 잔 다르크가 영국군에게 잡혀 루앙 광장에서 마녀로 몰려 화형을 당했을 때 모른 척 하던 비겁한 왕이었고, 마녀가 자신을 왕으로 만들었다는 오점을 남기지 않기 위해 전쟁이 끝난 후에 마녀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명예 회복 재판을 열도록 했던 이기적인 왕이기도 했다. 이런 왕의 이기심은 잔 다르크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지금 잔 다르크는 가톨릭의 성녀로, 프랑스의 수호성인으로, 여군과 걸 스카우트의 수호성인으로 기려지고 있다. 

잔 다르크 축일은 매년 5월 30일로 첫 승리를 거둔 오를레앙에서는 잔 다르크를 ‘오를레앙의 처녀’로 부르며 5월 30일에 맞추어 성대한 축제를 해마다 연다. 

시농 성에는 오를레앙 같은 큰 축제는 없지만 성을 거닐다 보면 황폐하게 무너져 내리는 세월이 소곤소곤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우리가 살아가는 길에는 두 갈래의 길이 선택이란 이름으로 놓여 있고,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열망이 남아있으며 만약 그 길로 갔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 속에 미련을 두기도 한다. 이러한 세월이 소리로 흐르는 것이다. 

샤를 7세가 끝내 잔 다르크를 믿지 않고 군대를 내어주지 않았다면 지금 프랑스는 영국군 아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인 것처럼. 가보지 않은 길, 남들이 가보지 않았던 길, 그런 길이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할까 하는 생각을 따라 성 아래 자리한 마을로 들어서면 운치 가득한 오래된 가옥들이 즐비하다. 이 가옥들 1층에는 와인가게와 과자점 등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들어서 있어 눈이 즐겁다. 

마을을 돌고 와인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19세기 말의 와인 제조 과정을 볼 수 있는 와인박물관을 찾아 방문해도 유익한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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