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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는 1848년 2월 혁명이 일어나자 루이-필립 1세 국왕은 영국으로 망명하고 무정부 상태의 혼란에 빠졌다. 이때 라마르틴(Lamartine, 1790년-1868년)은 임시정부의 수장으로서 1848년 2월 24일부터 5월 9일까지 위기의 프랑스를 통치한 업적을 역사에 남겨놓았다. 그는 정치인이기에 앞서, 낭만파의 선구자로서 불문학사에 굵은 획을 그은 시인이었다.

 

 

▶ 시인이 정치하던 시대

 

조르쥬 퐁피두 전 대통령(1911-1974년)은 ‘시인 대통령’이라는 닉네임이 붙었을 정도로 문학에 깊은 식견을 지닌 문인정치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제 19대 대통령에 취임하기 전, 1969년 4월 28일 아카데미 프랑세즈에서 ‘시와 정치는 서로 양립될 수 있는가?’ 라는 주제의 명연설을 했다. 시인과 정치인은 인간의 본성과 감성, 욕망에 대해 예리한 통찰력을 지녀야하며, 인간의 본질을 시인은 예술적 언어로, 정치인은 행동으로 구현한다는데 그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역설했다.

 

사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문학과 정치는 함께 동고동락했다. 태양왕 루이 14세 뒤에는 파스칼, 몰리에르, 라신느, 라퐁텐느 등 기라성 같은 학자와 문인들이 존재했다. 하늘을 찌르던 절대왕권주의와 고전문학의 찬란한 개화기는 톱니바퀴처럼 같이 맞물렸으며,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박식한 학자와 문인들이 프랑스왕권의 국제적 위상을 높여주는 디딤돌이었다.

우리나라에도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를 중심으로 훈민정음이 창조되고, ‘월인천강지곡’, ‘용비어천가’ 등 걸작들이 간행되던 찬란한 시대가 있었다. 시문학은 곧 정치입문의 초석이었다. 탁월한 시문학 재능에 높은 덕망과 지혜를 갖춘 재상을 들라하면 황희, 이율곡 등을 꼽을 수 있다.

 

프랑스에서 시문학을 겸비한 품격 높은 정치인을 열거하라면, 샤토브리앙(1768-1848년)을 기점으로 빅토르 위고(1802-1885년)를 거쳐, 앙드레 말로(1901-1976년)에 이르기까지 명단은 길어진다. ‘19세기 작가들의 대부’ 샤토브리앙은 1803년 나폴레옹에 의해 로마대사로 임명된 이후 외무장관, 당대 최고직위인 국무장관을 겸임한 시대의 풍운아였다. 위고는 1848년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어 민주주의를 옹호하다가, 1851년 12월 나폴레옹 3세가 쿠데타로 권력을 잡자 제정수립을 반대하다 국외로 추방되었다. 이 정치망명 기간 중 <레미제라블>을 집필했다. <인간조건>의 앙드레 말로는 행동하는 지성파로서 1936년 스페인내란이 발발하자 파시스트에 대항하여 공화국군으로 참전했으며, 1959년부터 1969년까지 문화부와 외무부장관을 역임했다.

품격 높은 언어와 행동을 일치시킨 프랑스정치인을 들라하면 단연 시인 라마르틴을 빼놓을 수 없다.

 

▶ 라마르틴의 ‘호수’

 

라마르틴은 젊은 시절 샤토브리앙을 흠모하고 바이런 시집을 읽으며 이태리를 동경했던 금발의 미남형 한량이었다.많은 여인들을 매료시키며 자유분방한 삶과 사랑을 구가하던 젊은 라마르틴은 몸이 약해지자 1816년 10월 휴양처로 알프스산자락 엑스레뱅(Aix-les-Bains)을 찾았다. 이때 부르제(Le Bourget) 호숫가에서 아름다운 쥘리 샤를르를 만나며, 이들은 인생에 다시는 찾아오지 못할 깊은 사랑에 빠졌다. 그들의 사랑은 머지않아 쥘리의 죽음으로 슬픈 종말을 맞이해야 했다.

 

두 연인은 1817년 8월 부르제 호숫가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지만, 병상에 누운 쥘리는 사랑의 맹세를 지키지 못했다. 호수를 홀로 찾은 라마르틴은 사랑하는 여인의 부재와 슬픔, 덧없이 스치는 짧은 행복에 대한 우수를 노래하며 괴로운 심정을 달랬다. 바로 불멸의 시 ‘호수’의 탄생이다.

‘이렇듯, 언제나 새로운 물기슭을 향해 밀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끝없는 어둠에 묻혀/ 영겁의 세월 속 넓은 바다에/ 우리는 단 하루라도 닻을 내려 정박할 수 없을까?/ 오, 호수여! 이제 한 해가 지났는데/ 그녀가 지켜봐야할 이 아름다운 물너울 가까이/ 나 홀로 찾아와(…)’로 시작되는 ‘호수’는 즉각적으로 서정적인 교감을 일으키면서 프랑스는 물론 유럽, 멀리 러시아궁정까지 깊은 감동을 안겨주었다.

 

라마르틴은 1820년 ‘호수’가 담긴 <명상시집>을 발표하여 전 유럽에 명성을 떨쳤고, 이 휘광을 배경으로 1825년 이태리 외교관으로 추대된다. 이때부터 그는 자유분방한 독신생활을 청산하고 가장으로서 가정에 충실하면서 정치, 사회,종교 등 다방면으로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43세에 의원으로 정계에 진출했다.

 

▶ 프랑스 삼색기를 보존시킨 시인

 

 

1848년 2월 22일 파리 마들렌 광장에서 붉은 깃발을 든 민중소요가 일어났고, 이를 진압하던 군대가 총을 발사 50여명의 사상자를 냈다. 즉시 파리 전체가 붉은 깃발 속에서 분노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장차 전 유럽으로 번질 민중혁명의 중요한 시발점이다.

당시 프랑스사회는 부르주아중심의 보수자유주의와 프롤레타리아계급 중심의 사회주의로 양분화 되어, 공화정을 상징하는 삼색기와 민중의 붉은 피를 상징하는 붉은 깃발이 서로 첨예하게 대치된 상황이었다. 보수자유주의파가 1789년 대혁명을 거쳐 1794년 이후 국기로 채택된 삼색기를 옹호한 반면, 사회주의진영은 붉은 깃발을 내세웠다.

 

1848년 2월 혁명이 일어난 이틀 후 2월 24일, 루이-필립 1세는 영국으로 망명을 떠났다. 같은 날 20시 국회는 즉각 임시공화국을 선포하고 라마르틴을 통치자로 추대했다. 다음날 노동자혁명군들은 붉은 깃발을 휘날리며 파리 시청광장으로 몰려왔고 승리를 외치며 삼색기 대신 붉은 깃발을 계양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1848년 2월 25일 시청광장으로 몰려든 민중을 향하여 라마르틴은 자신의 목숨을 내걸고라도 삼색기는 보존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표명했다. “시민 여러분, 어제의 태양은 무엇을 보았을까요? 여러분들의 모습입니다! 오! 오늘의 태양은 무엇을 보고 있을까요? 다른 민족의 모습입니다! 분노로 일그러진 다른 시민들을 보고 있습니다!” 라고 그의 열정적인 연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이어서 라마르틴은 “붉은 깃발이 민중의 피를 흘리며 파리 샹드막스(Champs-de-Mars) 광장을 한 바퀴 돌 수 있지만,삼색기는 자유와 영광, 조국의 이름으로 전 세계를 돌 수 있습니다”라고 성난 민중을 설득했다. 온유함과 냉정, 지성과 총명함이 흘러나오는 연설은 차츰 성난 시민들로 하여금 침착과 이성을 되찾도록 했다.

열정적으로 웅변을 토로하는 정치인에게서 서정적인 멜로디로 ‘호수’를 노래하던 시인의 모습이 완벽하게 오버랩 되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역사에 기록된 1848년 2월 혁명은 2월 25일 종료되며, 라마르틴은 붉은 깃발을 흔드는 성난 민중들과 맞서 삼색기를 지켜냈다.

 

라마르틴은 1848년 10월 7일 국회에서 “국민의 일부는 속일 수 있으나 국민 전체를 속일 수 없고, 독으로 물 한잔을 오염시킬 수 있지만 강물 전체를 오염시킬 수 없듯, 한 집단을 타락시킬 수 있으나 하나의 대양처럼 신성한 국가를 부패시킬 수 없다”라고 연설했다.

라마르틴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던,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역사의 굴대는 계속해서 돌아갔고, 이후 그는 정치인생에서 추락의 길을 걸으면서 고독한 황혼기를 맞이했다.

한편 1848년 2월 혁명을 기점으로 장차 붉은 깃발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상징하면서 유럽의 각종 시위에서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20세기 초에 이르러 붉은 깃발은 러시아의 전신인 소련(URSS)의 ‘붉은 혁명’에서도 사용되며, 1923년부터 1991년까지 소련의 국기로 채택되기도 했다.

라마르틴은 위기의 프랑스를 3개월 통치했던 위정자로서, 오늘날 자유, 평등, 박애를 상징하는 삼색기를 보존시킨 업적을 역사에 남겨놓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프랑스에서 가장 큰 자연호수 부르제 호수로 말할 것 같으면, 여전히 시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라마르틴의 호수’로 간주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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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내용은 ‘시와 정치는 서로 양립될 수 있는가?’ 라는 주제로 문학지 ‘창작21’ 2008년 봄호에 필자가 기고한 글과 일부 일치합니다)

 

 

【한위클리 / 이병옥 ahpari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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