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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사회구조의 기반을 이루는 민초들 가운데는 가족사, 족보 등 자신들의 뿌리에 깊은 애착심을 지닌 이들이 의외로 많은 편이다. 특히 가정마다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세대에 1, 2차 세계대전, 알제리전 등 전쟁에 참전한 용사들이 있으며, 이들 집안 어른들의 발자취를 시대의 산증인으로서 중요시 여기는 이들을 만나면 언제나 신선한 놀라움마저 갖는다.

 

 

▶ 뿌리를 중요시 여기는 민초들

 

집안 대물림으로 농업에 종사하는 40세 도미니크의 경우, 바쁜 생업에도 불구하고 틈틈이 그의 할아버지 프랑스와(1906년 생)가 겪었던 경험담을 집필하는데 여념이 없다. 프랑스와는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르네(1907년), 자크(1908년), 기욤(1914년), 피에르(1916년) 등 네 동생들과 함께 징용되어 최전방 부대에 배치됐다. 

프랑스와, 르네, 자크 세 형제는 독일에서 긴 포로생활을 보냈고, 기욤은 독일군에 체포되기 직전 탈출하여 종전 때까지 힘겨운 도주생활을 보냈다. 막내 피에르는 26세 꽃다운 나이에 전쟁터에서 부상으로 시력을 잃었고, 이후 칠순 평생을 레지옹도뇌르 훈장을 가슴에 달고서 암흑의 세상을 보내야했다.

프랑스와 할아버지는 세상을 떠나기 전에 자녀들에게 전쟁과 가난한 시절의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곤 했다고 한다. 도미니크는 할아버지가 남긴 이야기를 시간이 더 흘러 잊혀지기 전에 사랑하는 자녀와 후세대까지 생생한 역사의 증언으로 전달하고자 기억들을 모아 책자로 발행하기로 결심했다고 전했다.

지난 9월 도미니크는 할아버지 형제들과 관련된 자료들을 캉에 있는 국방부 역사자료실(DAVCC)로 문의하기에 이르렀다. 이어서 그의 집필을 간간이 돕고 있는 사촌과 당숙을 모시고 캉의 국방부를 직접 방문하기로 결정했다. 

기자는 견학삼아 그들과 함께 동행 취재했다

 

▶ 프랑스 국방부 역사자료 부처(SHD)

 

프랑스 국방부 산하 역사자료 부처(le service historique de la défense)는 파리 뱅센느를 비롯하여 쉘부르(Cherbourg), 브레스트(Brest), 로리랑(Lorient), 로쉬포르(Rochefort), 툴롱(Toulon), 캉(Caen), 뽀(Pau) 등 전국 10곳에 주둔한다. 17세기 이후 전쟁과 국방에 관련된 역사유물 및 고증서류들의 원본을 보관하고 있는 곳이다. 

총 90만여 책자, 1,800만 장의 사진, 5만 여 개 지도와 도면들이 각 국방부 역사자료 부처에 분류, 보관되어 있다. 가령 루이 14세 시대의 전쟁과 국방에 관한 고증자료를 찾는다면 파리 뱅센느, 병역 의무자들에 관련된 자료라면 뽀의 국방부 자료실로 조회할 수 있다. 

도미니크 일행이 노르망디 캉으로 행했던 이유는 바로 이곳에서 1,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들과 전쟁포로들에 관련된 자료를 열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캉의 국방부 자료 부처(DAVCC)는 알제리전 혹은 유엔군으로 6.25 한국전쟁에 참전한 프랑스 군인들에 관한 기록도 보관하고 있다. 이곳에 총 2백만 명에 관련된 자료가 있는데, 보관함 길이만도 거의 15km에 이른다고 한다. 

이곳에 1차 세계대전 시 프랑스에 억류된 독일, 헝가리, 오스트리아 등 외국인 포로들, 2차 세계대전 ‘프랑스를 위해 순직한 용사’들을 위한 자료 보관함도 별도로 마련되어있다. 순직 용사들의 생년월일, 출생지, 사망 장소와 날짜 등이 명시된 기록뿐만 아니라, 국방부나 소속 부대장으로부터 전달된 서신, 가족들과 주고받은 편지들도 고스란히 보관되어 있다.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참전용사들의 근황 및 독일 국방부가 프랑스군 포로들에 관련하여 배부한 각종 서류들도 보관하고 있다.

굳이 국방부의 자료열람실을 방문하지 않더라도, 우편으로 필요한 자료들을 받아볼 수도 있다. 관련부처는 해당 자료를 보관하고 있는지, 외부에 공개해도 될 만한 사항인지 검토한 후, 복사본을 우편으로 전달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자료열람실을 직접 방문하고자 한다면 적어도 48시간 이전에 랑데부를 정해야한다. 도미니크의 경우, 가능한 많은 원본을 열람하고 저서 집필에 참고가 될 자료들을 현장에서 직접 복사하기로 작정하고, 1주일 전에 방문 랑데부를 정했다. 이때 방문자들의 이름과 특히 자료를 요청한 프랑스와, 르네, 자크, 피에르 네 분 할아버지 성함, 생년월일, 출생지, 부대이름과 군번 등 최대한의 인적사항들을 사전에 통보했다. 

 

▶ 카포랄 쥘-앙드레 푸죠 열람실

 

캉의 국방부 자료부처는 시내도심(Rue Neuve du Bourg l’Abbé), 담이 높은 옛 건물터에 주둔한다. 국방부 건물 입구에서 신분증을 제시하고 자료열람 신청명단을 확인하는 절차를 거쳤다. 이어서 ‘카포랄 쥘-앙드레 푸죠’라 불리는 자료열람실로 안내받았다. 여기서도 방문자들의 신분 확인 및 긴 설문지 조사 등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했다. 

카포랄 쥘-앙드레 푸죠는 첫 번째로 순직한 1차 세계대전 참전용사의 이름이다. 열람실 좌석은 약 15개 정도, 도미니크 일행이 랑데부 시간에 맞춰 도착했을 때 지정된 좌석에는 이미 프랑스와, 르네, 자크, 피에르 네 형제들에 관련된 두터운 원본자료들이 놓여 있었다. 다른 자리에도 예약된 방문자를 기다리는 서류들이 눈에 들어왔다. 

마침 맞은편 좌석에는 한 노신사가 수북이 쌓여있는 서류들 앞에서 여념이 없었다. 그 역시 독일 포로였던 아버지의 발자취를 찾아 파리에서 왔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소속부대 등 부친에 관련된 정보가 전혀 없어, 국방부 측이 임의로 추정하여 제공한 서류들 속에서 부친의 흔적을 막연히 찾고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도미니크의 경우는 오래 전부터 할아버지에 관한 저서를 준비해왔던 터라 이미 적십자사를 통해 할아버지 형제들의 소속부대와 군번을 알아냈던 것이고, 그만큼 관련된 서류들을 제공받는데도 수월했던 편이다.

 

▶ 세월의 흐름을 증언하는 변색된 서류들

 

거의 70년 동안 보관함 속에서 깊이 잠자고 있던 서류뭉치 뚜껑을 펼치는 순간, 도미니크 일행의 얼굴에 무한한 감동이 피어올랐던 것은 물론이다. 관련가족이 아니더라도 그 누구라도 숙연해지는 순간이었다. 

만지기만해도 훼손될 것 같은 낡고 노랗게 변색된 종이들마다 세월의 흐름을 뚜렷하게 담고 있었다. 각 서류들은 타이핑이나 손으로 직접 작성되었는데, 잉크가 마르고 색깔이 퇴색되어 기록내용을 간신히 이해할 수가 있었다. 

서류 뭉치마다 출신 지역별로 동원된 젊은 사병들의 명단이 있고, 그곳에서 네 할아버지 형제들의 이름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이들이 소속된 부대나 다른 사병들에 관련된 내용들이 대부분 차지했는데, 이들 병사들의 출생지, 생년월일, 포로생활 장소, 어디로 강제 징용되었는지가 정확하게 기록되어있다. 도미니크 일행은 네 분 할아버지의 건강진료카드 원본을 발견하자 감개무량에 빠져들기도 했다. 

각 부대별로 포로들에 대한 품행도 자세히 언급되었다. 특히 독일 여성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다가 윤리위원에 적발되어 징벌을 받았던 사병들의 사례가 관심을 끌었다. 그도 그럴 것이 2차 세계대전 당시 건강한 독일 남성들은 모조리 전쟁터로 동원되는 바람에 정작 독일 국내 농가나 공장에서는 일손이 현저하게 딸릴 수밖에 없었다. 포로로 잡힌 프랑스 군인들이 독일 남성들을 대처하여 농가나 공장지대로 배치되었고, 자연스레 혼자 남은 여성들과 로맨스가 싹틀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적군과의 금지된 사랑이 왜 고전문학이나 걸작명화의 주요 창작모티브가 되었는지를 새삼 이해할 수 있었다.

국방부 자료열람실의 관계자들은 방문자들에게 친절하고 체계적인 서비스를 제공했다. 전국 국방부자료실을 더 이상 까다로운 절차를 밟지 않고 수월하게 조회할 수 있도록 자료열람증도 즉석에서 교부받았다. 

무엇보다도 원본서류 한 장, 한 장 보관함에서 찾아내어 파일로 분류해준 담당자들의 노고에 고마움이 저절로 생겨났다. 여기에 감사의 마음을 표명하자, “프랑스를 위해 전쟁에 참전한 용사들의 가족과 후손들에게 국가가 베풀어주는 최소한의 의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프랑스(파리)=한위클리】이병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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