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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인 르 클레지오 (Jean-Marie-Gustave Le Clézio)의 소설 ‘빛나, 서울 하늘 아래’ (Bitna, sous le ciel de Séoul) 불어판이 지난 3월28일 프랑스의 서점에 나왔다. 

세계적인 작가가 한국을 소재로 쓴 최초의 소설이다. 출판사 스톡(Stock)이 출판했다. 

이 소설은 한글판과 영문판이 불문판보다 앞선 지난해 12월에 출판되었다. 스페인어 등 다른 외국어로도 순차적으로 출간될 계획이다.

 

르 클레지오는 1963년에 프랑스의 르노도 상(Prix Renaudot)을, 2008년에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현재까지 50여 편의 픽션(소설, 단편, 콩트)과 수필집을 저술했다.

‘빛나, 서울 하늘 아래’는 서울을 배경으로 쓴 장편 소설(217쪽)이다. 

그는 작년 12월 ‘빛나’의 한글판 출판 기념 기자 간담회에서 ‘서울이란 도시는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도시, 상상력이 풍부한 이야기가 많이 탄생하는 도시”라며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많은 사람을 만났고, 그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썼다.”고 말했다. 

 

르 클레지오는 2001년에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한 이래 여러 차례 한국을 다녀갔다. 2007년에는 이화여자대학교에 석좌교수로 지내며 서울이라는 도시에 흥미와 애정을 느꼈다고 한다. 집필과 강연 활동을 했으며 한국의 작가 황석영과도 친분을 맺었다. 

 

그가 한국에 관해 가장 먼저 쓴 글은 제주도 기행 수필이다. 이 글은 2009년 3월에 발간된 프랑스의 지리 매거진 Géo 창간 30주년 기념 특별호에 실렸다. 그는 이 글을 쓰기 위해 2008년 9월 제주에서 해녀와 돌하르방 등을 취재했다. 이 수필 중에 4.3 제주학살 사건이 묘사되어 있다. 

“1948년 9월25일 아침에 군인들이 성산포 사람들을 총살하기 위해 트럭에서 해변으로 내리게 했을 때 마을 사람들 눈앞에 보였던 것이 이 바위(성산 일출봉)다. 나는 그들이 이 순간에 느꼈을 것, 새벽 녘 노르스름한 빛이 하늘을 비추는 동안에 해안선에 우뚝 서 있는 바위를 향한 그들의 눈길을 상상할 수 있다.”고 썼다. 이 글은 2011년 6월 제주 서귀포 성산읍 (1948) 4.3 희생자 유족회가 세운 기념비에 새겨져 있다.   

 

그는 어린 시절 내셔널 지오그래픽 (National Geographic) 매거진에 실린 제주 해녀 이야기를 읽었다고 한다. 그래서 제주도를 방문하고, 제주 우도 해녀들의 이야기를 듣고 소설 ‘폭풍우’(Tempête)를 2017년 10월에 출간한 바 있다.

‘폭풍우’는 르 클레지오의 소설 대부분을 출판한 프랑스의 유수한 문학작품 출판사 갈리마르(Gallimard)가 출판했다. 

 

‘빛나’는 한국을 배경으로 쓴 그의 두 번째 소설인 셈이다. 빛나는 전라도 시골 출신 19살 여자 대학생인데, 서울 숙모 집에 얹혀 살다가 불치병으로 거동을 할 수 없는 김세리 또는 살로메로 불리는 40대 여인을 만나, 죽어가는 이 여인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만들어 들려주고 돈을 받는 아르바이트를 한다. 

르 클레지오는 ‘빛나’는 ‘서울이라는 살기 쉽지 않은 도시에서 빛을 내는 존재’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는 서울이 최선과 최악이 공존하는 곳이라고 평가했다. 최악은 첨단 기술과 고층 건물들이고 최선은 변화 뒤에 숨은 좁은 뒷골목, 언덕길, 기품 서린 북악산과 낮은 야산들, 산자락에 있는 작은 카페들이라고 했다.

 

서울이라는 도시에 흥미와 애정을 느낄 수 있는 다섯 편의 이야기

 

각각의 이야기에는 한국의 전통, 종교관(기독교,불교), 역사, 세대 갈등, 남북문제, 정치 사회 문제, 음식(소주, 김치, 라면) 등 다양한 주제들이 녹아있다. 한국전쟁으로 북에 있는 고향을 떠난 조씨와 비둘기 이야기, 신비로운 메신저 고양이 키티가 전해주는 쪽지를 통해 이웃 간 연대를 회복하는 이야기, 버려진 아이 나오미와 그녀를 품고 살아가는 한나가 또 다른 사람의 삶과 죽음을 마주하는 이야기, 아이돌 스타가 되지만 탐욕과 허위에 희생당하는 가수 나비 이야기, 얼굴 없는 스토커를 통해 빛나가 느끼는 일상의 공포와 도시에서의 삶 이야기 등이다.

 

빛나가 들려주는 첫번째 이야기는, 경찰 출신의 남자가 어릴 때 38선을 넘어왔는데, 어머니가 비둘기 한 쌍을 가지고 왔다. 세월이 흘러 고향인 북쪽 나라에 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으며 비둘기를 날리는 사람의 이야기다.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를 통해 고향에 가고 싶은 사람의 소박한 소망이 실현됐으면 하는 기대가 담겨있다.

 

구석구석 서울의 지명들이 등장한다. 신촌과 이대입구의 골목길, 방배동 서래마을, 강남, 오류동, 용산, 신촌, 홍대, 삼청동, 당산동, 충무로, 종로, 명동, 영등포, 인사동, 동대문, 경복궁, 여의도, 강화도, 제주도, 등 수많은 장소가 등장하며, 서울의 물줄기인 한강도 자주 등장한다.  

 

 ‘기와 지붕 위에 떨어지는 빗소리, 물과 열기로 충만한 식물의 향기, 이것들이 이 도시에서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다’라고 작가는 묘사한다. 

“아마도 그것은 단지 하나의 이야기, 이 곳에서 태어나는 전설 중의 하나이다. 매 순간마다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신비롭고 아름다운 일 또는 무서운 일, 그건 당신의 선택에 맡긴다.”라고 서술한다.  

  

또 다른 이야기는 죽음을 물러서게 할 수 있다. 돈 한 푼 없는 여학생 빛나는 불치의 병으로 움직일 수 없는 살로메를 위해 이야기를 지어 낸다. 빛나는 가난에 대항하고, 살로메는 죽음에 대항한다. 이 둘이 합쳐져 일상적인 또는 우화적인 이야기에서 도망한다. 이런 가운데 현실세계와 상상의 세계의 경계가 사라진다. 

 

르 클레지오는 한국을 소재로 본격적인 소설을 쓰는 최초의 서양 작가

 

현재까지 세계적인 작가로서 한국을 소재로 본격적인 수필과 소설을 쓴 사람은 르 클레지오가 처음이다. 

프랑스의 문호 피레르 로티의 소설 ‘국화 부인’(1882), 수필 ‘매화 부인의 제3의 인생’(1905),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 부인’, 라프카디오 한(Lafcadio Hearn)의 수필, 서양의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에 반영된 일본의 우키요에(浮世絵, 판화) 등 일본을 주제로 한 소설, 수필, 오페라, 극 작품들은 많이 나와 있다. 

그러나 한국을 소재로 한 작품은 거의 없었거나 몇 편 있어도 세계적으로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프랑스에 와 있던 홍종우의 이야기를 듣고 1892년에 프랑스 작가 조제프-앙리 로니(Joseph Henri Rosny, 1856~1940)가 춘향전을 번안하여 ‘향기로운 봄’ (Printemps parfumé)을 출판했다. 이 소설은 나중에 러시아 출신의 미국 안무가 미하일 포킨(Mikhail Fokine)이 오페라로 각색하여 1936년에 몬테카를로에서 ‘사랑의 시련’(28분)이란 제목으로 무대에 올렸다고 한다. 이 오페라의 두 번째 버전은 1956년에 핀란드 국립발레단이 무대에 올렸고, 다시 1995년에 핀란드에서 세 번째 버전이 올려졌다. 그러나 이것이 한국의 고전 소설에서 따온 이야기라는 언급은 없었다. 

  

프랑스 해군장교 출신으로, 아카데미프랑세즈 회원이었던 피에르 로티(Pierre Loti, 1850-1923)는 승선하고 있던 군함이 1901년 6월17일 중국으로부터 인천 제물포에 도착하여 일본으로 떠날 때까지 약 10일간 한국에 머물렀다. 그는 고종 황제를 알현하는 포티에(Potier)제독을 수행해 배석하기도 했다. 그의 ‘서울에서’ (A Séoul)라는 20여 쪽의 서울 방문기가 그의 기행수필집 ‘매화 부인의 제3의 청춘’에 실렸다. 이 책은 1905년에 초판이 발간되었고, 그 후 멋진 컬러 삽화를 곁들여 1923년에도 재판되었다. 이 책은 그 후에도 많이 팔렸다. 로티의 수필 ‘서울에서’는 이진명이 번역하여 ‘새벽을 깨우는 왕궁의 나팔 소리’라는 제목으로 ‘신동아’ 1992년 6월호에 게재되었다.

 

그 다음 유명한 서양 작가로 1938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펄 벅(Pearl Buck, 1892-1973)이 한국을 배경으로 쓴 소설 ‘살아 있는 갈대’(The Living Reed)가 있다. 1963년에 출판된 이 역사 소설에서 펄 벅은 19세기 말부터 해방 때까지 격동기를 사는 한 양반 가족의 이야기를 묘사했다. 주인공 김일한을 중심으로 그의 아버지, 두 아들 연환과 연춘, 손자 사샤와 양의 4대에 걸친 삶을 그린 소설이다. 펄 벅은 또 1968년에 한국 혼혈아를 소재로 ‘새해’(The New Year)를 출간했다.

 

피에르 로티, 미하일 포킨, 펄 벅 외에는 이제까지 한국을 소재로 작품을 쓴 이름 있는 서양 작가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최근에 와서야 프랑스의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르 클레지오를 만난 것이다. 이 작가의 명성과 강력한 문학적 힘을 빌어 한국의 이미지가 전 세계에 전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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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M.G. Le Clézio, prix Nobel de littérature 2008, Tempête, Deux nouvelles, Gallimard, folio 6380 (folio-lesite.fr), 257 p. dont Tempête, 150 p., 7,25€.

- J.M.G. Le Clézio, Bitna, sous le ciel de Séoul, Stock, 2018, 217 p., 18,50€ 

 

 

 【프랑스(파리)=한위클리】 이진명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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