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해당국가가 없는 경우, 기타에 올려주세요. (5회이상 등록시 카테고리별도 부여)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을 찾아서2] 박희락 지사와 장손 박정환씨



“친일한 사람들은 당대에 떵떵거리며 자식을 유학 보내면서 해방 후에도 후손이 잘살 수 있었고, 독립운동 하신 분은 가족을 제대로 못 돌봐 뿔뿔이 흩어지거나 제대로 교육시키지 못해 자식까지 오랜 세월 고생해야 했습니다.... 아주 먼 여러 나라에서 이렇게 흩어져서 살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 독립운동가들의 후손이 겪어야 했던 여러 가지 고생들을 말해 주고 있지 않은가 싶습니다. 부족한 점이 많지만, 우리 정부가 독립운동가들을 더 많이 발굴하고, 후손들을 제대로 모시기 위해 더욱 노력해 나가겠습니다.”

지난 3월 4일 문재인 대통령이 해외거주 64명의 독립유공자 후손들을 초청한 자리에서 한 다짐이다. 정확한 숫자는 파악되지 않았으나 현재 해외에는 상당수의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살고 있다. 미주 한인사회만 하더라도 삼일절 또는 광복절 기념식 등에서 독립 운동가 후손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이들 가운데는 정부로부터 독립 유공자 후손으로 일찍 인정을 받은 분들이 있는가하면, 이런 저런 ‘규정’ 때문에 방치되어 있는 유공자 후손들도 있다. 삼일운동 100주년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독립운동가들과 해외에 살고 있는 그 후손들의 삶을 추적해 본다. (기자 주)

 

top.jpg
▲ 독립지사 박회락의 가족사진. 앞줄 검은 두루마기를 입은 분이 박회락 지사. 그 옆 두 남자 아동 가운데 큰 아이가 장손 박정환(현재 탬파 거주)이다. ⓒ박정환
 

(탬파=코리아위클리) 김명곤 기자 = 때는 1919년 춘삼월, 일제의 폭압정치에 찌든 조선 민중의 분노가 삼일독립항쟁의 불씨가 되어 전국 각지로 번지고 있었다. 비쩍 마른 야산에 붙은 불을 투닥 투닥 끄려다 튀긴 불꽃이 산지사방에 번지듯 거센 독립항쟁의 불길은 일제의 총칼에도 불구하고 더욱 그 외연을 넓히고 있었다.

경상도 명망가 박희락은 동료 정규화, 서삼진, 이상화, 남세혁 등과 함께 3월 18일 오후 1시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읍 장터 한 복판에 서서 미리 준비한 ‘삼일선언문’을 읽어 내렸다. 그리고는 굵은 팔뚝을 하늘 높이 치켜 세우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기 시작했다. 하루 전 비밀리에 배포된 격문과 태극기를 품고 있던 수 천 명의 주민들이 일제히 그를 따라 구호를 외쳤다. 한 손에 태극기, 다른 손에 삽, 곡괭이, 낫 등을 치켜든 시위 군중들은 영해 소학교를 지나 경찰 주재소, 면사무소, 우편국 등을 공격하여 내부의 공문서 기물 등을 부수었다.

‘폭동’은 다음날까지 이어졌다. 혼비백산하여 도망친 주재소 순경들의 연락을 받은 영덕경찰서는 대구의 보병 18연대의 지원을 받아 무차별 발포로 가까스로 사태를 진압할 수 있었다. 이로인해 수많은 시위군중들이 사상을 입었고, 박희락과 그의 동료들은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장로’ 박희락, 기물 파괴-보안법 위반으로 체포되다

박희락은 소요, 건조물 손괴, 기물 파괴, 공문서 훼기, 보안법 위반 협의 등의 죄목으로 12년 형을 받았으나, 문중과 지인 및 선교사들의 도움으로 7년형으로 감형되었고, 나중에 ‘유화정책’ 덕분에 4년형으로 최종 확정되어 대구형무소에 수감되었다. 박희락은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되었고, 재산몰수를 겨냥한 1377원의 벌금형까지 받았다. 소 한마리 값이 5원 하던 시절이었으니 그야말로 알거지 신세가 된 것이다. 한 참 후에서야 안동의 외가와 문중, 그리고 지인들의 도움으로 벌금을 갚았다.

박희락은 1882년 11월 14일 경북 영덕군 축산면 도곡동에서 무안 박씨 종규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선조 가운데는 임진왜란 당시에 비격진천뢰(일종의 시한폭탄)를 사용하여 경주성 탈환의 수훈을 세운 박진 장군이 있다. 결국 박희락은 대를 이어 일본과 싸워 온 것이다.

1919년 삼일운동 당시 일제에 항거한 박희락은 결코 폭력적인 인물이 아니었다. 힘이 장사였고 술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8세때부터 한학을 공부했고, 어느날 안동에서 선교사를 만나 기독교에 입문하게 된 후로는 신앙에 정진하였다. 후에 박희락은 변곡면 원황동으로 이주, 최초로 교회를 세워(원황교회) 초대 장로가 되었다.

장로 박희락은 성품이 강직하면서도 도량이 넓고 학문이 깊어 주변에서 존경을 받으며 따르는 사람이 많았다. 교회는 그가 나라와 민족을 생각하며 독립운동에 뜻을 갖게 한 요람이었다. 삼일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의 반수 가까이(16인) 기독교 지도자들이었고, 당시 전체 인구의 1.3∼1.5%에 불과한 기독교인 가운데 20% 이상이 만세운동에 적극 참여한 사실(이만열 강연록, <삼일운동과 기독교>)을 고려하면 교회 장로인 그가 독립운동에 참여한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었다.

기독교인으로 민족과 역사의식에 눈을 뜨게 된 박희락은 나라의 위난 앞에 소소한 개인의 안위 따위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신앙이 깊어지면서 교회 안팎에서 박애정신을 실천함과 동시에 주변 청년들에게 민족정기를 심어주어 독립을 쟁취하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시대적 사명이라고 믿었다. 성경은 물론 동서 고금의 신서적을 탐독하여 세정을 파악하고 인물들을 끌어모으고 길러내려 노력했다.

박희락은 출옥 후에도 교회를 통해 민족의식을 고취하던 중 광복을 맞이했고 건국 사업에도 힘을 쏟았다. 1991년 8월 18일 정부는 박희락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박희락은 87세이던 1967년 1월 16일 소천하여 고향인 축산면 도곡동에 묻혔다가 현재는 대전 현충원 애국지사 제3묘역에 자리를 잡았다.

여기까지 박희락의 장손 박정환(78, 탬파 거주)의 증언과 <대한독립운동약사>(1980판) 221~222면의 기록을 토대로 ‘독립운동가 박희락’의 삶을 요약한 것이다.
 

top2.jpg
▲ 애국지사 박희락의 묘. 대전 현충원 독립지사 제3묘역에 안장되어 있다.
 
top3.jpg
▲ 탬파 거주 박정환씨(78)의 할아버지 박희락 지사가 1991년에 수훈한 건국훈장 애국장. 박희락 지사의 독립운동 행적은 <대한독립운동약사>에도 기록되어 있다. ⓒ박정환
 

장남이 벌어온 거금을 불쏘시개로 쓴 할아버지

박정환은 그의 할아버지의 인격적인 면모와 민족사랑 정신을 평생 그리워하며 닮고자 했다. 자신 또한 기독교인인 박정환은 “할아버지는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에게 엄격한 분으로, 예수님의 행적(삶)을 그대로 따라 살기로 작정한 분”이었고, “자녀들이 대의(이웃과 나라)를 위해 살기를 바라는 분”이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얽힌 일화는 박정환의 가슴에 평생 지워지지 않는 이미지를 선명하게 새겨 놓았다.

박희락은 독립운동을 하라고 장남 박동일(박정환의 아버지)을 만주로 떠나 보냈다고 한다. 문중 어른들은 ‘독립운동은 하나면 족하다’며 장남까지 독립운동에 투신토록 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정작 박동일도 할아버지의 삶을 그대로 따라 산다는 것이 너무 힘든 것은 물론이고 이미 가세가 기울어 핍절한 꾀가 생겼다. 그는 일본과 만주에서 보일러 기술을 배우고 익혀 돈 버는 일에 몰두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거금을 모았다.

어느날 고향을 방문한 박동일이 할아버지에게 돈다발을 으쓱 내밀었다. 칭찬할 줄 알았던 할아버지에게서 불벼락이 떨어졌다.

“네놈이 하라는 독립운동은 안 하고 헛짓을 하고 돌아왔구나!”

할아버지는 박동일이 가져온 돈다발을 냅다 들고 나가더니 “불쏘시개나 해야겠다!”며 대뜸 아궁이에 쳐넣어 버렸다.

온 식구들이 대경실색하여 말렸으나 돈다발은 이미 새까맣게 타버린 뒤였고, 그날 저녁 아들은 친척 집에서 잠을 청해야 했다. 박동일은 해방 후 조선에서 두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유명한 보일러 기술자가 되었으나, 할아버지가 앞에선 돌아가실 때까지 기를 펴지 못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장손 박정환에 대한 ‘편애’는 유별났다고 한다. 어렷을 때에도 늘 박정환을 따로 불러 무릎에 앉히고는 “너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니 나라를 위해 큰 일을 하라”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격려했다고 한다. 박희락이 박정환을 각별히 챙긴 이유는 대를 이을 ‘장손’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독립지사 장손 박정환, 월남전의 영웅이 되다

박정환은 1942년 만주에서 태어났다. 어느날 해방은 도둑처럼 왔고, 둘째를 임신한 어머니김구호는 박정환의 손을 잡고 걸어서 귀국길에 올랐다. 아버지는 남은 재산과 사업을 정리한다며 현지에 남은 채였다. 한만국경을 향해 몇날을 걸어 귀향하던 중 박정환에게 뜻하지 않은 사고가 생겼다. 당시 사망률이 높았던 이질에 걸린 것이다.

시간이 지나며 병세는 더욱 악화되었고, 3살배기 박정환은 벌판에서 고열로 신음하며 죽어가고 있었다. 어머니는 천지사방 도울 이 하나 없는 허허벌판에서 꿇어 앉아 하늘을 보며 땅을 보며 눈물로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저 멀리서 까만 물체가 어른어른 희미하게 나타났다 사라지고 하는 것이 보였다. 마적인가, 짐승인가… 두려웠다. 그러나 다행히도 가까이 다가온 것은 허름한 옷차림의 행인이었다. 그는 쓰러져 있는 모자를 보고는 아스피린을 내밀었고, 박정환은 기적처럼 살아났다.

무사히 국경을 넘어 귀향한 며느리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할아버지 박희락은 무릎을 치며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가 우리 장손을 살렸다”며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박정환은 할아버지의 따뜻한 손길과 소망을 오래도록 잊지 못한다. 할아버지는 입버릇처럼 “진정한 해방은 통일이야, 우리가 통일해야 하는데…”라며 분단 조국에 대해 늘 가슴아파 하시고는 “다른 사람은 다 용서해도 (분단의 단초를 제공한) 일본은 용서가 안 된다”고 두런거리셨다. “전쟁이 나면 싸워야겠지만 한 번이면 족하다. 동족끼리는 싸우지 마라. 일본놈 쳐들어오면 목숨 걸고 싸워라”고도 하셨다.

막내 삼촌의 불평대로 “할아버지가 괜히 독립운동이란 걸 해 가지고 집안이 이 모양!”일 정도여서 중고교 시절 수학여행도 못 갔던 박정환은 휴학과 복학을 거듭하며 고학한 끝에 1966년 경북대 수의학과를 졸업, 학군(ROTC)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그리고는 1년도 채 되지 않은 1967년 10월 ‘태권도 교관’으로 월남에 파병된다. 기골이 장대한 할아버지 덕분에 건장한 체격을 가진 박정환은 만 13세이던 1955년 대한태권도협회 공인 유단자가 된 후로 최연소 5단이 되어 있었다. (1995년에는 11년만에 귀국하여 정식 테스트를 통해 9단을 받았다.)

그런데 단순하게 ‘나라를 위한다’는 소박한 생각으로 월남전에 지원한 박정환 소위는 한국군 월남전사에서 ‘전설’이 되어 돌아온다.

박 소위는 1968년 1월 31일 베트콩 대공세 때 포로로 잡히고 만다. 이후로 3개월 간 정글에서 끌려다니며 생사를 넘나들며 북한으로 강송되던 중 두 번의 시도 끝에 탈주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호치민 루트를 헤매다가 캄보디아 민병대에 잡혀 캄보디아 군사법정에 서게 되었고, 길고 험난한 재판과정을 거치게 된다.

결국 6년형을 선고받아 캄보디아 형무소에 수감된다. 그곳에서도 박정환은 북송을 거부하고 사투를 벌이며 1년 4개월이 지나던 즈음 한 월남인 장교의 도움으로 극적으로 풀려난다. 드디어 1968년 6월 18일 귀국하게 되었고 국내 언론은 당시 국방부가 공식 인정한 월남전 참전 한국군 유일의 포로이자 1호 포로의 귀환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박정환은 포로가 되어 감옥생활을 할 때나 정글을 헤매며 극한 상황에 맞닥드릴때면 "할아버지의 독립운동에 비하면 이 정도 고난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야!"라 자위하며 힘을 얻었다고 회고한다.

베트콩 포로가 된 지 502일 만에 풀려난 박정환 소위의 '귀향 스토리'는 지난 2000년 <느시>라는 책으로 출간되어 국내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특히 월남전 참전 군인들에게 센세이셔널한 호응을 얻었다.
 

top4.jpg
▲ 1968년 월맹군과 캄보디아에서 502일간 포로생활을 한 박정환 소위의 귀환 소식을 전한 국낸 언론들. ⓒ위키피디아
 
top7.jpg
▲ 베트콩 포로가 된 지 502일 만에 풀려난 박정환 소위의 포로생한기 <느시>1,2. ⓒ문예당
 

하지만 1960년대 말 대한민국은 '영웅'이 살 곳은 아니었다. 당시의 한국은 "뇌물과 사기 협잡 등 온갖 부조리 가 판을 치고 있었다. 아무리 일을 해도 줄줄이 다섯 동생을 비롯한 대가족을 먹여 살릴 길이 없었다. 특히 대를 이어 국가를 위해 헌신한 가문에 대한 정당한 예우는 고사하고 홀대를 당하는 땅에서 박정환은 한시바삐 벗어나고 싶었다.

결국 박정환은 1971년 수의사 자격으로 도미했다. 처음 뉴욕에서 태권도장을 연 박정환은 크게 돈을 모았으나 재산을 다 날린 후 플로리다로 이주해 다시 태권도장을 열었다. 그는 재기에 성공, 현재까지 태권도장에서 후예들을 가르치고 있다. 큰 아들 준박(Joon Park, 35세)은 목사 겸 심리학자로 메트로폴리탄에서 자선단체를 섬기고 있고, 차남 박훈석(6단)은 탬파에 두개의 도장을 열어 가업을 잇고 있다.

“일본의 경제침략, 남북공조 했으면”

플로리다 한인사회에서도 그의 족적은 꽤나 크다. 플로리다 8개 지역 한인회의 연합체인 플로리다한인회연합회장, 탬파 한인회장, 평통위원 등을 지내며 동포사회의 화합과 발전을 위해 현재까지 꾸준하게 봉사하고 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이 추진하고 있는 남북화해와 평화통일 정책을 적극 환영하고 지지한다”면서 할아버지가 유언처럼 되뇌었다는 ‘일본에 대한 경계’를 다시 떠올렸다. 민족정기를 강조하는 문재인 정부가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학비를 면제해 주고 직장까지 알선해 주고 있는 것과, 해외독운동가 후손찾기에 나서고 있는 사실에 대해서도 크게 고마워 했다.

독립지사 후예 답게 최근 일본의 경제제재에 대한 그의 태도는 단호하고 비장하다.

“한일관계가 언제까지 맨날 일본에 끌려가서는 안 되겠죠. 그들은 36년간 압제하고도 아직 우리를 ‘조센징’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경제침략에 분연히 맞서서 우리민족의 저력 보여줘야 합니다. 다시는 우리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특히 그는 “일본의 ‘침략’에 대해 남북이 힘을 합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밝혔다.

“북한과의 공조에 힘썼으면 좋겠습니다. 북한이 독도문제를 어떻게 대처하는지 보세요. 언젠가 ‘일제놈들이 한치의 땅이라도 건드리면 무자비한 징벌을 내릴 것’이라는 경고를 하지 않았습니까. 얼마나 짜릿합니까. 우리는 왜 그렇게 단호하고 독하게 못합니까?”
 

top5.jpg
▲ 애국지사 박희락 할아버지의 묘앞에서 선 박정환씨
  • |
facebook twitter google plus pinterest kakao story band

  • ‘6.15 통일, 어떻게 실현할까’ 박한식교수 file

    ‘박한식사랑방’ 온라인 강연 newdroh@gmail.comNewsroh=륜광輪光 세계적인 통일평화학자 박한식 조지아대 명예교수가 ‘박한식 사랑방’ 9월 강연에서 ‘6.15 통일, 어떻게 실현할까’를 주제로 진행했다. 14일 온라인 줌을 통해 세계 각지의 청중들이 참여한 강연에서 박한식 교수는 &lsqu...

    ‘6.15 통일, 어떻게 실현할까’ 박한식교수
  • "코로나를 기회로 남북직행관광하자" file

    로창현대표 방북강연회 제안 AOK 통일교육시리즈 10강 newsrohny@gmail.comNewsroh=민지영기자 ‘뜻이 모아질때 상상은 현실이 된다.’ 로창현 뉴스로 대표기자가 ‘코로나, 위기를 기회로-북의 문화예술과 남북교류전망’을 주제(主題)로 한 방북강연을 10일(미국시간) 열었다. 풀뿌리통일단체 AOK(Act...

    "코로나를 기회로 남북직행관광하자"
  • 한국에서 미국에 향재를 담아온 까닭, 정우큰스님 file

    Newsroh=륜광 newsroh@gmail.com                 “부처님께서 열반하실 때 아란존자가 너무 슬피 우니 대중들에게 그런말 하셨다. 아란이 나를 보필할 때 8가지를 허락받았다. 그중 한가지가 시도때도 없이 내 방에 출입한다는 허락을 받았지만 아란은 단 한번도 때아닌 때 처소에 들어온적 없고 나를 보필하면서도 거기에 ...

    한국에서 미국에 향재를 담아온 까닭, 정우큰스님
  • [시사인터뷰] K-페스티벌, 한-뉴 관계 가교역할 ‘톡톡’

    자랑스러운 한국을 알리는 문화행사 K-페스티벌이 지난 8월 14일 핸더슨에 위치한 더 트러스츠 아레나(The Trusts Arena)에서 성황리에 개최됐다. 비영리단체 'K페스티벌 인코아퍼레이티드(K-festival incorporated)'의 주관으로 마련된 이번 행사는 '베터 투게더(Better Together)'라는 슬로건으로 현지인...

    [시사인터뷰] K-페스티벌, 한-뉴 관계 가교역할 ‘톡톡’
  • [시사인터뷰] JJ 덴탈케어 정주나 원장

    [시사인터뷰] JJ 덴탈케어 정주나 원장   “충치는 예방이 최선”  임플란트 및 교정 등 최신 의료장비로 정밀진단 가능       예부터 유교에서는 오복(五福)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만족한 삶이라 했다. 오복이란 첫째는 장수하는 것, 둘째는 부유한 것, 셋째는 건강한 것, 넷째는 좋은 덕을 갖는 것, 다섯째는 천명을 다하...

    [시사인터뷰] JJ 덴탈케어 정주나 원장
  • 라이프스팬(LIFESPAN)

    라이프스팬(LIFESPAN)         라이프스팬(LIFESPAN)이란?   라이프스팬은 순수 뉴질랜드 해양자원을 주원료로 만든 건강식품을 생산 및 판매하는 Lifespan NZ Ltd의 브랜드명이다. Lifespan NZ Ltd는 지난 60년간 뉴질랜드에서 최고의 질좋은 건강식품 원료를 생산하고 있는 Aroma NZ Ltd의 자회사다.      라이프스팬 제품...

    라이프스팬(LIFESPAN)
  • [시사인터뷰] 힙합가수 제이풀라(J.Pular)

    [시사인터뷰] 힙합가수 제이풀라(J.Pular)   최근 ‘떠오르자, 성공하자’는 의미를 담은 세번째 싱글 앨범 ‘Drop It Hard (Feat. J.L.)’을 발표한 제이풀라(J.Pular). 지난 해 갓 데뷔한 신인이지만 지금 그는 뉴질랜드에서 스웨그 넘치는 힙합가수로 주목받고 있다. 첫번째 싱글 앨범은 즐거운 싱글의 삶을 표현한 ‘SINGLE (...

    [시사인터뷰] 힙합가수 제이풀라(J.Pular)
  • [시사인터뷰] 여행 유튜버 형정우

    [시사인터뷰] 여행 유튜버 형정우  일요시사 (101.98.208.76)   0   606 2021.07.27 12:47 유튜브 스티봉여행TV 채널 운영  코로나 시대 여행법 '랜선투어' 제공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면서 여행의 그리움을 달래 줄 이색 여행법이 있다. 바로 온라인으로 원하는 곳을 여행하고 체험할 수 있는 랜선투어. 트래블 솔...

    [시사인터뷰] 여행 유튜버 형정우
  • 퍼시픽 자동차(Pacific Cars LMVD)

    퍼시픽 자동차(Pacific Cars LMVD)  일요시사 (101.98.208.76)   0   778 2021.07.20 18:33 차량 퀄리티와 고객만족 최우선  차량 매매, 기계보험, 대출 등 원스톱 매매 가능       일본, 유럽 자동차 직수입 판매를 전문으로 하고 있는 퍼시픽 자동차는 최초의 한인 카 딜러로 알려져있다. 자동차 매매 영업을 하려면 등록...

    퍼시픽 자동차(Pacific Cars LMVD)
  • [시사인터뷰] ‘영국 여왕 훈장 수상’ 김미라 예명원 원장

    [시사인터뷰] ‘영국 여왕 훈장 수상’ 김미라 예명원 원장  일요시사 (101.98.208.76)   0   403 2021.07.06 20:16 “술자리 뒤에는 다툼이 있지만 찻자리 뒤에는 다툼이 없다”      지난 6월 7일 뉴질랜드 예명원 김미라 원장이 영국 여왕 공로 훈장을 수상했다. 김미라 원장은 예도 예(禮), 차의 싹을 뜻하는 명(茗), 집 원(...

    [시사인터뷰] ‘영국 여왕 훈장 수상’ 김미라 예명원 원장
  • [시사인터뷰] 패션 디자이너 세실리아 강

    [시사인터뷰] 패션 디자이너 세실리아 강  일요시사 (101.98.208.76)   0   2,144 2021.07.13 14:59 2021 뉴질랜드 패션위크 3년 연속 초청  하이웰 등 교민기업 후원으로 패션쇼 참가     여기, 주목할 만한 패션 디자이너가 있다. 2021 뉴질랜드 패션위크(NEW ZEALAND FASHION WEEK)에 3년 연속 초청받은 패션 디자이너 세...

    [시사인터뷰] 패션 디자이너 세실리아 강
  • [시사인터뷰] 제16대 크라이스트처치한인회 윤메리 회장

    [시사인터뷰] 제16대 크라이스트처치한인회 윤메리 회장  일요시사 (101.98.208.76)   0   381 2021.06.08 12:44 -한인회 비상 연락 명부 작성 -일자리 창출 위한 실질적 방안 지원 -교민업체 개선 위한 역할 지원  -한인회 재정 해결 방안 계획          지난 5월 15일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열린 한인회장 선거에서 윤메리(M...

    [시사인터뷰] 제16대 크라이스트처치한인회 윤메리 회장
  • “킥복싱을 가르쳐 드릴 테니 영어를 가르쳐 주세요.”

    “킥복싱을 가르쳐 드릴 테니 영어를 가르쳐 주세요.”  일요시사 (49.50.206.66)   0   812 2021.04.06 14:58 오지훈 관장              2014년 이민길에 오른 오지훈 관장은 어느 날 영어공부를 위해 브로셔 한 장을 대학게시판에 붙였다. ‘킥복싱을 가르쳐 드릴 테니 내게 영어를 가르쳐주세요.’라는 내용의 브로셔였다. 생...

    “킥복싱을 가르쳐 드릴 테니 영어를 가르쳐 주세요.”
  • (시사 인터뷰)한인 음악밴드 모노크롬(Monochrome)

    (시사 인터뷰)한인 음악밴드 모노크롬(Monochrome)  일요시사 (101.98.208.76)   0   454 2021.04.19 12:37 올해 초 오클랜드 시티의 한 공연장에서 낯익은 한국 음악이 흘러나왔다. 오클랜드에서 밴드음악을 하고 있는 모노크롬의 콘서트 현장이었는데, 감미로운 모노크롬의 자작곡들과 함께 대중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한...

    (시사 인터뷰)한인 음악밴드 모노크롬(Monochrome)
  • 재향군인회 4대 회장에 이정남 씨… 노익장 저력 기대

    재향군인회 4대 회장에 이정남 씨… 노익장 저력 기대  일요시사 (202.169.219.100)   0   791 2021.02.16 14:31 지난 2월 13일 오클랜드 로즈파크 호텔에서 ‘2021년 대한민국 재향군인회 NZ지회 제11차 정기총회’가 개최됐다. 정기총회는 개회선언을 시작으로 순국 선열 및 조국을 위해 먼저 떠난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과 내...

    재향군인회 4대 회장에 이정남 씨… 노익장 저력 기대
  • “오늘 행복해야 내일이 행복” 조일환교수 file

    뉴욕원각사 ‘불교와 인생’ 특별강연     Newsroh=로창현기자 newsroh@gmail.com         “오늘 행복하지 않으면 내일도 행복하지 않다.”   뉴욕의 원로 불자로 잘 알려진 만우 조일환 교수(84)의 특별강연이 1일 뉴욕원각사(주지 지광스님)에서 펼쳐졌다. 조일환 교수는 ‘불교와 인생’을 주제로 한 이날 강연에서 당신이 걸...

    “오늘 행복해야 내일이 행복” 조일환교수
  • 원로 축구듀오 임국찬-김대창선생의 꿈 file

    80고령에 국제베테랑스컵 출전화제     Newsroh=로창현기자 newsroh@gmail.com      임국찬 선생(왼쪽)과 김대창 선생     “지금도 젊은 친구들 몇 명은 여유있게 제칩니다.”   김대창(78) 선생이 넌지시 턱으로 가리키며 말한다. 임국찬(81) 선생을 두고 하는 말이다. 올드축구팬들에게 ‘임국찬’ 이름 석자는 너무도 선명하...

    원로 축구듀오 임국찬-김대창선생의 꿈
  • 박한식교수 ‘평화에 미치다’ 출간 file

    “안보패러다임 평화패러다임으로 변화해야”     Newsroh=륜광輪光 newsroh@gmail.com     “평화는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다름과 다양성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상태이다. 지난 수 세기 우리를 지배해왔던 안보 패러다임을 평화 패러다임으로 변화시키지 못하면 인류에게 22세기의 도래는 없을 것이다.”         세계적인...

    박한식교수 ‘평화에 미치다’ 출간
  • “일본 독도망동 대마도로 대응하라” file

    로창현대표 캐롤라이나열린방송 인터뷰         - 도쿄올림픽 개막이 한달뒤로 다가왔습니다. 도쿄올림픽은 코로나팬데믹으로 이미 1년을 연기했지만 여전히 일본내에선 코로나확산에 대한 공포로 반대 목소리가 높은 상황인데요. 지금으로선 올림픽이 정상적으로 개최될수 있을지 의구심이 일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도쿄...

    “일본 독도망동 대마도로 대응하라”
  • “일본 극우 증오범죄 국제연대로 분쇄” file

    구량옥 변호사 온라인 강연 눈길 “재특회망동은 민족정체성에 대한 살인” Newsroh=로창현기자 newsroh@gmail.com <이하 이미지 구량옥변호사 제공> 불과 4분여 영상이었다. 그러나 Zoom을 통한 온라인 청중들에겐 40분도 더 되는 듯한 길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국제법전문가 구량옥 변호사가 27일(한국시간)...

    “일본 극우 증오범죄 국제연대로 분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