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앞에 닥친 조미관계정상화와

조국통일을 위해 우린 무엇을 할 것인가?

 

안제이

 

[알림: 이 글은 원래 필라델피아의 주간지 <선데이토픽> 2018년 5월 4일자(1250호)에 실려 5월 3일부터 인쇄된 신문이 시중에 배포되었다. 시차가 있는 상태에서 급하게 작성된 관계로 오자와 탈자, 부정확한 표현이 있었는데, 이중 일부를 바로잡아 5월 4일 <선데이토픽> 홈페이지에 올린 것이 이 글이다.]

 

지난 시기 나는 보통사람들보다 더 많이 이북과 관련한 책을 읽었고, 노래를 들었고, 영화도 봤다. 전문가라고 말할 순 없어도 통일학이 북한학의 지류에서 벗어나 민족주체적 관점을 갖고 하나의 학문적 체계를 갖추는 과정이 나의 삶과 무관하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 과정에서 어깨너머로 배운 것이 있고, 그렇기에 볼 수 있었던 것이 있었다. 하여 최근의 통일논의와 관련해 몇 가지 눈에 띄는 논점만 간략하게 짚어본다.

이 글은 누구를 비난하거나 편 들려고 쓴 것이 아니다. 북이라면 무조건 악마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논조와는 일정한 거리가 있고. 내가 간곡하게 부탁하는 것은 내가 보고 싶고, 내가 듣고 싶고, 내가 받아들이고 싶은 방식에 너무 의존하지 말고 한번 읽어보란 것이다. 희망적 사고(wishful thinking)은 인식의 오류를 동반할 수밖에 없다. 논문체계를 갖춘 것도 아니고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쓴 글이기에 무리한 표현도 있을 것이리라. 하지만 나는 최대한 있는 그대로의 객관적 사실을 서술했다고 믿는다.

 

 

용어부터 바로 쓰자

남북, 한미, 조미, 한일, 조일, 한중, 조중 이게 바른 표현이다

 

평창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파견된 북 예술단의 공연과 관련해 좌담회를 진행하던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진행자. 그가 이런 말을 했다. “남한 북한이란 공식명칭이 있는데 왜 북측 남측 이런 표현을 쓰나요?” 답답하다는 투였는데, 이걸 듣는 내가 정말 답답했다.

남과 북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종합백과전서적인 문서는 <남북기본합의서>다. 1991년 12월 13일에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에 따르면 남과 북은 “나라와 나라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의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고 정리했다.

그런데 대한민국(한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조선)은 둘 모두 유엔에 가입한 독립국가다. 북한이란 표현은 한국의 관점에서 북을 바라보는 것인데, 즉 북한이라 부르는 표현에는 북을 한국의 일부로 간주하는 관점을 내포하고 있다. 남조선이란 표현도 마찬가지이다. 남조선은 “미제의 식민지에서 벗어나지 못한 조선반도의 남부지역”을 함축적으로 의미하기에 남과 북이 만났을 때는 절대로 사용해서는 안 되는 표현이다. 남한과 북조선은 가능한 표현이지만, 북한과 남조선은 사용해서는 안 되는 용어이다. 남과 북이 함께 무엇을 할 때. 그래서 남과 북, 남측 북측이라 부를 수밖에 없다. Korean peninsula를 표현할 때 남측은 한반도로 부르고 북측은 조선반도로 부르고. 그런데 텔레비전 프로그램 진행자가 그런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더욱 가관이라 생각된 것은 미북회담이란 표현이다. 북미회담도 아니고 미북회담이라고 불렀다. 판문점 회담과 관련한 토론회에 전문가라고 나온 어떤 사람이. 기가 막힌 일인데, 동맹국인 미국을 북보다 앞세우고 싶은 심정인 것 같았다.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의 특수한 관계인 북보다 어떻게 지구 정 반대편의 동맹국인 미국을 앞세운단 말인가? 민족보다 동맹 우선인데, 근데 미국은 남과 북의 관계를 설명할 때 알파벳 순서를 따른다. 그래서 남북관계를 서술하는 경우, North Korea-South Korea Relations 이렇게 또는 DPRK-ROK Relations 이렇게 쓴다. 미북을 찾는 사람에겐 불행하게도. 미국인들이 조미관계를 쓸 땐 당연히 US-DPRK Relations 이렇게 쓰고.

미북관계란 표현은 말할 것도 없고 북미란 표현도 잘못된 것이다. 한국과 미국과의 관계를 남미관계라고 표현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한미관계라고 쓰지. 한일, 한중 이게 맞는 표현이고. 주권국가들인 한국과 미국, 일본 중국과의 관계를 표기할 때. 그런데 왜 밑도 끝도 없이 북미 북중 북일 이렇게 부르는가? 이젠 제대로 쓰자. 조미, 조중, 조일 이게 바른 표현이다.

 

북이 주도하는 한반도 평화정세 속에서

북에게만 강요하는 완전 비핵화가 가능한가?

 

남북 정상회담이 있었던 날 나는 한국에 있었다. 새벽 6시부터 무려 16시간을 쉬지 않고 채널을 돌려가며 텔레비전을 보았는데, 내 평생 그렇게 오랫동안 텔레비전을 시청한 적이 없다. 그날 전문가들의 좌담회도 참 많이 봤는데,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주장하고 있었다. 마치 항복한 나라를 향해 승전국이 사찰을 하려는 고압적인 태도로. 북이 회담에 나오니까 전문가라는 많은 사람들이 트럼프 행정부가 주도하는 고립압살정책이 씨알이가 먹혀 북이 하는 수 없이 대화에 나오는 양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정말 그럴까?

 

고립화정책은 이미 파탄난 지 오래다

 

다른 나라라면 몰라도 북을 향한 고립화정책은 성공한 적이 없다. 북이 그걸 두려워해본 적도 없고. 미사일과 핵무기를 만들며, 그것도 미국 본토를 치명적으로 타격할 수 있는 전략무기를 만들면서 미국과 동맹국들의 고립화정책을 계산하지 못했을까? 만약 그 고립화정책을 이겨낼 자신이 없었다면 이미 예전에 핵과 미사일 개발을 포기했을 것이고, 그리고 북이 호구였다면 한반도에서 전쟁은 터졌을 것이다.

조선인민군 공훈합창단이 부른 노래 가사의 후렴구에 이런 것이 있다. “평화가 아무리 귀중해도 절대로 구걸은 하지 않으리 우리의 총창우에 우리의 총창우에 평화가 평화가 있다.”

이 노래의 후렴구처럼 김정은 위원장은 2017년 11월 27일 “미국 본토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초대형 중량급 핵탄두 장착이 가능한 대륙간탄도로케트” 신형 화성 15호 시험발사를 명령했고, 성공적인 발사 후 핵무력 완성도 선언했다. 그리고 2017년 12월 12일 제8차 군수공업대회 연설에서 “국가 핵 무력 완성의 대업을 이룩한 것은 값비싼 대가를 치르면서 사생결단의 투쟁으로 쟁취한 우리 당과 인민의 위대한 역사적 승리”라고 육성으로 발표했다. 그리고, 그리고 나서 미국은 북과 진지하게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회담에 나서고 있다.

적지 않은 “전문가”들은 북이 고립화정책의 결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대화에 나섰다고 주장한다. 이와 관련해 몇 가지 살펴보자.

종편 JTBC는 재미언론인 진천규의 평양방문 취재기를 1월에도 방영한 바 있으며 최근에도 특집으로 방영했다. 거기에 나온 평양의 모습은 아주 현대화된 아름다운 도시다. 물론 평양이다. 다른 도시가 다 그럴 리 없고. 2015년 준공된 평양의 미래과학자거리에는 각종 식당만 600여개가 성업 중이라고 한다. 고립압살정책이 씨알이가 먹혔다면 가능했을까? 서울의 테헤란로를 보며 한국의 모든 도시가 그러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평양도 마찬가지. 하지만 미래과학자거리가 인민들이 굶어죽는 상황에서 연출할 수 있는 도시인가?

휴대전화 보급은 또 어떤가? 약 5백만 명이 사용한다고 한다. 북의 인구는? 약 2천 5백만. 다섯 명중 한명 꼴이다. 사용자는 빠르게 늘고 있고.

먹을 것이 부족해 인민들이 굶어죽는다는 주장이 아직도 있으니 곡물생산량도 살펴보자. 유엔 식량농업기구의 평가에 따르면 2016년 11월부터 2017년 10월까지의 일 년간 곡물생산량은 596만톤이라고 한다. 부족한 양은 46만톤이라고 하고. 채 10%도 부족하지 않은데 이게 굶어죽는 이가 속출할 지경인가? 그리고 곡물만 가지고 끼니를 다 때우는가? 여러분들은.

만약 정말로 북이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심각하게 어려운 지경이었다면 당연히 제3의 고난의 행군을 선포하였을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을 중심으로 당과 인전대라 불리는 당 외곽기구들이 모두 가동되었을 것이고. 그런데 그런 기색이 전혀 없었다. 북이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미국의 제재가 북이 대화에 나서도록 영향력을 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의 고립압살정책이 실효를 거두었다고 보는 것이나 미국이 북을 대화를 이끌었다는 시각은 전혀 현실성이 없는, 트럼프 대통령이 자주 사용하는 표현처럼 페이크(가짜) 뉴스다.

 

누가 한반도 평화회담이라는 영화의 감독이고 주역이며 누가 조연인가

 

선입견 없이 잘 살펴보시라. 2018년 1월 1일 이후 한반도는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 지난해 말에 한반도는 말 그대로 전쟁이 언제고 터질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여러 나라가 선수들의 안전문제를 걱정해 평창올림픽 참가를 주저했고, 올해 초만 하더라도 북이 참가하면 평창올림픽에 참가하지 말자는 소리가 미국에서도 나왔다. 그런데 결과는 어땠나? 평창 올림픽은 평화올림픽으로 잘 끝났다. 가장 성공적인 동계올림픽의 하나였고. 누가 바람을 잡았고 그것을 가능하게 했나?

속된말로 깽판을 칠 수 있었던 카드는 북이 쥐고 있었다. 이미 온갖 제재를 다 받기로 한 상태라 잃을 것도 없었고. 그런데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 발표 이후 북은 주도적으로 한반도의 평화정세를 이끌기 시작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감독의 역할을 하며 한반도 평화체제수립의 중심에 섰고. 프로타고니스트(protagonist)의 역할도 함께 하면서. 여러 스캔들로 사면초가에 빠진 트럼프 미 대통령이 안타고니스트(antagonist)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끌어들였다. 탄핵 대신 그 어떤 미국 대통령도 해결하지 못한 조미관계를 정상화해서 노벨평화상을 받을 수 있는 수준으로 만들었고. “노벨 노벨 노벨”을 외치는 지지자들을 보며 얼마나 기뻐하던가, 트럼프 대통령이. 그리고 중국의 시진핑 주석, 남의 문재인 대통령에게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차치고 포치면서 한반도의 정세를 주도하고 있다. 아베는 왕따시키고. 전광석화의 속도로.

 

눈에 띄는 첨입식 사업방식

 

북에는 첨입식 사업방식이란 것이 있다. 김정은 위원장 시대에 나온 사업방식으로 박달나무에 쐐기를 박아 도끼로 후려쳐서 짜개는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알려진다. 가장 중요한 곳에 집중포화, 연속포화, 명중포화를 박력있게 들이대는 것으로 정의되는데, 이런 사업방식을 채택해 만리마의 속도로 한반도의 평화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의 한반도 정세를 냉정하게 돌이켜 보시라. 3월의 조중 정상회담, 4월의 남북 정상회담, 5월의 조미 정상회담. 상상을 초월하는 전향적인 태도로 회담에 임하며 불안정한 정전상태를 공고한 평화체제 수립으로 이끌고 있다.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의 만리마 속도다. 이걸 조직하고 끌고 나가는 주인공이 과연 누구인가?

민족자주적 입장에서 통일운동을 한 사람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체결을 주장해왔다. 미국에서 시위할 때는 “End the Korean War. Peace Treaty Now!” 이렇게 구호를 적었고. 이 주장은 친북적이라고 남의 보수언론으로부터 지금까지 비난받는데, 이젠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회담에서 평화협정체결 문제가 핵심의제로 나오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평화협정체결이 3자로 끝날 수도 있고 4자로 끝날 수도 있지만. 6자회담에 참여했던 두 나라는 패싱당한 것이 몹시 아쉬울 것이고, 중국도 패싱당할까봐 속으로 걱정을 적지 않게 하고 있을 것이다.

 

주한미군철수는 시간문제다

 

평화협정문제가 논의되면 주한미군 철수문제는 당연히 주요의제가 될 것이고, 조미가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호혜평등한 외교관계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주한미군은 한반도를 떠날 수밖에 없다. 관계발전에 따라 성격이 변화된 그리고 규모가 축소된 주한미군이 한시적으로 한반도에 머물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물론 북이 주한미군의 주둔을 용인하는 발언을 한 것은 사실이다.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평화유지군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언급한 것인데 근데 이건 2000년에 밝혀진 내용이다. 2018년 지금은 상황이 그 상황이 아니다. 수소폭탄과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ICBM을 실전배치한 북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가 공동목표라고 발표한 북이 주한미군철수를 언급하지 않는다? 이치에 맞지 않는다. 조미 간에 적대관계가 청산되면 주한미군의 존재이유는 없으며, 동북아의 균형이 정말로 걱정되면 주일미군을 증강하면 될 것이다. 21세기 아닌가? 다른 나라에게 군비축소를 주장하는 미국은 열심히 극초음속 무기를 만들고 있고.

 

조미관계 정상화는 코앞에 닥쳤다

 

문재인 정부는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며 순풍을 타고 있다.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지지율은 진보 보수를 가리지 않고 적극적인 지지를 받는데 무려 88%에 달하고. 거기다가 정권 초기이다. 트럼프는 각종 스캔들로 사면초가에 빠져 있는데 조미관계만 개선하면 졸지에 노벨평화상 수상과 더불어 미국의 가장 훌륭한 대통령의 한 사람으로 기록될 수 있다. 북이 어떻게 천재일우의 이 기회를 놓치겠는가?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조미관계가 개선되면 말 그대로 윈-윈-윈이다. 그동안 별의 별 수단을 다 동원해 북을 해체해보려고 했지만 그게 미국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사회주의 동맹국들이 사라지고 고립무원에 빠진 북을 상대로 고립압살의 강도를 아무리 높여도 우리식사회주의의 깃발을 들고 강성대국건설의 구호에 뭉쳐 동북아의 맹주가 된 북. 미국이 그 존재와 힘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기에 대화가 시작되었고, 오랫동안 정교하게 다듬어진 한반도 평화정착방안이 있기에 빠른 속도로 한반도의 평화가 정착되고 있는 것이다. 가뜩이나 빠른데 대담한 양보를 통해 가속도를 높이는 것은 북이고.

 

 

완전한 비핵화의 가능성은?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이른 시간에 거기까지 도달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리고 완전한 비핵화는 북의 완전한 비핵화가 아니라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이다. 북이 까면 남도 미국도 까야하는 것이지, 그리고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쌍방이 같이 해야 하는 것이다.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이 이야기가 아니면 전문가 취급을 못 받는 듯 모두 CVID를 외치는데, CVID건 instantly를 추가해 CVIID건 쌍방이 대등한 수준으로 하는 게 당연한 일이다. 안 그런가?

“남과 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하였다.” 이것이 판문점 선언 3조 4항의 내용인데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만드는 것이 (총론적인 측면에서) 공동의 목표라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 문장은 “남과 북은 북측이 취하고 있는 주동적인 조치들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대단히 의의 있고 중대한 조치라는 데 인식을 같이 하고 앞으로 각기 자기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기로 하였다”고 되어 있다. 남과 북, 각자 자기의 책임과 역할이 있다고 명시했다. 그리고 북은 이미 비핵화를 위해 “의의 있고 중대한 조치”들을 취하고 있다고 평가하는데 남과 북이 동의했고. 자 그럼 이제 누구 차례?

그런데 공동선언문마저 자의적으로 해석하며 마치 북이 항복한 것처럼 북으로부터 완전한 비핵화를 받아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나 정치인들을 보면 정말 노답이다. 노답.

 

불이행의 문제에 대한 아전인수식 해석

 

김정은 위원장은 공동선언문 합의 후 “북남합의서처럼 시작만 한 불미스러운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하겠다는 언급을 했는데 이것에 대한 아전인수식 해석도 큰 문제다.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발언을 보면 지난 시기 북이 합의를 대부분 지키지 않았기에 반성의 뜻으로 한 발언이라고 언급하는 경우가 많은 데 과연 그게 제대로 된 해석일까?

북남합의서란 <남북기본합의서>다. 당시 남을 대표해 정연식 국무총리가, 북을 대표해 정무원 총리 연형묵이 서명을 했고, 각각 국회의 인준을 받아 법적 발효를 하기로 합의했다. 북은 (남의 국회의 기능을 하는) 최고인민회의에서 지체 없이 인준을 받았으나 남은 국회에서 법적 발효절차를 이행하지 못했다. 지금까지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판문점 공동선언문은 어떤 상태인가? 남은 벌써 삐거덕 거리고 있다. 진보 보수를 망라해 88%가 지지를 하는데도 홍준표 한국당 당대표와 김성태 원내대표는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국회비준은 “염치없는 짓”이라고 몰아붙이며 절대 가능하지 않다고 호통치면서 문재인 대통령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런 맥락을 참고해 다시 한 번 읽어 보시라. 김정은 위원장이 지적한 게 무엇인지.

 

돋보이는 북의 전략적 인내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 발표 이후 지금까지 정말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의 빠른 속도로 한반도 평화정착이 가시화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돋보이는 것 중의 하나가 북의 전략적 인내. 이건 원래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인데 내가 보기엔 지금 북의 정책 중의 하나가 전략적 인내다. 예전 같았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는데 두어 가지 짚어보자.

첫째, 평창올림픽에 고위급 대표단을 파견한 일도 그렇고 대표단이 남에 와서 한 일은 전략적 인내에 기초하고 있다. 김영남 위원장은 국가수반이다. 국가수반인 김영남 위원장, 김정은 위원장의 특사 김여정 제1부부장, 리선권 조평통 위원장, 최휘 국가체육지도위원회 위원장이 방남했는데 단순하게 평창올림픽만 축하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중요한 것은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초석을 놓기 위한 것이었다.

2007년 고 노무현 대통령이 방북했을 때 김영남 위원장은 노무현 대통령을 앉혀놓고 한 시간 가량 “훈계”한 것으로 소문이 자자하다. 민족자주의 원칙부터 외래어의 남용으로 인한 언어오염에 이르기까지. 그런데 이번에는 남을 비판하는 단 한마디도 없었다. 삼지연관현악단의 공연을 보며 눈물만 훔쳤지.

더욱 놀라운 것은 애국가가 울려 퍼질 때 모두 벌떡 일어선 것. 예전 같았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축하를 위해 참석을 했어도 애국가 연주 순간만큼은 피할 수도 있었고. 그런데 기다렸다는 듯 모두 벌떡 일어나 예의를 지켰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며 전율했다. 이번엔 정말로 모든 일들이 전과는 차원이 다르게 진행되고 있다고 느꼈고.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자. 남의 대통령과 국회의장, 여당대표가 북의 평양축전에 참석해 애국가(북도 국가를 애국가라고 부른다)를 연주할 때 벌떡 일어나 예의를 갖추었다고 보자. 돌아오면 무슨 일이 벌어지겠나. 홍준표 대표가 무슨 말을 했겠나?

 

아무도 지적하지 못한 탁현민 행정관의 특대형 실수

 

둘째, 내가 전율한 사건은 또 있다. 판문점 회담이 끝난 후 있었던 환송행사에서. 이 행사를 기획한 것은 탁현민 행정관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는 남북의 동질성 회복과 화해를 위한 행사를 조직하는 데에 적합하지 않다. 그리고 누가 그런 행사를 기획하건 이북 전문가의 감수를 받아가며 행사를 조심스럽게 검토해야 한다. 산통을 깨지 않으려면.

“남북정상회담 환송 미디어쇼”라는 환송행사에는 정말로 특대형 실수가 있었다. 손님을 초대해놓고 큰 모욕을 준 셈인데 그 누구도 이걸 지적한 이는 없다. 전문가들조차도. 안 보이니까. 그게 뭘까?

그날 행사의 마지막 부분에 벽에 양 정상의 환담모습을 투사했다. 전문용어로 프로젝션 매핑 기술인데, 난 사방팔방을 돌아다니며 이 기술을 아주 오래전부터 봤다. 새로울 것도 없고. 근데 거기에 큰 문제가 있었다. 아직도 모르시겠나?

북에서 최고지도자의 초상은 거의 신성시된다. 사진이건 그린 초상화건 동상이건. 사진을 찍어도 초상화가 잘리는 법이 없다. 최고지도자가 나오는 영상을 보시라. 누구나 무엇에 의해 조금이라도 최고지도자의 모습이 가려지거나 잘려진 경우가 없다. 만약 판문점 회담을 생방송하면 북의 기준으론 계속해서 초대형 방송사고가 있을 수밖에 없다.

로동신문을 보면 단체사진의 경우 김정은 위원장의 사진은 정 중앙에 위치한다.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의 특사대표단이 방북해 김정은 위원장과 찍은 사진을 보면 사람이 한쪽으로 쏠려있다. 김정은 위원장을 정 중앙에 두려고. 좋건 싫건 이게 우리와 다른 점이다.

조금 더 예를 들어보자. 2016년 3월 이야기. 북에서 발간하는 매체의 원문을 인용하면 “지난 3월 23일 황해남도의 한 해변가에서는 인민군 군인들에 의해 한구의 시신이 발견되였다. 그의 몸에서 순간도 떨어지지 않게 단단히 고정된, 목과 허리에 끈으로 동여맨 붉은 비로도천을 씌운 모심함이 사람들의 눈길을 모았다. 함의 뚜껑을 열고 그 속에 있는 비닐박막과 하얀 종이를 한겹 또 한겹 풀어헤쳤을 때 사람들은 크나큰 감동으로 하여 눈시울이 젖어드는 것을 금할 수 없었다. 물 한 방울, 습기 한 점 스며들지 않게 정중히 모셔진 위대한 수령님들의 초상화!” 초상화가 물에 젖지 않도록 하고 8명의 선원이 수장된 소식을 보도한 것이다. 모든 이가 그렇게 할 수 있지는 않겠지만 북에서는 그런 일이 발생할 정도로 최고지도자의 초상을 존중한다. 남에서 김일성 김정일 배지로 부르는 것을 북에서는 초상휘장이라 부르는데, 그들의 일상적 표현을 빌리면 “초상휘장을 모신다”고 한다.

그런데 울퉁불퉁한 벽에다가 김정은 위원장의 초상을 쐈으니 그걸 보는 북측 참석자들이 어떤 생각을 했겠나? 아무리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있는 사진이라도. 김정은 위원장이 남북관개개선과 조미 평화회담을 성공적으로 이끌려는 의지가 워낙 강하니까 누구도 공개적으로 비판하지는 않겠지만 김영남 위원장을 비롯해 그 장면을 보는 순간 북측 참석자들은 분노가 극에 이르렀을 것이다.

예전 같았으면 나중이라도 큰 문제가 될 수 있는 사건이었다. 근데 조용히 넘어가고 있다. 전략적 인내 없이는 불가능한 일.

그런데 JTBC의 손석희 사장조차 그 행사가 너무 잘된 것처럼 평가하면서, 북이 그렇게 준비하기는 부담이 갈 것이라는 언급을 하는데 남의 언론이 북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북의 공연을 진지하게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실내공연이라면 해마다 열리는 <설맞이공연>을, 야외공연이라면 정주년마다 성대히 진행되는 당창건 축하공연이나 아리랑 공연을 보길 권고한다. 내용은 차치하고 공연수준을 주목해 보시라. 규모건 기술이건 극예술 수준이건. 유튜브에 널리고 널렸다. 그리고 늦었지만 제발 언론들은 이제라도 통일관련 전문부서를 두길 강력히 권고한다.

 

탁현민 행정관 기획의 심각한 문제

 

북의 전략적 인내가 없었다면 탁 행정관이 기획한 행사는 성사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북이 삼지연관현악단을 남에 파견했을 때 어떤 공연을 했나? 잡음이 아예 없었던 것 같지는 않지만 남측 관객을 위해 정치색을 배제했고, 남측의 대중가요들을 편곡해 불렀다. 많은 사람들이 아는 계몽기 가요도 불렀고. 쉽게 말해 그들이 제일 잘 하는 것은 모두 빼고 공연한 것이다. 왜 그랬을까? 공연의 목적을 민족의 동질성 회복과 평창올림픽을 축하하기 위한 데에 두었으니까.

그런데 탁 행정관의 기획은 어땠나? 그의 기획에 민족동질성 회복이란 것이 바탕에 깔렸나? 남측의 평양공연은 답방 공연이었다. 평창올림픽을 잘 치르도록 협조해준 것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공연. 그렇다면 북 인민들의 정서를 반영하며 민족동질성을 고취할 목적으로 기획했어야 했는데, 그런 문제의식을 여러분은 보았는가?

그는 남측의 여러 분야 가수들을 종합선물세트처럼 만들어 끌고 갔는데, 과연 그게 북의 인민들에게 호소력이 있었을까? 내가 보기에 낙제였다. 공연을 보는 눈빛이 공감하는 눈치였던가? 물론 박수는 쳤고 잘했다는 격려도 했지만 그들이 생활총화에서 어떤 말을 했을지는 충분히 예측가능하다.

이북에선 은쟁반에 옥구슬 구르는 소리가 가수 목소리의 기준이다. 집단주의가 강조되면서 독창과 방창, 중창, 합창을 하면서도 튀지 않는 조화가 중요하고. 집단의 질서를 벗어난 개인기가 칭찬받는 그런 분위기가 아니다. 그리고 외래어에 극도의 반감을 갖고 있다. 오죽하면 전 세계에서 사용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과 함께 먹고 싶어하는 햄버거도 고기겹빵이라고 바꾸어 부를까. 촌스럽게 들리나? 근데 그게 거기 표준이다. 그럼 자동차 와이퍼는? 빗물딱개다.

북의 가수들은 내 노래란 개념보다 우리노래란 생각으로 노랠 부르는데, 남측의 가수들은 자기 노래를 불러 홍보하는 것에 더 큰 의의를 두었다. 탁 행정관은 틀지 않기로 약속한 노래도 틀었고. 탁 행정관은 <봄봄봄>이란 노랠 틀어야만 자기가 원한 공연의 완성도가 높아졌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전형적인 형식주의자들의 오류.

지금 루카치의 역사소설론을 언급하며 사회주의 리얼리즘 이야길 하자는 게 아니다. 상식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상식. 채식주의자를 대접하면서 이게 맛있는 거라고, 이 맛을 몰라서 그런 것이라고 육회와 고기요리를 잔뜩 만들어 주면 그것이 대접이 되는가? 남과 북이 어렵게 화해와 협력 분위기를 만들어 가는데, 틀지 않기로 약속한 <봄봄봄>이라는 배경음악을 왜 틀어야했는가? 공연도 다 끝난 마당에. 남북관계를 틀어버리려고?

공연 자체의 완성도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공연의 의의와 역할이다. 거기서 중요한 건 정치적인 판단이고. 그런데 너무 부족했다. 여러 면에서. 북측 관객의 수용시각도 전혀 고려하지 못했고. 너무 조급했다. 남측의 새로운 것을 평양 시민들에게 많이 보여주려는 욕심에 빠져.

탁 행정관은 남의 사회에서 공연을 훌륭하게 기획할 수준일 줄은 몰라도 남북의 문화공연은 더 이상 맡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평양에서 예행연습을 하며 “센터” 찾아가며 외래어를 남발하는 것도 그렇고. 전략적 인내에 기초해 북측에서 아무런 지적도 하지 않겠지만 탁 행정관의 기획이나 행동을 본 북측 인사들의 내부평가는 좋지 않았을 것이다. 정말로 남과 북의 문화교류가 잘 되면 좋겠는데, 앞으론 기획 단계부터 북측의 정서를 고려해 기획했으면 좋겠다, 비위를 맞추라는 것이 아니라 북의 사회문화적 문맥(context)를 이해하고 뭘 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가수들은 내 노래에 너무 집착하지 말았으면 좋겠고.

싸이나 방탄소년단이 국제적으로 유명하지만 북의 정서로는 전혀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99%의 관객은 노래라고 생각하지도 않을 것이다. 강산에 노래도 북의 청중에게는 아주 낯 설었을 것이고. 노래건 대화건 외래어의 남발은 세련된 것이 아니라 식민지의 오염된 언어의 징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북의 인민들이다.

 

이제 민족대단결의 원칙으로 새롭게 거듭나자

보수 진보 가리지 말고 친북 좌파 찾지 말고

 

남과 북의 정상이 더 이상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합의했고, 직통전화까지 놓아가며 수시로 연락하고 수시로 만나며 한반도의 평화정착과 평화적 통일방안을 찾자고 합의했다. 북은 통 큰 양보를 하며 공세적으로 평화정착을 주도하고 있고, 남의 문재인 대통령도 국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으며 착실하게 한발 한발 합의사항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정말로 가슴 벅찬 일이다.

고립압살정책만이 유일한 대북정책인 것처럼 몰아붙이던 미국도 종전선언을 지지하고 국교정상화를 위한 발걸음을 서두르고 있다. 몇 달 전만해도 한반도에 전쟁의 위기가 있었는데 이제 조미협상을 통해 평화협정체결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우리 이 불씨 살리고 살리자.

통일은 민족의 문제이며 해외동포도 민족의 구성원이요 통일의 주체이다. 물론 해외동포의 역량과 역할이 남이나 북과 같지는 않지만.

문재인 정부는 여러모로 운신의 폭이 좁다. 따지고 보면 남은 정전협정의 당사자도 아니고, 회담이 열렸던 곳도 유엔사령부 관할지역이다. 물론 미군만이 유엔의 모자를 쓰고 있지만. 10초의 깜짝방북의 경우 “통치행위”라 국보법의 잠입탈출에 해당하지는 않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깜짝방북조차 유엔사의 허락을 받아야하는 행위였다. 문 대통령이 이렇게 제약 많은 환경을 만든 것은 아니지만 그는 한국의 대통령이라는 어려운 조건에서 평화통일을 추구하고 있다.

그런데 민족의 화해라는 대업은 뒤로하고 이런저런 구실을 대며 문재인 대통령 깎아내리기에 여념이 없는 정치인들도 있다. 북과 합의도 없이 확성기부터 뗀다고 요란을 떠는 보수언론의 공세도 있고.

우리 해외동포도 문재인 정부가 판문점 공동선언을 지킬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자. 전쟁을 해서 좋을 일도 없고, 이미 전쟁은 물 건너간 일이다. 이 분위기가 순탄대로를 걸어 평화통일에 이르도록 우리도 우리의 역할을 하자. 다시는 뒤로 돌아가지 말자. 남과 북의 정부와 정치인이 남북 정부가 합의한 내용을 실천하도록 촉구하고, 당리당략보다는 민족의 이익을 앞세우도록 다양한 운동을 벌이자.

그리고 평통이건 재미동포전국연합이건 친남 친북 가르지 말자. 과거의 행적이 어찌되었건 남북이 합의한 7.4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6.15 공동선언, 10.4 공동선언, 그리고 가장 실천적인 판문점 공동선언을 존중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힘을 합치자. 이제 사상과 정견이 다르다고 더 이상 반목하며 싸우지 말자.

평화통일의 과정에서 남북해외를 아우르는 민족통일기구는 꼭 필요하다. 민족통일기구는 정부 및 사회단체를 포괄적으로 망라하는 것인데 해외도 제 역할을 해야만 한다. 지금 필라의 동포 단체가 제 구실을 하는 것이 많지 않고 이름만 있는 상징적인 단체가 대부분이다. 조건이 열악한 것은 사실이지만 판문점 공동선언에 찬동하는 인사와 단체들을 중심으로 민주적인 토론과 협상을 통해 조직의 틀을 만들어 나가자. 조미관계 정상화도 평화통일을 위한 본격적인 움직임도 먼 장래의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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