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달러의 기적 16] '캠프 미니왕카'에서 만난 '현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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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웨스트팜비치에서 한도원 박사 모습. ⓒ 한도원 ⓒ 한도원
 

'8달러의 기적'은 미국 최초로 제3세대 경구 피임약 노개스티메이트를 발견·개발한 재미과학자 한도원(84) 박사의 일대기입니다. 북녘에서 보낸 소년기, 혈혈단신 탈출하여 남녘에서 보낸 청년기, 그리고 1955년 '8달러'로 시작한 미국 유학 생활 등에서 삶의 고비들을 극적으로 통과해온 그의 일생은 한 편의 잘 꾸며진 드라마와 유사합니다.

 

한 박사는 2002년 은퇴해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에 살고 있습니다. 그가 제공한 자료들과 구술을 토대로 기자가 스토리를 재구성했습니다. 이 기사는 1인칭으로 서술됩니다. (기자 주)



(올랜도) 한도원 박사(전 존슨앤 존슨 석좌 연구원) = 미시간 호변의 캠프 미니왕카에서 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날이었다. 캠프 직원이 모는 차에 통승하여 주변 마을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어느 지점을 지나치려는데 온갖 꽃들로 만발한 너서리(원예 식물 재배장)가 눈을 부시게 했다. 캠프 주변 동네가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갖고 있었던 덕에 평소에는 왠만한 꽃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으나 그 너서리는 형형색색으로 진귀한 꽃나무들로 가득 차 있어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학교가 있던 미주리 스프링필드 지역에서 주로 흰색과 분홍색의 도그우드 꽃들만 주로 보아 왔으나 미시간 중부 지역에서 보게 된 이름모를 꽃들은 이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날 너서리에서 청초하면서도 화려한 꽃더미에 정신이 팔려 있다가 문득 '왜 캠프 미니왕카에는 꽃나무를 심지 않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1925년에 세워진 캠프 미니왕카는 내가 일을 시작하기 직전에 40여동의 캠프를 새로 완성하기는 했으나 기본적인 내부 시설만 겨우 갖추었던 터였다. 옆자리에 않은 직원에게 머뭇거리는 투로 물었다.

"왜 우리 캠프에는 꽃밭을 만들지 않나요?"
"하고 싶어도 할 사람이 있어야지!"
"그거 내가 하면 안될까요?"
"그게 잘 될까? 미스터 와제피가 허락할 지 모르겠군"

그는 꽃나무를 보기좋게 심는 것도 간단한 작업은 아니지만, 잘 가꾸고 자라게 하는 일이 보통일이 아니라며 와제피에게 가 보라고 했다. 심어 놓기만 하고 가꾸지 않은 꽃밭은 없느니만 못하다는 얘기였다. 그런데, 와제피 아저씨는 의외로 쉽게 허락하며 "필요한 것을 구비해 줄 테니 열심히 가꾸어 보라"고 격려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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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5년 5월 캠프 미니왕카의 숙소에서. 손에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Gone with the wind) 소설책이 들려 있다. ⓒ 한도원
 
'꽃밭 가꾸기'로 시작된 삶의 행로

나는 평안도 후창 고향집에서 자랄 때 아버지와 꽃밭을 가꿨던 기억이 있었다. 아버지는 집 마당 앞뒤 울타리 주변을 보기 좋게 빙 둘러 꽃밭을 만들어서는 봉숭아 맨드라미 채송화 등을 심으셨는데, 나는 아버지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잔심부름을 했었다. 종종 아버지는 나에게 물을 주라며 만주 여행 중에 사오신 작은 물조리개를 들려 주셨다. 꽃봉오리가 맺히고 꽃이 만개한 어느날에는 온 집안 식구들을 모아 놓고 사진을 찍으신다며 야단법석이셨다.

어렷을 적 '꽃밭 가꾸기' 기억이 가져온 효과는 생각보다 대단했다. 와제피 아저씨는 내가 원하는 데로 소똥 흙을 트럭으로 날라다 주는가 하면 삽이나 경작기 등 갖가지 원예도구를 사다 주었다. 일이 생각보다 커진 것에 조금은 두려운 생각이 들었으나 왠지 모를 자신감이 들었다. 일단은 며칠에 걸쳐 캠프 입구를 비롯하여 메인 오피스, 식당 앞 등 눈에 띄는 곳에 화단을 만들었다. 직원들이 오며가며 내가 화단을 만드는 것을 눈여겨 보았다. 반신반의 어떤 꽃밭이 만들어 질까 하는 눈치였다.

그런데, 내가 만든 꽃밭은 그해 여름 캠프 미니왕카 직원들 사이에서 단연 화제거리가 되었다. 꽃밭이 완성이 되고 나서 몇 주가 지나고 촉촉히 비가 내린 어느날, 만개한 꽃을 보고는 하루종일 '원더풀!' 소리가 캠프 사이트를 울렸다. 오며 가며 마주친 직원들이 활짝 웃는 얼굴로 내게 '땡큐'를 연발했다. 특히 와제피 아저씨는 "미시간 모래 땅에 꽃을 피웠다!"며 과분할 정도로 칭찬을 해 주었다.

내가 만든 꽃밭은 섬머 캠프가 시작되어 전국 각지에서 캠퍼들이 몰려 들면서 다시 화제에 올랐다. 캠프 미니왕카는 기독교 수양관으로 대학 교수, 교사, 청소년들은 물론 기업가들이 리더십 훈련차 오는 곳으로, 캠퍼들 가운데는 매년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캠프장 입구에서 부터 그동안 보지 못했던 꽃밭을 보고는 모두가 "어, 이 예쁜 꽃밭이 언제 생겼지?" 라며 한 마디씩 했다. 어떤 이들은 내가 꽃밭에 물을 주는 것을 보고는 다가와서 친절하게 인사말을 건네기도 했다.

미시간 호변의 땅들은 모래가 많아서 여간 신경을 쓰지 않고는 꽃밭을 가꾸기가 쉽지 않았다. 거름흙을 적당히 섞어주고, 잡초를 제거하고, 허물어져 내린 둑을 돋아주고, 소나무 껍질 등으로 표면을 덮어주는 일 등 할 일이 많았다. 나는 매일 잠에서 깨자마자 눈을 비비고 달려 나가 꽃밭이 무사한지 살피는 일부터 했다. 꽃잎끝에 작은 물방울들이 은빛으로 반짝거리는 모습을 보고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것 또한 매우 상쾌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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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5년 6월 캠프 미니왕카 직원과 함께 ⓒ 한도원
 
캠프 미니왕카에서 만난 '철학자 회장님'

여름 캠프를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날이었다. 물을 주고 있던 귀품이 있어 보이고 키가 껑중하고 깊은 눈을 가진 할아버지가 내게 다가왔다. 노인이 악수를 청하며 네 손을 덮석 잡더니 물었다.

"자네 이름이 미스터 도원, 맞지?"
"예, 그런데요"
"내 이름은 윌리엄 댄스포드일세. 자네가 만든 꽃밭 얘기를 들어서 잘 알고 있지"
"감사합니다."

"내 거처가 이 근처인데 한번 놀러오지 않겠나?"
"어떻게 찾아 가죠? 여기 지리도 어두운데"
"아, 아무에게나 물어보면 돼"

그날 저녁 캠프 식당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직원들에게 윌리엄 댄포스(William Danforth)라는 할아버지로부터 초청을 받았는데 그가 누구냐고 물었더니 모두가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캠프 미니왕카와 동물 사료와 시리얼을 만드는 랠스톤 퓨리나 컴패니(Ralston Purina Company)의 창립자이자 회장이었다. 꽃밭 하나로 미국 굴지 회사의 회장과 인연을 맺을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않은 일이었다. 누군가는 삶이 우연의 연속이라고 했다는데, 나의 경우도 우연의 연속이었고, 이 우연이 종종 행운을 가져다 주었다. 이번의 우연은 내 삶에 결정적인 행운을 가져다 주었다.

다음날 윌리엄 댄포드 가족이 휴식을 취하고 있던 미시간 호변의 비치 하우스를 찾아 갔다. 반갑게 나를 맞이한 댄포드 회장은 저녁을 대접하고는 미시간 러미(Michigan Rummy)라는 카드 놀이를 하자고 했다. 나는 미시간 카드놀이를 그로부터 배워서는 3시간여 동안이나 게임을 즐기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일부러 져 주었는지, 운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대부분의 게임을 내가 이기자 댄스포드는 '초짜의 행운'이라며 축하해 주고는 매일 놀러오라고 했다.

나는 이후로도 거의 매일 그를 방문하여 카드 게임을 즐겼고, 그의 가족들과도 친하게 지내게 되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은 댄포스는 당시 '4면의 삶'(Four-Fold Living)이라는 생활철학 서적을 출판하여 각광을 받고 있었다. 그의 책은 육체적으로(Physically), 정신적으로(Mentally), 영적으로(Spiritually), 사회적으로 (Socially) 조화를 이루는 삶에 대한 책이었다. 캠프 미니왕카도 그의 생활철학을 기조로 운영되고 있었다.

이렇게 해서 나에게는 행운의 두 스승이 생기게 되었다. 캠프 디렉터 '와제피'가 실생활의 모범을 보인 스승이었다면, 윌리엄 댄포스는 삶의 방향을 이론적으로 지목해준 스승이었다. 미국생활 첫해에 이들에게서 받은 깊은 감화 덕에 나는 거의 매년 여름 캠프 미니왕카에 와서 자연과 벗삼아 일하면서 나의 내면세계를 살찌울 수 있었다.

내스스로는 어렷을 적부터 독서를 통해 삶의 의미에 대해서 나름의 사색을 해 왔었고, 탈북하여 한국에서 갖은 고통을 겪으면서도 항상 삶에 대해 진지한 태도를 잃지 않으려고 힘써 왔었다. 한국 땅에서 꺼져가는 등불처럼 위기에 처했다가 되살아나는 체험을 할 때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왜 살아야 하는가' 따위의 실존적인 질문을 던졌었다. 어느날엔가 한 친구가 이르기를 "네가 매일 기도할 필요를 느끼지 않고 산다면, 그거야 말로 공허한 삶이다"라는 충고를 해 주어 기도하기 시작했었다. 그리고 때로는 기적같은 체험을 하곤 했다.

하지만 미시간의 미니왕카 캠프에서 두 스승을 만나면서 비로소 나는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할 지를 구체적으로 고민하게 되었다. '일확천금'의 삶이나 세상을 호령하는 '명예' 보다는 자연과 어울리고 인간과 조화로운 관계를 맺으며 사는 삶에 대한 그림이 비로소 그려지게 된 것이다. 나는 두 스승의 말없는 가르침 속에 무엇을 위해, 어디에 목표 두고 살 것인가를 캠프 미니왕카의 숲 속을 거닐며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아니, 어쩌면 이들을 만나는 순간 정해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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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의 캠프 미니왕카(Camp Miniwanca) 웹사이트 화면. 캠프 미니왕카는 미국의 유명한 동물 식품제조회사 렐스톤 퓨리나의 창립자인 윌리엄 댄포스가 1925년에 미시간 그랜드 래피즈 북쪽에 세운 기독교 리더십 트레이닝 센터이다. 나는 1955년 여름 그곳에서 일하다 그를 만나 사귀게 되었다. ⓒ camp miniwanca
 
'모두를 잘 먹이는 학문'을 전공으로 택하다

내 목표는 캠프 미니왕카에 있는 동안 분명해 졌다. 나는 '먹고 사는' 문제를 위해 내 삶을 바치기로 했다.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는 주는 것', 농학을 공부하는 일이었다. 내가 고국을 떠나올 당시의 한국은 농업인구가 80%를 넘었었다. 일제시절부터 한국동란 시기까지 내가 본 한국은 기아에 허덕이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가운데 하나였다.

나 스스로가 고교 시절 노상에서 떡장사 등을 통해서 풀칠을 했고, 영양실조로 죽음의 위기에까지 이르렀던 경험들이 있었다. 피난시절에는 다방에 들어가 계란 반숙을 시켜서 허기진 배를 채우고는 친구를 볼모삼아 돈을 구하기 위해 부산 골목을 누볐던 일도 있다. 유엔재건단에서 일하던 시절에는 식구들의 끼니를 때우기 위하여 협잡질 깡패짓을 하는 청년들과, 미군들에게 몸을 파는 여대생들을 목격했던 일도 있었다.

나는 두 번째 학기인 가을학기 부터는 농공학(Agricultural Engineering)을 전공하기로 결정하고 그에 맞추어 과목을 듣기로 했다. 그런데 농공학을 전공하려고 보니 사우스 웨스턴 미주리 주립대학은 그 분야의 폭이 너무 좁았다. 여러 교수들을 만나 상의한 결과, 내 전공분야에 가장 적합한 학교는 미시간 주립대학이었다. 미시간 주립대학은 농공학은 물론 전체 농학 분야에서 미국 내 최고의 명성을 얻고 있는 대학 가운데 하나였다.

학교를 옮기는 것으로 방향을 정하고는 미시간 주립대학에 전학 지원서를 냈다. 그런데 미시간 주립대학에서는 전학을 허용할 수는 있지만, 장학금은 1년이나 2년 후에나 가능하다는 연락이 왔다. 매년 등록금 2천불을 자비로 부담해야 공부할 수 있다는 얘기였고, 내 형편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진로를 결정한 마당에 물러설 내가 아니었고, 어떻게든 미시간 주립대학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에 잠을 설쳐야 했다.

그때 아이디어가 떠 올랐다. 바로 '캠프 미니왕카'였다. 나에게 미니왕카는 어느새 문제의 실마리를 풀 수 있는 열쇠가 되어 있었다. (구술 정리 및 스토리 구성 : 김명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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