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달러의 기적 3] 고향에서 평양 거쳐 해주로

 


'8달러의 기적'은 재미과학자 한도원 박사(84)의 일대기 입니다. 현재올랜도에 거주하고 있는 한도원 박사의 일생은 험난한 시대를 살아온 우리 어머니 아버지들의 삶이면서 귀중한 현대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북녘에서 보낸 소년기, 혈혈단신 탈출하여 남녘에서 보낸 청년기, 그리고 1955년 '8달러'로 시작한 미국 유학생활 등에서 삶의 고비 고비들을 극적으로 통과해온 그의 일생은 한편의 드라마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세계적인 제약회사인 존슨앤존슨에서 33년 동안 재직한 한도원 박사는 1989년 동료 존 맥과이어 박사와 함께 경구 피임약 '제3세대 신약'으로 일컬어지는 노개스티메이트를 최초로 발견.개발하는 개가를 올렸습니다.



그가 제공한 자료들과 구술을 토대로 기자가 스토리를 재구성합니다. 이 기사는 1인칭으로 서술됩니다. 

- 기자 주


(올랜도) 김명곤 기자

 
 
일단 남행을 결정하자 마음이 바빠졌다. 원하지도 않았고 그래서 더욱 지겹기만 했던 2년여의 '방학'을 끝내고 막연하게나마 동경하던 서울로 향한다는 생각에 싱숭생숭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우리를 싣고 갈 트럭은 8월 14일 오후 늦게 오기로 되어 있었다. 나와 함께 남행을 하게 될 친구는 성이 백씨로, 우리는 마침 광복절 기념일을 앞두고 대대적인 축하행사 준비에 이목이 집중된 틈을 타서 동네를 빠져 나갈 계획을 세워 두었다.

나는 D데이를 며칠 앞두고 숨을 죽이며 동네 분위기를 살펴 가며 가져갈 간단한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배낭 속에는 며칠 먹을 미숫가루와 옷가지를 챙겨 넣었다. 그 와중에도 책 한 권을 배낭에 쑤셔 넣었는데, 톨스토이의 '영생의 길'이라는 일어판 소설이었다. 어머니는 남쪽에서 사용하는 화폐로 3만원을 바꿔 오시더니 길쭉하게 전대를 만들어서 거기에 몽땅 돈을 집어 넣은 뒤
겉옷을 둘추고 허리에 둘러차게 하셨다. 당시 3만원은 두 학기 등록금과 1년 동안의 생활비로 적지 않은 돈이었다. 어머니는 서울에 가면 나를 도와줄 아버지의 몇몇 친구들 명단을 주시면서 찾아가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하셨다.


드디어 8월 14일이 왔다. 동네 여기 저기에는 광복절을 기념하는 현수막이 나붙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다음날 치러질 기념행사를 준비한다며 모두들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우리는 동네 어귀와 강 건너 길목을 경비원들이 지키고 있는 것을 며칠 전부터 예의 주시하고 있었는데, 오후 해질 무렵이면 하나 둘씩 빠져 나가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어린 동생들은 그저 잔치 분위기에 젖어 뭔가를 준비한다며 온종일 친구들과 들락 날락 하고 있었다. 그들은 아버지 처럼 따르던 형이 몰래 자신들을 버려두고 떠난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광복절 축제 전날 밤, 고향을 떠나다

해가 기울고 떠날 시간이 닥아 왔다. 어머니가 손수 차린 저녁을 먹는둥 마는둥 집을 나섰다. 10여분을 걷다 이쪽편 강
어귀에서 보니 강 건너 저편에 트럭의 뒷꽁무니가 보였다. 흑갈색 천으로 짐칸을 두른 트럭을 몰고 온 운전사는 차 앞뒤로 왔다갔다 검사하는 시늉을 하며 주변을 흘끔흘끔 살피고 있었다. 태연한 척 어머니와 함께 다리를 건너 트럭이 있는 쪽으로 향하자 먼저 도착한 친구 백군이 팔을 반쯤 들어 빨리 오라는 시늉을 했다. 그는 해방 전후로 이미 여러 차례 친척집을 방문하는 등 남북을 드나들던 차였고, 이제는 나의 안내자요 동행자가 될 터였다.


어스름 저녘의 산그늘이 마을앞 어귀를 가로지르며 흐르고 있는 강물을 무겁게 덮고 있는 광경이 얼핏 눈에 들어왔고, 불안정한
시국에 장남을 떠나 보내는 어머니의 한숨이 뒷덜미에 걸려 왔다. 잠시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두려움'은 턱수염이 듬성
듬성 나기 시작한 16세 소년이었던 나에게 강렬하게 밀려들기 시작한 미지의 세계를 막아설 수 없는 미약한 감정이었다.


2년여의 방학 동안에 세계문학대전집을 비롯하여 중국 및 일본 역사소설들과 막 들어오기 시작한 추리소설 등을 닥치는 대로 읽으며 나만의 세계에 몰입하는 것으로 스스로를 달래면서 갖게 된 또하나의 감정이 있었다. 미지의 세상에 대한 모험심과 도전 정신이었다 . 어쩌면 이 같은 모험심과 도전 정신은 일찍 일본 유학을 마치고 고국에 돌아온 뒤로 사업을 한다며 만주 일대를 들쑤시고 다닌 아버지로부터 보고 배운 것인지도 모른다. 달리는, 어렷을 적부터 높고 험한 산악지대와 도도히 흐르는 후창강가에서 자유롭게 뛰어놀며 품게 된 웅지가 몸에 밴 탓일 수도 있었다.


어쨌든 겁없는 16세 소년이었던 나는 눈앞에 트럭이 보이자 단숨에 서울로 달려갈 것만 같았다. 트럭 앞에 도달한 나를 어머니가 돌려 세우고는 침통한 표정으로 바라 보았다. 그리고는 내 어깨를 잡고 있던 오른 손을 내린 어머니가 갑자기 양 손으로 내 허리에 두르고 있던 돈 전대를 앞 뒤에서 주물럭 거려 살펴 보셨다. 이내 안심하는 듯한 눈초리를 보이며 낮은 목소리로 어서 가라는 눈짓을 했다. 어머니는 막 돌아서서 트럭에 타려는 나를 다시 돌려 세우고는 당부 겸 격려의 말씀을 하셨다.


"담배 피우지 말아라. 술을 마셔선 안 된다. 하늘이 너를 도와 주실 거다!"


이 세 마디는 어머니의 유언과 같은 마지막 말이 되고 말았다. 북녘에서는 해방이 된 기쁨 때문인지, 갑자기 맛보게 된 자유
때문인지 담배를 피우는 청소년들이 많아졌었다. 나도 친구들과 만나서는 낄낄대며 몰래 담배를 피우곤 했다. 당시 돈 깨나 있다는 부자들이나 한량 청년들 사이에선 만주에서 들어온 아편에 손을 대 패가망신 하는 일들이 종종 있어서 어려서 담배를 피우는 것을 예비 마약쟁이가 되는 것쯤으로 인식하고 있던 때였다. 언젠가는 담배 가루가 내 호주머니에서 발견되어 아버지에게 된통 혼이 난 적이 있었는데, 어머니는 내가 담배 피우는 분위기에 빠져서 나쁜 친구들과 어울릴 것을 염려하셨다.


어머니의 마지막 말 "담배 피우지 말아라…"

이윽고 나와 친구를 태운 트럭은 고향 마을을 뒤로하고 어스름 저녁 신작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트럭에서 내뿜는 매캐한 연기와
히뿌연 흙먼지에 사라졌다 나타났다 하던 어머니의 모습이 후창강을 휘돌아 갑자기 꺾여진 길목에서 완전히 모습을 감추었다. 이제 정말 떠나게 됐다는 안도감과 아울러 가슴이 휑했던 느낌이 지금도 떠오른다. 아무리 드센 기질의 함경도 여자라 하더라도 남편이 쥐도 새도 모르게 잡혀가 종무소식인데다, 장남까지 광복절 기념 대 축제를 앞두고 피신시키듯 남으로 떠나 보냈으니, 어머니는 아마도 집에 돌아 가셔서 대성통곡을 하셨을 것이다.


우리를 태운 트럭은 얼마 동안은 후창 인근의 신작로를 달리다 외곽의 심하게 울퉁불퉁한 산길을 타고 달리기 시작했다. 혹시나
경비원들의 검문에 걸릴 지도 모르기 때문에 일부러 산길을 택한 것이다. 우리를 태운 트럭이 좌우로 뒤뚱거리며 사정없이 털털 거리는 길을 4~5시간쯤 달리자 배가 고파지기 시작했다. 어느 시골 마을에 잠시 정차하여 식당을 찾아서는 냉면을 허겁지겁 먹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다시 출발하여 두어시간쯤 달려 강계에 도착할 무렵 검문소가 나타났다. 차에서 내린 우리는 걸어서 강계에 도착하여 자그마한 여관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우리는 강계역에 가서 평양행 기차표를 끊었다. 그리고는 등에 걸머지고 가던 배낭을 짐칸에 미리 넣고는 빈
손으로 기차에 올라 탔다. 짐을 직접 가지고 가는 경우 순찰 요원들에게 의심을 살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차 안은 상당히
붐비고 있었다. 어린 나이에 짐작하기에 어딘가로 피신을 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승객들이 많았다. 고향에서부터 우리와 처지가 비슷한 많은 사람들이 이미 삼팔선을 넘어 남으로 갔다는 얘기를 듣던 터였다.


일단 평양행 기차를 타고 보니 처음 떠나올 때 보다는 마음의 여유가 있었으나, 여전히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기차에 탄
사람들의 행색이나 창가로 종종 내비치는 정차역 지역의 주민들의 표정이나 왠지 초조하고 불안하고 뒤숭숭 해 보였다. 종종 검표원들이 기차 안에서 표를 조사하는 와중에 행색을 살피며 행선지를 묻기도 하였는데, 그때마다 마음을 졸이곤 했다. 북한 지역은 산이 많아 수많은 터널을 지나치게 되는데, 숨가쁘게 달리는 기차가 터널들을 통과할 때마다 눈이 부셔서 졸던 눈을 번쩍 떴던 일들이 떠오른다.


한참을 달리던 기차가 제법 긴 시간을 개천에서 정차했다. 개천은 고향에서 방학을 마치고 안주 중학교에 갈 때 마다 내렸던
곳으로 익숙한 곳이었다. 그곳에서 작은 기차가 앞뒤로 여러 번 오가며 선로를 바꾸고는 안주행 승객을 태웠는데, 우리는 그 기차를 '빽기차'라고 불렀었다. 우리는 출출하던 차에 기차에서 내려 떡과 과일을 사먹고는, 순천을 거쳐 얼마 지나지 않아 평양에
도착했다. 고향 후창을 떠나 평양까지 11시간에서 12시간 가량 걸린 것으로 기억한다.


평양은 사람들로 넘치고 있었고, 겉으로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평온해 보였다. 그러나 평양의 뒷골목은 달랐다. 어느 여관에서 하루밤을 자게 되었는데, 가만히 엿들으니 그 중에 상당수가 남으로 탈출을 하기 위해 기회를 엿보고 있던 투숙객들이었다. 그들은 '시간이 갈수록 삼팔선의 경계가 강화되고 있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개미새끼 한마리도 빠져 나가지 못하게 될 것이란 소문이 나돌고 있다'고 했다. 어떤 이는 탈출을 시도하다 붙들려 가서는 교화 노동형에 처해지거나 삼팔선을 넘다 총에 맞아 죽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이곳 저곳에서 수군덕 거리는 얘기를 들으니 육로로 이리저리 피해 삼팔선을 넘는 것 보다는 야밤에 어부를 가장하여 고깃배를 타고 강을 건너 탈출하는 것이 덜 위험하다는 것이었다.


 
▲ 평양역 ⓒ위기피디아 백과사전


 
해주에서 만난 남자 "내가 남으로 데려다 줄까?"

우리는 해상 루트를 통해 남쪽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여관에서 들은대로 우리는 평양에서 가깝고 비교적 안전하다는 해주에서 배를 타기로 했다. 다음날 이른 시각에 해주행 기차를 탔다. 이제 곧 배를 타고 남으로 간다는 생각을 하니 긴장되기 시작했다. 여러차례 남북을 오간 친구는 태연하게 '걱정말라'고 했으나, 처음 경험하는 나는 아무래도 다를 수 밖에 없었다.


긴장한 가운데 해주역에 도착한 것은 한 낮이었다. 우리는 미리 보낸 짐을 찾기 위해 수화물 창구에 갔으나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는 막 역사를 나서고 있었다. 그때였다. 30대 후반 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우리에게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더니 작은 목소리로 소근 거리듯 말했다.


"당신들, 남쪽으로 가려는 거 다 알고 있어, 내가 데려다 줄까?"


친구와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서로를 마주 보았다. 도착하자 마자 정체모를 남자로부터 받은 제안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눈으로 묻고 있었다. 우리가 마주보며 당황해 하고 있는 것을 본 그는 시선을 돌린 체 우리의 다음 반응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를 체포하기 위한 비밀요원의 계략일 수 있는데, 여차 잘 못 말했다가는 만사가 틀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가슴이 방망이질을 치기 시작했다. 양 손에 힘이 들어가고 여차하면 돌격하여 들이 받고 도망할 태세를 갖추었다. (구술 정리 및 스토리 구성 : 김명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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