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환수 피해국가연대와 소송전략

 

<한국언론진흥재단 후원 기획취재시리즈>

 

 

Newsroh=노창현기자 newsroh@gmail.com

 

 

‘문수성지’로 잘 알려진 오대산 월정사(月精寺)에서 지난 2016년 2월 1일 특별한 행사가 개최됐다. 이름하여 ‘미국 유출 문화재 재현전(再現展)’이었다.

 

월정사 성보박물관에서 약 두달간 진행된 전시에서는 미국 유출 문화재 20여 점이 선보였다. 동북아불교미술연구소(소장 석문스님) 산하 나우회 회원작가들이 진품을 재현한 전시였다.

 

당시 최선일 문화재청 문화재감정위원은 “재현된 문화재들은 일제강점기나 한국전쟁 이후 유출된 것으로, 그 취득 경위의 위법성을 밝히기 전까지 국내로 들어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나우회 작가들은 해외 유출 문화재의 재현 작업을 통해 전통제작기법을 복원하고 전통미술을 현대적으로 계승하는 작업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연욱 작가가 재현한 미국 LA카운티박물관 소장 ‘지장시왕도’는 1841년 동화사 염불암에서 조성한 작품으로, 전체적으로 적색과 녹색이 주류를 이루는 설채법 등이 매우 특이한 작품으로 알려졌고 한봉석 작가는 호놀룰루박물관 소장 당사자상과 노정용이 조성한 LA카운티박물관 소장 목조동자상 등의 원형을 충실하게 재현했다.

 

월정사성보박물관은 2015년에도 일본 반출 문화재 재현전을 열어 눈길을 끌었다. 세인들은 유출된 우리 문화재 대부분이 일본에 있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이 전시를 통해 미국에도 상당수 반출됐다는 사실을 환기(喚起)할 수 있었다.

 

불법적으로 해외로 반출된 문화재를 환수하기 위해서 유엔 산하 전문기구인 유엔 교육과학 문화기구(UNESCO)를 중심으로 관련 협약이 제정되어 왔다. 하지만 협약이 강제력이 없는 국제법이며, 1970년 이후 거래된 문화재에만 적용되는 한계가 있다.

 

이때문에 문화재 환수는 당사국 정부 간 협상이나 기증, 구입을 통한 반환이 이루어지고 있는게 사실이다. 1965년 한일협약이 체결됐을 때 박정희정부는 일본으로부터 약 1400여점의 문화재를 돌려받았지만 대부분 문화재 가치가 없는 것들이어서 논란을 빚었다.

 

국민적 관심의 뒷받침으로 문화재 환수의 모범적인 사례를 든다면 2006년 도쿄대의 조선왕조실록 47책, 2011년 조선 왕실의궤 등 1,205책의 반환이다. 또한 최근 미국에서 환수한 문정왕후 어보 등도 한국 국민들과 미국의 한국계 시민들이 인터넷 청원운동을 펼치는 등 노력을 통해 환수(還收)할 수 있었다.

 

 

외규장각 의궤1.jpg

 

 

프랑스가 탈취한 외규장각 의궤(儀軌)의 반환 사례도 눈여겨볼만 하다. 외규장각 의궤는 병인양요(1866년) 당시 프랑스 군대가 강화도에 소장된 것을 약탈한 것이다. 130년 가까이 프랑스 품에 있던 외규장각 의궤는 1993년 우리 정부가 고속철도 사업을 할 때 반환의 물꼬가 터졌다.

 

TGV의 한국 수주를 위해 방한한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은 외규장각 의궤 가운데 한 권을 반환하며 수주의 댓가로 외규장각 도서 전체의 반환을 약속했지만 차일피일 시간을 끌다가 2011년 ‘영구임대라는 방식으로 비로소 우리나라에 돌아오게 되었다.

 

 

외규장각 의궤2.jpg

 

 

외국의 경우, 이집트는 2002년부터 이른바 ‘유물환수 전쟁’을 벌여 전 세계에서 3만점을 돌려받았다. 이집트는 루브르 박물관에 있던 3000년 된 파라오 시대 고분벽화 5점을 돌려주지 않으면 루브르 박물관의 이집트 내 발굴을 전면 금지하고 박물관 간 교류를 중단하겠다고 압박했다. 이같은 공격적인 전략으로 이집트는 영국 런던대가 보유하던 석기 시대 유물 등 2만5000점, 미국이 갖고 있던 3000년 된 목관도 환수했다.

 

2000년대 들어 문화재를 약탈(掠奪)당한 나라들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문화재 반환을 요구하는 국제적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다. 과거의 문화재 약탈 국가들은 관련 협약의 미비를 빌미로 모르쇠하거나 옛 식민지 국가보다 유물을 더 잘 보존할 수 있다는 제국주의적 논리를 내세워 반환을 미뤄왔지만 피해국가들의 연대(連帶) 움직임이 생기면서 반환의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2010년 4월 이집트 카이로에서 열린 국제회의가 대표적이다. 해외로 약탈당한 각국의 문화재를 되찾는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국제회의가 열렸다. 이집트 고(古)유물 최고위원회 주최로 열린 이 회의에는 한국, 중국, 그리스 등 세계 22개국이 참가했다. 이 회의는 다른 나라와 공동 전선을 구축해 국제사회에 문화재 반환 여론을 조성하자는 취지에서 마련된 것이었다.

 

이 회의에서는 1970년 이후 거래된 문화재를 대상으로 한 유네스코의 문화재 협약이 빛좋은 개살구 꼴이고, 유네스코의 문화재 반환촉진 정부 간 위원회(ICPRCP) 역시 일본, 미국 등 약탈국들이 참가하고 있어 실효성이 없다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었다.

 

이같은 국제적 인식의 전환과 함께 해외 유출 한국문화재를 반환소송을 통해 찾으려는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다.

 

지난 2013년 3월 로스앤젤레스의 유명 국제인권변호사인 베리 피셔 변호사가 미국내 한국문화재 반환소송을 전개하겠다는 회견을 해 주목을 받았다.

 

피셔변호사는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 및 위안부 피해자를 위해 미국 내 소송을 진행했던 인물로 과거 역사에 대한 관심이 일제 강점기 시절 수많은 한국 문화재가 미국 등 전 세계로 불법 반출됐다는 문제 인식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는 연방 법원 소송을 통해 한국에서 약탈된 문화재가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면서 우선 한인사회와 힘을 합쳐 미국 내 한국 문화재 불법 유출 현황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LA를 포함한 미 전역에 한국에서 약탈하거나 불법으로 들여온 문화재가 있습니다. 우선 문화재 유출 현황과 유출 경로, 현재 보관 장소와 소유주 등을 파악해야 합니다.”

 

불법 유출된 한국 문화재 현황을 파악하고 문화재 반환소송을 제기할 대상을 구체적으로 정한 뒤 연방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는 절차를 밟는다는 전략이었다.

 

피셔 변호사는 “로스앤젤레스의 게티 박물관도 이탈리아와 동유럽 국가에서 불법으로 들여온 문화재를 반환한 사례가 있는 만큼 한인사회와 한국정부가 나선다면 충분히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으로는 문화재 환수의 어려움을 들어 해외 유출 문화재를 현지에서 더 빛나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목소리도 일고 있다.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문화재는 제자리에 있을 때 가장 아름답다’는 논지는 응당 맞는 말이지만 문제는 불법으로 약탈해 간 문화재도 우리가 합법적으로 되찾아야 한다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많은 사람이 외국 주요 박물관의 한국관을 보면서 중국관·일본관과 비교하며 분통을 터뜨리는데, 실은 자국의 지원으로 대부분 운영되고 있다”면서 “환수 이외의 현실적인 대안으로 외국의 박물관·미술관들이 ‘한국관’이나 ‘한국실’을 설치할 수 있도록 지원해 오히려 재외 문화재가 더 빛나도록 하는 방법도 바람직하다”고 제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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