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혁명 100주년’ 미국내 독립운동 성지를 찾아서(1)

 

<한국언론진흥재단 후원 기획취재 시리즈>

 

 

Newsroh=로창현기자 newsro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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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98년전인 1921년 3월 2일 수요일 저녁 봄비가 내리는 뉴욕 맨하탄 43가 타운홀에서 역사적인 기념 집회가 거행됐다. 2년전 코리아 땅 전역에서 대한독립만세의 함성이 메아리친 3.1독립운동 2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였다.

 

당시 뉴욕시에 거주하는 한인들은 30여명으로 추산됐고 필라델피아 등 인근에 있는 한인들이 모두 합쳐도 100명 남짓이었다. 그러나 이날 행사엔 무려 1300여명이 참석하는 뜨거운 열기를 보였다.

 

행사는 당시 ‘미국위원회(The American Committee)’의 후원으로 마련됐고 참석자도 미국인들이 대부분이었다. 군국주의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한 조선 출신의 유학생들이 어떻게 이렇게 많은 미국인들의 지지와 도움을 받을 수 있었을까.

 

뉴욕은 본격적인 독립운동의 시발점이기도 했다. 앞서 1차세계대전이 끝나고 1917년과 1918년 뉴욕의 맥알핀(McAlpin) 호텔에선 소약속국동맹회의(小弱屬國同盟會議)가 두차례에 걸쳐 열렸다. 코리아를 비롯한 억압받는 약소국들 대표가 모여 독립에 대한 열망을 논하고 세계의 지지를 얻는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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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만(1차회의)과 민찬호 정한경(이상 2차회의)이 대표로 참석한 소약속국동맹회의 소식은 AP를 통해 세계에 전파되었다. 일본 고베(神戶)에서 영국인이 발행하는 저팬 애드버타이저(The Japan Advertizer)에 ‘한국민들 독립을 주장’, ‘약소민족들 발언권 인정을 요구’ 등의 기사에 힘입은 재일유학생들은 은밀히 독립운동에 나섰고 이것이 1919년 2·8 독립선언과 역사적인 3·1운동의 기폭제가 된 것이다.

 

미국은 일본과 같이 똑같은 제국주의의 길을 걸었지만 이민자의 나라로 출발한 정체성과 함께 정의롭고 양심적인 시민들의 활동이 있었다. 언론 또한 제국주의 국가들의 지배를 받은 식민국과 약소국 민중이 처한 어려움을 나름대로 조명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미국 언론이 가장 놀라워한 20세기초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3.1만세운동이었다. 세계사에 유례를 찾기 힘든 대규모의 평화 시위였기 때문이다. 총과 칼로 유린당하는 순간에도 시종일관 비폭력으로 맞서 미국을 비롯한 서구인들에게 큰 감동과 놀라움을 주었다.

 

3.1운동은 처음엔 외부에 한국인들의 폭동으로 잘못 알려졌다. 당시 조선엔 상주하는 미국 기자가 없었고 도쿄와 베이징에서 간접 취재하는 방식이어서 바로 보도되지 않았다. 그러나 시위와 행진을 목격한 미국 선교사들을 통해 3.1운동의 실상이 알려지면서 미국 언론은 비상한 관심을 갖고 취재를 시작했다. 3월 12일 서울에 온 AP 통신 기자가 첫 보도를 했고 베이징에 있던 뉴욕타임스 기자도 같은 날 전문(cable)을 통해 긴급 타전했다.

 

‘일본 헌병대는 성명서를 들고 있는 소녀의 손목을 칼로 잘랐다. 소녀가 나머지 손으로 성명서를 들어올리자 이번엔 그 손목마저 잘랐다.’(AP통신 1919년 3월13일)

‘여성들과 어린아이들이 속수무책(束手無策)으로 두들겨 맞고 발로 걷어 채이며 칼로 찔리는 등 끔찍한 참상이다. 일본 군인들은 ‘한국 만세(Hurrah for Korea)’라고 외치기만 해도 총을 쏴서 죽이고 있다.‘(1919년 3월17일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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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는 “정의와 휴머니티를 앞세운 코리아가 2000만 국민을 대표해 독립 선언을 했다. 선언문에서 ‘우리는 4300년 역사에 걸쳐 독립된 나라였다. 우리의 독립 선언은 현재의 고통스런 상처를 없애고 국가적 기상과 활력을 고취시키며 불법적인 일본 정권의 압제에서 벗어나 우리의 후손들에게 부끄러운 유산을 물려주지 않고 영원한 자유를 구가하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는 자유를 위해 마지막 피 한방울까지 싸울 것’이라고 말하고 ‘오늘의 독립 선언은 일본에 복수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소수의 일본 정치인들이 폭력적인 정책으로 저지른 잘못들을 바로 잡기 위함이다’라고 당당히 외쳤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는 “한국에서 일어난 독립 운동이 당초 알려진 것보다 훨씬 규모가 큰 것으로 전해졌다. 3월1일 민족주의자들은 모든 도시와 마을에서 독립 만세를 외치고 행진을 펼쳤다. 일본은 3월3일 고종의 장례식(葬禮式)에 시위가 발생할 것을 우려해 서울역 등 주요 지역에 헌병대를 투입했다. 일본은 독립 운동에 미처 대비하지 못했지만 이후 수천 명을 체포하는 등 신속한 강경 진압에 나섰다. 일본 헌병대는 시위에 가담하지 않은 평양의 장로신학교 학생들을 체포해 옷을 벗기고 그들을 묶어 놓은 채 고문하며 너의 하나님처럼 견뎌보라고 학대했다. 일본인들은 독립 운동을 제압한 것처럼 보이지만 지금 한국인들은 수면 아래서 펄펄 끓고 있다.”

 

뉴욕 타임스는 13일에도 베이징발 기사로 일제의 잔학한 만행을 고발했고 15일엔 ‘평화 시위 참가자 4만 명 체포’라는 제목으로 일제의 대규모 체포 소식을 전했다. 또 18일엔 ‘미선교단 한국의 평화적 독립운동 설명’, ‘한국인에 대한 일본인의 잔인성 고발’ ‘한국 전역에서 공포정치(Reign of Terror) 자행’이라는 기사에서 “선교사들에 따르면 한국인들에게 야만적 잔인성이 가해지고 있다. 선교사들은 독립 운동의 원인은 일본이 1910년 합병 이후 10년 간 한국 국민들에 대한 잔혹한 탄압을 가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민족 지도자들은 일본의 어떠한 행위에도 폭력으로 대항하지 말라는 엄명을 내렸고 한국 국민들은 무기도 없었다. 한국인들은 일본 군부에 의해 탄압받고 있다는 사실을 평화적으로 세계에 알리는 독립 운동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같은 분위기를 고려할때 뉴욕에서 역사적인 3.1운동 기념식이 열리고 미국 언론이 주요 뉴스로 보도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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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운홀(The Town Hall)은 당시 미국헌법 제19조의 수정을 추진했던 참정권 확대론자들이 중요한 문제들을 대중들에게 교육하기 위한 집회 장소로 그해 1월 문을 열었다. 서재필 박사가 대회장을 맡은 3.1운동 기념식은 타운홀 개관후 가장 크고 의미있는 국제 행사였다.

 

서재필 박사가 발간한 영문 월간지 ‘코리아리뷰’ 1921년 3월호에 따르면 당시 기념식엔 뉴욕의 정치인을 비롯, 교육과 종교, 사업 등 각계각층을 대표하는 이들이 참석하는 등 코리아의 독립에 비상한 관심과 지원을 기울인 것으로 보인다.

 

행사는 서재필 대회장의 개회사를 시작으로 ‘기미 독립선언서’가 영문으로 낭독됐고 정한경 임시정부 구미위원의 연설, 미국 연방의회에 보내는 편지 등이 朗誦(낭송)됐다. 이날 행사에서 윌리엄 메이슨 일리노이주 연방하원의원은 “미국은 한국의 독립을 즉각 인정해야 한다”고 역설해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고 인디애나주지사와 연방하원의원을 역임한 뉴튼 길버트 등 유력 인사들도지지 연설을 이어나갔다. 또한 당시 유명 바이올리니스트 파커 러셀이 한국인을 위로하는 연주로 큰 감동을 주기도 했다.

 

이튿날 뉴욕타임스는 2면에 ‘메이슨의원, 일본의 한국 침략행위 비난’(MASON RAPS JAPAN FOR PIRACY IN KOREA)’는 기사로 한인연합대회를 조명했다. 라이벌 뉴욕트리뷴도 3월3일자 3면에 2주년 기념식과 메이슨 의원 등의 참석 및 발언내용을 자세히 보도했다.

 

이날 기념식을 계기로 한인들은 미주독립운동의 독립운동과 민족교육의 求心點(구심점)이 될 교회 창립에 나서기로 뜻을 모으고 미국 감리교단의 재정지원을 받아 그해 4월 뉴욕한인교회를 창립하기에 이른다.

 

뉴욕타운홀에선 1922년에도 3.1절 제3주년 기념행사를 개최했고 당시 서재필박사는 독립의 뜨거운 의지와 당위성을 闡明(천명)한 연설로 많은 미국인들을 감동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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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웹진 NEWSROH www.newsroh.com

 

 

<꼬리뉴스>

 

뉴욕타운홀 특급 예술공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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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어느 도시에서나 볼 수 있는 타운 홀은 본래 그 지역의 공공 정책을 결정하기 위해 정치인과 사회운동가, 시민들이 모여 논쟁하고 의견을 조율하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문화 예술 공연장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뉴욕 맨하탄 43가와 6애버뉴 사이에 있는 ‘더 타운 홀’은 1921년 1월 12일 개관했다. 이 곳은 미국헌법 제19조의 수정을 추진했던 참정권 확대론자들이 그날의 중요한 문제들을 대중들에게 교육하기 위한 集會(집회) 장소로 건립되었다. 그 후 산아제한이라든가 흑인 인권운동, 처형된 무정부주의자들에 대한 추모집회 등 사회적 또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슈들이 자유롭게 토론되거나 시민들을 위한 각종 공연 장소로 이용되었다.

 

뉴욕시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 온 타운홀은 현재 전문 콘서트홀로 활용되고 있다. 총 1495석의 객석은 모든 좌석의 전망이 좋고 음향은 카네기홀에 버금갈만큼 훌륭한 것으로 잘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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