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나자레원에 기거하는 할머니들의 삶 조명

 

뉴욕=뉴스로 민지영기자 newsro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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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가 한국에서 생활하는 일본 할머니들의 특별한 삶을 조명(照明)해 관심을 끈다. 뉴욕타임스는 6일 A섹션 4면에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던 기간 한국 남성과 결혼한 수천명의 일본 여성들이 있었다"며 경주의 사회복지시설 나자레원에서 생활하는 19명의 일본 할머니들의 사연들을 소개했다.

 

1945년 해방후 이들은 대부분 한국에 남았으나 일본의 잔혹한 식민통치에 대한 보복(報復)을 우려해 일본으로 건너간 이들도 있었다. 가쓰라 시즈에(96) 할머니의 경우는 해방전 일본에서 한국으로 온 경우였다.

 

일본 아내들 상당수는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으로 남편을 잃었다. 이들은 귀국하려고 노력했지만 1965년까지 한국과 일본이 외교 관계가 단절돼 있었고 국교 정상화후에도 귀국을 보증하는 친지가 없어 불가능 했다.

 

위안부 문제 등 한일 갈등(葛藤)이 고조된 가운데 이들은 한국인으로 살아가지도 못하고 일본 여권도 없이 방치된 채 있다.

 

나자레원의 송미호 원장은 "이 곳에 할머니들이 처음 오셨을 때 모두 한국이름을 갖고 있었다. 우리는 이분들을 일본 이름으로 불러드리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러자 할머니들은 자신의 정체성이 회복된 것처럼 모두 눈물을 흘렸다"고 회고했다.

 

가쓰라 할머니는 방문객을 만나면 휠체어에 앉아 70여년전 삿포로 인근의 고향 에베쓰 마을에서 친절한 한국인 남성을 만났던 기억을 떠올린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생활에 관한 질문을 하면 얼굴이 굳어진다.

 

그녀의 남편은 수십년전 알코올중독으로 사망했다. 할머니는 한국의 남서부 지방에서 담배농사도 짓고 가축도 기르며 생활했다. 건강이 나빠지기 전까지 서울에서 야채 장사도 하다 9년전 이곳에 왔다. 아들은 일찍 죽었다며 자세한 언급을 피했다.

 

가쓰라 할머니는 "옛날을 돌아보면 뭐해. 자기가 사는 곳이 고향이지, 일본은 나한테 남의 나라야"하고 말했다.

 

나자레원은 경주에서 고아원을 운영하던 자선사업가 김용성씨(2003년 작고)가 일본에 갔을 때 경험한 일들이 계기가 되었다. 우연히 일본 왕궁 앞에서 시위하는 여성들을 보게 되었다. 처음엔 한국인으로 생각했지만 알고보니 일본 국적을 회복시켜달라고 요구하는 한국 국적의 일본인들이었다.

 

그는 한국에 돌아와 이들 여성들에게 숙소를 제공하고 법적 경제적 지원을 해주는 시설을 세우게 됐다. 1972년이었다. 나자레원을 통해 일본에 돌아간 여성들은 147명이었고 1984년이 마지막이었다. 이후엔 일본에 돌아갈 수 없거나 가족들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여성들의 요양원(療襄院)으로 운영됐다.

 

한국에서 70년 세월을 보낸 할머니들은 일본의 요양원보다 이곳에서 여생을 보내길 원한다. 송미호 원장은 "할머니들은 매실을 절인 일본음식 우메보시를 좋아한다. 하지만 한국인들이 김치 없이 못사는 것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전했다.

 

지난 35년간 나자레원에서는 80명 이상의 할머니들이 타계(他界)했다. 현재 기거하는 19분의 할머니 평균 연령은 92세이다. 대부분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고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하다.

 

나자레원의 존재는 일부 한국인들을 불편하게 한다. 송 원장은 "일본이 위안부들에게 한 짓을 모르냐고 항의하는 전화를 받곤 한다. 하지만 우리가 하는 작은 일들이 한일 양국의 갈등을 치유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야기 치효(90) 할머니는 일본 남부 후쿠오카에서 간호사로 일했다. 리주카 광산에서 일하다 다친 한국인 노동자들을 데려온 한국인 통역관과 사랑에 빠졌다. 두사람이 결혼했을 때 그녀의 아버지는 결혼식에 오지 않았다.

 

야기 할머니도 한국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말하려고 하지 않았다. 다만 거칠고 못이 박힌 손바닥과 구부러진 손가락이 궂은 일을 하면서 살아온 삶을 전해주고 있다.

 

할머니는 "그래도 딸이 있으니까 한국은 내게 더 살기좋은 곳이야. 우리 딸이 일년에 한번은 오거든"하고 말했다.

 

1980년대 일본의 언론인들이 나자레원에서 생활하는 여성들에 관한 책을 쓰기 위해 이곳을 방문했다. 일본의 교회와 서울의 일본대사관이 나자레원에게 도움을 제공했다. 이따금 신라의 고도(古都) 경주를 방문하는 일본관광객들이 찾아오기도 한다.

 

그러나 이같은 관심은 독도와 위안부 문제 등으로 한일관계가 경색(梗塞) 된 최근에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기자가 방문한 나자레원은 정적속에 싸여 있었다. 휠체어에 앉은 할머니중 일부는 NHK-TV를 시청했고 몇몇은 일본말을 주고 받으며 카드놀이를 하고 있었다. 또 다른 할머니들은 한국말로 애기했다. 화단엔 진달래가 활짝 피어 있었다.

 

한일관계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가쓰라 할머니는 "난 정치에 대해선 아무것도 몰라. 한쪽이 잘하면 상대도 잘하는거 아니야? 사람들이나 나라들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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