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브랜드 포’ 희생자 가족에 대한 사과안 주 의회 상정

(올랜도=코리아위클리) 김명곤 기자 = 플로리다주 의회가 주 역사상 가장 추악한 인종차별 희생자 가족들에게 정부 차원에서 공식 사과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18일 지역 매스컴들에 따르면 의회는 1949년 올랜도 인근 서쪽지역에서 백인 여성을 강간했다는 혐의로 고문, 옥살이, 살해 등 끔찍한 피해를 당한 네명의 흑인 남성 가족들에 대한 사과 결정에 한걸음 더 가까이 나아갔다. 이들 가족들의 끈질긴 노력은 과연 결실을 보게 될까.

일명 ‘그로브랜드 포(Groveland Four)’로 알려진 월터 어빈, 새뮤얼 세퍼드, 찰스 그린리,어네스트 토마스 등 네명은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니다. 그러나 이들의 가족들은 주하원이 HCR 631안을 117-0 만장일치로 통과시키는 것을 방청석에 앉아 지켜보았다. 이 안건은 네명의 흑인들의 결백과 릭 스캇 주지사와 주 내각이 이들에 대한 사후 사면을 촉진하는 내용을 담았다.

상정안의 주역인 바비 두보스(민주 포트로더데일) 의원은 ‘정부의 사과는 이들 가정의 후손들을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정부가 주민의 아픔에 대한 공감을 상징하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하원과 비슷한 내용의 법안이 현재 상원에서도 표결을 앞두고 있다.

백인 여성의 '강간주장'으로 시작된 '그로브랜드 포’의 비극

레이크카운티 그로브랜드 사건의 발단은 1949년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앙플로리다의 레이크 카운티 그로브랜드라는 마을에서 당시 17세였던 노마 페젯이라는 여성은 자신이 네명의 흑인 남자에게 강간을 당했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노마는 자신이 전 남편과 함께 동네 한적한 곳에서 차가 주저앉아 움직이지 못하고 있을 때 흑인들이 나타나 자신을 강간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그녀의 주장을 입증할 만한 증인과 증거는 없었다. 실제 강간사건이 있었는지에 대한 확인도 없이 ‘일방적 주장'만 남은 희안한 사건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이크 카운티 경찰 윌리스 맥콜은 그녀의 주장만 믿고 수사를 벌여 세명의 용의자를 체포했다. 네번째 혐의자인 토마스는 경찰의 추적을 피하다 살해되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사건 현장서 40마일 인근에 살고 있던 KKK단원들은 백인 여성이 강간을 당했다고 지목한 그로브랜드 지역 흑인마을에 돌아다니며 총질을 하고 닥치는 대로 방화를 했다.

이같은 무법천지가 수일동안 계속되었으나 지역 경찰서장인 윌리스 맥콜은 수수방관했고, 이에 지역 민권운동 지도자들은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 주지사에게 항의했다. 급기야 주 방위군이 파견되고서야 가까스로 질서가 회복되었다.

이어 시작된 재판에서 강간혐의로 체포된 세명의 흑인은 무죄를 주장했다. 특히 이들중 어빈과 쉐퍼드는 사건이 일어나던 시점에 20마일 밖에 있었다며 알리바이를 주장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같은 주장은 받아들여 지지 않았고 심리한지 두시간도 채 안되어 사형판결이 내려졌다. 당시 16세였던 그린리에게는 무기 징역이 내려졌다.

사형판결을 받은 2명의 흑인은 곧바로 연방 대법원에 항소했다. 연방 대법원은 심리끝에 플로리다 주 법원이 이들에 내린 유죄평결을 기각했다. 기각 이유는 주 법원의 평결이 증거 위주가 아닌 '여론재판'이라는 것이었다.

당시 <올랜도센티널>은 주 법원의 판결을 코앞에 두고 1면에 전기의자가 그려진 '레이크 카운티의 비극' 이라는 만평을 싣고 바로 밑에 '극형'이라는 설명을 달아 혐의자들을 사형에 처해야 한다는 암시를 주었다. 연방대법원은 이 만평을 예로 들면서 주정부의 판결을 '고도로 편견에 사로잡힌' 재판이라고 비판했다.

호송중인 흑인 혐의자 살해한 KKK단 경찰

판결이 뒤집힌 직후 레이크 카운티 검찰은 11월 6일 두 흑인 혐의자에 대해 재심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재심을 하기로 한 당일, 두명의 흑인에게 수갑을 채워 주정부 감옥으로부터 법정으로 호송하던 윌리스 맥콜은 인적이 드문 지점에서 권총으로 이들을 쏴 쉐퍼드를 즉사케 했고 어빈에게 중상을 입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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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로브랜드 포’ 사건을 다룬 풀리처 수상작 ‘그로브의 악마’ 책 표지.
 

맥콜은 이들이 도망하기 위해 자신을 공격했기때문에 총을 쏘았다고 주장했으나, 현장에서 죽은채 했다가 다행히 살아난 어빈은 맥콜이 아무런 이유 없이 수갑이 채워진 자신들에게 총격을 가했다고 증언했다. 이로인해 사건은 일파 만파로 커지기 시작했다.

그렇찮아도 관심을 끌어 왔던 이 사건은 연일 미 전역의 신문들이 대서 특필하게 되었고, 흑인 커뮤니티는 일전을 불사하겠다는 분위기가 감돌았다. 사전 모의에 의해 조작된 사건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어 흑백간의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던 중 어빈은 재차 사형선고를 받았다.

어빈은 1968년에 당시 주지사 르로이 콜린스에 의해 가석방됐다. 하지만 그로부터 2년후 어빈은 자신의 차안에서 시체로 발견됐다. 무기 징역을 받았던 그린리는 1962년에 가석방 된 후 2012년까지 살았다.

그린리의 딸인 캐롤 그린리(67)는 이번 의회에서 자신의 아버지가 그로브랜드 오렌지밭에서 일하며 삶을 영위하고자 애를 썼다고 전하고, 어린시절 감옥을 방문했을 때 자신의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다시는 딸을 데려 오지 말라”고 했다고 실토했다.

그린리의 아들인 토마스 그린리(52)는 자신이 16세때 처음으로 아버지의 일을 알게 됐다고 전했다. 그는 내슈빌의 한 고등학교에서 풋볼 선수로 활약할 때 경쟁학교 스태디움에 불타는 십자가가 세워져 경기를 마치지 못한 채 버스에 오른 경험담도 전했다.

그는 당시에 아버지가 스테디움 상황을 전해 듣고는 ‘데자 뷰’라고 말하며, “만약 폭동이 일어나면 아들을 위해 죽을 준비가 되어 있으며 오늘밤 집에 오지 못할 수도 있다”고 어머니에게 말했다고 의회서 진술했다.

그린리는 “올해 상정안이 3년째 오른 것임을 지적하고 정의는 연기될 뿐 결코 거부되지 않는다”고 <올랜도센티널>에 전했다.

‘그로브랜드 포’가 이처럼 다시 되살아난 것은 2013년 퓰리처 수상작인 ‘그로브의 악마(Devil in the Grove)’로 인해 풀뿌리 운동 지지를 받은 것이 힘이 됐다.

그로브랜드 사건 이후 인권운동가 부부도 폭사

한편 그로브랜드 사건으로 민권운동가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와중에 전미 유색인종지위향상협회(NAACP) 플로리다 대표이자 지역의 흑인학교 교장으로 존경 받던 해리 무어는 주지사에게 경찰관 맥콜이 KKK단 멤버라며 그에대한 직무정지와 철저한 진상조사를 요구하고 나섰다.

그러나 해리 무어는 이 일로 인해 1951년 크리스마스에 생명을 잃었다. 누군가가 그의 집 안방 침대밑에 설치해 둔 3파운드의 다이너 마이트가 폭발해 즉사한 것이다. 그의 민권운동의 동지이기도 했던 부인 헤리엇 무어도 중상을 입고 9일만에 병원에서 사망했다.

이들 부부의 폭사사건은 이미 전국적인 관심을 집중한 '그로브랜드 포'에 이어 터져 나온 것이어서 더욱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 소식은 국제적으로 날리 알려지고 유엔에서도 문제를 삼아 미국정부를 곤혹에 빠트리기도 했지만 결국 미제 사건으로 남았다.

FBI는 유력한 용의자들이 올랜도 서부 아팝카와 윈터가든 지역의 KKK단 멤버일 가능성이 크다는 수사 기록만 남겼을 뿐 사건 발생 3년 8개월만에 수사 종결을 선언했다.

결국 사건의 존재 유무도 확인도 되지 않은 백인 여성 강간사건은, 범행을 극구 부인했던 흑인 청년들의 생명은 물론 진상을 파헤치기 위해 나섰던 한 민권운동 지도자 부부로 하여금 비극적인 최후를 맞게 했다.

타이투스빌 지역 밈스에 위치한 집터 위에는 현재 해리 무어 뮤지엄이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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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리 무어 뮤지엄 전경. ⓒ 코리아위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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