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그날
굵직굵직한 사건들은 일요일에 많이 일어났다. 파리꼬뮨, 6.25, 피의 일요일 등등. 그날도 일요일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전국에 비상계엄이 선포되어 뒤숭숭한 시국을 더 뒤집어 놓았다. 박정희가 죽고 제주도를 제외한 일원에 비상계엄이 선포되었는데 5월17일 밤 12시를 기해 제주도 포함 전국 비상계엄으로 확대되었다. 이희성 육군참모총장이 계엄사령관이 되었다.
그날은 동대문 운동장 야구장에서 야구를 봤다. 백호기 쟁탈 준결승이었는데 프로야구가 없던 시절, 백호기는 실업팀과 대학팀이 참가하는 유일한 성인 야구 대회였다. 야구경기 중간에 사람들이 호외를 들고 왔다. 무슨 내용인가 건너다보니 권력형 부정부패, 소요 사태 배후 조정으로 체포된 사람들의 이름과 혐의가 나열되어 있었다.
야구 기록지에 야구와 관계가 없는 말을 썼다. “최규하는 허수아비, 전두환이 권력 잡으려고 정지작업 시작”
눈부시게 찬란했던 오월의 그날, 한쪽에서는 검거선풍이 불고 한쪽에서는 공수부대가 시위를 벌이고 있는 자국민을 상대로 살상을 저지르고 있었다.
언론통제로 광주에서 대규모 소요사태가 발생했다는 사실이 부분적으로 알려진 것이 21일부터이지만 공수부대의 만행은 한입 건너 두 입 건너 이미 알려질 대로 알려졌다.
12.12로 군권장악에 성공한 전두환과 신군부의 권력찬탈 시나리오는 ‘광주를 희생양’으로 삼음으로써 클라이맥스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신군부가 넘어야 할 산, 민간 정치인들
시민들은 18년 박정희 철권통치에 기진맥진해 있었다. ‘대통령 선거’ 말만 꺼내도 귀신도 모르게 잡혀 가서 무자비하게 고문당하고 나오던 시절이었다. 민주주의 맛만 살짝 보여주고 장기간 독재로 군림하던 군 출신 독재자가 없어지자 이제는 민간인 대통령이 나와야 한다는 공감대가 광범위하게 형성되었다.
현역 정치인이자 대권에 가장 근접했다고 생각되는 ‘3김’이 자연스레 사람들 입에서 회자되었다. 그러나 비상계엄 하에서 실질적 권력을 쥐고 있는 전두환과 신군부는 다른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 시나리오는 5월17일 밤 12시 비상계엄 확대조치로 세상에 알려졌다.
3김의 운명이 결정되었다. 김종필은 권력형 부정축재로, 김대중은 소요 배후 조종으로 연행되었다. 김영삼은 가택연금 되었다.
강력한 잠재적 대권 경쟁자 3명의 손발을 묶어 놓은 신군부로서는 김대중이 가장 불편한 존재였다. 그는 1971년 대통령선거에서 90만표 차이로 박정희에게 패했는데 부정선거 관권선거 아니었으면 김대중이 이긴 선거였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3김 중에서 김대중이 가장 혹독한 대우를 받은 이유가 대권에 접근한 인물로써 신군부에 가장 위협적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김대중에게는 호남이라는 지역적 정치후원세력이 있어 신군부로서는 반드시 제거해야 할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김종필은 신군부의 협박 공갈 회유로 부정축재로 모은 재산을 헌납하고 정계은퇴 한다는 각서를 쓰고 풀려났다. 그는 7년동안 정치를 떠났다 87년 복귀했다.
김영삼은 가택연금 중에 신군부의 강요로 강제 정계은퇴 당했다. 그는 일년동안 가택연금 당했다 풀려났으나 측근들이 모두가 정치활동이 금지되어 산악회 조직해 등산이나 다닐 수밖에 없었다. 산악회가 나중에 정치적 자산이 되기는 했지만.
김대중은 내란음모라는 무시무시한 죄목을 쓰고 사형을 선고받았다. 두 김씨와 비교할 수 없는 무거운 죄목이었다. 김대중은 미국과 국제사회의 도움으로 사형을 면하고 미국으로 망명했다.

내란음모의 알리바이
광주에 소요사태를 유발해 유혈진압 한다는 전두환과 신군부의 시나리오가 언제 세워졌는지 확실하게는 모르지만 그해 3월부터 공수여단이 충정훈련을 시작했으니 늦어도 3월에는 계획이 완료되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물론 국방부에서는 공수여단 충정훈련이 통상적 훈련이라고 말했다.
그 때는 광주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시위가 일어났다. 특히 전두환과 신군부가 정권욕을 드러낸 2월 이후 신군부에 반대하는 시위는 격화되었고 빈도가 잦아졌으니 광주를 목표로 한 공수여단 충정훈련을 통상적 훈련이라고 둘러댈 만한 정황이었다.
김대중에게 내란음모죄를 뒤집어 씌우려면 광주에서 불온하고 과격한 움직임이 일어나야 했다. 즉, 알리바이 조작이 필요했다. 평화적이고 온건한 시위가 아니라 과격하고 폭력적인 시위가 되어야 누가 봐도 부정할 수 없는 내란음모 알리바이가 된다.
알리바이의 마지막 퍼즐은 특전사 작전참모 장세동 대령이 맡았다. 정호용이 특전 사령관이었으나 실세는 장세동이었다. 정호용은 12.12군사반란의 멤버가 아니고 전두환과 개인적 친분 때문에 51사단장에서 특전사령관이 되었다. 그 후 참모총장, 국방부장관을 지냈는데 그는 얼굴 마담이자 전두환과 신군부의 정치적 책임을 대신 지는 역할을 맡았다.
신군부는 비주류 사령관의 감시 및 조언자 역할을 하기 위해 장세동을 특전사 작전참모로 내보냈다. 당시 특전사 보안반장은 장세동이 5.18 직전 일주일 동안 광주에서 모종의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왔다고 술회했다. 그리고 계획대로 공수여단이 광주로 이동해 시위대를 상대로 야만적 행위를 저질러 광주시민들의 분노를 유발했고 분노한 광주를 계획대로 살상했다.
“김대중의 사주를 받아 광주시민들이 일으킨 폭동을 진압했다”는 논리는 전두환이 그해 11월 일본방송과 인터뷰에서 김대중은 정치범이 아니라 내란음모로 체포된 범법자라고 주장한 장면에서 입증되었다. 김대중을 내란음모 범법자로 조작하기 위해 광주가 이용되었다.

강산이 네 번 바뀌도록
전두환과 신군부의 정권탈취 야욕에 광주시민들이 희생된 지 40년이 지났다. 신군부의 박해를 받았던 3김은 모두 저 세상으로 갔다. 두 김씨는 대통령이 되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공과가 뚜렷하게 구별된다.
하나회 척결, 금융실명제 실시, 12.12를 하극상에 의한 쿠데타로 규정하고 광주항쟁을 민주화 운동으로 규정하고 희생자 명예회복, 망월동 묘지성역화 작업은 김영삼 대통령 공이다.
3당 합당, 경제정책 실패로 인한IMF 사태, 전두환 및 신군부의 사면 복권은 과다. 전두환 일당의 사면복권은 1993년 12월20일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를 만난 후 발표되었는데 전두환에 대한 사형 집행을 했어야 옳았다.
김대중 당선자(당시)의 건의를 받아들여 김영삼 대통령이 사면복권을 발표했는데 김대중은 대통령 취임 전 전두환 일당의 사면복권으로 얻을 정치적 이익을 계산했을 것이다.
40년이 지났으나 전두환 일당의 사면복권은 국민화합에 도움이 되지도 않았고 지역갈등 회복에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들의 생각은 40년 전 군사반란 당시와 전혀 변하지 않았다.
광주학살에 대해 “피해자가 먼저 가해자를 용서해야 한다. 내 가족 죽인 자를 용서한다고 할 때 국민들이 감동을 받는다. 물론 우리가 가해자도 아니지만.” 이라는 궤변을 아무렇지 않게 늘어 놓으며 진실을 우롱하고 있고 일부 국민들은 그들의 궤변을 옳다고 믿고 따르고 있다.

40년은 늦은 세월이 아니다
찬란한 5월의 태양이 핏빛으로 검붉게 물들었다. 생명이 잉태하는 풍요의 계절에 스산하고 삭막한 바람이 불며 살륙이 시작되었다. 광주시민들은 전두환과 신군부에게 폭도라는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죽어 갔다.
명예가 회복되고 보상이 주어졌다 해서 억울하게 죽어간 원혼들의 원통하고 처절한 사연이 위로 받을 수는 없다. 아직도 밝히지 못한 전두환과 신군부의 범죄행위를 낱낱이 밝혀야 한다. 40년이 지난 일을 이제 와서 밝혀 얻을 게 무엇이냐고 묻지만 광주에서 전두환과 신군부가 자국민을 상대로 행한 일은 인륜범죄이기 때문에 40년이 아니라 400년이 지나도 밝혀서 처벌해야 한다.
나치 부역자들이 80년전 범죄행위로 지금도 처벌받는데 40년전 범죄행위를 처벌 못할 이유가 없다. 그것이 곧 ‘정의사회 구현’이고 광주 희생자들의 원혼을 달래는 길이다.
1980년 광주는 우리에게 교훈을 남겼다. 사람사는 세상, 민주주의는 구성원의 참여로서 이뤄질 수 있다는. 그날 광주에서의 희생은 헛되지 않아 군사독재를 물리치고 민주주의가 이 땅에 뿌리내리는 밑바탕이 되었다.

1980년 5월18일부터 5월27일까지 전두환과 신군부에 희생당한 모든 이들에게 위로가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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