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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를 위하여 헌신하는 공동체적 삶의 새로운 가치관을 보여주셨다...”(권태원 준비위원의 추모사 중). 광주민주화운동 43주년을 맞는 지난 5월 18일, 시드니 동포들은 한인회관에서 기념식을 갖고 오월의 정신을 새기는 시간을 가졌다. 사진 : 김지환 기자 / The Korean Herald

 

“공동체적 삶의 새로운 가치관, 재외동포 커뮤니티에도 소중한 교훈이자 본보기”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자신의 심복인 중앙정보부장에 의해 저격당하면서 유신 체제가 종말을 고한다. 10.26사건이었다. 사실 박 대통령 피살사건은 기본적으로 군부독재 집단과 국민 사이의 대립 관계가 반영된 정치적 돌발사태였다.

대통령의 유고가 확인되자 10월 27일 새벽 2시, 비상국무회의가 소집되고 헌법에 의해서 최규하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는다. 그리고 정부는 새벽 4시를 기해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이 계엄사령관에 임명되었고, 곧바로 계엄공고 제5호를 통해 대통령 저격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합동수사본부’를 설치하여 그 책임자로 전두환 국군보안사령관을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했다.

그런 한편 10.26사건 직후 군 내부에서는 권력기관을 맴돌며 출세만 노리던 ‘정치군인’을 선별해서 숙정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기 시작했다. ‘정치군인’은 박정희의 비호 아래 군부 내에서 최대 사조직으로 성장한 ‘하나회’를 의미했다. 박 대통령은 군부를 장악하기 위해서 어떤 경우에도 자신을 배반하지 않을 충직한 사조직 육성의 필요성을 절감했고, 육사 11기 전두환, 노태우 등이 박정희의 후원을 받으며 육사 졸업생 가운데 일부 장교를 뽑아 비밀리에 운영했던 하나회는 군 내부의 주요 보직을 독차지하면서 막강한 세력으로 성장한 터였다. 그 와중에 최대 후견인이었던 대통령이 갑자기 사라지자 막강 권력 하나회에 큰 위기가 닥친 것이다.

위기를 느낀 전두환은 정승화 참모총장이 10‧26사건 당시 박정희 대통령 저격사건에 연루된 의혹이 있다며 이를 조사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그를 강제 연행한다. 12.12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군권’을 장악한 전두환 사령관은 군부에서 사실상 최고 실권자가 됐고, 군 공식 지휘계통을 하나회 멤버이거나 우호적인 인물들로 완전히 바꿔서 이른바 ‘신군부’ 주도세력을 형성했다. 여기에다 전두환은 중앙정보부까지 장악, 더욱 큰 힘을 갖게 됐다.

권력을 찬탈하려는 전두환 일당의 숨겨진 음목 속에서, 이듬해(1980년) 전국 각 대학에는 묘한 기류가 형성됐다. 이제 민주화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요구라는 기대감, 동시에 신군부 세력에 대한 불안감이 뒤섞였던 이 시기(‘민주회의 봄’), 대학가의 시위는 ‘계엄령 해제’와 ‘유신잔당 퇴진’, ‘정부개헌중단’과 ‘노동3권 보장’ 등 학내 문제 중심의 운동에서 군부 퇴진의 정치개혁을 위한 투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간 군사 정권과 대학 간에 팽팽하게 유지되던 긴장 관계가 폭발 직전으로 내닫게 된 것이다.

광주, 전남도 타 지역과 마찬가지로 정치개혁과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운동이 대학가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서 5월 17일 밤, 신군부는 비상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학생 시위에 군 병력 투입을 결정했다. 이 비상계엄 전국 확대는 대다수 국민의 민주화에 대한 절실한 요구를 정면으로 무시한 조치였다. 동시에 서울을 비롯한 전국에서 학생 및 반정부 인사들이 강제로 연행됐다. 전남대에도 이날 밤 7공수여단이 교내로 진입, 학생회관과 도서관에 있던 학생들을 잡아들이기 시작했다.

다음날 공수부대 병력이 증원돼 광주 시내에 투입됐고, 학생들은 물론 시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내란’이라 규정한 신군부는 비무장 시민들을 향한 무차별 발포까지 자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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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주년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준비위원으로 참여한 발레리나 나윤주씨가 5월 영령을 위로하는 춤을 선보이고 있다(사진). 사진 : 김지환 기자 / The Korean Herald

   

5월 27일까지 열흘간 이어진 광주 시민들의 저항은 수많은 사망자와 부상자를 발생시켰다. 하지만 이 비극의 피해 규모는 아직도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았고, 40년 넘게 지나도록 진상규명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이다. 수년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이들의 항쟁이 ‘내란’이라는 불명예를 벗고 합법적 ‘민주화 운동’으로 평가받기는 했지만.

군부정권의 서슬 아래서 내란, 폭동으로 규정되던 ‘광주의 비극’은 1987년 전두환-노태우에 맞선 ‘6월 항쟁’을 계기로 점차 상세한 내막이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김영삼 정부에서 마침내 그 명예가 회복됐다.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은 ‘5.13 담화’라고 알려진 광주 문제 관련 특별 성명에서 “1980년 5월 광주의 유혈은 이 나라 민주주의의 밑거름이 되었으며 그 희생은 민주주의를 위한 것”이라는 평가와 함께 “오늘의 이 정부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연장선 위에 있는 민주 정부”라고 규정했다. 열흘간의 항쟁이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 ‘숭고한 시민운동’이었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5.18민주화운동은 한국현대사의 분수령을 이룬 정치적 사건이었다. 국내외 정치, 역사학자들은 “한국전쟁 이후의 한국 현대사는 1980년 5월 18일 이전과 이후로 구분된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이는 군부독재 세력에 저항한 시민 불복종 운동이었으며,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한 1987년의 시민항쟁의 밑거름이 됐다.

뿐 아니라 그 5월의 정신은 지난 2019년 홍콩 범죄인 인도법 반대시위에서 시작돼 중국의 정치적 간섭에서 벗어나려는 홍콩 시민들의 민주화 운동에 영향을 주었다(5.18 기념재단은 지난 2000년 제정되어 이어온 광주인권상의 올해 주인공으로 표현의 자유를 박탈하고 집회,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는 부당한 권력과 제도에 맞서 싸워 온 홍콩 인권 변호사 초우항텅씨를 선정했다).

올해는 광주 민주화운동이 일어난 지 43년 되는 해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시드니 동포들은 당시 그들의 저항정신을 새기고,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희생된 이들을 기리는 시간을 가졌다. 올해 기념식에는 약 50명의 교민이 함께 했다.

시드니 기념식 준비위원회 권태원 위원은 “(5월의 영령들은) 우리에게 군사정권에 저항한 용기를,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그리고 서로를 위하여 헌신하는 공동체적 삶의 새로운 가치관을 보여주셨다”며 추모사를 했다.

올해 5.18 기념재단의 원순석 이사장은 재단 홈페이지를 통해 “그동안 많은 분들이 광주를 기억하고 기념하기 위해 애써 왔다. 특히, 고달픈 타향살이에도 불구하고 이민자의 향수를 달래며 5·18을 기념해온 해외 동포 여러분의 헌신적인 활동은 국내의 어려운 현실을 극복하는데 큰 힘이 되었다”며 감사를 전했다.

올해 기념식을 마련한 행사준비위원회의 김동우 위원장(호주 민주연합 회장)은 “그해 5월 광주가 보여준 저항은 물론 공동체 의식을 기반으로 한 나눔과 연대는 오늘날 재외동포 커뮤니티에도 매우 소중한 교훈이자 본보기가 아닐 수 없다”면서 “2016-17년 촛불혁명을 일궈낸 광주의 정신을 기억했으면 한다”는 말로 이날 기념식에 더 많은 동포들이 함께 하지 못한 점을 아쉬워했다.

 

김지환 기자 herald@koreanherald.com.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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