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대로?

 

한국 대선에서 야당 후보가 당선된 뒤 당선인 측과 현정부 사이에서 인계 인수를 둘러싸고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 정권 말기 인사 결정, 예비비 지출 등 신구 권력 간에 힘겨루기 양상까지 보인다. 5월에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해도 170석이 넘은 절대 다수 의석을 가진 야당이 총리 인준과 정부 조직법 개정 등에 순순히 협조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마치 6월 있을 지자체 선거가 역대급으로 치열했던 대선 2라운드라도 되는 양 전운마저 감돌고 있다.

취임과 퇴임을 앞둔 미래와 현재의 대통령 간에 협조가 여의치 않자 “그냥 법대로 하자”는 짜증 섞인 말이 나오고 있다. 물론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하자는 선한 의미로 쓰인 것은 아니다. 아예 말이 통하지 않아 합의가 불가능한 상대를 향해 ‘법정에서 만나자’며 선전포고를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대화와 타협을 포기하고 법이 제공하는 강제력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발상이다. 세상일은, 특히 정치는 ‘법대로’ 하다 보면 정작 결과가 ‘법대로’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진정한 ‘법대로’는 ‘법’을 싸움을 위한 도구로 남용하는 것이 아니라 ‘법의 취지’에 따라 당사자들이 협력할 때 비로소 실현되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영국의 문호 세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은 법을 경직되게 해석하고 적용할 때 지극히 비현실적인 결론이 나올 수 있음을 나타낸다. 베니스의 상인 안토니오는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에게 무이자로 돈을 빌리고 기한 내에 갚지 못하면 심장에 가까운 살 1파운드를 제공한다는 증서를 써준다. 우여곡절 끝에 안토니오가 기한 내에 돈을 갚지 못하자 샤일록은 무조건 계약대로 그의 살을 취하겠다고 나선다. 현명한 재판관은 ‘법대로’ 피는 전혀 흘리지 않고 정확하게 1파운드의 살만을 베라고 판결함으로써 샤일록에게 예상치 못한 패배를 안겨준다. ‘법대로’를 주장했으나 실제로 ‘법대로’ 이행할 수 없는 결정이 나온 것이다.

‘베니스의 상인’에서 ‘살 1파운드’는 채무자가 금전대차계약을 확실하게 지키도록 강제하는 보장으로서 의미를 가진다. 설사 기한을 넘겨도 이와 관련한 손해를 충분히 보상 받는다면 채권자 입장에서 굳이 ‘살 1파운드’를 베어낼 필요는 없다. 샤일록이 끝까지 ‘법대로’를 주장한 것은 돈이 아니라 사적인 복수 때문이다. 법의 취지와는 정면으로 상반되는 목적을 ‘법’을 통해 실현하려 한 것이다. ‘법대로’를 외치던 샤일록은 결국 자신이 친 ‘법대로’의 덫에 걸려 모든 것을 잃는 비참한 결말을 맞는다.

권력 이전기에 ‘법대로’만 한다면 퇴임이 얼마 남지 않아도 현직 대통령이 당선인에 비해 절대 우위에 있다. 임기가 종료하는 1분 1초까지 국가원수이자 행정부 수반에게 주어진 모든 법적 권리를 정당하게 행사할 수 있으며 아무리 일방적이고 비현실적이고 무책임한 결과를 초래해도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퇴임 마지막 날에 무차별 사면령을 내리거나, 몇 년 임기를 보장하는 공기업 인사를 대거 단행하거나, 신임 대통령이 취임 후에도 자택에서 당선인 사무실로 계속 출근하더라도 ‘법대로’ 처리한 결과물일 뿐이다.

국회를 지배하는 초거대 야당도 마찬가지다. 특검 법안을 일방적으로 통과시키든, 총리 인준을 거부하든, 정부 조직법 개정을 결사 반대하든, 헌법과 법률에 따라 만사를 ‘법대로’ 처결할 수 있다. 새롭게 출범하는 정부의 내각 구성조차 아예 봉쇄해 2년간 ‘식물정권’으로 만들어 버릴 권능도 있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넘쳐나는 권력이 있는데 이를 ‘법대로’ 또는 ‘마음대로’ 휘둘러보고 싶다는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울 법도 하다.

삿된 욕망을 추구하는 샤일록의 길에서 ‘법대로’는 양날의 칼이다. 상대방을 죽이는 최선의 무기지만 동시에 언제라도 자신의 목을 겨누는 비수가 될 수도 있다. 법대로 하자면, ‘강제할 방법이 없다’는 당선인 측의 체념적 표현은 취임 후에는 전임 대통령에 대해 ‘구제할 길이 없다’는 냉정한 어조로 바뀔 수 있다. 공룡 야당도 샤일록처럼 ‘법대로’만 밀어 붙이다가는 국민의 추상같은 심판을 통해 권력의 갓끈이 끊어지면 곧장 법의 도마 위에서 난도질당하는 신세로 전락할 수 있다.

관전하는 국민 입장에서는, 대화와 타협이니 하며 야합하는 것보다는 진영과 ‘정관경판검경’(政官經判檢警)을 가리지 않고 암약하는 부정부패에 대한 수사, 기소, 처벌, 수감, 만기 복역 등 일련의 국가기능이 ‘법대로’ 정상 가동하기를 ‘더불어’ ‘힘’차게 열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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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철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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