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심과 산토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새 변이인 ‘오미크론’ 확산에 대한 우려가 점점 커지는 가운데 호주와 한국의 정치인들은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민심 잡기에 열중하고 있다. 말로는 방역과 민생을 떠들지만 내심 선거 승리를 위한 치열한 수싸움과 표계산을 벌이고 있을 것이다. 호주 총선에서는 하원의 과반 의석 그리고 한국 대선에서는 최다 득표가 대권의 향방을 결정한다. 선거 승리를 위해서는 아무래도 전통적 지지층보다는 표심을 정하지 못한 부동층에 집중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초반에 웬만큼 ‘집토끼’를 잡도리했다 싶으면 곧장 들로 산으로 ‘산토끼’ 잡으러 나서는 것이 슬기로운 선거 운동이다. 이 과정에서 ‘집토끼’에 해당하는 전통적 지지층은 변함없는 충성과 후원을 보낸다는 이유 때문에 상대적으로 홀대와 경시의 대상이 되곤 한다. 어차피 투표일이 되면 자신을 찍을 사람들에게 항상 부족한 시간과 자원을 우선적으로 투여할 후보는 드물 것이다. 고정 지지층으로 분류되면 대세를 좌우할 변수 대접을 받지 못하고 그저 자리를 지키는 상수 취급을 받기 마련인 것이다.

 

‘집토끼’는 일편단심으로 특정 정당과 후보를 지지하지만, 주인이 집에서 토끼를 기르는 것은 언젠가 팔거나 잡아먹기 위함이다. ‘집토끼’는 죽음이 예정돼 있거나 살아 있더라도 자유를 구속당한 채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 신세이다. 정치권이 누군가를 ‘집토끼’로 간주한다면 이미 지엄한 주권자의 위치를 상실한 국민으로 봐도 무방하다. 물론 ‘집토끼’도 간혹 우리 안에 갇힌 상태에서 주인이 주는 사료를 먹거나 귀여움을 받을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자신들이 충성하는 정치인의 뜻에 따라 언제든지 이렇게 저렇게 이용당할 수 있음도 부인할 수 없다. 이용을 당하거나 피해를 겪어도 그와 함께라면 행복하다는 지고지순한 ‘집토끼’도 많지만 결코 정상적인 국민과 정치인의 관계로 보기는 어렵다.

 

한데 주인은 정작 ‘집토끼’한테 별다른 관심이 없다는 것은 역설이 아닐 수 없다. 항상 망부석처럼 그 자리만 지키고 있기 때문에 선거라는 전쟁에서 승리를 가져오는 결정적 한방이 결핍돼 있다. 그래서 주인은 ‘집토끼’의 열화와 같은 애정공세를 뒤로 하고 어떻게 하면 집밖에 있는 ‘산토끼’를 잡아 선거에서 이길까를 골몰한다. ‘집토끼’는 주인만 바라보는데 주인의 시선은 ‘산토끼’를 좇는 기괴한 삼각관계가 만들어진다. ‘산토끼’는 그야말로 도무지 어디로 튈지 종잡을 수 없는 살아 있는 토끼이다. 손 안에 쏙 들어오지 않으니 주인 입장에서는 애간장을 다 태우면서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산토끼’를 잡아 ‘집토끼’로 만들기 전까지는 단 한순간도 방심이 허용되지 않는다. 변덕을 부려도 다 받아줘야 하고, 가려운 데가 있으면 미리 찾아내 긁어주며 환심을 사야 한다. 굴욕을 당해도 웃어야 하고, 무시를 당해도 뻔뻔하게 또다시 다가가야 한다. 대권이라는 여의주를 물고 용으로 승천하려면 ‘집토끼’는 기본이고 ‘산토끼’를 잡지 않고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한국과 호주의 선거판에서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에 대해 일관된 충성과 지지를 보내는 것을 자랑으로 삼는 양태를 흔히 목격할 수 있다. 나름대로 바르다고 생각하는 가치와 이념을 정치인을 통해 추구하고 실현하려는 태도를 나무랄 순 없다. 하지만 이러한 일방향 충성과 지지는 이를 받는 정치인을 흥(興)하게 하기 보다는 망(亡)하게 하기 쉽다. 모름지기 민심(民心)을 천심(天心)으로 알고 두려워하며 겸손하게 국민을 섬기는 초심이 있어야 비로소 권력의 독소인 독선과 아집으로부터 스스로를 겨우 지킬 수 있다. 민심이 천심이 되려면 하늘의 조화처럼 가늠이 어렵고 변화 막측할 필요가 있다. 정치인은 그런 민심 앞에 설 때만 자기도 모르게 경외와 겸허를 가질 수 있다. 민심이 ‘콘크리트 지지’이니 ‘집토끼’니 하면서 고정되는 순간 하늘의 마음(天心)은 천한 마음(賤心)으로 전락한다. 정치인들은 천심(賤心)이 된 민심을 그때그때 이용만 할 뿐 결코 경외하거나 존중하지 않는다. 이런 과정을 거쳐 지지하는 백성은 백성대로 외골수가 되고 그들이 애정하는 정치인은 정치인대로 강퍅하고 추한 권력자로 변질되는 것이다.

 

호주의 총선과 한국의 대선을 통해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천심(天心)으로 무장한 산토끼들이 온 천지에 쟁명(爭鳴) 제방(齊放)하여 정치인들의 혼을 쏙 뽑아내 이들을 종(從)으로 마구 부리는 새로운 국민주권의 시대가 도래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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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철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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