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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Queen Elizabeth II)의 서거에 따라 76세의 찰스 왕세자가 영국 국왕으로 선포됐다. 자신의 본명(given name)을 그대로 사용한 그는 이제 ‘Kings Charles III’로 불린다. 그에 앞서 찰스라는 이름을 가진 두 명의 왕은 영국 왕실 역사에서 가장 불운했던 왕이었다. 사진 왼쪽부터 Kings Charles 3세, 2세 및 1세. 사진 : Facebook / The British Monarchy and Royal Collection Trust. 그래픽 : Emily Cha / The Korean Herald

 

‘반역죄’로 참수 당한 찰스 1세-해외도피와 망명에서 귀환했으나 일찍 사망한 찰스 2세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서거 직후 장남이자 왕위 계승 1순위였던 찰스 왕세자가 왕위에 올랐다. 그는 할아버지 조지 6세(King George VI)가 존호(Regnal name)를 정한 것과 달리 그는 어머니 엘리자베스 2세 여왕처럼 현재 이름(given name)을 그대로 사용하기로 했고, 이에 따라 그는 영국 역대 왕 가운데 ‘찰스’라는 이름의 세 번째인 ‘King Charles III’가 됐다.

그렇다면 ‘찰스’라는 이름을 가졌던 이전의 두 왕은 어떤 이들이었을까. 먼저 영국을 통치했던 두 명의 ‘King Charles’는 영국에서 가장 불운한 군주로 알려져 있다.

찰스 1세는 ‘English Civil War’(아일랜드의 ‘Confederate Wars’, 1639년에서 1640년 벌어진 ‘Bishops' Wars’, Oliver Cromwellian의 아일랜드 정복 등 1639년에서 1651년 사이, 잉글랜드-스코틀랜드-아일랜드 사이에서 벌어진 일련의 갈등을 일컫는다)에서 의회파에게 패한 후 1649년 화이트홀(Palace of Whitehall. 1530년부터 1698년까지 영국 왕실의 거주지)의 발코니에서 사형집행인의 도끼에 사망한 인물이다.

당시 그의 아들이었던 찰스 2세는 해외로 도피했다가 긴 시간 후 잉글랜드로 돌아와 왕위에 올랐다.

찰스 2세에게는 10명 이상의 사생아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합법적인 후계자를 남기지 않은 그는 숨지기 직전 동생 제임스(James)에게, 자신이 관계했던 많은 정부(mistress)들을 돌봐줄 것을 당부하면서 왕위를 넘겼다.

 

■ 비참한 최후, 찰스 1세

첫 번째 찰스 왕(1625년-1649년 재임)은 스코틀랜드 왕이자 잉글랜드 왕으로 등극해 두 곳을 통치한 제임스 6세(King James VI. James I of England)의 아들이자 스코틀랜드 메리 여왕(Mary Queen of Scots)의 손자였다.

그는 1625년 왕위에 올라 내전(‘English Civil War’) 막바지인 1649년 1월, 처형될 때까지 통치했다. 그의 재임 초기는 권위주의적 통치를 둘러싼 의회와의 다툼으로 특징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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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les라는 이름의 첫 번째 왕인 찰스 1세는 스코틀랜드 왕족으로 잉글랜드까지 다스리게 되었으나 의회주의자(Roundheads. 의회파)와 군주주의자(Cavalier. 왕당파) 사이의 1, 2차 내전(English Civil War)에서 패한 뒤 끝내 런던 시민들이 보는 앞에서 참수당했다. 사진은 1633년 앤서니 반 다익(Anthony van Dyck)이 그린 찰스 1세의 초상화. 사진 : Royal Collection Trust

   

그는 영국이 스페인과 전쟁을 하고 있는 와중에 왕위에 올랐다. 그 전쟁 중에 주요 통치 고문인 버킹엄 공작(Duke of Buckingham)의 조언에 따라 프랑스와도 전쟁을 시작했다. 이 전쟁에서 패하자 의회는 그의 통치 고문인 버킹엄 공작을 반역죄로 탄핵하려는 움직임을 보였고, 그러자 찰스 1세는 의회를 해산시켰다. 동시에 그는 의회 승인 없이 전쟁 자금 조달을 위해 세금과 자금 차입을 시도하려 했다.

그는 또 잉글랜드 내에서 반가톨릭주의(anti-Catholicism)가 절정을 보일 때 로마 가톨릭 신자이자 프랑스 왕 루이 13세(Louis XIII)의 동생인 앙리에타 마리아(Henrietta Maria)와 결혼, 논란을 일으켰다. 당시 모든 가톨릭 신자는 공직을 갖는 것이 금지되었고 성공회(Anglicanism)가 법적 종교의 지위를 누리고 있던 시기였다.

그의 통치 4년 후인 1629년까지 의회와 정부는 찰스 1세 왕의 행동을 비난하는 세 가지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이의 대응으로 찰스 1세는 이후 11년간 의회를 소집하지 않고 통치했으며, 새로운 벌금과 세금을 통해 군주제를 위한 자금을 징수했다.

그리고 1640년대, 내전(English Civil War)이 발발했다. 영국, 스코틀랜드, 아일랜드를 어떻게 통치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 속에서 영국은 의회주의자(Roundheads. 의회파)와 군주주의자(Cavalier. 왕당파)로 나뉘었다.

당시 찰스 1세는 잉글랜드-스코틀랜드-아일랜드를 단일 왕국으로 통합하려는 희망을 갖고 있었다. 반면 영국 의회주의자들에게는 이러한 통합 왕국이 영국의 오랜 전통을 훼손, 파괴시킬 수 있다는 우려와 두려움이 있었다. 이들은 또한 왕관의 신적 능력(divine power of the crown)에 대한 찰스 1세의 견해에 의심을 가졌다. ‘왕은 신(God)에 의해 선택되고 권능을 받았다’는 게 찰스 1세의 신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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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2년 1차 내전 중 엣지힐(Edgehill) 전투가 벌어지기 직전의 찰스 1세를 묘사한 그림. 사진 : Royal Collection Trust

   

결국 1642년 8월, 양 세력간 전쟁이 발발했고 왕당파인 군주주의자들은 영국 전역에서 의회파 군대와 맞서 싸웠다. 1645년 스코틀랜드 반란에 힘입어 의회파는 일련의 주요 전장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찰스 1세는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의회파가 아닌 ‘스코틀랜드 커버넌터 교회’(Scots Covenanters)에 항복했다. 이는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장로교, 아일랜드 인디펜던트 사이의 분열을 이용하고자 한 것이었다. 이 의도가 들어맞아 찰스 1세는 다시 영국 왕좌에 앉게 됐다.

얼마 후인 1648년, 두 번째 잉글랜드 내전(Second English Civil War)이 발발했다. 영국과 웨일즈 간의 이 내전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왕당파가 지원하는 영국의 스코틀랜드 침공이 의회파 올리버 크롬웰(Oliver Cromwell. 그는 의회 민주주의에 대한 강한 신념이 있던 사람, 반대로 권력을 탐한 대단한 야욕이라는 엊갈린 평가가 있다)과 페어팩스 경(Lord Fairfax)의 ‘신모범군’(New Model Army. 1645년 의회파가 편성, 1차 내전을 종식시키는 데 기여했다)에 패했기 때문이었다.

두 번째로 항복할 수밖에 없었던 찰스 1세는 재판에 회부됐으며 ‘반역죄’라는 유죄 판결을 받고 왕위에서 축출됐다. 그리고 1949년 1월 30일, 그는 런던에 모인 수많은 군중 앞에서 참수됐다.

 

■ 왕(‘Charles’)의 귀환

두 번째의 찰스 왕(King Charles II)은 1660년부터 1685년까지 25년간 통치했다.

1630년 찰스 1세와 프랑스 공주 헨리에타 마리아 사이에서 태어난 그의 10대 시절은 내전(English Civil War)으로 얼룩져 전장과 해외 은신처를 떠돌며 망명생활을 이어가야 했으며 아버지(찰스 1세)가 사망한 후에도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추방돼 10여 년을 프랑스, 스페인 등지에서 지내야 했다.

2차 내전이 발발했을 당시 찰스 2세는 헤이그(Hague)에 머물렀다. 이는 이곳을 기반으로 하는 어머니(프랑스 공주)의 인맥이 자신을 지지하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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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내전 와중에서 해외로 도피했고, 아버지의 죽음(참수형) 이후에도 왕이 되지 못한 채 추방되어 긴 시간을 보내다가 우여곡절 끝에 왕이 되어(1660년 5월) 런던으로 돌아온 찰스 2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아버지(찰스 1세) 및 자신과도 악연으로 점철된 올리버 크롬웰(Oliver Cromwell)의 무덤을 파헤쳐 시신을 참수한 것이었다. 사진은 1661년 4월 23일, 웨스트민스터 성당(Westminster Abbey)에서의 대관식 당시 모습을 그린 찰스 2세의 초상화. 사진 : Royal Collection Trust

   

아울러 헤이그는 찰스 2세가 귀족 출신 여성 루시 월터스(Lucy Walters)와의 짧은 관계에서 여러 명의 사생아를 낳았다는 소문이 시작된 첫 번째 장소였다.

1649년 1월, 2차 내전에서 항복한 뒤 반역죄 판결을 받은 아버지 찰스 1세의 죽음(참수형)은, 이론상으로는 찰스 2세에게 왕위가 부여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신모범군을 이끌고 1차에 이어 2차 내전을 종식시킨 올리버 크롬웰은 찰스 1세의 아들이 왕위에 오르는 것을 원치 않았다.

스코틀랜드 커버넌트(Scottish Covenantor) 의회가 찰스 2세를 왕으로 선포했을 때, 이 시기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내전이 시작됐다. 영국 의회파는 크롬웰의 신모범군과 함께 스코틀랜드를 침공했다.

스코틀랜드 영토에서 여러 차례 영국 의회파에 패한 찰스 2세는 영국 침공을 위한 마지막 노력을 기울였지만 1651년 9월 우스터(Worcester. 지금의 잉글랜드 Hereford 및 Worcester 주의 주도)에서의 전투(‘Battle of Worcester’)에서 결정적으로 패배했다. 이 결과로 스코틀랜드 정부는 해산됐고 영국 의회는 스코틀랜드 왕국을 잉글랜드 연방으로 귀속시켰다.

크롬웰에 패한 찰스 2세는 스코틀랜드에 대한 충성을 포기한다고 약속했다. 그럼에도 그는 프랑스로, 나중에는 스페인으로 강제 추방당했다. 그리고 올리버 크롬웰은 1658년 사망할 때까지 신모범군에 기반한 군사 통치로 영 연방을 다스렸다.

크롬웰의 죽음 이후 아들인 리처드(Richard Cromwell)가 뒤를 이어받았지만 그는 국가 통치에서 무능함을 드러냈고, 이는 아버지 대부터 권력 기반이 되어 온 신모범군 내부의 불안으로 이어졌다. 이런 불안과 긴장 속에서 왕당파에 의해 의회가 해산됐고, 이후 의원 자리는 왕당파 통치에 따라 균등하게 배분됐다.

불운한 시기를 보냈지만 나름 지도자로서의 카리스마를 갖고 있던 찰스 2세는 이 기회를 이용, “의회와 협력하여 통치할 것”을 약속하면서 군주제 복귀 협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그는 아일랜드의 더블린(Dublin)에서 왕으로 선포됐으며 1660년 5월, 왕이 되어 런던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가 왕권을 갖고 행사한 첫 번째는, 아버지(Charles I)에 이어 자신과도 악연으로 이어진 올리버 크롬웰의 시신을 파헤쳐 참수(찰스 1세는 그에 의해 목이 잘렸다)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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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2세는 10대 시절, 영국-스코틀랜드-아일랜드 간의 내전 동안 해외로 도피해야 했으며, 스코틀랜드 커버넌트(Scottish Covenantor) 의회가 찰스 2세를 왕으로 선포했을 때 다시 발발한 내전에서 패해 해외로 추방되는 시련을 겪어야 했다. 사진은 해외에서 생활할 당시의 찰스 2세를 그린 초상화. 사진 : Royal Collection Trust

   

왕위에 오른 1년 뒤, 찰스 2세는 브라간자의 포르투갈 공주 캐서린(Portuguese princess Catherine of Braganza)과 결혼했다. 그녀는 그의 어머니(Henrietta Maria)와 마찬가지로 로마 가톨릭 신자였다.

캐서린은 아이를 출산하지 못했고 결혼 생활 내내 여러 차례 아이가 유산되는 아픔을 겪었다.

1665년, 런던에는 극심한 전염병이 번졌다. 전염병은 18개월 동안 지속되었고, 이 과정에서 도시 인구의 약 4분의 1인 10만 명이 사망했다.

찰스 2세는 전염병을 피해 솔즈베리(Salisbury. 지금의 영국 Wiltshire 주 주도)로 피신했다. 전염병 발생 몇 개월 후에는 런던 대화재가 도시를 집어삼켰다. 이 화재로 세인트 폴 대성당(Paul's Cathedral)을 포함해 1만3,200채의 가옥, 87개의 교회가 소실됐다.

전쟁을 지원하고 가톨릭을 지지하는 그의 성향으로 인해 그는 의회에서 인기를 얻지 못했다. 국가를 통치하는 것보다는 호화로운 파티를 주최하거나 소소한 업무에 매달리는 나약한 왕으로 여겨졌다. 말년에는 여러 차례 의회를 해산시키기도 했다.

1685년, 찰스 2세는 갑작스런 발작을 일으켰고 5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의 죽음은 이후 약물중독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임종 당시 찰스 2세는 아내의 종교(로마 가톨릭)로 개종했다. 오늘날의 의학적 견해에 따르면, 마지막 순간에 그가 보인 증상은 신장기능 장애와 관련된 증후군인 요독증(uraemia)과 유사하다. 사생아는 많지만 정실부인에게서 태어난 자녀가 없었던 그는 왕권을 동생 제임스(James II)에게 넘겼다.

제임스 2세의 통치는 그러나 형인 찰스 2세 때보다 훨씬 더 논란이 많았고, 4년 후인 1689년, 명예혁명(Glorious Revolution)으로 제임스 2세는 왕위에서 해임됐다.

 

김지환 기자 herald@koreanherald.com.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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