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honours system 1).gif

영국 왕실이 수여하는 국민 훈장은 물론 1975년 호주 훈장(Order of Australia)이 제정된 이후에도 호주 사회에서는 이 '명예'에 대한 논쟁이 끊이지 않았다. 이 제도 자체는 물론 대상자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던 것이다. 사진은 호주 훈장 가운데 기사 작위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등급인 ‘Companion of the Order of Australia’ 메달. 사진 : Twitter / Lames Paterson(@SenPaterson)

 

“민주주의 정신과 불일치”... 명예 훈장 제도에 대한 호주 내 상반된 시각 ‘지속’

 

호주 건국기념일이라 하는 ‘Australia Day’를 기념하는 이벤트 중 하나는 각 부문에서 모범적 활동을 펼쳐온 이들을 선정, 수여하는 명예 훈장이다. 올해에도 다수의 인사들이 이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지만, 이와 관련된 논쟁이 끊이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지난 2014년, 당시 토니 애보트(Tony Abbott) 총리 집권 하에서는 ‘호주 국민훈장’(Order of Australia) 부문에 기사작위(knighthood)와 여성에게 수여하는 ‘데임후드’(damehood)가 부활됐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남편인 필립공(Prince Philip, Duke of Edinburgh. 2021년 4월 9일 작고)에게 호주 기사작위(Knight of the Order of Australia)가 수여되면서 이 명예훈장에 대한 논쟁은 더욱 가열됐고, 이에 대한 비판의 연장으로 당시 집권 자유당 대표였던 애보트 총리가 당내 대표직 도전에 직면해 총리직을 내놓아야 한 것에 일조했다.

지난 10여년 사이에는 이 훈장 수훈자들의 성별 균형에 대한 논란도 높아졌다. 이런 가운데서 호주 여성 작가이자 사회비평가인 베티나 아른트(Bettina Arndt), 메이저 대회 24회 우승(호주오픈 11회, 프랑스오픈 5회, 윔블던 3회, US 오픈5회)을 기록한 세계 최고의 여성 테니스 스타였던 마가렛 코트(Margaret Smith Court)의 호주 명예훈장 수훈에 대해서도 비판이 제기된 바 있다.

최근 <Honouring a Nation- A History of Australia's Honours System>(호주국립대학교 출판부)라는 저서를 통해 ‘First Fleet’(1788년 첫 백인정착 선박)에서 2021년까지 호주 명예훈장의 역사를 처음으로 조명한 호주국립대 ‘National Center of Biography’의 카렌 폭스(Karen Fox) 선임연구원은 호주 비영리 온라인 학술 매거진 ‘The Conversation’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호주인들은 항상 일부 사람들을 다른 이들보다 우선시하는 이 명예 시스템에 대해 상반된 시각을 보여왔다”고 설명했다.

 

호주에서

‘명예훈장’ 타이틀이 필요한가

 

그녀에 따르면 특히 평등주의적 민주주의 체제에서 기사 또는 부인작위(knighthood and damehood)가 적절한 것인지에 대한 문제는 논쟁의 주축이 됐다. 1901년 호주 연방이 구성되기 이전, 영국 식민지였던 호주 내에서의 공통적인 주장은 이런 ‘칭호’가 이곳 호주에서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1890년 남부호주(South Australian)에서 발행되던 ‘Kapunda Herald’는 ‘(명예) 타이틀의 구분은, 알려진 업적의 명성이 유일한 것은 아니더라도 가장 가치 있는 신생 민주주의 정신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종합(honours system 2).jpg

1960, 70년대 세계 최고의 여성 테니스 스타였던 호주의 마가렛 코트(Margaret Court)가 호주 훈장을 수훈했을 때에도 사회적 반발을 가져온 바 있다. 사진은 1970년 호주 오픈 여자 단식에서 우승했을 당시의 마가렛 코트 선수. 사진 : International Tennis Hall of Frame

 

이 명예훈장이라는 타이틀에 대한 반대는 단시 수사학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1880년대, NSW 주 하원의 데이빗 뷰캐넌( David Buchanan) 의원은 하원에서 수차례에 걸쳐 이의 반대안을 가결시키고자 노력한 바 있다. 1884년 뷰캐언 의원은 “우리 민주주의 시스템의 정신에 위배되는 것으로, 중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모든 이들이 그의 말에 동조한 것은 아니다. 특히 이 ‘명예’ 칭호가 다른 이들에게 영감과 자극을 줄 수 있는 실제 서비스 또는 성취에 대해 보상을 받을만한 경우에는 더욱 그러했다. 가령 1887년 퀸즐랜드 주 록햄턴(Rockhampton, Queensland)에서 발행되던 ‘Morning Bulletin’은 “공직에서 다른 이들보다 더 잘한 사람을 표시하는 것은 경쟁을 자극한다”면서 이런 ‘명예’ 칭호가 적절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평가 대상에서

소외된 여성들

 

당시 미디어가 주로 남성을 언급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19세기 전반에 걸쳐 여성에게는 대체로 그 ‘명예’에 해당하는 타이틀 자격이 거의 주어지지 않았다. 19세기 마지막 수년에 걸쳐 일부 사람들은 이를 바꾸어야 한다고 강하게 제기했다.

제1차 세계대전 후인 1917년, 전쟁 기여자에 대한 보상 수단으로 영국에서 ‘대영제국 훈장’(Order of the British Empire)이 만들어지면서 제법 많은 여성들이 이 ‘명예’ 제도에 포함되기 시작했다. 호주 국민들도 새로운 영광을 얻었다. 1975년 ‘호주 훈장’(Order of Australia)이 제정되기 전까지 호주는 영국 시스템을 통해서만이 이 ‘명예’를 받았다.

하지만 곧이어 이 ‘명예’ 명단에서의 여성의 처우에 대한 귀에 익은 불평이 나타났다. 1930년 호주의 신문들은 그해 영국의 여성 비행사 에이미 존슨(Amy Johnson)이 런던에서 호주까지 단독 비행에 성공했지만 이 성과에 상응하는 ‘명예’를 얻지 못했다고 주장하는 영국 여성운동가들의 항의를 보도했다. 운동가 그룹인 ‘여성자유연맹’(Women's Freedom League)은 “부적절하고 경우에 맞지 않다”(inadequate and inappropriate)고 실망감을 표하면서 “여성에 대한 영예는 거의 없다”고 꼬집었다.

이 같은 비판과 논란은 최근 수년 사이 호주에서도 보다 더 분명해지고 있다. 지난 2017년에는 이 ‘명예’ 제도에서 양성평등을 추구하는 로비그룹 ‘Honour a Woman’이 설립됐다.

 

종합(honours system 3).jpg

‘Medal of the Order of Australia’(OAM) 수훈자인 캐럴 키어넌(Carol Kiernan), 엘리자베스 핫넬-영(Elizabeth Hartnell-Young), 루스 맥고완(Ruth McGowan. 사진 왼쪽부터)씨. 이들은 호주 훈장 대상자 선정에서 양성 평등을 주장하는 시민단체 ‘Honor a Woman’을 설립했다. 사진 : Honour a Woman

   

이들이 목표로 한 ‘평등’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변화의 조짐은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호주훈장 여성 수훈자 비율은 이것이 제정된 1975년, 21%에서 2020년에는 42%로 늘어났다. 2018년 6월에는 처음으로 이 명예의 최고 등급인 ‘Companion of the Order of Australia’에 선정된 여성의 수가 남성을 앞질렀다.

 

어떤 유형의

서비스가 인정되나

 

명예훈장 제도에서 여성에 대한 불평등을 설명하는 것 중 하나는 지역사회 봉사가 낮은 수준에서 평가받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그런 한편 역사적으로 남성이 주로 차지했던 부문인 정치나 비즈니스 등 전문 분야에서의 기여는 보다 높은 수준의 ‘명예’를 받는 경향이 있다.

지역사회 활동, 특히 자원봉사자에 대한 높은 인식을 요구하는 것은 이 명예훈장에 대한 논란의 공통적 내용이다. 지난 1995년, 연방정부가 호주훈장 시스템 검토를 위해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호주인들은 단순히 뛰어난 일을 한 사람보다 지역사회 봉사자, 영웅적 행동, 의학 또는 과학적 발전을 가져온 이들에게 국민훈장을 수여해야 한다는 반응이었다.

호주에서 국민훈장이 제정된 이래 수십 년 동안 사람들은 특정 직종에서 더 많은 이들이 이 명예를 차지하기를 갈망해 왔다. 교사, 의사, 성직자, 예술계 인사, 최근에는 COVID-19 전염병 방역의 최일선에서 일하는 이들이 더 많은 영광을 차지할 자격이 있다는 제안이 늘어나고 있다.

 

종합(honours system 4).jpg

호주 내에서의 훈장 제도는 정당 사이에서도 큰 입장 차이를 보여 호주 훈장이 제정되기 전 비노동당은 정기적으로 영국 국민훈장에 호주 국민을 추천했지만 노동당은 그 반대였다. 사진은 1954년 호주를 방문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Queen Elizabeth)과 필립공(Prince Philip). 여왕의 호주 방문은 또 한 번, 훈장에 대한 격렬한 논쟁을 가져왔다. 사진 : Wikimedia

   

정당별 입장, 큰 차이도

 

명예훈장 역사에서 가장 두드러진 부분 가운데 또 하나는 비교적 오랜 기간, 노동당과 비노동당 사이에 입장차이가 컸다는 점이다. 1975년, 호주훈장이 제정되기 전 비노동당 정부는 정기적으로 호주인들 가운데 공로가 있는 이들을 영국 국민훈장에 추천했지만 노동당 정부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는 경향을 보였다.

이 같은 분열은 1954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남편인 필립공(Prince Philip)과 함께 호주를 방문했을 때 짧지만 격렬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일반적으로 영국 여왕이 연방 국가를 방문할 경우 왕실 방문을 담당한 해당 국가 인사들을 선정해 상을 수여해 왔다.

호주 내 정당 분열의 한 예는 빅토리아(Victoria) 주 정부가 보인 것에서 잘 드러난다. 당시(1954년) 빅토리아 노동당 정부의 존 케인(John Cain) 주 총리는 왕실 방문단 직원들을 위한 장식을 금지시켰다. 케인 주 총리는 이에 대해 “제국의 ‘명예훈장’ 시스템에 반대하는 노동당의 오랜 정책”이라고 주장했지만 빅토리아 야당(자유당)의 헨리 볼트(Henry Bolte) 당대표는 이 같은 결정을 “어리석고 우스꽝스러운 일”이라고 비난했다.

카렌 폭스 연구원은 이 칼럼에서 “호주 훈장의 역사는 호주 고유의 명예로, 이것이 제정되기 전과 후 모두 이 시스템의 형태, 기능, 공정성 등에서 논란이 있어 왔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녀는 “이 같은 논쟁은 종종 정체성과 가치, 영국 전통과의 관계, 공로와 인정의 개념에 대한 다른 논란의 대용물이었다”면서 “호주 명예의 역사는 여러 면에서 호주 자체의 역사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김지환 기자 herald@koreanherald.com.au

 

  • |
  1. 종합(honours system 1).gif (File Size:74.2KB/Download:9)
  2. 종합(honours system 2).jpg (File Size:65.5KB/Download:8)
  3. 종합(honours system 3).jpg (File Size:100.6KB/Download:8)
  4. 종합(honours system 4).jpg (File Size:114.0KB/Download:13)
facebook twitter google plus pinterest kakao story band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6427 호주 호주 실업률 6.4%, 12년래 최고 기록 호주한국신문 14.08.14.
6426 호주 ‘Islamic State’의 소셜 미디어, 호주 내 테러 위협 높여 호주한국신문 14.08.14.
6425 뉴질랜드 현경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오클랜드 통일강연회 개최 file 굿데이뉴질랜.. 14.08.15.
6424 호주 시드니 부동산, 전년 동기간의 ‘활황기’ 돌아오나... 호주한국신문 14.08.21.
6423 호주 스트라스필드 봄 축제, 한국계가 메인 무대 장식 호주한국신문 14.08.21.
6422 호주 한국관광공사, 명예 홍보대사로 임다미 위촉 호주한국신문 14.08.21.
6421 호주 이휘진 총영사, 한인 워홀러들 작업장 방문 호주한국신문 14.08.21.
6420 호주 한국 ‘장애청년드림팀’, 한인회 방문 호주한국신문 14.08.21.
6419 호주 외곽 오지 지역 센터링크에서도 시민권 시험 가능 호주한국신문 14.08.21.
6418 호주 “모든 고용주, 차별금지법 숙지해야...” 호주한국신문 14.08.21.
6417 호주 ‘나플란’ 시험 쓰기 과목, “너무 어렵다” 지적 이어져 호주한국신문 14.08.21.
6416 호주 이민부, 난민 아동에 임시보호비자 발급 계획 호주한국신문 14.08.21.
6415 호주 그린필드 파크서 칼에 찔린 남성 사망 호주한국신문 14.08.21.
6414 호주 캔버라 지역, 호주에서 평균 임금 가장 높아 호주한국신문 14.08.21.
6413 호주 ‘국제적 비난’ 칼레드 샤로프, 그는 누구인가 호주한국신문 14.08.21.
6412 호주 애보트 수상, 테러가담 관련 법안 추진 설명 호주한국신문 14.08.21.
6411 호주 부동산 투자 비자 정책으로 주택가격 상승 호주한국신문 14.08.28.
6410 호주 취재수첩-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총회? 호주한국신문 14.08.28.
6409 호주 텔스트라 ‘콜센터’, 5년 이내 사라질 것 호주한국신문 14.08.28.
6408 호주 클리브 팔머 대표, 중국 정부에 대한 ‘막말’ 사과 호주한국신문 14.08.28.
6407 호주 시드니 시티, ‘인종차별 규탄안’ 만장일치로 통과 호주한국신문 14.08.28.
6406 호주 “아시안컵 성공 개최 위해 한인사회 적극 협력...” 호주한국신문 14.08.28.
6405 호주 “이너 시드니 아파트, 공급 과잉 불러올 수도...” 호주한국신문 14.08.28.
6404 호주 ‘크리스마스 섬 난민신청자 처우’에 집단소송 호주한국신문 14.08.28.
6403 호주 애보트 수상, 테러 억제 위해 6천400만 달러 배정 호주한국신문 14.08.28.
6402 호주 정부법률가, 총기소지 및 마약거리 혐의로 기소 호주한국신문 14.08.28.
6401 호주 “마리화나, 젊은 층 정신질환 치료 이용 가능” 호주한국신문 14.08.28.
6400 호주 NSW 새 음주법 도입 6개월, 뚜렷한 변화 드러나 호주한국신문 14.08.28.
6399 뉴질랜드 아시아권 언어교육에 1천만 달러 투자 굿데이뉴질랜.. 14.09.01.
6398 뉴질랜드 국민당, 소득 중하층 첫 집 구매 시 최고 2만 달러 지원 예정 file 굿데이뉴질랜.. 14.09.01.
6397 뉴질랜드 슈퍼마켓 주인, 3년간 매주 유치원에 과일 상자 기부 file 굿데이뉴질랜.. 14.09.02.
6396 뉴질랜드 남극지하 생태계는 외계 생명체 존재 시사 file 굿데이뉴질랜.. 14.09.02.
6395 뉴질랜드 NZ언론 초청- 공중보건 협회 주관 포럼 개최 file 굿데이뉴질랜.. 14.09.03.
6394 호주 올 겨울 기간, 시드니 부동산 가격 5% 급등 호주한국신문 14.09.04.
6393 호주 소비자 보호기관, 휴가예약시 주의사항 권고 호주한국신문 14.09.04.
6392 호주 한국문화원, 2014 한국어도서 독후감대회 성료 호주한국신문 14.09.04.
6391 호주 캐나다베이 카운슬 ‘페라고스토 축제’ 개최 호주한국신문 14.09.04.
6390 호주 어번 카운슬, ‘Festival of All Abilities’ 공동 주관 호주한국신문 15.11.05.
6389 호주 10월 마지막 주말 경매 낙찰률, 올 들어 최저 호주한국신문 15.11.05.
6388 호주 10월 마지막 주말 경매, 1840년대 코티지 화제 호주한국신문 15.11.05.
6387 호주 시드니 주말시장의 상징, ‘로젤 마켓’ 종료 호주한국신문 15.11.05.
6386 호주 시드니 도심 초등학교, 교실 부족 사태 직면 호주한국신문 15.11.05.
6385 호주 네드 켈리 수감됐던 빅토리아 주 감옥, 매물로 나와 호주한국신문 15.11.05.
6384 호주 올해 멜번컵, 예상치 못한 ‘Prince Of Penzance’ 우승 호주한국신문 15.11.05.
6383 호주 NSW 주 정부, 강화된 대테러 정책 발표 호주한국신문 15.11.05.
6382 호주 노틀담 대학 시드니 캠퍼스, IB 교수 과정 도입 호주한국신문 15.11.05.
6381 호주 50세 이상 호주 고령층, 단독주택 거주비율 높아 호주한국신문 15.11.05.
6380 호주 카운슬 합병, “확고한 계획 없다는 게 이상하다” 호주한국신문 15.11.05.
6379 호주 턴불 수상의 세제개혁안에 일부 자유당 의원들 ‘반발’ 호주한국신문 15.11.05.
6378 호주 투자의 귀재, 호주판 ‘워렌 버핏’은 누구일까 호주한국신문 15.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