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디트리히 본 훼퍼의 기도



(서울=코리아위클리) 최태선 목사(하늘밭교회)

쉼을 주소서
-옥중에서

주 나의 하나님,
당신께서 오늘 하루를 마치게 하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당신의 손이 내 위에 있었고, 나를 지키고 보호하셨습니다.
부족한 믿음과 오늘 하루에 행한 모든 불의를 모두 용서하시옵고,
내게 불의를 행한 모든 사람을 내가 용서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나로 하여금 당신의 보호하심 가운데 평화롭게 쉬게 하옵시고,
어둠의 유혹에서 나를 보호해 주시옵소서,
나의 가족을 당신께 맡기옵고,
이 감옥을 당신께 맡기옵나이다.
나의 육신과 나의 영혼을 당신께 맡기옵니다.

하나님이여, 당신의 거룩한 이름은 찬양을 받오시옵소서.


본회퍼는 독일 브레슬라우의 유복하고 전통 있는 가문에서 팔남매 가운데 여섯째로 태어나 행복한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그의 본가와 외가는 대부분이 독일에서 가장 저명한 학자이거나 판사 등이었습니다. 본회퍼는 뛰어난 피아노 연주자로서 형제들과 자주 협연한 음악 애호가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불과 스물한살에 베를린대학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고 스물세살에 대학교수 자격을 취득한 천재 신학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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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훼퍼 목사 ⓒ위키피디아
 

그는 2차 세계 대전 직전 미국에서 공부했는데, 미국의 친구들은 신변의 위험을 염려해 그가 미국에 남을 것을 권유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불의에 싸인 조국의 모습을 방치할 수 없어 귀국을 감행했습니다. 전쟁에 몰두하는 히틀러 치하에서 누구도 평화를 입밖에 내기 어려운 상황이었음에도 그는 평화를 힘차게 외쳤습니다. 히틀러가 집권한 이틀 후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한 그는 "지도자가 자신을 우상화하기 위해 국민을 현혹하고, 국민이 그에게서 우상을 기대하면, 그 지도자상은 조만간 악마의 상으로 변질되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는 "제 정신을 잃은 운전자가 폭주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해치고 있다면, 그 폭주를 멈추게 하기 위해 폭력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며 히틀러 제거 음모에 가담했습니다. 하지만 수감 중에도 그는 늘 시종일관 타자를 위한 사랑의 삶으로 일관했습니다. 본회퍼는 1943년 4월5일 체포돼 갖은 고초를 치르다 히틀러가 항복을 선언하고 자살하기 보름전인 1945년 4월 9일 서른아홉살 젊은 나이로 삶을 마감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죽기 전 보낸 편지에서 "이것은 제게 마지막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1945년 나치에 의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 전 '나는 누구인가?'라는 시를 남겼습니다.

"나는 누구인가?/감방에서 나오는 나의 모습이/어찌나 침착하고 명랑하고 확고한지/마치 성에서 나오는 영주 같다는데/나는 누구인가?/…새장에 갇힌 새처럼 불안하고 그립고 병약한 나/목 졸린 사람처럼 숨을 쉬려고 버둥거리는 나/…기도에도, 생각에도, 일에도 지쳐 멍한 나/풀이 죽어 작별을 준비하는 나인데/나는 누구인가?"

시에서 우리는 목사와 신학자로서가 아닌 한 진솔한 인간을 만나게 됩니다. 시에는 성에서 나오는 영주 같은 담대한 신앙인의 모습과 풀이 죽어 작별을 준비하는 나약한 신앙인의 모습이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강하고 한편으로는 나약하기 이를 데 없는 이 대조는 그의 모순된 믿음을 드러내는 증거가 아니라 진정으로 고민하는 한 신앙인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줍니다. 그런 그의 인간적인 모습이 그의 기도에도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담대한 신앙인답게 그는 자신의 삶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통치를 감사드리면서 자신을 포함하여 불의 앞에 처한 사람들의 현실을 받아들이며 신앙인답게 행동하지 못한 사람들의 용서를 구합니다. 용서는 신적인 성품의 대표적인 표출입니다. 자신이 암살해야 한다고 믿고 있는 '폭주하는 제 정신을 잃은 운전자'(히틀러)를 지지하는 사람들에 대한 미움이 뼈에 사무쳤을 텐데 이를 악물고 그들의 용서를 구하는 모습은 담대한 신앙인의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이어지는 기도에서 그는 쉼을 구하면서 가족과 현실과 미래의 모든 것을 주님께 의탁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으로 기도를 마무리합니다. 여기에는 새장에 갇힌 새처럼 불안하고 그립고 병약한 그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나약하기 이를 데 없는 그 모습에서 저는 위대한 한 신앙인을 만나게 됩니다. 이성이 극복하지 못하는 현실의 어려움을 믿음으로 이겨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진솔한 한 인간을 만나게 되고, 그 인간은 우리에게 불가능해 보이는 신앙의 길이 가능함을 실증적으로 보여줍니다.

특히 가족에 대한 그의 염려는 제게 큰 위안이 됩니다. 목회를 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면서 가족의 안위가 걸림돌이 되는 것은 누구나 피할 수 없는 무거운 짐입니다. 물론 모든 것을 버리지 않으면 좇을 수 없는 제자의 길에서 가족은 가장 먼저 내려놓고 극복해야 할 선택이지만 막상 그 길에서 가족의 안위를 모른 척 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도리입니다. 인간의 도리를 도외시한 신앙은 항상 도마 위에 오르는 단골 메뉴입니다. 먼저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하는 것은 당위이지만 그러나 가장으로서 가족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가슴 아픈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본 훼퍼는 자신의 가족을 하나님께 의탁하였습니다. 얼핏 세상의 눈으로는 무책임해 보이는 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의탁하는 것은 결정적으로 중요한 선택입니다. 어쩌면 자신의 아킬레스 건과도 같은 가장 연약한 부분을 하나님께 의탁하는 이 일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믿음이 요구되는 일입니다.

저 역시 신앙의 길에서 어려운 상황을 겪으면서 이 문제는 가장 어려운 선택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저 또한 저의 가족을 하나님께 의탁하였습니다. 하지만 일상에서 눈과 귀로 보고 들어야 하는 가족들에 대한 저의 무력함은 가장 예민한 아픔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사람들은 '가장의 무책임함'으로 파악합니다. 그에 대해 달리 항변할 말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께 맡기는 그 행동에서 진정한 믿음이 판가름납니다. 그 행동이야말로 삶과 죽음을 넘어서 모든 것을 선의 도구로 사용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는 것이며, 그런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래 전부터 가끔씩 저와 같은 길을 걷겠다고 제게 다가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럴 때 저는 그들에게 조금 있다 자녀들이 조금 더 성장 한 후에 그 길을 걸으라고 조언하기도 하였습니다. 가족에 대한 무책임과 무력함이 견딜 수 없는 아픔이라는 걸 뼈저리게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그 어려움과 아픔은 오늘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 저는 함께 그 길을 걷자고 사람들을 초대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보호하심과 모든 것을 더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보호하심과 주님의 더하심은 생각 이상으로 완벽합니다. 시편 23편 기자의 고백처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우리는 해 받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시며 내게 부족함이 없는 분이십니다. 이제 저는 그분께 의탁하는 것은 가장 탁월한 선택이며, 가장 안전한 길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 아니하실찌라도'(단3:18), '죽으면 죽으리이다'(스4:16)고 말하는 주님을 신뢰하는 성서 인물들의 믿음은 결코 그들만의 특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새삼 본 훼퍼가 질타하던 "값싼 은혜"가 가슴에 와 닿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은혜가 값싼 것이 아님을 자신의 삶을 통해 입증하였습니다. 그래서 비좁은 감방에서 그의 사상의 폭은 이전보다 훨씬 넓어졌습니다. 그는 시선을 교회에서 세계로 돌렸습니다. 그리고 지상의 아름다움과 현세적인 삶의 기쁨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신앙을 전부를 건 행위, 생명을 건 행위로 여겼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새로운 종교로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부르십니다. 그래서 그는 현재를 충만히 살면서 믿는 법을 배우고자 했습니다. 그 삶은 죽음과 부활을 늘 생생하게 의식하며 사는 종말론적 삶이었으며, 죽기까지 삶을 긍정하고,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참여하고, 그리스도가 세상에서 겪은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세상 한 가운데 현존하심을 알았습니다.

그는 이전에 주기도문의 "그 나라를 오게 하여 주시며, 그 뜻을 하늘에서 이루심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주십시오."(마6:10)부분을 강의하는 자리에서 이 땅과 하나님을 아울러 사랑하는 사람만이 하나님 나라를 믿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는 인간을 세속을 피해서 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땅으로 돌려주어 땅의 신실한 자녀가 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을 땅의 주인으로 사랑하고, 땅을 사랑하는 자는 땅을 하나님의 땅으로 사랑하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땅에서 일어나는 부활의 나라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세상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야 하는 하나님의 땅이었고, 그래서 그는 현실의 불의에 저항하였고, 자신의 생명을 드림으로써 자신이 받은 값비싼 은혜에 반응하였습니다.

그의 삶과 죽음을 선물로 받아 이제는 우리가 우리의 자신을 그리스도께 드려야 할 때입니다. 우리도 생명을 드려 은혜에 반응해야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죽기까지 우리를 위해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신 사랑에 우리가 드려야 할 오직 유일한 반응이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쉼은 바로 거기에 있다고 믿기에, 여전히 부족하고, 보잘것 없지만 모든 삶을 주님께 드리겠다는 각오를 다지며 본 훼퍼 목사님의 기도를 드려봅니다.

주 나의 하나님,
당신께서 오늘 하루를 마치게 하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당신의 손이 내 위에 있었고, 나를 지키고 보호하셨습니다.
부족한 믿음과 오늘 하루에 행한 모든 불의를 모두 용서하시옵고,
내게 불의를 행한 모든 사람을 내가 용서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나로 하여금 당신의 보호하심 가운데 평화롭게 쉬게 하옵시고,
어둠의 유혹에서 나를 보호해 주시옵소서,
나의 가족을 당신께 맡기옵고,
이 감옥을 당신께 맡기옵나이다.
나의 육신과 나의 영혼을 당신께 맡기옵니다.

하나님이여, 당신의 거룩한 이름은 찬양을 받오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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