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생활이야기] 전주 시내버스 운전기사가 쓴 책을 읽고

(올랜도=코리아위클리) 송석춘 = 1959년 12월 어느날, 나는 시카고 기차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집시 여자에게 1불 주고 손금을 보았다. 손금을 본 시간은 단 30초도 되지 않았다. 점쟁이는 "너는 입으로 하는 일은 하지 말고 손으로 하는 일을 하면 45살 이후에는 의식주를 걱정 않고 살 수 있을 것이다" 라고 하면서 "다음 사람!" 하고 외쳤다. 22살 나이에 그것도 미국땅에서 그런 소리 들었으니 맑은 시카고 하늘이 흐려 보였다.

손으로 하는 일이란 노동이나 ‘쟁이’ 뿐이다. 노동이 됐든 쟁이가 됐든 열심히 일하고 근검절약하면 중년 즈음에는 누구나 먹고 살만 하겠지만, 어쨋든 그 점쟁이 말은 나에게는 귀신처럼 들어 맞았다.

내가 이곳에 이민을 온 나이가 37살이었다. 6년을 취업된 공장에서 일하고 내 공장을 시작한 나이가 43살이었다.

며칠 전에 우편으로 받아든 <나는 그냥 버스 기사입니다>라는 책은 전주의 시내버스 기사가 쓴 것이다. 버스 기사의 책을 주문한 것은 나의 비교적 젊은 시절이 생각나서 관심이 갔기 때문이다.

1970년 이른 봄, 나는 광주 고속버스 소속의 모든 운전기사들과 그 회사에서 봉급을 조금이라도 받는 사람을 한 밤중에 모아 놓고 현대자동차에서 만든 신형 버스 운전법을 교육한 적이 있었다. 당시 내 선임자였던 김 계장은 사원에 불과한 내가 자기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을 하고 있으니 기가 막혔을 것이다.

나는 두려움이 없었다. 시카고 손금 점쟁이가 한 말도 있고, ‘기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굳게 믿었으니 그들 앞에 당당히 나설 수 있었다. 그날 밥 일부 기사들은 기존과는 다른 운전법에 핀잔을 주기도 하고 내 입에서 험한 말이 나오기도 했다. 그때 한 버스기사가 "당신은 수원 비행장 앞에서 무임 승차했던 그 공군 하사가 아니요" 하며 나를 알아보았다. 공군 하사로 야간대학에 통학하던 나를 기억해준 그 기사 덕분에 내 강의는 보다 신뢰를 얻었고, 결국 현대 신형버스는 일단 변속으로 운전하는 것으로 광주고속 사장님의 허락을 받았다.

이번 읽은 버스 기사의 책 속에서 특히 "이 짓 말고 다른 먹고 살 일 없나" 라는 글을 읽고 또 읽으며 나의 과거를 돌이켜 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이민와서 "이 짓 말고 다른 먹고 살 일 없나" 하고 한 숨 지었을 법한 적이 한 두번은 있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할멈이 "남들 보다 조금 잘 할 수 있는 일이면 힘이 들어도 참고 견디는 것이 가장의 도리요 책임!"이라고 고함을 치지 않았다면 나도 기름때 묻은 옷을 벗었을 지 모른다.

버스 기사는 책 속에서 "예수님도 부처님도 버스 3탕 뛰면 욕하게 된다"고 하였는데, 기사 노릇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런 표현을 썼을까. 요즈음 사회 문제로 떠오른 갑을 관계로 따지만 버스 운전기사는 을이고 버스 승객은 갑이다.

세상 어디에 가도 갑과 을의 기묘한 갈등이 있는 것 같다. 또 때로는 갑질의 책임이 을에게도 있을 것이다. 나는 버스기사의 글을 읽으며 갑이 을의 노동을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는 사회가 하루 속히 전주 시내 버스에도 오기 바랬다. 나도 이곳에서 만 32년 동안 내 작은 정비공장을 운영하면서 갑질을 당하고 마음 상해 한 적이 여러번 있었다.

그러나 길게 보면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한 우물을 팠기에 늙어 마음 편히 살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새로운 삶을 개척하고자 타국에 왔으면 원주민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찾아서 하는 것이 이민 1세대의 기본이다. 고단한 삶을 헤쳐 나가면 언젠가는 새로운 땅에 뿌리를 깊이 내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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