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과 너구리

뉴스로_USA | 미국 | 2018.01.01. 05:52

Newsroh= 노창현 칼럼니스트

 

 

20171229_153311.jpg

 

 

너구리는 영어로 라쿤(Raccoon), 혹은 프로시언 로토(Procyon lotor)라고 합니다. 라쿤은 원주민 말로 ‘냄새를 찾는 손’이라는 뜻이고 프로시언 로토는 ‘씻는 곰’이라는 뜻입니다, 너구리가 먹이를 먹기전에 물에 담그는 습관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위생관념(?)과는 무관하다고 하네요.

 

미국서 살면서 가장 애처롭게 보인 동물은 너구리입니다. 길에서 가장 많이 비명횡사(非命橫死)하는 동물이기때문이죠. 도심만 벗어나면 펼쳐지는 자연의 풍광에 동물들도 많다보니 차에 치이는 경우가 많은데 다소 굼뜨기때문일까요.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것들이 너구리의 사체(死體)입니다.

 

어제(29일) 오후 3시 30분경 뉴욕주 샐리스베리 밀즈에 있는 원각사를 찾았습니다. 얼마전 인도네팔의 부처님성지를 다녀온 순례단의 현지 동영상을 받기위해선데요. 뜻밖의 장면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지광스님과 너구리 - Copy.jpg

 

 

주지 지광스님이 저를 위해 처소(處所)에서 동영상 파일을 갖고 법당 앞에 차를 세웠는데 그 앞에 너구리 한 마리가 죽은 듯 누워 있는게 아니겠습니까? 그 직전에 제가 왔을때만 해도 없었는데 스님이 잠시 처소에 다녀온 5분정도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어제 기온이 섭씨 영하 8도 정도였지만 바람이 불어 체감온도는 영하 15도는 될만큼 혹한(酷寒)이었는데요. 가까이 다가보니 너구리는 마치 잠을 자는 것처럼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습니다.

 

지광스님은 처음엔 절에서 키우는 고양이가 누워 있는줄 알았다고 합니다. (뉴욕원각사는 부지가 30만평에 달하는 미국에서 가장 큰 한국사찰입니다. ‘보리’라는 이름의 진돗개가 있고 버려졌다가 자연스럽게 식구가 된 고양이도 몇 마리 있습니다.) 대낮에 너구리가 법당 앞에 누워있는 장면은 상상할 수가 없었으니까요.

 

 

20171229_153417.jpg

 

 

소리를 내고 발등으로 살살 건드려 봐도 너구리는 미동(微動)을 하지 않았습니다. 약에 취했는지, 어디를 다쳤는지, 도대체 어떻게 이곳까지 와서 혼절했는지 알 도리가 없었습니다.

 

무슨 상처가 있나 싶었지만 피는 흘리는 것 같지는 않았고 발들이 추위에 동상이 걸린 것 마냥 오그라들었습니다.

 

지광스님은 “아이구, 참 큰일이네. 얘를 어떻게 하지..” 그사이 총무일을 보는 자비성 보살도 나와서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스님 동물구조대같은 곳을 찾아서 전화해야겠어요.”

 

꿈쩍 않고 숨만 내쉬는 너구리를 그냥 뒀다간 이 엄동설한(嚴冬雪寒)에 얼어죽을게 틀림없는만큼 당장 방법을 취해야 했습니다. 우선 너구리를 따뜻한 곳에 옮기는게 급선무였습니다. 그러나 특별한 보호장비도 없는데 야생의 너구리가 갑자기 깨어나 공격할 수도 있으니 함부로 손댈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20171229_153449.jpg

 

 

지광스님이 후원에 있는 큰 플라스틱 통을 가져와 담아보려 했지만 여의치가 않았습니다. 자비성보살이 적당한 들것을 찾다가 종이 박스 두 개와 큰 타월을 들고 나왔습니다. 타월을 들것처럼 감싸서 너구리를 박스안에 넣을 요량이었죠.

 

결국 저까지 합세하여 무사히 너구리를 박스에 넣고 난로가 있는 후원까지 옮길 수 있었습니다.

 

 

지광스님과 너구리.jpg

 

 

자비성 보살이 따뜻한 물을 너구리 입가에 흘려주고 반응을 살피며 체온을 유지시켜 주었습니다. 일단 따뜻한 곳에 옮겼으니 안심은 됐고 인터넷으로 동물구조대를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개나 고양이처럼 반려동물을 위한 곳들은 많지만 야생동물 구조(Wild animal rescue)와 관련된 시설은 근처에선 찾을 수 없었습니다.

 

지광스님이 결국 동물병원 한곳에 전화를 했더니 “우리는 야생동물을 취급할 수가 없다. 일단 긴급조치는 잘 했으니 함부로 손 대지 말고 이곳에 전화를 해보라”며 한군데 도움이 될만한 연락처를 알려주었습니다.

 

하지만 너구리에겐 그리 시간이 많지 않았나 봅니다. 제가 집에 돌아오고 얼마 안된 오후 6시 경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자비성 보살은 “따뜻한 곳에서 좀 나아질까 싶었는데 치료도 못받고 이렇게 되니까 너무 마음이 않좋네요..”하고 말끝을 흐렸습니다.

 

그래도 너구리의 마지막 가는 길은 편안해 보였다고 합니다. 얼었던 발도 온기에 녹았는지 윤기도 나고 마치 합장하듯 손을 모은 모습이었다니 말입니다.

 

너구리가 살았다면 정말 좋았겠지만 그래도 짧은 시간이나마 따뜻한 곳에서 사람들의 온기를 느낄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광스님은 땅이 얼어 소형 포크레인을 동원해 너구리를 위한 안식처를 만들어 주신다고 하네요.

 

대체 그 너구리는 생명의 불꽃이 꺼져가는 순간에 어떻게 원각사 법당 앞에 올 수 있었을까요. 너구리와 원각사는 무슨 인연이 있었을까요. 어쩌면 너구리는 전생에 사람은 아니었을까요. 비록 어떤 죄업(罪業)으로 동물이 되었지만 다음 생에는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어 참회하는 마음으로 마지막 순간 스님의 손길을 청한 것은 아닐까요.

 

저물어가는 2017년 뉴욕원각사를 찾아온 한 너구리의 특별한 사연이 가슴을 시리게 합니다.

 

 

17264299_10208415440975726_7040898592612540441_n.jpg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노창현의 뉴욕편지’

 

http://newsroh.com/bbs/board.php?bo_table=cno

 

 

  • |
  1. 20171229_153311.jpg (File Size:139.8KB/Download:34)
  2. 17264299_10208415440975726_7040898592612540441_n.jpg (File Size:111.9KB/Download:31)
  3. 20171229_153417.jpg (File Size:174.0KB/Download:29)
  4. 20171229_153449.jpg (File Size:194.4KB/Download:28)
  5. 지광스님과 너구리 - Copy.jpg (File Size:137.2KB/Download:23)
  6. 지광스님과 너구리.jpg (File Size:149.7KB/Download:31)
facebook twitter google plus pinterest kakao story band

  • 정월대보름 평화의 달구경 file

    남북화합과 통일의 초석 놓기를     Newsroh=소곤이 칼럼니스트     photo by 조성모     휘영청 보름달이 밝았다. 2월 19일은 정월 대보름(음력 1월 15일)이다. 음력으로 설날이 지나고, 첫 보름달이 떴다. 안타깝게도 모국에선 보름달 구경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날 전...

    정월대보름 평화의 달구경
  • 좋은 직원은 태어나지 않고 만들어 진다

    교육 통해 태도 바꿔주면 유능한 직원으로 변신     (로스앤젤레스=코리아위클리) 홍병식(내셔널유니버시티 교수) = 기업을 경영하는 분들은 좋은 직원을 채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고용주의 마음에 들 만큼 유능하고 태도가 좋은 직원을 찾기...

    좋은 직원은 태어나지 않고 만들어 진다
  • 나는 너무 외로워요(3)

    어려운 학생 돕는 자녀 되도록 부모가 힘쓰라 (워싱턴디시=코리아위클리) 엔젤라 김(교육 칼럼니스트) = 필자가 전에 아이 학교에서 무숙자 돕기 캠페인으로 걷기 대회를 해서 자원 봉사자로 중학교를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행사를 돕느라 아이들이 점심을 먹고 있는...

    나는 너무 외로워요(3)
  • 응급의료전산화 안하나?못하나? file

    故 윤한덕 응급센터장을 추모하며 전화 30통이라니..무능한 한국관료 체제     Nesroh=김태환 칼럼니스트     한국에서는 항상 국민소득이 얼마다, 그리고 IT 강국임을 뽐내고 있으나 그들은 가짜 뉴스와 소위 ‘찌라시’ 생산에만 열을 올린다.   최근 윤한덕 국립중앙의...

    응급의료전산화 안하나?못하나?
  • 스님과의 아침공양 file

    Newsroh=로창현 칼럼니스트         불교와 관련된 용어 중에 '공양(供養)'이 있습니다. 공양은 본래 불법승(佛法僧) 삼보(三寶)에 대해서 공경하는 마음으로 향이나 등, 음식 등 공물(供物)을 올리는 것을 말하는데 불가에서는 '밥을 지어 올리거나 먹는 일'도 '공양한...

    스님과의 아침공양
  • 북미 2차정상회담 성공 가능성 크다

    [시류청론] 연락관-연락사무소 교환 설치 검토… 미군철수 문제도 논의? (마이애미=코리아위클리) 김현철 기자 = < CNN > 방송은 2월 18일 뉴스에서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북미 간 공식적인 외교관계 수립을 위해 연락관 교환 및 연락사무소 설치 방안을 진지하...

    북미 2차정상회담 성공 가능성 크다
  • 강추위 탈출하기 file

      Newsroh=황길재 칼럼니스트         I-65 남쪽 방향, exit 116 근처 휴게소에서 쉰다. 여기는 화씨 33도, 섭씨 1도다. 영하에 가까운 날씨지만 봄날처럼 느껴진다. 가볍게 입고 운동도 야외에서 했다.   눈이 내린다. 밤새 눈이 내린다는 일기예보다. 새벽 1시쯤 야드...

    강추위 탈출하기
  • 사소한 것이 더 중요할 수 있다

    따뜻한 말 한마디의 파급효과는 크다     (로스앤젤레스=코리아위클리) 홍병식(내셔널유니버시티 교수) = 일요일 교회에서 목사님이 신도들에게 “매일 무엇이든 남을 위해서 중요한 일을 하면서 생활 하라”는 당부를 했습니다. 그런 설교를 신중하게 들은 홀모가 있었습...

    사소한 것이 더 중요할 수 있다
  • 나는 너무 외로워요(2)

    [교육칼럼] 외로움 느끼는 자녀, 봉사나 취미활동 하게 이끄라 (워싱턴=코리아위클리) 엔젤라 김(교육칼럼니스트) = 지난 주에 이어서 외로움이라는 증상에 대해서 또 생각해 보기로 합니다. 이런 저런 가정적인 이유, 성격상의 이유로 외로움을 호소하는 십대 자녀들이...

    나는 너무 외로워요(2)
  • 삼일절은 삼일혁명이다 file

    “을사늑약 경술합방 원천무효” “일제강점이 아니라 경술왜란”     Newsroh=김창옥 칼럼니스트     혁명(革命)의 사전적 의미는 “기존의 사회 체제를 변혁하기 위하여 이제까지 국가 권력을 장악하였던 계층을 대신하여 그 권력을 비합법적인 방법으로 탈취하는 권력 교체...

    삼일절은 삼일혁명이다
  • 또 다시 피소 file

      Newsroh=황길재 칼럼니스트         집 앞 CVS에서 어젯밤 온라인으로 인화 신청한 사진을 찾았다. 사진 준비해 가길 잘했다. 내가 간 곳은 창구가 두 곳인 작은 우체국으로 사진 찍는 곳은 없었다. 그 작은 동네 우체국에서 여권 신청을 받는다는 자체가 신기했다. 다...

    또 다시 피소
  • 트럼프 “북한은 경제 로켓을 쏘아 올릴 것이다”

    [시류청론] 평양 실무회담 성공적, 정상회담 걸림돌 제거했다 (마이애미=코리아위클리) 김현철 기자 = 비건 대북정책특별대표 일행이 2박3일의 북미실무급회담을 마치고 2월 8일 평양을 떠나던 날,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다음과 같이 밝혀 이번 2차 정상회담이 성공...

    트럼프 “북한은 경제 로켓을 쏘아 올릴 것이다”
  • 파리, 텍사스 file

    Newsroh=황길재 칼럼니스트     포트 워스는 댈러스 왼편에 있다. 한동네라고 봐도 무방하다. 대도시 주변이라 그런가, 배달처는 공간이 무척 좁았다. 그나마 번잡하지 않아 별 탈 없이 닥킹하고 짐을 내릴 수 있었다. 돼지고기를 날랐는데 트레일러에 핏물이 흘렀다. 가...

    파리, 텍사스
  • 이런 짓을 하는 내가 정말 비정상인가 file

    [종교칼럼] (서울=코리아위클리) 최태선 목사(하늘밭교회) = 목사가 되기 전부터 나는 좋은 교회들을 찾아 수요예배를 드렸다. 목사가 된 후에는 그런 교회들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내 딴에는 신경을 써서 그 교회가 지향하는 목표에 따라 그에 적합한 글을 썼다. 조금...

    이런 짓을 하는 내가 정말 비정상인가
  • 이승만의 놀라운 입도선매식 재테크 file

    정권 잡기전 미국인에 광산채굴권 하와이 압송시 정부돈 횡령 사건보도 12년 집권기간 외교와 달러 친정체제 유지     Newsroh=김태환 칼럼니스트     이승만(李承晩)은 권모술수가 출중하다고 자타가 공인하는 바이고 대한민국 단독 정부가 그의 음모대로 탄생하자 그전...

    이승만의 놀라운 입도선매식 재테크
  • 32년만의 이발소 이용 file

    미국이발소의 아줌마미용사     Newsroh=황길재 칼럼니스트         새벽 3시 기상, 30분 준비 후 출발. 오늘도 부지런히 달리자.   오전 8시에 Iowa 80 트럭스탑에 도착했다. 이번이 두 번째다. 24시간 영업하는 곳 말고는 오전 9시가 오픈이다. 이발소 바로 옆에 체력...

    32년만의 이발소 이용
  • 눈 폭풍 속 질주 file

    Newsroh=황길재 칼럼니스트         가이암이 이토록 겁대가리 없는 녀석인 줄 몰랐다. 가이암은 오늘 도로에서 가장 빠른 차량이었다.   어제 9시에 발송처에서 출발했다. 경로가 약간 바뀌었다. 원래는 켄터키로 해서 일리노이로 올라가는 코스였다. 출발 직전에 매크...

    눈 폭풍 속 질주
  • 어린 시절 돌아보면 ‘행복’을 안다

    행복은 현대 문명이 주는 편리로 만들어 지지 않아     (로스앤젤레스=코리아위클리) 홍병식(내셔널 유니버시티 교수) = 근래 초등학교 2학년인 외손자가 전화를 걸어와서 인터뷰를 저에게 요청했습니다. 아마도 선생님이 내준 과외 활동의 일부이었던 모양입니다. 그 ...

    어린 시절 돌아보면 ‘행복’을 안다
  • 나는 너무 외로워요(1)

    [교육칼럼] 외로움 느끼는 자녀, 부모가 먼저 살펴야 한다 (워싱턴=코리아위클리) 엔젤라 김(교육 칼럼니스트) =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합니다. 정기적으로 사람들과 연락을 하고 살지 못하면 우리는 대개 외로움을 느낍니다. ▲ 엔젤라 김   근래 한국 사회에 커다...

    나는 너무 외로워요(1)
  • ‘삼체’를 하지 말라 file

    [이민생활이야기] 하사옹 옹의 충고를 기억하며 (올랜도=코리아위클리) 송석춘(독자) = '삼체를 하지 말라'고 한 사람은 충북 어느 시골에서 찌질하게도 가난했던 농부 하사용 옹이 한 말이다. 그의 학력은 초등학교 2학년 중퇴가 전부다. 그는 한국 국내에서 3500회 이...

    ‘삼체’를 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