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생활이야기] 한림주부 학생들의 늦깍이 행운

(올랜도=코리아위클리) 송석춘(독자) = 그동안 대도시 서점에서 꾸준히 구입한 책들이 어느덧 수백권이다. 이 많은 책들 며칠 전에 무심코 하나 꺼내 잡은 것은 15년전에 구입한 책이다. 벌써 15년이 훌쩍 넘었다는 사실에 약간 숙연해졌다.

독자들 중에 이곳 올랜도에 한때나마 작은 책방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롯데 비디오라는 가게는 비디오 뿐만 아니라 책을 빌려주거나 판매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인터넷에 엮이면서 책방도 문을 닫게 됐다. 그 때 나는 일손을 놓으면 책이나 읽으며 소일한다는 생각으로 한 권 당 대략 5∼10불씩을 지불하고 수 십권을 구입했는데, 그 중 하나가 내가 최근 꺼내든 책으로 제목은 <바람난 엄마의 책가방>이다.

한림주부 중고교장 이현만이 지은 이 책은 주부 중·고등학생들의 늦배움과 그 애환과 감동을 잘 써내려갔다.

아이들이 자라서 유치원이라도 가게 되면 개학 초기에 가족 신상명세표를 써내야 했는데, 지금도 한국에서는 이런 절차가 있는 지 모르겠다. 6.25를 조금이라도 기억하는 세대 중에는 가족 신상명세표를 앞에 놓고 어머니 혹은 아내의 칸에 ‘초등학고 졸업’ ‘중학교 졸업’ 등을 사실대로 적어야 할 지 고민했던 이들이 많을 것이다.

자식들에게 부모의 무학이 혹시라도 피해가 가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양심의 가책을 받으면서도 학력을 속이게 되는 것이다. 또 차마 대졸이라고까지 할 수 없으니 고졸이라고 적어내는 부모도 있었을 것이다.

<바람난 엄마의 책가방>에서는 배움의 모자람을 뒤늦게나마 채우고자 가정주부들이 춘천에서 혹은 인천 송도에서 먼거리를 마다않고 등교하며 결석이나 지각 한 번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나 역시 군대생활하면서 수원에서 서울까지 모든 교통을 무임승차하며 야간대학을 다녔었다. 책 속에 등장한 가정주부들의 마음이 십분 이해가 가서 이 책을 사놓고도 진작에 읽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되기까지 했다.

6.25때 우리 가족이 피난 가서 사는 동안 여섯식구의 한때 유일한 수입을 14살 먹은 내가 담당한 적이 있다. 산에서 나무를 해다가 나뭇짐을 지고 김천 야시장에 내다 판 돈이 식구들의 생계를 유지하게 했다.

새벽 별을 보면서 나뭇짐을 지고 집을 나선 후 한참 가다보면 김천 중고등학교에 등교하는 학생들과 마주쳤다. 나 또래 되는 중학생들은 내가 진 나무짐을 보면서 얼마 받을 것이라느니 흥정을 매기며 지나갔다. 무거운 나뭇짐을 지고 20리가 넘는 길을 걸으면서 나는 때로 “6.25 전쟁만 나지 않았으면 나도 중학교에 다니고 있을 것이다” 하고 되뇌었던 생각이 난다.

책을 읽으면서 인간은 자신이 신바람 나는 일을 해야 보람을 느낄 수 있다고 한 말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배움의 신바람이 나서 먼 거리에 있는 학교를 결석하거나 지각하지도 않았고, 힘들었던 만큼 보람도 더욱 컸을 것이다.

한림주부 중·고등학교는 일반학교와 학사 일정이 똑같으며 평가 내용과 방법도 똑같다고 한다. 그러니까 문교부에서 인정해 주는 졸업장을 받을 수 있는 학교이다.

40-50대의 주부들이 뒤늦은 배움이지만 늦바람이 더 무서운 법이라고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나는 상상하게 된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비록 늦게 졸업했을지라도 ‘지나간 여고시절’ 노래를 떳떳이 부를 수 있게 된 것이다. 특히 가족 신상명세표에 거짓으로 써온 중졸, 고졸도 이제는 더이상 거짓이 아니니 배움은 여러모로 삶에 활력을 줄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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