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생활 이야기]


(탬파=코리아위클리) 신동주 = 나의 조부님께서는 농촌에서 농사를 광작하고 계셨으며 매년 수십차례씩 천도교에 헌금이라는 명목으로 거액을 헌납하셨다.

흰 두루마기에 갓을 점잖게 쓴 노인들이었던 천도교 군들은 시도 때도 없이 두세명씩 들이 닥쳐 사랑방에 수삼일씩 유숙했다. 그러는 동안 조부님께는 곳간에서 벼 섬을 소 달구지에 여러번 실어내 인접 면 소재지인 황등 시장에 내어다 팔고 돈을 만들어 큼지막한 전대에 넣어 노인들의 허리에 둘러매 주셨다. 독립운동 지하자금을 전달하신 것이다.

조부님께서는 슬하에 삼형제를 두셨으나 어느 자식하나 제대로 공부를 시키지 않고 그 많은 돈을 모두 천도교를 통하여 독립운동 자금으로 바치며 평생을 사신 분이다.

조부님께서는 1916년부터 전북 옥구 지역에서 천도교에 가입하시어 그때부터 자주 독립운동에 가담하시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농민 호조사 라는 독립운동 옥구지역 기지의 책임을 맡고 있었으며, 삼일운동 직후 만주에 광복군과 상해 독립운동 자금조달 등에 헌신하셨다.

또 1919년 삼일운동 사건에 가담하여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수개월 동안 모진 고문을 당한 뒤 군산 지방법원에서 국가 반역죄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아 대구 형무소에서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이처럼 조부님께서는 간악한 일제의 쇠사슬에서 조국의 해방을 위해 일신의 영달과 이익을 헌신짝 같이 버리고 사셨다. 그리고 후에는 순수한 농민의 한 사람으로 사시며 당신의 소원대로 대가족을 이루어 백여명의 후손을 거느리고 사시다 84세 에 생을 마감하셨다.


세차례 거듭된 소명자료 부족 판정
 

1976년 박정희 정권당시 형님께서는 국가 유공자 포상신청을 했으나 소명자료 부족이라는 이유로 심사에서 보류됐다.

형님께서는 이제라도 독립운동가의 자손으로 태어난 것이 무엇보다 자랑스럽다며 고인이 되신 조부님의 한을 풀어드리기 위해서라도 지금 이 일을 해야 한다며 자료수집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울 천도교 본부와 원불교 본구, 대구 형무소를 찾아 다니면서 조부님에 대한 재판 기록을 찾는데 많은 고생을 하셨다.

다시 소명 자료 부족이라는 통지를 받고 나서 형님은 천도교 서울 중앙본부에서 매년 수십 차례 거금을 수납한 기록을 찾아 내는 데 이르렀고, 원불교 옥구지구 농민 호조사라는 독립운동 기구의 조직 명단을 입수 하였으며 독립운동 지하자금 상납 루트를 찾아 내는데도 성공했다.

이렇게 각고의 노력 끝에 옥구 지역과 군산 지역의 생존자를 수소문 하여 여러차례 방문하여 생존자 입을 통해 어렵게 어렵게 자료를 수집하는 데 성공했으나 그것도 믿을수가 없다는 이유로 세 번째 반려되었다.

이제는 마지막으로 법원의 재판기록을 첨부해야만 했다. 그 일은 내가 맡아 부산 형무소와 대구 형무소를 찾아 다니면서 증빙 기록을 찾기 시작했다. 부산 형무소에는 6.25당시 정부 문서 기록이 화재로 불타 버리고 일부만 보관되어 있었으며, 대구 형무소에 보존 되어 있는 것은 대부분 사본 기록이었지만 문서 보존 기록실에 각각 구분되어 보관되어 있었다.

나는 공직에서 행정업무 경험이 있었기에 기록 문서를 찾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형무소 내에 문서 보관 기록실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나게 큰 도서관이었다.

보통 서류는 연도별로 사건별로 형량별로 보존되어 있는데 어디에서부터 거슬러 올라가야 기록을 찾을 것인지 막연했다. 먼저 연도별로 시작하여 서기에서 단기로 그리고 소화시대에서 대정시대로 그후로 광무시대에서 명치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기록을 찾아야 했다.


대구 형무소에서 찾아낸 '관'자 '순'자에 코끝이 시큰
 

다음으로 범죄 유형별로 들어가 사기 등 잡범에서부터 절도, 강도, 살인, 정치범을 뒤지다 국가 반역죄에 이르렀다. 이 속에서 가나다 순 성씨별의 색인 목록에 이르러 신씨의 기록보관 부분에서 눈이 빠지도록 샅샅이 살펴 나가던 중 '관' 자 '순'자 가 눈에 들어왔다. 순간 콧등이 시큰하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이렇게 어렵사리 찾아낸 재판기록에서 검사의 공소유지 논고와 판사의 판결문과 형 집행 언도 기록을 보았을 때 세상에 어떤일이 이보다 더 아름답고 값지고 귀할 수가 있을까 하고 생각했다. 검소하고 성실했던 조부님의 모습과 그 일생이 잠시 내 뇌리에 스쳐갔다.

아주 작은 세필로 된 붓글씨의 종서로 기록한 것을 복사하는 데 페이지당 30원씩이 들었다. 나는 20매에 600원 복사 수수료를 지불하고 문서관리 기록보존실 직원의 확인과 대구 형무소 관인이 찍힌 영수증까지 첨부했다.

이렇게 꼬박 이틀동안을 조부님의 형 집행 서류와 당시 판결문 자료를 추적하면서 나는 대구 형무소의 수감자는 물론 대한민국의 모든 재판 기록이 이곳에 보관되어 있다는 사실도 처음으로 알게 됐다.

재판 기록을 찾아온 나는 다시 원호사 상훈부에 재신청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나서 수삼년이 지났는데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고 전두환 정권 당시에야 소식을 접하게 됐다.

회신된 통보서 내용인 즉, 훈포상 심사 규정에 6개월 이상 형무소 수감기록이 되어야 하는 데 귀하의 경우 형을 선고 받은 날과 출소한 날자를 계산하니 5개월 26일로 4일이 부족하다는 내용이었다. 그러고 난 후 1985년도에 나는 미국으로 이민을 오게 되었으며 수삼년후 한국은 노태우 정권 시대에 이르게 됐다.


독립운동 포상자 70%가 허위
 
 
그러다 어느날 우연히 신문에 대서특필로 난 기사를 접하고는 분통과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동안 훈포상자들의 부정한 기록이 발각됐다는 것이었다. 이미 포상을 받은 자들의 70%가 거짓과 허위로 서류를 조작하는 등 감쪽같이 위조하여 제출한 것들이 뒤늦게 세상에 공개되면서 당시 독립유공자 포상자들을 모두 취소하고 무효화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국가 보훈처에서는 다시 심사를 시작했고 4일이 부족하다고 지적받았던 조부모의 서류가 당당하게 심사에 통과되었다.

훈포상 제837945호 고 신관순 위는 숭고한 애국정신을 발휘하여 조국의 자주 독립운동에 헌신 노력함으로서 국가 발전에 이바지 한 바 크므로 이에 표창함. 1992년 4월 13일 대통령 노태우, 이 증을 대통령 표창부에 기록함 총부처 장관 이상배 라고 새겨진 증서를 받고 나는 얼마나 감격했는 지 모른다.

그러나 이 증서가 형님 생전에 전달이 되지 않은 것이 내 마음을 무척 아프게 했다. 이 증서를 형님이 보셨어야 하는 건데, 독립 유공자의 후손으로 국가로부터 조부모님의 소중한 얼을 인정받기 위해 얼마나 고생하셨던가. 조부님이 그렇게도 소중하게 여기셨던 민족의 얼과 아울러, 이를 기록으로 나마 되찾기 위해 무던히도 고생하셨던 형님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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