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조국순례 이야기

 

 

Newsroh=장기풍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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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덕길에서 작은 전동차를 타고 지나가는 할머니에게 진리로 가는 길과 그곳의 민박집을 물었다. 당신을 따라 오라고 하신다. 민박집으로 가니 주인이 출타(出他)중이다. 할머니는 자기 집에서 기다리라고 권했다. 집에는 할아버지가 들깨를 말리려고 멍석에 깔고 있었다. 조금 거들어 드리며 몇 마디 대화를 나누는 중 금방 범상치 않은 분임을 깨달았다. 다름 아닌 흑산도 토박이로 향토사학자 임종인 선생이다. 올해 83세의 임 선생은 일정 때 흑산도에서 국민학교 졸업하고 육지로 나가 목포에서 중고등학교 졸업한 후 흑산도에서는 처음으로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전설적인 인물이다. 대화가 무르익자 임 선생은 민박집에 갈 것이 아니라 하룻밤 정도는 자기 집에 유숙하라고 강력하게 권했다. 나는 몇차례 폐가 된다며 사양했지만 속으로는 불감청고소원(不敢請固所願)이었다. 이런 기회가 또 어디 있겠는가. 임 선생은 나에게 흑산도 역사와 민속 지명에 대한 유래 그리고 정약전 유배지에 대해 자신이 수집한 귀중한 자료들을 보여주며 설명해 주었다. 나의 흑산도 여행목적이 순식간에 이루어진 것이다. 이제는 현장답사만 남았다. 임 선생은 유배지가 있는 사리로 가는 교통편까지 알려주면서 그곳을 안내할 사람까지 소개해 주었다. 나는 저녁에 다시 오기로 하고 배낭을 벗어놓고 홀가분하게 임 선생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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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에서 바라본 흑산도 포구

 

임 선생은 나를 큰 길까지 바래다주면서 진리에 얽힌 놀라운 사실들을 증언해 주었다. 일제는 흑산도 근해 고래를 포획하기 위해 포경기지를 설치하면서 흑산도를 살펴보던 중 바로 진리의 하얀 해변 모래밭이 유리 원료인 ‘규사‘임을 알아냈다. 1914년 8월1일 매일신보는 '조선의 일대유리, 흑산도 규사 발견, 초자제조계의 대복음'이라는 제목으로 대서특필했다. 흑산도에서 발견된 규사는 조선에 크게 유리한 일이며 유리 제조업계에게는 복음이라는 것이다. 이때부터 일제는 본격적으로 고래 뿐 아니라 규사를 대량 수탈에 나섰다. 1914년 7월 2일 조선총독부 관보는 그해 5월 처음 흑산도에서 규사 300톤을 채취하여 일본 큐슈 도바타 유리공장에 보냈으며 매월 1천 톤씩 보낼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일제는 이를 위해 흑산도와 일본 와카마쓰 간 정기항로까지 개설했다. 임 선생은 고목이 울창하고 하얀 모래로 아름답던 진리해변이 지금은 한그루 고목만 남아 있고 방조제를 쌓은 이후 해류가 변했는지 모래사장도 깜쪽같이 사라졌다고 회상했다. 일제는 고래와 규사로 황금알을 낳는 흑산도에 사무소를 설치하고 세관원과 경찰 등 관리를 파견했다. 그러면서 흑산도에는 국민학교 한 개만 세워 일본말 가르치는 데만 주력했다. 임 선생은 학교 다닐 때 조선말하면 크게 혼났던 경험을 들려주었다. 조상대대 물려받은 땅으로 부유했던 임 선생은 중고등학교를 목포에 유학하고 대학까지 진학할 수 있었다. 교육의 불모지 흑산도에 중학교가 생긴 것은 당시 흑산성당 초대신부로 부임한 아일랜드 골롬바노회 브라질 진 신부가 본국의 지원을 받아 1961년 개교한 사립 성모중학교가 처음이다. 1973년 2월 사립 성모중학교는 공립으로 설립되는 흑산중학교에 운영권을 넘기고 폐교되었다. 옛 학교 부지에는 현대식 중학교 건물이 세워져 있으며 성모중학교 건물은 성당 옆에 보존돼 있다. 당시 육지에 나가지 않으면 중등교육 기회마저 없었던 흑산도에 외국인 신부가 중학교를 설립해 준 것은 흑산도 발전에 엄청난 기여를 했다고 주민들은 입을 모은다. 성모중학교 졸업생 중에는 국회의원 대기업 간부 문화인 기업인이 다수 배출되었으니 짧은 기간에 이룩한 업적에 놀랍기만 하다. 새삼 교육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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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 언덕위 성당

 

 

나는 임 선생과 해변에서 작별하고 천천히 언덕길을 따라 임 선생이 점심식사 하면서 들려준 전설의 고향 현장인 진리당을 찾았다. 임 선생이 들려준 전설이 재미있다, 성황당에는 대체로 여신을 모시는 것이 관례이며 어촌 사람들은 정초에 당에 모신 여신에게 풍어를 기원하는 제사를 바친다. 진리당은 옛날 처녀신을 모셨다고 한다. 옛날 어느 옹기배가 당 아래 해변에 닻을 내렸다. 배에는 3∼4명 선원과 잔심부름하고 밥을 짓는 총각이 타고 있었다. 뱃사람들이 옹기를 팔기 위해 마을에 들어간 동안 총각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당 마당에 있는 늙은 소나무가지에 올라앉아 솔잎 피리를 구성지게 불곤 하였다. 며칠 뒤 옹기그릇 장사를 끝내고 출항하려는데 돛을 올리면 역풍이 불곤 해서 배를 띄울 수 없었다. 며칠이나 배가 묶여 있어 사공이 무당을 찾아 점을 쳤는데 총각을 두고 가야 떠날 수 있다는 점괘가 나왔다. 선원들은 총각을 동네에 거짓 심부름을 보낸 후 배를 띄워 출발해 버렸다. 총각 피리소리에 반한 당 처녀귀신이 붙잡아 둔 것이다. 배신감과 절망에 빠진 총각은 매일같이 당 마당 소나무 가지에 앉아 구슬프게 솔잎피리를 불어댔다. 동네에 들어오는 일도 없었다. 어느 날 피리소리가 그쳐 사람들이 가보니 굶어 죽은 총각이 소나무 밑에 떨어져 있었다. 사람들은 그 자리에 총각을 묻었는데 지금도 무덤이 남아있다. 주민들은 총각의 화상을 그려 처녀귀신 화상 옆에 모셨다. 지금도 주민들은 매년 정초 여신과 함께 이름 모를 총각귀신에게도 제사를 드리고 있다고 한다. 그야말로 믿거나 말거나 전설따라 삼천리다. 임 선생은 이 같이 순박한 전설도 육지사람들이 다녀가면 그야말로 새로운 소설이 만들어진다며 제발 건드리지 말고 내버려 달라고 호소했다. 하긴 나도 당집을 둘러보면서 영화를 만든다면 어떻게 각색할 수 있을까 하는 공상에 잠겼었다. 마을버스를 타고 사리로 가기 위해 읍항으로 가는 도중 해군부대 앞에는 여러 기의 고인돌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는 흑산도가 석기시대부터 사람들이 집단으로 거주했음을 보여주는 확실한 증거일 것이다.

 

 

<계속>

 

 

*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빈무덤의 배낭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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