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생활이야기] <조선일보>에 난 북한 어부들 기사를 읽고

지난해 말에 읽은 <조선일보> 기사 한 토막이 요즈음 며칠동안 나의 잠을 설치게 한다.

<조선일보> 일본 특파원이 쓴 '일본 해안의 뚜껑 없는 목관들'이라는 제목의 기사는 오래 전에 내가 솔직하게 한 말과 무모한 행동을 떠올리게 하며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었다.

때는 1960년 4월 21일 밤. 나는 일본에 사는 큰 누님과 같이 일본 요코하마의 어느 곳으로 안내되었다. 나는 당시 미 공군 기술학교에서 10여개월 교육을 받고 2주간의 교육수료 휴가를 받았었다. 그러나 휴가는 갑자기 취소되었고, 나는 급히 귀국길에 올라 일본에 도착했다.

미 공군비행장에 내리니 누님이 마중나왔는데, 누님이 어떻게 군 비행장 안까지 들어 왔는지 모르겠지만 ‘내일 아침 10시까지 동생을 이곳 터미널까지 다시 데리고 오겠다’는 약조와 서명을 한 후 함께 요코하마로 향했다.

누님 집에 당도해 짐을 내려 놓자마자 어딘가에 같이 가자고 해서 따라나섰다. 어느 곳인가 들어가 보니 그곳에는 남녀노소 조선인 100여명이 모여 있었다.

그들이 남조선에서 온 나를 보고자 한 것은 남조선의 삶을 남조선 사람에게서 직접 듣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재일 조선인의 북조선 송환이 문을 연 상황에서 그들에게는 생사가 걸린 문제였으니 신중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 모임에서 대표자라는 분이 "자네 부친 송상과는 30여년 동고동락 했다"라면서 "요즈음 어떻게 지내시는가" 하고 안부를 물으셨다. 그러고 나서 "송상은 헛된 말은 하지 않은 사람이니 자네도 그러리라 믿네. 사실대로 말해주게" 하신다.

사람이 살다보면 할 말 있고 못할 말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그들의 질문에 보태지도 빼지도 않고 내가 보고 듣고 경험한 실정들을 말하였다. 그리고 다른 말 없이 "선택은 여러분의 몫"이라고 했다.

그들이 북조선으로 갔다면 그들의 후손들은 '겨울철 물고기잡이 전투에서 승전 포성을 울리자'고 외치고 있을 것이다. 또 '우리가 잘 사는 것을 바라지 않는 제국주의자들의 반 공화국 책동이 극도에 달한 오늘, 고깃배들은 조국과 인민을 보위하는 군함이고 물고기는 군대와 인민들에게 보내주는 총알과 같다'고 한 <로동신문> 기사를 믿고 살 것이다.

지금 북한은 연안 조업권까지 중국에 팔아가며 돈 모아 미사일 쏘는 사이에 가난한 주민들은 땟목 같은 배를 타고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일본 배타적 경제수역 코앞까지 나가 조업을 하고 있다 한다. 지난 4년간 10미터 남짓 길이의 북한 목선이 일본 북쪽 연안에 시체와 함께 떠밀려온 수가 총 180척이라고 일본 정부가 발표했다고 한다.

'김일성 장수 연구소' 출신 귀순자 김소연의 자전 에세이의 제목은 '죽을 문이 하나면 살 문은 아홉'이다. 그러나 작은 목선으로 먼 바다로 조업 나가는 북한 어부는 그와 반대일 지도 모르겠다.

<조선일보> 기사를 보고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은, 58년전 일본에서 나의 부모님 친구분들 앞에서 당시 우리의 형편을 솔직하게 말한 것이 혹시 그들을 죽음의 굴 속에 보낸 데 한 몫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남조선 주민들은 모두가 쌀밥에 고깃국 먹으며 배부르게 산다’고 말했어야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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