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1세대 코미디언들

 

뉴스로=노창현 칼럼니스트 newsro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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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4년 8월 12일 KBS-TV 아침마당으로 방송된 ‘코메디는 나의 인생 구봉서 남성남 엄용수’ 편을 유투브로 보았습니다.

 

1926년생이니 2년전에도 89세의 고령이었지만 그의 입담은 차원이 다르더군요. 진행자인 이금희가 ‘어쩌면 그렇게 건강하세요’ 하고 묻자, 천연덕스럽게 “거 심심하면..집에서 한가하시면 한번 늙어보세요”하고 대꾸했다. 스튜디오에서 박장대소가 터졌다. 웃느라고 방송이 10여초 중단될 정도였다.

 

그러더니 말을 이었다. “아니야. 나이를 먹으면 눈이 어두워지고, 귀가 먹먹하고, 말이 빨리 안되고, 순발력이 떨어져요. 코미디엔 순발력이 최고거든.. 순발력이 떨어지잖아 그럼 끝난건데..(말씀 빨리 하시는데요?) 지금 말 굉장히 빨리 하는거야..”

 

엊그제 전해진 ‘원로희극인 구봉서 별세’ 소식을 들으며 착잡한 상념(想念)에 사로잡혔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중장년이상이라면 그의 이름을 모를 사람은 없습니다. 그와는 만난 적도 없는 사이라도 사람들은 서운할겁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나이를 먹고, 우리와 동시대에 있던 이들이 하나둘 사라지는 것은 이젠 더 이상 추억으로밖에 기억할 수 없는 그리움때문이지요.

 

더구나 그가 활동하던 시절, 60년대는 영화와 악극단, 70년대는 방송이 주름잡던 시절이고 보릿고개를 넘나드는 어려운 때라서 서민들과 빈곤계층이 정말 많았기에 이들 연예인들을 친숙하게 하였습니다. 웃음을 주는 코미디언들은 더더욱 서민의 친구라고 할만했으니까요,

 

저의 기억속에 자리한 대표적인 예능방송은 MBC-TV의 ‘웃으면 복이와요’입니다. 방송 코미디프로의 원조인 ‘웃으면 복이와요’가 시작된 1969년 이후 한국의 희극계는 악극단 시대에서 방송시대로 넘어오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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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봉서는 1926년 평양에서 태어나 3살 때인 1929년 부모님을 따라 서울로 이사, 대동상업고등학교와 일본의 동양음악전문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그는 본래 아코디언 연주자로 활동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희극배우가 되었다고 합니다. 8.15 해방 이후 유명가수 김정구의 친형인 김용환이 이끌던 '태평양가극단'에서 아코디언 악사로 활동하던 어느 날 연극 공연을 앞두고 배우 한 명이 도망가는 바람에 배역을 대신 맡아서 출연하게 되었는데 대본에도 없는 애드립으로 관객들이 폭소를 터뜨리게 만든 것이 배우로 변신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국전쟁 때는 장병들에게 위문 공연을 해주는 군예대에서 복무했는데요. 한국전쟁을 전후로 무려 세 번이나 입대하는 장기복무의 逸話도 있더군요. 싸이가 두 번 군복무를 한 기록이 있는데 구봉서의 세 번 복무 기록은 한국 기네스가 아닐 수 없네요.

 

본격적인 배우활동을 시작한 그는 1956년 영화 ‘애정파도’에 출연이후 무려 400편의 영화에 출연했습니다. 그가 국민배우로거듭나게 된 영화는 1958년 영화 ‘오부자’입니다. ‘영웅호걸’ 4형제 중 막내 ‘걸’ 역할을 맡아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는데요. 이때부터 ‘막둥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당대 최고의 희극배우로 발돋움했습니다.

 

‘벼락부자’와 ‘남자 가정부’, ‘형님먼저 아우먼저’ 등 주로 희극 영화에 출연했지만 ‘돌아오지 않는 해병’, ‘수학여행’ 등 정극 작품에서도 빼어난 연기력을 선보였습니다. ‘돌아오지 않는 해병’에서는 죽기 직전 “내가 재미있게 말하면 너희들은 웃었지. 슬플 때에도 말이야. 내가 죽으면 너희들은 슬프겠지. 내가 죽으면 누가 너희들을 웃겨주니?”라는 장면이 최고의 명대사로 꼽히기도 했습니다.

 

코미디언으로 발군(拔群)의 재능을 발휘하면서도 탄탄한 연기력을 갖추고, 훤칠한 외모로 여성들에게도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후 흔한 스캔들한번 일으키지 않는 모범적인 배우이기도 했습니다.

 

그가 또다른 전성기를 열게 된 것은 TV 시대가 시작된 1960년대 이후입니다. 1967년 KBS의 코믹 드라마 '사직골 구서방'의 주연을 맡은 그는 1969년 개국한 MBC의 코미디 프로그램 '웃으면 복이와요'의 간판스타로 시청자들과 만났습니다. 이젠 모두 고인이 되었지만 김희갑과 서영춘, 배삼룡, 곽규석 등 당대 최고의 희극인들과 함께 이름을 날렸습니다.

 

그와 호흡을 맞춘 대표적 인물은 ‘후라이보이’ 곽규석과 ‘비실이’ 배삼룡입니다. 곽규석은 극장 쇼무대에서 즉흥연기로 환상의 호흡을 자랑했고 배삼룡과는 TV코미디에서 찰떡 궁합을 과시했습니다.

 

곽규석은 쇼 진행자로 이름을 날렸는데 영어도 유창했고 성대모사도 뛰어난 MC였지요. 구봉서와 곽규석이 나온 전설적인 TV 광고가 있습니다. 바로 농심라면 광고인데요. 이 광고가 대히트하면서 우리나라 라면시장의 판도가 선두주자였던 삼양라면을 제치고 농심이 1위로 부상한 계기가 되었지요. 농심이전에 롯데 브랜드로 라면이 나올 때는 과자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소비자의 관심을 끌기 힘들었는데 이름을 바꾸고 '형님 먼저, 아무 먼저‘의 우리 민담소재를 코믹하게 차용한 TV 광고를 만든 것이 대히트를 친 것입니다.

 

아래 링크에서 당시 농심 광고를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 라면 그릇을 앞에 놓고 형님(구봉서)과 아우(곽규석)가 서로 먼저 먹으라며 양보하는 척 하다가 아우가 ‘그럼 제가 먼저“ 하니 다시 그릇을 뺏어가려는 구봉서의 연기가 웃음을 터뜨리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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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SLfG1UepWoo

 

 

동갑내기 배삼룡은 둘도 없는 친구였습니다. 1946년 서울 변두리의 한 극장에서 처음 만났다는 두 사람. 이후 군예대에서 한솥밥을 먹었고, 68년 MBC '웃으면 복이 와요'가 전파를 타면서 평생의 동지가 됐다. MBC ‘웃으면 복이와요’를 통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코믹한 장면들을 연출했지요. 2010년 배삼룡이 노환으로 타계했을 때 휠체어를 타고 조문온 구봉서는 방송 인터뷰에서 "저놈(배삼룡)이 죽으면 난 친구도 동기도 누구 하나 남지 않는다" 라며 서럽게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어린 시절 저는 그의 리얼한 바보연기에 실제로 배삼룡의 지능이 좀 떨어지는게 아닌가 생각했을 정도였습니다. ^^

 

배삼룡은 강원도 양구(양구읍 군량리) 출신으로 춘천국민학교를 졸업 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에 있는 니시보츠중학교를 졸업했습니다. 1945년 광복이 되자 귀국하여 악극단 민협에 들어가 희극배우로 활동하게 됐는데요. 한국의 찰리 채플린으로 불리기도 했고 무엇보다 '바보 연기의 원조'로 그를 능가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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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삼룡은 1970년대 중반 TBC와 MBC 예능 담당자들 간의 주먹이 오고가는 스카웃 전쟁까지 일으킬 정도로 대단한 인기를 모았는데, 70년대는 ‘막둥이’ 구봉서 ‘비실이’ 배삼룡 ‘살살이’ 서영춘 코미디 트로이카가 지배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나 1980년 전두환 등 신군부 정권시기에 ‘삼용사와’ 라는 유산균 요구르트 사업을 벌이다 사기를 당해 악덕 기업인의 누명을 쓰고 언론사 통폐합으로 코미디 프로가 저질분야로 매도되면서 자의반타의반 은퇴하게 되었지요.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한동안 살기도 하는 등 중년이후의 삶은 시련(試鍊)과 역경(逆境)이 많았습니다.

 

전두환정권과 삼룡사와 얘기가 나왔으니 ‘땅딸이’ 이기동(李起東)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네요.

 

이기동(1935년 ~ 1987년 4월1일)은 장교 출신의 코미디언입니다. 제대후 그는 당시 최고의 코미디언이었던 구봉서를 찾아가 희극배우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웃으면 복이와요에선 주로 이대성과 미녀 코미디언 권귀옥과 콤비를 이루며 높은 인기를 얻었는데요.

 

본격적인 유행어 탄생은 이기동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 어디론지 가고 싶구나” “꿍따라딱딱 삐약삐약. 닭잡아먹고 삐약삐약..” ‘아 괴롭고 싶구나’ ‘안녕이노모하시므레이까’ 등이 생각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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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기동은 위에 언급한대로 1980년대 신군부의 연예인 정화운동의 여파(餘波)로 TV 출연이 금지되면서 비극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업가로 변신한 그는 자신의 인지도를 활용해 ‘기동사와(삼룡사와와 비슷한 시기였지요)’ ‘땅딸이 요쿠르트’ 등을 생산했지만 부도를 내고 세인의 기억속에 잊혀져갔습니다.

 

그가 다시 뉴스에 나온 것은 1987년 3월 28일 돌연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새벽 밤업소 출연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갑자기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으나 회복하지 못하고 간경화와 당뇨 합병증으로 4월 1일에 사망했습니다. 그의 나이 53세였습니다.

 

1993년 8월 시사뉴스(구 시사정경)는 이기동이 삼청교육대에 끌여가 그 후유증으로 사망했다는 내용을 폭로했습니다. ‘삼청교육이 이기동이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기사에서 배삼룡의 증언을 인용했는데요. 시사뉴스에 따르면 이기동이 삼청교육대에 끌려간 표면적인 이유는 ‘사회에 물의를 일으킨 경제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기동과 배삼룡은 당시 인기를 끌었던 사와(요구르트의 일종)를 만들어 파는 기업을 운영했지만 둘다 경영 부실로 부도를 냈습니다. 배삼룡은 “이는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신군부들의 허울좋은 핑계였다"며 사실은 배삼룡, 이기동이 3김씨 중 김종필의 지지자였기 때문에 삼청교육대에 끌려갔다는 것입니다. 배삼룡은 ”이기동은 삼청교육대에 다녀온 후 정신적인 굴욕감과 울분을 참지 못하고 매일을 술로 지새우며, 결국은 합병증으로 죽어갔다“고 주장했습니다.

 

당시 정권이 얼마나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는지 말해주는 또하나의 일화가 있습니다. 구봉서가 MBC 창사 50주년 특집 라디오 프로그램 'MBC와 나'에 출연해 털어놓은 비화인데요. "(박정희 정권때) 문공부장관의 지시로 TV 코미디 프로그램이 졸지에 없어지는 일이 있었다. 그때 박 대통령을 직접 만나 ‘택시가 사람 하나 치었다고 택시를 없앱니까?’라고 읍소(泣訴)했다. 이에 박 대통령은 ‘누가 없애라고 했어요?’라고 묻고는 “알았다”고 했는데, 이 일이 있은 후 곧바로 코미디 프로그램이 부활됐다고 하는군요.

 

방송 코미디 프로가 사회악도 아니고, 무슨 해를 끼쳤겠습니까. 독재권력을 휘두르는 대통령 앞에서 코미디프로를 택시사고에 비유해 읍소한 구봉서의 고육책(苦肉策)이 안쓰럽기만 합니다.

 

구봉서가 아끼는 후배였던 서영춘도 50대에 아깝게 타계했는데요. 서영춘은 1986년 11월 1일 지병인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본래 술담배를 전혀 못했다고 합니다. 구봉서가 동생같이 아끼던 후배 서영춘을 항상 술자리에 끌고 다니는 바람에 술고래가 되었다는데요. 구봉서는 교회에 나간 이후 이후 술담배를 모두 끊고 건강이 좋지 않은 서영춘을 걱정하여 술담배를 끊으라고 권유했지만 서영춘이 “형님이 나를 이렇게 만들어 놓고 무슨 소리 하는거유!!”라고 화를 냈다고 합니다. 하필 서영춘이 세상을 떠난 다음날인 11월 2일은 구봉서의 환갑날이었습니다. 당시를 회고하는 언론 인터뷰 때 구봉서는 "전날 영춘이가 죽는 바람에 다음날 자식들이 환갑잔치를 열어줬지만 도무지 웃음이 안 나오더라" 고 한숨을 쉬었습니다.

 

1928년 8월 25일, 전라북도 임실에서 태어난 서영춘은 슬랩스틱 코미디와 함께 무대위에서 애들립에 관한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고 합니다. 특히 60년대부터 1970년대 후반까지 극장식 패키지쇼로 진행된 서영춘쇼는 가는 곳마다 히트를 쳤는데요. 아마 그가 오래 살았다면 당대의 희극황제를 놓고 구봉서와 일합을 겨뤘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서영춘 타계후 그의 자녀들도 대를 이었는데 아들 서동균과 딸 서현선이 그 주인공입니다. 너무 잘생긴 탓이었을까요. 두 사람은 코미디언으로선 큰 인기를 끌지 못했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이들을 통해 서영춘을 회고할 수 있었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전해지는 여담(餘談)입니다. 서영춘이 병원에 입원했을때 후배 코미디언 최병서가 문병을 왔습니다. 어떻게 지내냐고 안부를 묻자 최병서가 무심코 "죽지 못해 삽니다"라고 대답했다는군요. 그러자 서영춘 왈, "너는 죽지 못해 사냐? 나는 살지 못해 죽는다." 한번 코미디언은 영원한 코미디언이 아닌가 합니다.

 

이처럼 대중들에게 웃음을 안겨주는 코미디언들이지만 대체로 그들의 노년 삶은 불우한적이 많았습니다. 지금은 좀 낫지만 코미디에 대한 편견도 작용하고 전성기가 지나면 그들이 설 무대가 쉽게 사라지기때문이지요.

 

그런 점에서 1세대 코미디언의 마지막 주자 송해는 장년의 많은 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안겨주고 있습니다. 올해 나이 90세. 구봉서보다 한 살 적은 그가 아직도 전국노래자랑 사회를 보면서 왕성하게 현역 활동을 하는 모습은 참으로 보기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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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진대로 송해는 외아들이 대학 2년때 오토바이 사고로 숨지는 가슴아픈 사연이 있습니다. 당시 그는 방황속에 병원 신세도 6개월을 졌는데요. 바로 그때 그를 붙잡아준 건 희극인 선배들이라고 회고했습니다.

 

“어느날 홀쭉이(양석천) 뚱뚱이(양훈) 배삼룡, 구봉서 형이 병문안을 왔어요. 구봉서 형이 장난스럽게 '야, 왜 여기에 누워있어? 이 좋은 날 들고 뛰어도 모자란데 왜 누워있어'라고 하더라구요. 그 소리에 몇 개월 만에 웃고 말았어요. 이제 힘을 내야겠구나 싶었지요.”

 

구봉서는 생전에 23일 KBS1 인순이의 토크드라마 ‘그대가 꽃’에 출연해 배삼룡과의 우정을 들려줬는데요. 미국에서 돌아온 배삼룡이 70살 되던 해 무대도 없이 코미디를 하겠다고 돌아다니는 걸 두고 볼 수 없어 ‘빅쇼’ 무대에 함께 서기도 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말년에 친구가 힘들게 투병생활을 할 때는 병원을 찾아와 자신의 아픔처럼 같이 했고 가족들을 위로했습니다. 해방후 70년간 수많은 사람들에게 웃음과 희망을 선사해준 故 구봉서 선생님의 영면(永眠)을 빕니다.

 

고인이 마지막으로 출연한 2014년 ‘아침마당’ 유투브 링크 첨부합니다. 아흔 가까운 나이에도 위트와 유머로 좌중을 휘어잡는 구봉서 선생님의 모습,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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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yffvYfpq1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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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wsroh=장호준 칼럼니스트         잊지 말자고 커네티컷 주립대학 비지팅 센터 앞에 있는 커다란 바위 위에 Rock Painting 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금년 2018년, 세월호 참사 4 주기에는 눈비가 왔습니다. 바위가 젖어 페인팅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

    매년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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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교칼럼] (서울=코리아위클리) 최태선 목사(하늘밭교회) = 남편이 5년 동안 암으로 투병하다 세상을 떠난 집사님이 있었습니다. 그 집사님에게 딸 둘과 막내인 아들이 하나 있었습니다. 남편이 죽은 후 집사님은 호프집을 운영하여 겨우겨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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