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살아온 이야기] 북녘 학창시절을 그리며

 

(올랜도=코리아위클리) 이희호 = 얼마전 한국 텔레비전에서 40여년 동안 함께 기차 통학을 한 7명의 60대 남성들이 같이 모여 지난 학창시절을 회상하며 대담을 나누는 광경을 보았다.

 

나도 70여년 전 북한의 서안도시인 진남포(지금 남포)에서 고생하며 학교 다니던 광경이 떠올랐다.

 

북한 공산 정권하에서 집에서 학교까지 왕복 60리(24km)를 매일 동네 친구 두명과 같이 동행했다. 어머님은 새벽 잠도 제대로 주무시지 못하고 자식에게 더운 밥을 먹여 학교에 보내려고 고생을 하셨다. 아침 10리(4km)쯤 가야 해가 떴으니 새벽밥을 먹을 수 밖에 없었다.

 

고등학교에서 매일 오후 6∼7시까지는 군사훈련(인민군 장교 3명dl 파견됨)이 있었고, 친구 두 명 중에 누가 청소 당번이 되면 같이 도와 일을 서둘러 끝내기도 했으나 집에 오면 밤 9시가 보통이었다.

 

일요일은 근로봉사라고 해서 진남포 제련소(당시 동양에서 제일 큰 제련소였음)에 가서 금제련용 광석을 용광로로 운반하는 작업을 하고 나면 녹초가 되어 집에 돌아오곤 했다.

 

고구마 철에는 집에서 큰 고구마 5개를 갖고 나가 고구마 굽는 집에 맞기고 돌아올 때는 친구와 나누어 먹을 수 있었다. 여름철에는 우리 고장 집집마다 과수원이 있어서 학교 갈 때 사과 몇 개를 따서 등교길 길가의 쑥밭에 감추어 놓았다가 하교길에 찾아 먹곤 했다.

 

우리 고장은 해안 도시라 바람이 심해 겨울에는 목도리로 눈만 내놓고 감싸고 가야 했다. 바람이 유별나게 심하고 추운 날에는 바로 서서 걸어 갈 수 없어서 몸을 비틀고 가야 했으며 입술 근처 목도리에는 고드름이 생기곤 했다.

 

전쟁 전에 이미 학생들은 군사훈련을 받았는데 야외훈련시에는 학교 근방의 과수원을 지나는 경우 사과를 따먹고, 어떤 날은 늦게 야외 훈련하면 도망쳐 집으로 가는 학생들도 있었다.

 

그러면 다음 날 인민군 장교 교관은 학생들을 두 줄로 마주보게 세워놓고 서로 뺨을 때리게 했는데, 우리는 상대 학생을 세게 때리는 척하면서 적당히 봐주며 때렸다. 교관이 직접 학생들을 때리지 못했는데, 지금 한국에서 교사들이 학생을 체벌하지 못하게 하는 것처럼 그 당시 교관들은 학생들을 직접 때리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그 대신 잘못을 저지른 학생은 자아 비판을 시키고, 이것도 세 번 이상 하게 되면 그때는 강제 수용소로 끌려 가게 되어 있었다.

 

우리 학교는 시내에서 6Km 정도 떨어져 있어 방과 후에는 일제히 몰려 나오며 학교 앞을 지나가는 트럭이 오면 결사적으로 트럭에 올랐다. 위험을 감지한 운전수는 아예 정문 앞에 차를 세워 학생들을 태우고 가곤 했다.

 

6.25가 발발한 후 학생들을 강제로 트럭에 태워 인민군에 끌고 갈 때 학생들은 트럭에 뛰어 오르고 뛰어 내렸던 경험으로 도망쳐서 숨었다. 나도 숨었는데 관할 지서에서 아들을 찾아내라며 어머님을 붙잡아다 3일이 돼도 석방해 주지 않아 부득이 자수해서 평양까지 붙잡혀 갔다.

 

나는 그곳에서도 도망쳤으나 집에 숨어 있을 수는 없어 10리나 떨어져 있던 누님 집에서 숨어 지내다 유엔군의 북진으로 자유의 몸이 됐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대규모의 중공군이 남진하는 바람에 유엔군이 후퇴하게 되자 나는 부모님과 생이별하고 단신 남하해 한국군에 입대했다. 휴전 직전에는 강원도 김성의 최전방에서 중공군의 직사포 피습을 받아 옆에 있던 전우는 죽고 나는 살아 남았다.

 

당시 같은 동네에서 같은 학교를 다니던 친구 한 명은 전쟁시 반공 삐라를 전신주에 붙이다 붙잡혀 인민군에 끌려갔고, 또 다른 친구는 숨어 있다 붙잡혀 인민군에 끌려갔는데 이들의 생사를 나는 알지 못한다.

 

누구에게나 학창시절 친구들은 참 소중하고 나이 먹어서도 서로 만나거나 연락을 취하며 동병상련을 나눈다. 이에 비하면 나는 그 시절을 서로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이 없다. 전쟁과 분단은 참으로 오래도록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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