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무덤 2차 조국순례기

 

 

Newsroh=장기풍 칼럼니스트

 

 

완도로 향하는 배 옆자리에 앉은 예비군복 차림의 중년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양쪽 어깨에 파란 지휘관 견장이 있었다. 청산면 예비군 중대장인데 청산도와 인근 여러 섬의 예비군훈련을 맡고 있다고 한다. 회의참석차 완도에 가는 길이라고 했다. 그는 나의 여행에 호기심을 가지고 물으면서 그 연세에 대단하다고 놀라워했다. 다음 행선지가 보길도라고 하니 가는 길을 자세히 알려주었다. 완도항에서 출항하는 것이 아니라 버스터미널에서 화흥포 가는 버스를 타고 화흥포에서 노화도 동천항 배를 타고 동천항에서 버스타면 보길대교를 지나 보길도에 간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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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에서 보길도 가는 배에서

 

 

그는 완도항에 도착하자 자동차를 싣고 왔다며 나를 버스터미널까지 태워주겠다고 했다. 이래서 길에서 사람사귀는 재미가 쏠쏠한 것이다. 버스터미널에서는 화흥포까지 농협이 운영하는 직행버스가 5백원에 승객들을 태우고 있었다. 화흥포에서 동천항 배는 버스시간에 맞춰 자주 있었다. 선미에서 바다경치를 즐기고 있는데 나보다는 훨씬 늙은 노인이 말을 걸어 왔다. 흰수염에 지팡이 짚고 배낭 매고 벙거지 쓴 나의 행색이 눈길을 끄는지 초면의 사람들이 곧잘 말을 걸어온다.

 

두 번에 걸친 배낭여행에서 늘 느끼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내면에 외로움을 가득 안고 사는 것 같았다. 한가한 사람은 한가한 사람대로 바쁜 생활에 쫓기는 사람들도 역시 그들대로 내면의 고독(孤獨)을 느끼는 것 같았다. 84세 노인은 초면인 나에게 자신의 인생역경을 줄줄이 털어놓았다. 경험상으로 이런 경우에는 간간히 추임새를 넣어주며 진지하게 들어만 주면 된다. 이 노인도 과거 큰 사업체를 운영하다 정치에 휘말리고 사기를 당해 전 재산을 잃고 사기꾼으로까지 몰렸으나 최근 ‘좋은 검사‘의 도움으로 재판에 승소해 거액의 재산을 되찾았다는 것이다. 그동안 보길도에 은거(隱居)하면서 재기를 노렸는데 내일 서울로 올라간다고 했다. 그는 되찾은 재산을 ’똑똑한 며느리‘에게 맡겨 평생소원인 강원도 고성에 한옥호텔을 지을 것이라고 했다. 이미 건축허가까지 받았다며 초면인 나에게 호텔도면과 허가증까지 보여주며 설명했다. 나는 좀 지루했지만 영감님 소원이 이루어지기 바라겠다고 대답했다. 그는 내년 호텔이 완공되면 꼭 찾아달라며 명함을 건네주었다. 흥미 없는 이야기였지만 참고 들어주는 수밖에 없었다. 노화도 동천항에 도착하자 이번에는 보길도행 버스가 승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노인은 이제 노화도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노화도는 큰 섬이다. 그보다 5800 명 인구에 자가용이 2천대가 훨씬 넘으며 그랜저를 비롯해 에쿠스 체어맨 제네시스 등 고급 승용차는 물론 벤츠 링컨콘티넨털 등 외제차량도 수십 대에 이르고 골프연습장과 실내연습장이 여러 개 있어 골프인구도 수백 명이 넘는다고 한다. 대한민국 섬 중 가장 부자 섬이다. 버스에서 바라보는 섬 마을에는 담장으로 둘러싸인 고급주택들도 많이 눈에 뜨였다. 노화도 2600 가구 중 연간 순소득 1억 이상이 6백 가구가 넘는다고 한다. 나는 노인의 설명에 마치 보물섬에 온 것 같은 호기심이 일어났다. “아, 우리 조국 대한민국 외딴 섬 마을도 이제 잘 살게 되었나보다.”

 

나는 예정에 없이 보길도가 마주보이는 노화읍에서 내렸다. 보길도까지는 보길대교를 걸어갈 심산이었다. 도서지방 답지 않게 번화한 거리가 길게 뻗어 있었다. 1.5km는 될 것 같다. 거리에는 육지와 다름없는 유흥가와 노래방 다방 고급양품점 등이 즐비했다. 해변에는 횟집과 음식점들이 늘어서 있다. 규모는 도회지에 비할 수 없겠지만 섬 마을치고는 대단했다. 변두리에는 고등학교까지 있었다. 노화면 도서관도 현대식으로 세워져 있었다. 나는 말상대를 찾으러 해변을 어슬렁거렸다. 하릴없이 담배 태우고 있는 중늙은이에게 말을 붙였다. 슬슬 잡담처럼 시작해 본격적으로 궁금한 것을 묻기 시작했다. 그도 내가 멀리서 온 여행객이라는 것을 알고는 막힘없이 술술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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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의 섬'으로 불리는 노화도

 

 

노화도는 김 양식이 주업이었는데 경기가 나빠지자 주민들이 80년대 초 처음 전복양식을 시도했다. 처음에는 씨전복이 폐사하는 등 실패를 거듭했지만 차츰 성공률이 높아지면서 전복양식은 그야말로 주민들에게 횡재(橫財)를 안겨주었다. 한때 전국의 70%를 노화도에서 출하했다. 전복양식도 부익부빈익빈(富益富貧益貧)으로 부자들은 수백 칸 가두리(양식 칸막이)를 운영하며 큰돈을 벌지만 가난한 사람은 양식장 노동으로 연명하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 전복양식은 거문도 흑산도 청산도 등 남해안 대부분 도서(島嶼)에 확산되어 갈수록 경쟁이 심해 수입이 예전보다 못하다고 했다. 노화도 주민 3분의1 이상이 전복양식에 종사한다고 한다. 그는 주민들 소득이 높아지자 육지로 떠났던 젊은이들이 돌아오기 시작해 이제는 3개 초등학교에 약 3백 명 학생이 있고 중학교는 물론 고등학교까지 있다고 했다. 모르긴 해도 남해안 섬들 중 가장 젊은 섬일 것이라고 했다.

 

나는 설명을 들으며 이곳 뿐 아니라 청산도 흑산도 등 남해안 섬 주민들이 비교적 여유 있게 사는 것이 이해되었다. 반갑고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배에서 만난 노인이 보길도 해변식당 앞에서 기다리겠노라고 했던 말이 떠올라 그 사람과 작별하고 보길대교로 향하는데 작은 트럭이 멈추며 행선지를 묻는다. 보길도라고 하니 자기도 보길도 간다며 타라고 한다. 다리가 불편한 나로서는 감사한 일이다. 배낭여행하다 보면 도처에 친절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이제 ‘부자의 섬 노화도’를 거쳐 고산 윤선도 ‘선비의 섬’ 보길도로 가는 것이다.

 

 

<계속>

 

 

 

*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빈무덤의 배낭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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