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뉴스로 이계선 칼럼니스트

 

 

“와! 돌섬의 하얀파도가 우리를 덮치러 달려오고 있어요. 아름다워요.”

 

정숙집사가 소녀시절처럼 소리쳤다.

 

지난주일 돌섬통신의 독자 김정숙이 돌섬(파라커웨이)을 찾았다. 60넘은 할머니세대이건만 수줍은 생각이 들었나보다. 용감활달한 동료집사 은정희를 앞세우고 왔다.

 

‘주일예배를 마치고 전철로 오느라 시골할머니들의 봄나들이처럼 지루하겠구나.’

 

아침부터 비가 내려 돌섬은 비내리는 호남선처럼 흐려있었다. 그런데 마중 나가보니 이게 웬일? 경포대해수욕장을 찾은 2명의 아가씨들이 웃고 있었다.

 

“아니, 60넘은 할머니는 어디가고 미녀여대생들이야?”

 

“돌섬에 젊어지는 샘이 있어 오자마자 젊고 아릿다운 미녀가 된 모양이지요..”

 

“하하하하 호호호호”

 

한바탕 웃고 나니 돌섬이 맑아졌다. 아파트로 올라가기 전에 조각밭구경이다. 돌섬관광 제1코스는 김정은식(?) 농장견학이기 때문이다. 에덴농장에서는 마늘이 기고만장(氣高萬丈)으로 쑥쑥 올라오고. 에덴의 동쪽 아리랑농장은 도라지와 더덕으로 그린필드. 그것 말고도 상추 쑥갓 열무 참외 호박 가지 고추 도마도 수박 미나리 우엉 케일 파 옥수수 고구마가 자라고 있다. 에덴 30평 아리랑 10평. 두 개를 합쳐봐야 부처님손바닥만 한데 그래도 종합농장(?)이다.

 

“두개의 조각농장이 화원처럼 아름다워요.”

 

식사후 커피를 마시면서 조영남 조용갑의 노래감상. 돌섬관광의 필수코스다.

 

“돌섬 90가에 Country house가 있어요. 파도타기(Surfing board)하는 보드를 빌려주는 곳인데 여름주말에는 카페로 열어요. 어제 토요일이라 가봤더니 해수욕장을 찾은 젊은이들로 가득찼더라구. 젊은열기를 뜨겁게 발산하라고 일부러 에어컨이 없는게 인상적이야. 미국젊은이들이 좋아하는 ‘파라커웨이 맥주’의 본고장이 바로 우리동내라구. 돌섬별미 파라커웨이맥주와 타코를 들면서 흔들고 떠들고 야단들이지. 대화가 아니라 소리를 지르는거야. 아하, 저게 바로 젊은이들의 대화라구나! 노인은 우리부부뿐인데 우리를 70노인으로 보는 이가 없어요. 우리부부도 소리치다가 그만 기분이 젊어져 버렸으니까. 정숙이가 찾고 싶어하는 돌섬의 젊어지는 샘이 바로 거기야. 돌섬은 고담준론(高談峻論)을 나누고 명상하는 심산유곡의 절간이 아니야. 맨발로 모래위를 뛰어다니고 소리치고 뒹굴다가 파도에 뛰어들어 물에 빠진 생쥐가 돼보는 곳이지.”

 

“지금 컨추리 하우스에 가보고 싶어요. 셔핑보드는 할줄 모르지만 돌섬명물 ‘파라커웨이 맥주’를 마시면서 맘껏 소리를 질러보고 싶군요.”

 

“오늘은 비가 온 후라 날씨가 서늘하여 소리가 잘 안 질러질껄. 다음에 더울 때 가요. 대신 오늘은 맨발로 비치를 걸으면서 파도를 향해 소리치러 가자구.”

 

바다로 가자 바다로 가자. 남쪽으로 걸어서 10분 거리에 바다가 있다. 우리는 연인들처럼 일부러 숲속길을 찾아 돌아 걸었다. 바람결에 갈매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보드워크로 올라서니 바다가 밀려오고 있었다. 정숙이가 소녀처럼 외쳤다.

 

“와! 돌섬의 하얀파도가 우리를 덮치러 달려오고 있어요. 아름다워요.”

 

푸른산맥으로 달려오던 파도가 갑자기 하얀 태백산맥으로 높아졌다. 우리는 신발을 벗어들고 맨발로 파도를 향해 달려갔다. 손에 잡힐듯 달려오던 파도가 몇 발자국 앞에서 갑자기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는 하얀거품을 한마당씩 뿌려놓고 유유히 사라져 가버렸다. 아쉬워하고 있으면 다시 밀려오는 푸른파도. 붙잡으려 달려가면 하얀 거품을 만들어 놓고는 다시 사라져 가버리는 파도....

 

어디 그게 파도뿐이랴! 사랑이 그랬고 성공이 그랬고 인생이 그랬다. 얼마나 많은 사랑이 내 젊은날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그리움만 남겨두고 가버렸던가! 얼마나 많은 성공기회가 파랗게 몰려왔다가 아쉬움만 하얗게 남겨두고 가버렸던가!

 

시골출신인 내가 그렇거늘 도시미인 정숙이와 정희는 오죽할까? 우리는 파도가 남기고 간 하얀물거품을 맨발로 밟으면서 뛰어다녔다. 고향시절의 어린애들처럼 즐겁다. 그러나 속은 그리움에 젖어있었다. 인생 70이 되고 보니 좋은건 모두 가버리고 남은건 그리움뿐이다. 우리는 파도를 향해 소리질러 외쳤다. 그건 청마 유치환의 “그리움” 비슷한 감정이었다. 청마는 파도앞에서 이렇게 “그리움”을 노래했었지!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물같이 까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

 

돌섬의 하얀 파도.jpg

돌섬의 하얀 파도

 

 

정숙이는 왼쪽에서, 정희는 오른쪽에서 내손을 꼭 잡았다. 난 보행이 무거운 파킨슨 환자라서 여인의 손을 잡아도 죄가 안 된다. 두여인도 마찬가지. 정숙이는 노인환자를 간병하는 홈케어자격증이 있다. 정희는 어린애를 돌보는 베이비시터출신이고. 두여인은 나를 노인환자와 어린애로 취급한게 틀림없다. 그러나 나는 행복했다. 화담서경덕이 황진이와 제주도 유람을 즐기는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미녀들과 맨발로 걷는 돌섬낭만이 어찌 황진이의 제주도 풍류만 못하랴!

 

두여인이 돌섬을 다녀간 후부터 나는 밭에 들어갈적 마다 맨발이다. 두여인이 그리워서가 아니다. 두여인과 비치를 걸으면서 맨발로 걷는게 최고의 자연치료가 될거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흙을 밟을 때마다 발바닥을 타고 올라오는 대지(大地)의 기운(氣運)이 몸으로 느껴졌다. 모래위를 굴러다니는 하얀 물거품보다 비료와 거름이 석여있는 농장흙이 영양가가 더 많겠지? 아내가 말렸다.

 

“여보, 맨발은 바닷가 모래밭에서 미녀들과 걸으면서 밟는거야요. 비료와 거름이 섞여있는 더러운 농장흙을 맨발로 밟다가는 독이 올라 병이 생긴다구요!"

 

“아니야, 거름이 잔뜩 섞인 농장 흙이야 말로 영양덩어리 보약덩어리요. 당신도 신벗고 들어와 맨발로 밟으면서 같이 일 하자구요.”

 

아내도 신발을 벗고 맨발로 들어섰다. 돌섬을 다녀간 미녀들보다 늙은 아내가 훨씬 이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부터 우리부부는 맨발의 청춘이다.

 

 

* 글쓴이 등촌 이계선목사(6285959@hanmail.net)는 광야신인문학상 단편소설로 등단했다. 목회 은퇴후 뉴욕 Far Rockaway에서 ‘돌섬통신’을 쓰며 소일하고 있다. 저서 ‘멀고먼 알라바마’외 다수. 글로벌웹진 뉴스로(www.newsroh.com)에 '등촌의 사랑방이야기'를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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