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의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92

 

 

Newsroh=강명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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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라톤이 마냥 고통의 연속으로 알고 측은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막에도 오아시스가 있듯이 나의 마라톤에도 오아시스처럼 청량하고 달콤한 시간들이 있다. 그러니 지나치게 측은해 할 필요도, 부러워 할 필요도, 여행자에게 지나친 도덕적 잣대를 가져다 댈 필요도 없다.

 

내가 달리고 있는 유라시아 대륙 북위 40도 부근에는 세계에서 유명한 사막들이 모여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사막대(沙漠帶) 곳곳에 오아시스 도시가 산재해 있는데, 그것을 연결하여 동서를 이은 길이 바로 ‘오아시스로’이며 실크로드이다. 이런 거친 사막과 초원지대를 6개월 이상 달리고 있다. 그래도 적응(適應)이 안 되서 아침마다 새로운 행성을 달리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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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옛날 캐러밴들이 낙타를 몰고 사막을 지나다 길을 잃거나 실성하게 되는 것은 단조로운 광경이나 뜨거운 태양에 인지능력을 상실해서만은 아니다. 광대무량한 평원에서 텅 빈 느낌이 무서움과 외로움에 어떤 커다란 충격을 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곳에서 육체적인 고통은 차라리 아무 것도 아닐 수도 있다. 나무꾼들이 선녀를 꿈꾸는 것보다 더 간절하게 이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사는 목동들에게 선녀는 더 간절한 현실의 도피처인지도 모른다. 이런 곳을 오래 달리는 나도 우렁각시를 꿈꾸며 상상하는 것이 단조로운 생활을 이겨내는 힘이 되기도 한다.

 

오늘도 공안들과 씨름 끝에 60km 구간을 잘라먹게 되었다. 한땀한땀 정성스레 땀방울로 수 놓아가던 유라시아 평화벨트가 자꾸 누더기 되었다. 속상해하며 ‘창기’라는 도시 시내를 달리고 있을 때였다. 옆으로 지나가던 하얀 승용차 창문이 열리더니 물병이 하나 건네진다. 물병은 하얀 손에 쥐어져 있었다. 본능적으로 승용차 안 하얀 손의 주인에게로 시선이 갔다.

 

우렁이 같이 생긴 하얀 승용차 안에는 달덩이 같이 하얗고 둥근 얼굴에 미소 띤 얼굴이 보였다. 그 반달 같은 눈동자와 마주치는 순간 내 가슴은 하얗게 멈추어버렸다. 황량한 벌판을 끝없이 달리면서 거의 실성하기 직전에 상상 속에서 보았음직한 미모의 여인이었다. 나는 잠시 정신이 나간 것 같아 방금 전에 건네준 찬물을 벌컥벌컥 마셔버렸다. 그래도 정신이 안 들어 어리버리하고 있는데 그녀는 우렁이 껍질 같은 차에서 내려 다가와 “짜요(加油)!”하면서 중국어로 무어라 말하는데 정신이 바짝 들어있어도 알아듣지 못할 건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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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어로 한국 사람이라고 말하고, 나는 네덜란드에서 출발하여 여기까지 뛰어왔다고 말했다. 그 순간 그녀 표정도 어리버리해졌는데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그녀도 잠시 넋이 빠졌던 건 사실인 것 같다. 그녀도 나보다 훨씬 빠르게 정신을 수습하더니 휴대폰 번역기에다 “당신은 정말 멋있어요.”를 써서 보여주고는 자신도 마라토너라며 휴대폰 안에 마라톤 사진과 메달을 보여준다. 그리고는 사진을 같이 찍자고 한다. 사진을 찍으면서 살짝 팔짱을 끼는데 그 부드러운 느낌은 땀을 뻘뻘 흘리며 달릴 때 불어오는 사막의 산들바람보다도 더 시원하고 아련하였다.

 

“오늘 어디까지 달려가세요?” 물었고 “우루무치까지 달려가 거기서 잔다.”고 답했다. 그녀는 “오늘 저녁은 제가 초대하겠어요.” “감사합니다.” 약속시간이 다 되어 그녀에게서 마라톤을 좋아하는 친구하고 같이 가도 좋으냐고 메시지가 왔다. 호텔 근처 아늑한 식당에 자리를 잡아 음식을 주문하고 맥주도 몇 병 주문했다. 샨산은 한족(漢族)이며 아까 길거리에서 만난 여성이고 플라워 아티스트라고 했고, 도도는 휘족(回族)이며 영어 선생이라고 했다.

 

그녀들에게는 삼장법사 서유기 수준의 나의 마라톤이야기가 이야기 주제였다. 그녀들 마라톤 이야기도 내가 들어주고, 내가 달리는 이유가 하나의 한국을 위해서기도 하다고 하자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최근 제일 큰 뉴스인 남북회담 이야기까지 이어졌다. 도도는 김정은 위원장이 남쪽 분계선을 넘어왔다가 문 대통령 손을 잡고 다시 북쪽 경계선을 넘어갈 때 왠지 모르게 울컥했다고 말했다. 그 소리를 듣는 내 가슴도 왠지 울컥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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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량한 사막을 달리다 오아시스처럼 나타나 밥을 사주고 시간을 내어 같이 밥을 먹어주는 우렁각시들과의 시간은 설명할 필요가 없는 평화의 시간이다. 오랜 기간 홀로 달리려면 많은 결핍(缺乏)을 강요당하고 또 스스로 알아서 그것을 감내(堪耐)해야 한다. 사실 스치는 여인의 살결이 내게 평화였다고 고백하는 것도 용기가 필요했다. 아름다운 여인들과 같이 식사를 하며 손을 맞잡고 사진을 찍으며 오고가던 나의 미묘한 감정의 교류를 고백하는 것이 용기가 필요했다는 말이다.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이제는 내게 쏠려있고 그 시선들의 각도는 시각장애인 코끼리 만지기나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혹시 모르는 불쾌해하는 시선들 앞에서 나의 미묘한 인간적인 감정은 존중받고 싶다.

 

평화통일 관점에서만 나의 마라톤을 바라보는 사람은 오롯이 개인적인 욕망과 삶을 다 내려놓고 내게 광야의 초인이 되기를 요구한다. 또 마라톤 관점에서 바라보는 이들은 평화통일의 구호 같은 정치적인 것 다 내려놓고 열심히 달려서 그저 인간한계에 도전하는 모습만 보고 싶어 한다. 나를 단순히 여행자 관점에서 주목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모든 걸 다 내려놓고 자유롭게 훨훨 날아다니는 용기에 박수를 칠뿐이다.

 

나는 여러 번 반복해서 고백해왔듯이 이번 여행은 여러 가지 복합적 의미가 있는 것이다. 지금 분명히 우리 역사에 광야의 초인이 필요한 건 사실이지만 나는 그럴 위인도 아니고 그런 허울 좋은 울타리에 스스로 틀어박히고 싶지도 않다. 내가 되고 싶은 것은 광야의 초인이 아니라 사랑에 울고 웃어가면서 때론 거친 모험의 바다에 뛰어들기도 하고, 그 속에서 얻어지는 진주 같은 평화의 결정체를 얻는 사람이다.

 

만인을 아우르려면 인간 내면의 깊은 본성까지 도달하는 울림을 줘야한다.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것은 이런 인간적 고뇌와 갈등 너머에서 얻어지는 소중한 평화이다. 그저 초인처럼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가뿐하게 유라시아를 달려와 “나는 조국의 평화통일을 위해 목숨 걸고 달려왔노라!”고 떠벌리는 영웅이 되고 싶지 않다. 다만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다면 나 같은 소시민도 마음먹기에 따라서 큰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제 유라시아 경계(境界)를 넘나드는 유라시아 시민 1호가 되었다. 유라시아의 경계를 넘나들며 사랑하고 여행하고 모험하며 평화를 이루는 ‘유라시아시민 되기 운동’에 앞장서고 싶을 뿐이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강명구의 마라톤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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