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LA=코리아위클리) 최태선 목사(어지니교회) = 아주 오래 전 감비아 선교사였던 어떤 분의 설교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설교에서 그분은 한 인본주의자의 예를 들며 그리스도인이 인본주의자보다 못해서야 되겠느냐고 반문했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네덜란드에서 태어난 한 여인이 자신은 좋은 나라에서 태어나 아주 많은 혜택을 누리고 살았다며 자신의 그런 행운을 혜택을 받지 못한 사람들과 나누고자 감비아에 와 헌신적으로 감비아 사람들을 섬기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녀가 얼마나 희생적으로 감비아 사람들을 돌보는지를 이야기하면서, 예수를 믿지 않는 인본주의자도 그렇게 헌신적으로 사는데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그만 못해서야 쓰겠느냐는 도전의 질문을 던졌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분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 역시 그분의 설교를 듣고 많은 도전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을 해보면, 그분의 마음에는 믿지 않는 사람들, 특히 인본주의자에 대한 무시와 경멸이 담겨 있습니다. 그분은 단지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분발의 촉구였다고 하겠지만 그분이 하는 이야기를 인본주의자들이 들었다면 매우 불쾌했을 것입니다.
그분의 무의식 속에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우월감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우월감을 당연한 것으로 여깁니다. 오히려 그런 우월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월감은 타살 행위이고 열등감은 자살 행위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섬김은 그런 우월감에서 나오는 자선이나 시혜 같은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월감은 교만함이며 무례함입니다. 우월감은 폭력이 되어 상대방의 마음에 상처를 남깁니다. 하지만 성서가 말하고 있듯이 사랑은 교만하지 않고 무례히 행치도 않습니다.
자신이 받았던 많은 혜택을 감사하는 인본주의자가 은혜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그리스도인들보다 낫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것일까요? 그 정확한 대답은 우리가 할 것이 아니라 섬김을 받았던 감비아 사람들에게 물어야 할 것입니다.
우월감의 역사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 없이 모두가 그런 우월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우월감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선교 역사에서 그것은 두드러집니다. 남미 선교와 인디언 선교는 물론 최근의 우리나라의 선교 역시 모두가 문화적으로 우월한 힘을 가진 자들의 선교였습니다. 그들은 모두 약자를 섬기고, 약자들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사명의식을 가졌지만 그들의 복음을 전하는 방식은 세상의 방식을 따르고 하나님 나라의 방식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물론 선교사들의 숭고한 정신과 희생의 삶을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하지만 기독교가 선교에 나서기 오래 전에 이미 기독교 자체가 변질되었습니다. 313년 밀라노 칙령으로 신앙의 자유를 갖게 된 기독교는 '부'라는 전혀 다른 적이 기독교 안에 들어오게 되었다는 사실을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일은 기독교 역사의 모든 것을 바꾸고 왜곡하는 결정적인 타락의 시작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부'는 평화의 나라인 하나님 나라에 폭력을 자리매김하게 하는 결정적인 '헤롯의 누룩'이었습니다.
'부'는 차별을 당연시 여기게 함으로써 개인주의를 조장하고 동시에 하나님의 정의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평등을 완전히 잠식하였습니다. 초기 교부들은 그러한 기독교의 부패와 타락을 예민하게 알아차렸습니다. 그래서 크리소스톰 같은 이는 부자들을 향해 그들이 가지고 있는 부가 가난한 자들의 것을 약탈한 것이며, 그러한 부를 세습하는 것 역시 도둑질이라고 질타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미 '부'가 주는 달콤한 쾌락을 알게 된 그리스도인들에게 그의 질타는 듣기 싫은 잔소리가 되었고, 그런 말을 하는 크리소스톰이 오히려 주교의 자격을 박탈당하고 맨발로 유배지로 가던 비가 오는 어느 날 길에서 죽고 맙니다.
그렇게, 아무도 제 재물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없고 모든 물건을 통용하고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재물을 나눔으로써 아무도 핍절하지 않았던 초기교회 공동체는 그 이후로 밤하늘의 별처럼 불가능한 이상의 세계가 되고 말았습니다. 핍절한 사람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의 나라인 하나님 나라는 복음의 중심에서 멀어져 피안의 세계로 사라지고, 교회는 부유한 자들이 행세하는 세상의 일부가 되고 말았습니다. 결과적으로 '부'는 하나님의 축복의 대명사가 되었고, 부자들은 우월감을 가지고 가난한 자들을 무시하고 폄하하게 되었고 기득권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 보수주의자
그러한 기독교 전통이 한국교회에도 전해진 것은 물론입니다. 많은 개신교 신자들이 종교개혁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지만, 실상 종교개혁은 밀라노 칙령 이후 시작된 교회 타락의 근본적인 이유를 건드리지는 못한 그 시대의 개혁이었고, 총체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면 피상적인 개혁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오늘날 교회를 바라보며 희망을 느끼는 사람은 아주 예외적인 이상한 사람일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욕망의 썩은 냄새가 풀풀 나는 시궁창이 되었습니다. 정연경 교수는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강연에서 그것을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한국교회는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지점을 지난 지 오래되었다. 한국교회는 더 심한 상황을 보이다 소멸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구조할 수 없는 타이타닉과 같다."
교회가 이 지경이 된 것은 보다 근본적으로 기독교가 우월감을 가진 종교가 되어 본질로부터 멀어졌기 때문입니다. 기독교가 '부'든 지식이든 많이 가진 자가 기득권자가 되어 자신보다 못한 이들을 좌지우지하는 세상의 방식이 지배하는 곳이 된 것입니다.
그 사실은 최근 태극기 집회를 통해서도 생생하게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보수의 기치를 내걸고 폭력의 길을 치닫는 태극기 집회의 한 복판에 십자가가 있었습니다. 대형교회들의 카톡방에는 태극기 집회를 지지하는 글들이 넘쳐났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스스로 자신이 보수주의자임을 만천하에 공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보수주의(保守主義, Conservatism)는 관습적인 전통 가치를 옹호하고, 기존 사회 체제의 유지와 안정적인 발전을 추구하는 정치 이념을 말한다."
보수주의의 사전적 정의입니다. 얼핏 보면 그리스도인들이 보수주의자인 것이 하등 이상해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신앙의 자유와 함께 '부'가 교회 안에 자리한 후 변하고 왜곡된 복음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일반화되었는가를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복음이 무엇인지를 안다면 그리스도인들이 보수주의자를 자처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이 교회 안과 밖에서 기득권자들이 되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복음은 그리스도인들이 기득권자로 존재할 수 없음을 말해줄 뿐만 아니라 우월감 역시 가질 수 없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보수주의자란 말은 최순실이 애국자라는 말과 같습니다.
예수의 사명선언문
"주님의 영이 내게 내리셨다. 주님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셔서, 가난한 사람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셔서, 포로 된 사람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고, 눈먼 사람들에게 눈 뜸을 선포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풀어 주고, 주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눅 4:18-19)
예수님은 이사야서에서 인용한 이 말씀을 통해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을 하는지, 다시 말해 자신의 사명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당신이 명하신대로 하면 곧 당신의 친구라고 말씀하시며 제자들을 친구라 불러주셨습니다. 이 말씀은 제자들 역시 예수님과 같은 사명을 가지게 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의 사명선언문은 제자들의 사명선언문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사명문을 보다 면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주님의 영이 우리에게 임하면 우리는 가난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십니다. 이어지는 말씀에서 가난한 사람이 어떤 사람들인지를 밝혀줍니다. 포로 된 사람들, 눈 먼 사람들, 억눌린 사람들과 같은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로마 제국의 지배하에 있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불의에 희생양이 되는 모든 이들입니다. 오늘날로 치면 경쟁에 패한 '루저들'과 소외된 자들과 고통 받는 자들입니다. 복음은 바로 그런 사람들에게 전해집니다. 그들은 기득권자들이 아닙니다.
또 주님의 은혜의 해, 다시 말해 희년을 선포하는 사람들입니다. 희년이 되면 그동안의 모든 채무가 탕감되고 땅의 소유권이 원래의 주인에게 돌아갑니다. 그렇다면 희년의 기쁜 소식을 누리게 되는 자들 역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약자들입니다. 하지만 채무를 포기하고 소유권을 포기하게 되는 이들은 그들 약자들이 아니라 기득권자들입니다. 가진 자들, 부유한 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내려놓을 수 있어야 희년은 가능합니다. 따라서 기득권자들 역시 자신의 기득권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소유의 포기는 제자의 가장 현저한 특징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복음이 전파되고 복음이 실현되는 곳에는 자신의 기득권을 주장하는 사람은 있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 시대 한 복판에서 기득권을 주장하는 보수주의자를 자처하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들이 과연 제자들이 될 수 있는가? 매우 유감스럽지만 그들은 제자가 아니라고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보수주의자 그리스도인들이 세월호 사건을 매우 불편하게 생각하는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복음은 아파하고 슬퍼하는 이들과 함께 아파하기를 의미합니다. 나아가 복음은 인간의 영적인 안녕뿐만 아니라 육체적인 안녕에도 관심을 기울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병자들과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이들을 고쳐주시고, 배고픈 이들을 먹여주시고, 장애를 가진 이들을 회복시켜주셨습니다. 이 사실에서 우리는 복음이야말로 정의를 위한 장엄한 투신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인간의 영혼만을 돌보신 것이 아니라 전인적으로 인간의 다양한 측면을 돌보셨습니다. 이처럼 복음의 예수님은 세상의 변혁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셨습니다. 진정한 사회 변혁은 제자들에 의해 가능합니다. 제자들이란 변화된 인간들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변화된 인간들인 모든 민족의 제자들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그 제자들은 단순히 복음을 선포하고자 초대받은 자들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복음이 되도록 초대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 복음은 총체적인 복음으로서 개인구원 그 이상을 의미합니다. 즉 구원은 개인구원을 넘어 사회 혁명을 지향합니다. 이런 복음을 아는 그리스도인들이 총체적인 불의라 할 수 있는 세월호 사건을 보고 함께 아파하고 분노하지 않는 것은 스스로 자신이 가짜임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복음을 총체적으로 이해하고 복음이 된 제자들은 함께 아파하는 자들로 그 어떤 우월감도 가지지 않습니다.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을 뿐 아니라 모든 것을 내어주고도 애통해 하는 자가 되도록 하여 하나님의 위로를 전하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는 우월감을 가진 자들이 없습니다. 따라서 열등감을 가진 자들도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들은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오로지 공의를 실천하며, 사랑으로 행하며, 겸손히 주님과 동행하는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우월감을 가지지 않은 제자들에 의한 사회 혁명은 이 땅의 교회와 교회 역사를 반드시 새롭게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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