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생활 이야기] 44년만에 본 대학 미식축구

(올랜도=코리아위클리) 송석춘(독자) = 나는 최근 ESPN에서 조지아 대학과 앨라배마 대학 미식축구 결승전을 보았다. 경기 전 큰 아들이 나에게 이 경기를 꼭 보라고 연락을 해왔다. 나는 미식축구는 재미도 없고 규정도 잘 몰라서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는 아직도 미식축구는 인기가 없다. 61년에 미식축구팀이 성균관 대학에 생겼으나 상대팀이 없으니 다음해인가 해체된 적이 있다.

지난 7일 일요일 오후 4시에 우리 부부는 디즈니월드 매직킹덤에서 UCF 미식 축구선수와 마칭밴드, 치어리더 등이 퍼레이드를 벌이는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미국인들은 즐기는 것 같았으나 다른 나라에서 관광을 오신 분들은 별 관심이 없는 듯 보였다. 미식축구는 미국인들에게 열광받는 스포츠임에 분명하다.

큰 아들은 “아버지 손녀와 손녀 딸의 남자 친구가 조지아 대학을 졸업했으니 보아야 하지 않느냐"고 한다.

현대 정세영 사장님의 말이 떠올랐다. 이민을 떠나오기 전날이니 44년전 일이다. 돈 1천불만 돌려주시면 미국 가서 벌어서 갚겠다고 찾아간 나에게 정 사장은 이런 저런 얘기 끝에 "미국에서 살면 미식축구는 이해하고 사는 것이 좋을 거야"라고 하였다.

얼마전 한국의 언론인인지 정치인인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미식축구는 땅 따먹기식 운동’ 이라면서 미국은 영토 확정 정책을 펴 약소 국가를 침범했다고 비판한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큰 아들은 "아버지 큰 사위가 2500달러를 주고 티켓 두 장을 구입했고, 행동이 느린 친구들은 5000달러를 주고 구입했다"며 이번 경기의 열기가 얼마나 뜨거운지 알려준다.

나는 8일 오후에 텔레비전에서 한국 드라마 ‘돈꽃’을 보다가 축구경기 시간에 맞춰 ESPN으로 채널을 돌렸다. 전반전은 조지아 대학이 13:0으로 일방적인 게임으로 몰고 갔다. 후반전을 앞두고 양 대학의 화려한 퍼레이드와 마칭밴드의 요란한 나팔소리가 실내를 가득 채웠으나 늙은이에게는 자장가 소리로 들려 카우치에 앉은 채로 그만 잠이 들었다.

그러다 할멈이 내 몸을 흔들어 잠을 깨우면서 방에 들어가서 자라고 언성을 높이는 바람에 꿈 속에서 빠져나왔다. 게임이 끝났느냐고 물어보니 할멈은 그동안 드라마를 보았는 지 TV 채널을 얼른 ESPN으로 돌려 놓는다.

후반전은 이미 끝나고 20대20 동점으로 연장전이 막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미식 축구는 6점, 1점, 3점짜리 점수가 있다. 연장전에서 조지아 대학이 먼저 3점을 냈으나 게임은 지속됐다. 미식축구 연장전은 어느 팀이 먼저 6점짜리 터치다운을 하면 그 팀의 우승으로 게임이 끝나니 조지아가 먼저 점수를 냈어도 소용이 없었다.

앨라배마 쿼터백(공을 던지는 선수)과 리시버(공을 받는 사람)는 사전 밀약을 했던 모양이다. 쿼터백은 수비수를 교모히 피하면서 잠시 시간을 벌었고, 어느 순간에 앞만 보고 달려가는 리시버에게 공을 힘껏 던진다. 나도 이민 초기에 미식축구공을 몇번 던져 보았지만 쿼터백이 던지는 공의 속도와 거리 그리고 정확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여러명의 수비수를 뒤에 달고 달리던 리시버가 쿼터백과 약속장소에서 고개만 약간 뒤로 돌리는가 싶더니 양손을 올려 공을 받았다. 심판의 '터치다운' 선언에 앨라배마 선수들과 응원단의 고함으로 경기장은 떠나갈 것 같았는데, 그 장면은 글로 표현 할 수 없을 정도로 굉장했다. 연장전에서 이겼으니 얼마나 기뻤을 것인가.

경기가 있던 날 큰 아들이 “할아버지가 오늘밤 대학 미식축구를 처음으로 본다”고 식구 모두에게 이메일로 알린 모양이다. 다음 날 큰 손녀로 부터 전화가 왔는데, 자신의 모교가 경기에 져서 힘이 빠지고 경기장에서 힘껏 응원하느라 목이 쉬어서 말도 제대로 못하면서도 나에게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는 게 대견스러웠다.

44년 전 정세영 사장이 한 말을 나는 아직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지만, 목이 쉬어 가면서까지 미식축구 경기를 관람한 손녀와 아들을 보니 조금은 이해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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