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내가 이렇다구...”

 

5월의 바톤을 넘겨받은 첫날부터 무섭게 엄포를 놓으며 달겨들었다. 사나운 돌풍과 더불어 기세가 대단했다. 매일 비를 뿌린다. 종잡을 수 없는 변덕 날씨에 몸이 갈피를 못 잡는다. 무디게 천천히 오면 적응할 준비가 되련만, 위세에 눌린 노약자들은 한바탕 심한 몸살을 해야만 한다. 겨울맞이 통과의례가 만만한게 아니다.

 

첫 추위를 잘 넘기고 나면 깊은 겨울도 무탈하게 견뎌왔것만...

 

일찌감치 예방주사도 맞았다. 기초적인 상식으로 틈만 생기면 손도 깔끔히 씻었다. 양치질도 열심히 했것만 그럼에도 딱 걸렸다. 나이를 더 했다는 증표인가?

 

샘이 터진듯 흘러내리는 콧물을 감당할 수가 없다. 알러지를 떠올렸는데 느낌이 달랐다. 반갑잖은 감기손님이 오려나. ‘파나돌’을 찾아 먹으며 달랬다.(금방 괜찮아지겠지 이겨낼꺼야!) 

 

감기에 첫번째 답은 안정이라는걸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으스스한 집 안에 웅크려 있고 싶지 않아서 밖으로만 나돌았다. 마음은 그런데 몸이 반항을 했다. 목이 아프기 시작했다. 목캔디를 정신없이 빨아삼키며 달래보지만 나아질 조짐이 안 보였다. 점점 더 심하게 아파왔다. 그동안 너무 많이 무리를 했다는 신호임을 깨달았다.

 

그러면 그렇지. 몸 상태가 안 좋으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복병 허릿병까지. 앉은 자세가 불편하고 일어날때 가장 고통스러운 허리.

 

두 다리 멀쩡해 걸으니 누구도 환자라고 보는 사람은 없다. 단짝 오랜지기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은지가 이틀이나 지났다. 좀 나으려나 했던 몸은 여전했고 그 이틀이 더디게 지나갔다. 더 이상은 안될 것 같아 병문안을 나섰다. 역시 비바람이 사나웠다. 우산을 받쳤어도 아랫도리가 다 젖었다. 차창을 때리는 빗소리가 무서웠다. 왠지 마음이 불안해졌다.

 

병실에 들어서자마자 콜록콜록 기침소리가 예사롭지 않았다. 충충한 방이 감기 바이러스로 가득찬 느낌이었다. 기분 좋을리가 없었다.

 

돌아오려고 병원밖을 나서는데 올 때와 달랐다. 비를 맞고도 몰랐는데 마주치는 바람이 왜 그렇게 차고 싫은지.... 손이 저절로 머풀러 자락을 잡아올려 입을 막았다. 차 안에서도 내내 그렇게 입을 막은채로 있어야 했다. 차에서 내려 걷는데 몸에 중심이 흔들렸다. 갈대처럼 휘청거리는 발걸음이 무겁기만 했다.

 

스치고 지나가는 감기 정도인줄 알았는데 된통 몸살까지 불러들인 꼴이 되었다. 허약한 체질로 기운 떨어지면 더러 비실거릴 때도 있지만 지금 상태는 그런게 아니었다. 이제 정말로 기계가 낡은 모양이었다. 끄떡없던 호흡기 질환까지 달겨드니 믿을데가 하나도 없다. 얼마동안이나 고생을 해야 끝이날지...

 

누워있으면 여기저기 가지치기 잔병들이 신나서 따라들어 온다는 것을 잘 알고있다. 그렇더라도 당장은 빨리 들어가서 따뜻하게 해 놓고 침대에 눕고싶은 마음 뿐이다. 집에 다달았을 때 서두르는 발길을 잠시 붙잡는 것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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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백사장에 핀 해당화? 하얀 조개껍질 밭에 바알갛게 화사한 꽃들이 반갑다.

 

그 험한 비바람에 부대끼면서도 작은 키. 가녀린 가지에 어찌 그리도 크고 탐스런 꽃들을 피웠는지 너무 기특하고 대견했다. 이 춥고 쓸쓸한 계절에 마치 봄의 전령이듯 꽃을 선물로 기쁨을 주는 그들.(너희들은 추위도 모르는구나)

 

대단한 자연앞에서 맥없이 떨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왜 그리도 초라해 보이던지. 세상에서 버림받은 낙오자의 마음이 이런것일까?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새롭게 힘이 생기는것 같았다.

 

지난 크리스마스 때 사다가 심은 작은 관목들이었다. 정말 오랫동안 별러서 만든 화단이었다. 마음놓고 자라는 잡초와의 전쟁에서 언제나 호된 고역을 치뤄야하는 몸. 시원찮은 허리를 빌미로 흙과 친해지기가 겁이났기 때문이다. 길섭에 아무렇게나 핀 들꽃들로부터 그 어떤 꽃이라도 아름답잖은 꽃들은 없다. 누구보다 뒤지지않게 꽃을 좋아하지만. 보고 즐기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니 꽃 이름도 변변히 아는게 없는 것은 당연했다.

 

바로 옆집의 꽃밭이 늘상 화려하니 사철 푸른 관목으로 대조를 이루고 싶었다. 잡초와의 전쟁은 조개껍질을 깔아서 끝장을 낸 것이다.

 

풀들이 헝크러져 보기 민망했던 곳이 하얀 바닥에 파란 나무가 깔끔한게 그냥 만족했다.

 

새 식구가 된 여린 나무에 정성을 들인것은 물을 준 것 뿐이다. 낯선 흙에 뿌리를 잘 내려준게 고마웠다.

 

이 쓸쓸한 겨울에 저리도 고운 꽃을 보여주리란건 생각지도 못 했었다. 핑크빛이 자즈러져 눈을 홀린다.

 

“꽃밭에 앉아서 꽃 잎을 보...네. 고운빛은 어디에서 왔을까 아름다운 꽃송이....”

 

요즘 연습중인 합창곡 노래가 입속에서 절로 흥얼거려졌다. 이 노래를 지은이도 아마 지금의 나같은 감동에서 노랫말을 썼을 것이다. 

 

“이렇게 좋은 날엔 이렇게 좋은 날엔 그 님이 오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

 

혼자보기 아까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기를 바라는 마음. 살짝 외로움이 묻어나는게 내 마음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꽃송이가 무거워 땅에 내려앉은 여린 가지들을 들어 올려주며 나직이 속삭였다.

 

“난 이제부터 좀 심각할꺼야 당분간 밖에도 못나가. 너네들이 날 많이 위로해줘” 

 

밤에 깊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목 이 불편하고 가슴이 답답해서다. 기나긴 겨울밤이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길다고 느껴본 것도 드문 일이다. 허리라도 편하면 일어나서 무슨 일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 것도 안되니 아픈 생각만 깊어갔다. 생각보다 많이 심각하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언젠가 먹다가 둔 기침약을 생각 해 냈다. 주방 캐비넷을 몽땅뒤져 약병을 찾아냈다. 삼분의 일쯤 남은 물약이 그대로 변함이 없었다. 남은 약만 먹어도 기침은 이겨낼수 있을것만 같았다. 대단한 기대를 하면서 우선 유효기간을 살폈다.

 

세상에 이럴수가.... 얼마전에 둔걸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15년 전인 2004년이었다.

 

15년. 그동안 기침약을 찾을 일이 없었다는 뜻이다. 잔병치레는 했어도 감기 기침은 정말로 오랜만에 찾아온 귀한 손님이었다. 약은 곧장 휴지통으로 버려졌다. 모처럼 찾아온 손님에게 귀한 대접이 무얼까?

 

감기는 내 몸에 적신호를 알리는 전령이라고 들었다.

 

유투브를 뒤져서 좋다는 걸 찾아냈다. 생강에 계피물, 무꿀즙, 도라지물, 꿀을 섞어서 쉴새없이 마셨다.

 

시나브로 20여일이 그렇게 지나갔다. 자신과의 싸움인 것이다. 몸보다 마음이 먼저 힘들어 지쳐가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버릇처럼 창 밖을 내다봤다.

 

어느 바닷가에서 뒹굴다가 여기까지 왔을까? 하얀 조가비의 사연이 궁금해진다. 세월에 부대껴 지금은 형체마져 사라졌지만 그들도 한때는 생물체였었다. 파도에 떠밀려와 갈매기들의 먹이가 되었다. 바닷속 이야기를 신비스럽게 간직한 저 말없는 조가비들. 그들은 한 식구가 된 꽃들과 밤마다 무슨 말들을 속삭일까? 인어공주 이야기라도 들으며 저토록 예쁜 꽃들을 피워냈는지... 문득 수시로  안부를 물어오는 마음 따뜻한 친구의 얼굴이 떠오른다. 멀리 있어도 우리는 저들을 꼭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두사람 똑같이 시들지 않을 겨울꽃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 

 

칼럼니스트 오 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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