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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를 하다 보면 나름대로 독서 취향이 생기는 것이다. 문학에서 철학으로 그리고 다시 처세술로 필요에 따라 장르가 바뀐다. 또한, 즐겨 찾는 작가도 생기게 된다. 어떤 한 책을 읽고 감명을 받으면 그 작가의 책을 계속해서 읽게 된다. 작가의 사상과 문체를 좋아하여 관련된 모든 책을 섭렵하곤 한다.

 

내가 가장 취약한 부문이 바로 시(詩)이다. 학교에서 배운 시가 거의 전부다. 대학 입시를 위한 교과서의 시가 전부다. 세간에 유행하는 시집도 거의 안 읽었다. 국회의원이 되고 교과서에 실리는 것으로 논란이 되었던 유명한 도종환 시인의 ‘접씨 꽃 당신’도 안 읽었다.

 

영. 미시 역시 마찬 가지다. 바이런, 워즈워드, 푸시킨, 롱펠로우 등. 나의 독서 취향은 시보다는 소설이 더 가깝게 다가 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시(漢詩)는 유독 관심이 많았다. 사서삼경 중 하나인 시경(詩經), 그리고 당시선(唐詩選) 등 한시는 접했지만, 한시에 대한 지식은 턱 없이 부족했다.

 

막연히 좋아했던 한시에 대한 이론과 묘미를 알려 준 책이 바로 정민의 ‘한시미학산책(휴머니스트: 2010)’이다. 1996년 초판을 새로 개정 보완한 것으로 스물네 개의 주제로 풀었다.

 

정민 교수는 한양대 교수로 한 시에 대한 조예가 깊지만 18세기 영정조의 지식인- 선비에 대한 연구가 깊다. 처음 접한 책은 선비들의 내면을 그린 ‘미쳐야 미친다(푸른 역사: 2004)이다. 특히 다산에 관한 많은 저술을 남겼다.

 

‘다산선생 지식경영법(김영사: 2006)’, ‘다산 어록 청상(푸르메: 2007)’ 그리고 최근작인 ‘다산의 재발견(휴머니스트: 2011)’ ‘아버지의 편지(김영사: 2008)’ 등이 있다.

 

최근에는 ‘일침(김영사: 2012)’에서는 고사 성어를, ‘불국토를 꿈꾼 그들(문학의 문학: 2012)’에서는 삼국유사의 비밀 코드를 풀어 헤쳤다.

 

한시는 크게 두 부류로 나눈다. 당나라의 당시와 송나라의 송시이다.

 

시에서 서정의 함축을 중시하고 의흥이 뛰어난 시를 ‘당음(唐音)’이라 하고, 생각에 잠기고 이치를 따지며 유현한 맛을 풍기는 시를 ‘송조(宋調)’라 일컬어왔다.

 

당시가 대상 그 자체에 몰입함으로서 자연스레 시인의 정의(情意)를 드러내는 방식을 취하는 데 반해, 송시는 시인이 자신의 정의를 대상을 통해 드러내는 방식을 취한다.

 

홍만종의 ‘시화총림증정’에서 두 시의 특징을 이렇게 설파했다.

 

‘당시(唐詩)를 존중하는 사람은 송시(宋詩)를 배척하여 비루하여 배울 바가 못 된다고 한다. 송시를 배우는 사람은 당시를 배척하여 나약해서 배울 것이 없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말은 모두 편벽된 언론이다. 당이 쇠퇴하였을 때 어찌 속된 작품이 없었겠으며, 송이 성할 떼 어찌 고아한 작품이 없었겠는가.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냐가 중요할 뿐이다.’

 

이런 어려운 해설보다는 시는 쓰여진 그대로 느끼면 된다.

 

한시의 매력은 함축미다. 그리고 그 뜻을 여러 측면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조선시대 향시에서 나온 ‘호지무화초’라는 시를 보면 절로 감탄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오랑케 땅 화초가 없다고 하나  

胡地無花草

오랑케 땅인들 화초가 없을까?  

胡地無花草

어찌 땅에 화초가 없으랴마는   

胡地無花草

오랑케 땅이라 화초가 없네     

胡地無花草

이처럼 같은 글자인데 읽는 감정에 따라 그 내용은 천양지차가 나는 것이 한시의 묘미이다.

 

차 주전자 둘레에 원을 그리며 써 있는 ‘다호시(茶壺詩)’는 한자씩 차례로 읽으면 시가 된다. 

마음을 맑게 할 수가 있고      

可以淸心也

맑은 마음으로 마셔도 좋다     

以淸心也可

맑은 마음으로도 괜찮으니      

淸心也可以

마음도 맑아질 수가 있고       

心也可以淸

또한 마음을 맑게 해 준다.     

也可以淸心

 

한 수 더 소개하고 싶은 한시는 우리 나라의 김 삿갓으로 유명한 김 병연의 해학시(諧謔詩)다.

서당이야 진작에 알고 있지만

書堂乃早知

방에는 모두 존귀한 물건뿐일세.        

房中皆尊物

생도는 모두 다 열 사람도 못되며       

生徒諸未十

선생 와도 인사할 줄 모르네            

先生來不謁.

시 내용 자체도 좋지만 한 번 소리 내어 읽어 보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

우리만의 독특한 한시의 묘미이다.

 

시를 한꺼번에 다독할 수는 없다. 시는 읽는 것이 아니라 음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루에 한 편이라도 좋다. 

 

잠시 시간을 내어 좋은 시를 읽고 명상에 잠겨보는 것이 어떨런지?

 

이병한 엮음 ‘하루 한 수 한시 365일(궁리: 2010)’도 권할 만 하다. 

 

중국은 물론 우리 나라 시인들의 시로 근대 한시까지 골고루 엮어진 좋은 책이다. 매 한편의 시를 원문과 함께 소개하면서 간략한 해설을 달아 한 시의 맛을 느끼게 한다. ​

 

칼럼니스트 김영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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