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b56bd85f8298c32a647120396bb1dd_1511268

 

 

“어머님이 오늘 새벽에 선종하셨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받은 전화. 사촌동생이 알려온 숙모 님의 부음이었다. 나와 몇 살 차이는 있지만 같은 팔십줄의 숙모 조카 사이였다. 우리 가문에 시집와서 한 가족으로 칠 십 몇년을 살아내신 분이다. 

 

오늘따라 새들의 지저귐이 유난스럽다. 활기찬 생명체의 움직임이 호흡을 멈추고 떠난 사람과 대비되는 묘한 기분에 빠져들게 했다.

 

오래 병석에 계시던 할머니께서 어머니의 밥상을 거절하기 시작했다. 

 

“네 년 밥은 이제 안 먹을란다.” 

 

시집살이 지독하게도 치뤄낸 어머니였다. 늙으막엔 치매 증상까지 겹쳐서 사뭇 횡포를 했다. 

 

일찍이 시집와서 시각장애로 힘든 시어머님을 대신해 아홉 살 개구쟁이 시동생을 아들처럼 돌보며 살아온 어머니다. 

 

이제 작은 며느리를 보고싶은 뜻이라고 깨달은 어머니는 서둘러 삼촌 색시감을 물색했다. 손아랫 동서가 될 신부의 나이는 열일곱. 삼촌과는 제법 나이차가 있었다. 

 

녹음이 우거진 계절. 

 

초여름으로 접어드는 6월쯤이었을까? 조금씩 더워지고 있 었다. 

 

아버지는 늦둥이 동생을 신식결혼 시킨다고 특별히 신경을 쓰셨다. 하얀 치마저고리에 면사포를 쓴 신부옆에 까만 연미복의 신랑이 무척이나 멋스러웠다. 

 

그 시절엔 정말로 파격적인 결혼식이었다. 

 

예식이 끝나고 집으로 올 때 신부는 인력거를 탔다. 왠일인지 신부옆에 단발머리 계집애 나를 앉혔다. 예식장이 만리동 고개에 있었다. 언덕을 내려가는데 어깨가 으쓱했다. 누가 봐주기를 두리번거렸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집에 돌아온 아버지가 제일 먼저 할머니 방으로 들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집안 잔치보다 할머니의 뒷처리가 더 급했다. 

 

음식 냄새보다 진하게 집안을 덮친건 할머니의 용변 냄새 였다. 그 날 할머니는 끝내 방에서 나오지도 못했다. 

 

그리 기다렸던 새 며느리의 절도 못받고 벽에다 허배(虛拜)를 해야만 했다. 밥은커녕 얼굴도 보지 못한채 할머니는 두 어달 뒤에 돌아가셨다. 

 

1945년. 해방을 코 앞에 둔 무렵이었다. 

 

흰 소복차림으로 상주노릇을 흉내내느라 사람들 눈치만 살 피던 어린 새색시. 어른들이 곡(哭)을 할때마다 숙모를 지켜 보는게 너무 재미있었다.

 

어머니는 참 너그러운 맏동서였다. 

 

일찍이 부모님을 여의고 언니집에서 커온 어린 동서를 딸같이 대했다. 

 

명절때마다 언니와 나 숙모까지 설빔을 해 입히고 부엌에도 들이지 않았다. 삼자매처럼 고루 색을 맞춰 입혀놓고 느긋하게 만족해 했던 우리 아버지 어머니. 

 

“어서들 나가 널이나 뛰어...” 

 

아버지는 앞마당 빨랫줄 밑에 튼튼한 널까지 놓아주었다. 동네 처녀들이 다 모여들었다. 

 

꼬마였던 나는 나풀거리는 치마자락을 움켜쥐고 신나게 널을 뛰는 그들이 부럽기만 했다. 내 몫은 언제나 널을 고정시키려는 한 가운데 자리였다. 거기 쪼그려앉아 하늘에 치솟듯 번갈아 오르내리는 언니들을 보느라 목만 아팠다. 

 

열다섯살 언니는 숙모와 동무하기에 딱 좋았지만 맏딸답게 집안 일을 돕느라 놀 시간이 많지 않았다. 

 

이웃에 분가해 사는 새내기주부 숙모는 늘 심심했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나를 제일먼저 반갑게 맞아주는 사람은 숙모였다. 

 

우리둘이는 양지짝 툇마루에 걸터 앉아 공기놀이를 했다. 언니보다 잘 놀아주는 동무가 생겨 너무 좋았다. 

 

어머니가 먼 발치에서 바라보며 가끔씩 혀를 차기도 했다.

 

 “쯔쯔 저사람 언제 철들어 어른이 되려나 . . .” 

 

숙모가 진짜 어른이 된건 첫번째 사촌동생이 태어난 뒤였다.

 

1.4 후퇴 당시. 삼촌은 나라를 지키러 제 2국민병에 차출되었다. 그 때 숙모는 둘째 애기를 임신한 만삭의 몸이었다. 출산을 앞둔 아내를 두고 떠나야하는 삼촌의 마음이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너나없이 피난을 서둘러야했던 급박한 상황에 이르렀다. 그런데 숙모가 안 가겠다고 버티었다. 몸도 무겁고 신랑도 옆에 없으니 얼마나 겁이 났을까? 아버지 어머니가 매일을 졸라도 농뒤에 혼자 숨어서 애기를 낳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부부싸움 끝에 가끔씩 큰집에 와서 투덜거리던 삼촌의 말이 떠올랐다. 

 

“고가네 고집은 아무도 못 당해 요.” 

 

고씨 숙모 고집에 번번히 져주고 투덜대던 말이었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을... 시댁 어른들의 말을 끝까지 거역할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매일밤 폭격으로 불바다를 이루는 전쟁통 피난지. 평택을 거쳐 온양까지 갔을 때. 종전소식이 들려왔다. 다행히 아이는 돌아오는 길목에서 태어났다. 그 핏덩이 동생을 내가 업고 다녔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사람을 업은게 아니었다. 그 물렁거리는 물체를 등에 업고 질질 흘러내리는 거 북함때문에 걸음을 걸을 수 없었던 불편함을... 

 

결국은 젖 한모금 배불리 먹어보지도 못하고 그 아기는 두어달 버티다가 저 세상으로 가 버렸다. 어찌 손 써볼 수 없는 전쟁통에 일곱살짜리 어린딸을 홍역으로 하늘나라 보낸 가족들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이었다. 

 

그 무서운 폭격도 잘 피했는데 이 무슨 날벼락이냐고 목놓아 우시던 어머니. 이번에는 삼촌 볼 면목이 없어 어쩌냐고 더 많이 슬퍼했다. 우리는 그렇게 어린생명 둘을 피난 지에서 잃었다.

 

숙모는 너무 어려서였을까? 새 생명을 잃고도 씩씩했다. 삼촌의 생사 확인이 급해서 그 쪽으로만 생각하기에 바빴다.

 

삼촌은 인정스럽고 아주 싹싹한 분이었다. 사업수완도 좋아서 숙모와 가족들은 고생 모르고 편히 살았다. 그런분이 왜 그리도 단명하셨는지 50대에 세상을 버렸다. 슬하에 사남 매를 두었으니 아직도 할일이 많이 남았는데...

 

숙모 홀로 산지가 사십년. 이제 자녀들 든든한 가정 일궈 모두가 잘 산다. 증손까지 사대(四代)가 한 집에 살며 장수를 누렸다. 

 

요즘 세상에 드물게 보는 따뜻한 가정이었다. 시골에 집 짓고 백발 휘날리며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사촌동생이 참 대견하다. 돌이켜보니 숙모는 그런대로 괜찮은 인생을 살았다고 생각된다. 

 

어렸을 때부터 동무로 살아온 세 사람. 반년전에 언니가 먼저 떠나더니 숙모도 갔다. 내가 그런 나이에 와 있음에 문득 놀랜다. 

 

인력거 함께 탔던 새색시. 그 날의 숙모를 그려보며 하늘을 쳐다본다. 파아란 하늘에 뭉게구름이 소담스럽다. 천사의 치마자락일까? 

 

“놀이동무 숙모! 하늘나라 따뜻한 천사의 품에 폭 안기시길 빌께요."​ 

 

칼럼니스트 오소영

  • |
facebook twitter google plus pinterest kakao story band

  • 새해 0시에

    오렌지 나무와 피조아 나무가 잎사귀들이 무성해지며 부쩍 자라는 것을 보며 처음 이 나라에 왔을 때가 생각이 났다. 이웃집 담장울타리에서 넘어온 천도복숭아 나무가지에 복숭아가 많이 열렸는 데 남의 것을 도둑질 하는 것 같아서 먹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휀스...

  • 희망의 귀환

      그 동안 여러 방면의 책을 골고루 읽으면서 생각들을 정리했으며 나의 삶에 뭔가 방향이 잡힌 듯하다. 하지만 이번 주는 멋 있게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좋은 책을 골라 보았지만, 흡족히 마음에 드는 책이 별로 없었다.   무지개 원리(위즈앤비즈: 2008)라는 베스...

    희망의 귀환
  • 부자 되는 돼지 꿈

      기해년(己亥年) 새해가 밝아 왔다. 나이가 들수록 한 해가 너무 빨리 지나감을 느낄 수가 있다. 이렇게 일 년이 빨리 지나가다보면 어느새 100세 시대에 성큼 들어서지 않을까 두렵기도 하다. 뉴질랜드에 온지 23년이 되는데 다시 23년이 흐르면 100살이 되는 것이다....

    부자 되는 돼지 꿈
  • 2019 뉴질랜드 이자율 전망

    세계 경제, 금융 기관들이 각국을 포함한 세계의 경제 전망을 쏟아 내고 있다. 전반적으로 살펴보면 공통점이 있다. ‘경제 성장이 둔화세로 돌아섰다!’ 이다. 작년 연말 IBRD 와 Word Bank 그리고 IMF 등의 기관에서 예측했던 2018년도의 경제 성장률 상승 국면은 이제 ...

    2019 뉴질랜드 이자율 전망
  • 평형수 (平衡水)

    “내 나이엔 아침에 일어나 식사를 하고 점심 때까지 앉아 있는다. 그리고 또 점심을 먹은 후 앉아 있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냐?”      지난해 5월초 104세의 ‘안락사’로 더 잘 알려진 ‘조력자살’을 통해 영면한 호주 최고령 과학자 데이비드 구달박사가 죽기 전 외신과...

    평형수 (平衡水)
  • 첫 집 장만이 가장 어려웠던 시기는?

    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는 집값이 너무 올라 부모의 도움 없이 생애 첫 주택 구입이 어렵다고 토로한다. 1946년부터 1964년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는 과거에도 내 집 마련은 결코 쉽지 않았다고 반박한다. 어느 쪽이 맞을까? 뉴질랜드 주...

    첫 집 장만이 가장 어려웠던 시기는?
  • 잠 못 이루는 뉴질랜드의 1월

      이번 1월 들어 오클랜드에서는 몇 차례에 걸쳐 한밤중에도 최저기온이 10℃ 후반까지 치솟으면서 무덥고 습한 날씨로 인해 시민들이 밤새 잠자리를 뒤척였다는 보도가 나온 바 있다.    또한 금년 초 CNN을 통해, 아프리카 남부에서 수령 1000년 이상인 바오밥 나무 여...

    잠 못 이루는 뉴질랜드의 1월
  • 피라미드

      전에 어떤 분이 피라미드에 관해서 강의를 한다고 해서 찾아갔었습니다. 정신세계원에서 했는데 처음 30분 정도는 굉장히 흥미진진했어요. 도입부에서 가설을 몇 가지 세우고 풀어나가는데 “아, 뭔가 나오겠구나.” 하고 기대에 차서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설...

    피라미드
  •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

      ‘베스트 엑조틱 메리골드 호텔 (Best exotic Marigold Hotel)’라는 헐리우드가 만든 영화로 노년의 영국인이 인도에서 제2의 삶을 사는 일종의 힐링 영화이다. 유명 배우라고는 007 시리즈에서 M으로 나오는 주디 덴치 (Judi Dench) 정도로 저 예산 영화이다. 서로 다...

  • 하이누웰레 소녀 6편

    옥수수 어머니    모든 것을 창조한 클로스크루베(Kloskurbeh)가 지상에 있을 때 사람들은 아직 있지 않았다. 어느 날 태양이 높이 떠 있을 때 한 아이가 나타나 클로스크루베와 함께 살게 되었다. 아이는 바람이 불어서 생겼고 햇볕에 데워진 물결 속의 물거품에서 태어...

  • 검은마대(麻袋) 바지 ‘몸빼’ 그리고 달달이

    ‘세상에서 제일 편한 바지’ 주름진 나일론 천에 알록달록 꽃무늬가 요란스럽다. 세상에서 제일 편한 바지라고 ‘라벨’이 붙은 몸빼 바지다.   말 그대로 편하기로 치면 그보다 더 편한 바지는 없을 것이다. 시장에서 장사하는 아줌마들, 시골에서 농삿일하는 주부들, 고깃...

    검은마대(麻袋) 바지 ‘몸빼’ 그리고 달달이
  • 연말 맞아 활개치는 전화 사기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된 지금, 이 편리한 현대 문명의 새로운 도구들을 이용해 사기를 치는 사기꾼들도 더불어 크게 늘어나면서 주변에서 피해자가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다.    특히 연말을 맞아 이들 사기꾼들이 더욱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최...

    연말 맞아 활개치는 전화 사기
  • 코리아포스트 선정 2018 NZ 10대 뉴스

      █ 공식적으로 가장 더웠던 지난 여름   1월 30일 남섬 알렉산드라(Alexandra)의 낮 최고기온이 섭씨 38.7도까지 오르는 등 지난 여름은 예년 평균보다 2-3도 높아 공식적으로 가장 더웠던 여름으로 기록됐다. 1월 평균기온은 예년보다 3도 높은 20.2도로 1867년 기상...

  • 프로세코여~. 아직도 로맨스를 꿈꾸는가?

    벼락처럼 부지불식간에 찾아온다는 로맨스를 우린 평생 몇 번이나 해볼 수 있을 까? 어떤 이들은 유치한 드라마 속 이야기 라고도 한다. 삶의 절정을 지나버린 나이가 되어도 몸과 마음은 좀처럼 늙지 않는다. 하지만 로맨스를 꿈꾸기보다는 다른 이들에게 보여지는 모습...

    프로세코여~. 아직도 로맨스를 꿈꾸는가?
  • 108세에 이르기 까지

      “인생은 연속되는 선택의 과정이자 그 결정의 총 집합이다”라고 레프 톨스토이(Lev Tolstoi, 1828-1910)는 말했다. 지난 77년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숱한 선택의 과정을 거치며 오늘날 까지 왔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중에서도 뉴질랜드로의 이민은 일생일대의 가장...

    108세에 이르기 까지
  • 저금리 정책 언제까지?

      지난 달 말경 중앙은행이 발표한 주택 융자 완화 정책으로 실제 적용해서 나타나는 효과는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 이유는 ‘주택융자’는 결국 시중 은행의 몫이지 중앙은행이 직접할 수 있는 서비스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뉴질랜드, 호주 은행들의 주택 융...

    저금리 정책 언제까지?
  •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헐!’ 요즈음 아이들이 쓰는 신조어가 절로 나온다. 2013년 1월 27일 730쇄. 2012년 1월 27일 1 쇄를 한 지 꼭 1년 만에 730 쇄를 찍었다. 하루에 2 쇄씩 찍었다는 말이다. 속물이라 어쩔 수 없는 것. - 내 머리 속의 계산기가 재빨리 돌아 가고 있다. 1 쇄에 1 천 부...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 금리, 지금이 바닥인가

      1년 고정 모기지 금리가 시중은행들의 경쟁이 심화되면서 최근 한때 4% 아래로 떨어졌다. 4% 이하의 금리는 지난 70년 동안 볼 수 없었던 최저 수준이다. 주택시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모기지 금리가 70년래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주택매매도 활기를 찾을 ...

    금리, 지금이 바닥인가
  • ‘Givealittle’, 10년간 기부금 1억불 달성

      지난 12월 5일, 국내 언론들과 인터넷을 통해 뜻깊은 소식이 전해졌다. 내용은 뉴질랜드인들의 기부금(crowd funding) 사이트인 ‘기브어리틀(Givealittle)’이 창설 10주년을 맞이했다는 것   현대 사회의 무한하고도 치열한 경쟁 속에서 개인들의 삶 역시 갈수록 각박...

    ‘Givealittle’, 10년간 기부금 1억불 달성
  • 사람의 인자(因子)

    다 같은 사람인데 왜 이 사람은 이렇고 저 사람은 저런가, 어떻게 틀린가, 사람을 구분 짓는 기준은 무엇인가 궁금하시죠?    그러나 인간의 창조 목적이 ‘진화’이기 때문에 태어날 때 진화할 수 있는 여지를 각각 다르게 만들어 줍니다.    사람은 누구라도 정. 신. 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