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 인화의 민낯 보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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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캔 스피크 봤어?”“아니. 왜?”

“꼭 봐. 진짜 감동이야.”

 

같은 동네에 사는 한국 사람한테 영화‘아이 캔 스피크’을 봤다고 얘기했다. 위안부의 한 많은 삶을 다룬 영화로 상처나 분노보다는 치유를 강조한 영화라 설명했다. 

 

많은 사람이 봤으면 하는 기대로 같은 직장에서 일하는 유로피언들에게도 영화 줄거리를 알려줬다. 나옥분 할머니 역의 나문희와 진주댁 역을 맡은 염혜선의 연기를 침을 튀기면서 칭찬했다.

 

영화를 보고나서 한동안 진주댁만 생각했다. 그는 나옥분 할머니가 숨기고 살아왔던 가슴 아픈 비밀을 알고서 섭섭함과 미안함을 멋들어지게 표현했다. 내 기억 속의 대화는 이렇다.

 

“언니야. 와, 나한테 얘기 안 했노?”“...”

“우리가 알고 지냈는지 얼마나 되었는데. 아직도 날 못 믿겠나?”“...”

“이젠 알겠다. 왜 그리도 살 닿는 거 싫어했는지.”“…”

“아이고, 우리 언니, 얼마나 힘들었을 거고. 너무 너무 불쌍타.”“... ”

 

진주댁은 나옥분 할머니를 안고 울었다. 처음에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보였던 나옥분 할머니가 조금씩 오열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엄마와 딸처럼 아픔을 공유했고 서럽게 울었다.

 

이때부터 나옥분 할머니는 PTSD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부터 치유의 길로 들어섰고 오랫동안 쌓아왔던 한으로부터 자유로워지지 않았을까.’라고 상상해 본다.

 

감동과 희망을 영화 속에서 보면서도, 그들이 서로 붙잡고 울 때 내 가슴이 찢어지게 아팠다.

 

‘내 아픔을 그들 속에서 봤을까. 아니면 그들의 아픔을 느꼈을까.’궁금해진다.

 

초등학교 6학년 새 학기 첫날에 겪었던 일이 떠오른다. 첫날 수업을 마치고 기분 좋게 집에 왔다. 집이 왁자지껄했다. 동네 어른들이 다 모인 듯이 보였고 음식을 나르면서도 어머니는 계속 동네 아주머니들과 얘기를 나눴다. 

 

음식 먹는 소리는 들리는데 누구도 내게 앉으라는 소리를 안했다. 무슨 경우인지도 모르는 데다가 아무도 신경을 안 써주니 배고프다는 생각보다는 잊혔다는 서러움에 눈물이 나왔다. 혼자서 훌쩍이고 있는데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디서 재수 없게 울고 있어, 나가.”

아랫입술을 세게 깨물며 밖으로 나가 굴뚝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열세 살짜리 몸집만 컸던 아이는 외로웠다.‘어서 와. 앉아. 같이 먹자.’를 안 하는 어머니를 원망했다.

 

한국전쟁 전에 함경북도 청진에서 친구와 단 둘이서 남한으로 오셨던 어머니는 생활력이 강했다.

 

젊었을 적에는 융통성이 없는 당신의 성격에 불만이 많았다. 나이가 들면서‘힘든 생활 속에서도 가끔가다 자식들을 이해하고 안아주셨으면 내 성격이 어떻게 변했을까.’라고 상상을 해봤다.

 

영국의 정신분석가인 존 보울비(John Bowlby)가 만들어내고 캐나다의 발달 심리학자인 매리 애인스워스(Mary Ainsworth)가 발달시킨 애착 이론(Attachment Theory)이 있다. 

 

이 이론은 아기들이 부모나 주 보호자와의 관계에서 형성된 내적 활동 모델(internal working model)과 장기적 인간관계의 근본 원인을 설명한다. 

 

내적 활동 모델은 현재나 미래에서 새로운 상황에 마주쳐 결정을 해야 할 때 기준점이 된다. 그들은 아기들에게 나타나는 여러가지 애착형태를 안정 애착과 불안정 애착으로 나눈다. 불안정 애착은 회피, 양가(또는 저항)와 혼돈 애착으로 나뉜다.

 

진주댁은 나옥분 할머니와 아픔을 공유하는 모습에서 안정 애착 형태를 가진 사람이라 확신한다. 그럼 나는?

 

사랑을 기다리다 지쳐 아파하고 사랑이 찾아오면 너무 늦게 왔다고, 불평했다. 혼자 있으면 외로웠고 같이 있으면 기대가 충족되지 못해 실망했다.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과거를 그리워하며 미래로 도피했다. 

 

순간의 행복은 있었으나 오래가진 못했다. 생각해보면 나의 상처만 달래다 보니 상대방의 아픔을 등한시했다. 참 힘들고 불편한 날들 속에서 완벽한 어머니같은 진주댁만 기다렸다. 

 

이런 모습만 생각하면 전형적인 불안정 양가 애착 형태였다. 지금은 오랫동안의 치료를 통해 안정 애착 형태로 변했다고 믿는다.

 

스포츠용품점에서 일하는 둘째가 집에 들어오는 소리가 난다. 어떻게 하루를 보냈는지 궁금하다.

 

“오늘 하루 어땠어? 힘들었지. 저녁 뭐 먹을까?”“안 먹어.”“왜?”“아파”

 

“아프다고? 어젯밤에 게임만 신나게 하더니. 잠을 덜 자서 그래. 나이가 몇살인데. 아직도 그런 게임 하나 조절하지 못해?”

 

“...”

 

밤늦게까지 게임만 하는 모습이 싫어 짜증을 부렸다.‘또 실수 했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당황하고 창피해졌다. 

 

안정 애착 쪽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환상이 깨지면서 아들한테‘미안해’를 연발한다. 

 

영화 속의 진주댁과 젊었을 때의 어머니 얼굴이 교차하면서 세대 간의 패턴이 참 변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한다. 아직도 불안정 애착 증세를 보이지만 남 탓 덜하는 변화를 위안으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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