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 인화의 민낯 보이기

7a279f740efefa36eb6098e595be52f1_1512530

 

“아이 캔 스피크 봤어?”“아니. 왜?”

“꼭 봐. 진짜 감동이야.”

 

같은 동네에 사는 한국 사람한테 영화‘아이 캔 스피크’을 봤다고 얘기했다. 위안부의 한 많은 삶을 다룬 영화로 상처나 분노보다는 치유를 강조한 영화라 설명했다. 

 

많은 사람이 봤으면 하는 기대로 같은 직장에서 일하는 유로피언들에게도 영화 줄거리를 알려줬다. 나옥분 할머니 역의 나문희와 진주댁 역을 맡은 염혜선의 연기를 침을 튀기면서 칭찬했다.

 

영화를 보고나서 한동안 진주댁만 생각했다. 그는 나옥분 할머니가 숨기고 살아왔던 가슴 아픈 비밀을 알고서 섭섭함과 미안함을 멋들어지게 표현했다. 내 기억 속의 대화는 이렇다.

 

“언니야. 와, 나한테 얘기 안 했노?”“...”

“우리가 알고 지냈는지 얼마나 되었는데. 아직도 날 못 믿겠나?”“...”

“이젠 알겠다. 왜 그리도 살 닿는 거 싫어했는지.”“…”

“아이고, 우리 언니, 얼마나 힘들었을 거고. 너무 너무 불쌍타.”“... ”

 

진주댁은 나옥분 할머니를 안고 울었다. 처음에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보였던 나옥분 할머니가 조금씩 오열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엄마와 딸처럼 아픔을 공유했고 서럽게 울었다.

 

이때부터 나옥분 할머니는 PTSD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부터 치유의 길로 들어섰고 오랫동안 쌓아왔던 한으로부터 자유로워지지 않았을까.’라고 상상해 본다.

 

감동과 희망을 영화 속에서 보면서도, 그들이 서로 붙잡고 울 때 내 가슴이 찢어지게 아팠다.

 

‘내 아픔을 그들 속에서 봤을까. 아니면 그들의 아픔을 느꼈을까.’궁금해진다.

 

초등학교 6학년 새 학기 첫날에 겪었던 일이 떠오른다. 첫날 수업을 마치고 기분 좋게 집에 왔다. 집이 왁자지껄했다. 동네 어른들이 다 모인 듯이 보였고 음식을 나르면서도 어머니는 계속 동네 아주머니들과 얘기를 나눴다. 

 

음식 먹는 소리는 들리는데 누구도 내게 앉으라는 소리를 안했다. 무슨 경우인지도 모르는 데다가 아무도 신경을 안 써주니 배고프다는 생각보다는 잊혔다는 서러움에 눈물이 나왔다. 혼자서 훌쩍이고 있는데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디서 재수 없게 울고 있어, 나가.”

아랫입술을 세게 깨물며 밖으로 나가 굴뚝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열세 살짜리 몸집만 컸던 아이는 외로웠다.‘어서 와. 앉아. 같이 먹자.’를 안 하는 어머니를 원망했다.

 

한국전쟁 전에 함경북도 청진에서 친구와 단 둘이서 남한으로 오셨던 어머니는 생활력이 강했다.

 

젊었을 적에는 융통성이 없는 당신의 성격에 불만이 많았다. 나이가 들면서‘힘든 생활 속에서도 가끔가다 자식들을 이해하고 안아주셨으면 내 성격이 어떻게 변했을까.’라고 상상을 해봤다.

 

영국의 정신분석가인 존 보울비(John Bowlby)가 만들어내고 캐나다의 발달 심리학자인 매리 애인스워스(Mary Ainsworth)가 발달시킨 애착 이론(Attachment Theory)이 있다. 

 

이 이론은 아기들이 부모나 주 보호자와의 관계에서 형성된 내적 활동 모델(internal working model)과 장기적 인간관계의 근본 원인을 설명한다. 

 

내적 활동 모델은 현재나 미래에서 새로운 상황에 마주쳐 결정을 해야 할 때 기준점이 된다. 그들은 아기들에게 나타나는 여러가지 애착형태를 안정 애착과 불안정 애착으로 나눈다. 불안정 애착은 회피, 양가(또는 저항)와 혼돈 애착으로 나뉜다.

 

진주댁은 나옥분 할머니와 아픔을 공유하는 모습에서 안정 애착 형태를 가진 사람이라 확신한다. 그럼 나는?

 

사랑을 기다리다 지쳐 아파하고 사랑이 찾아오면 너무 늦게 왔다고, 불평했다. 혼자 있으면 외로웠고 같이 있으면 기대가 충족되지 못해 실망했다.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과거를 그리워하며 미래로 도피했다. 

 

순간의 행복은 있었으나 오래가진 못했다. 생각해보면 나의 상처만 달래다 보니 상대방의 아픔을 등한시했다. 참 힘들고 불편한 날들 속에서 완벽한 어머니같은 진주댁만 기다렸다. 

 

이런 모습만 생각하면 전형적인 불안정 양가 애착 형태였다. 지금은 오랫동안의 치료를 통해 안정 애착 형태로 변했다고 믿는다.

 

스포츠용품점에서 일하는 둘째가 집에 들어오는 소리가 난다. 어떻게 하루를 보냈는지 궁금하다.

 

“오늘 하루 어땠어? 힘들었지. 저녁 뭐 먹을까?”“안 먹어.”“왜?”“아파”

 

“아프다고? 어젯밤에 게임만 신나게 하더니. 잠을 덜 자서 그래. 나이가 몇살인데. 아직도 그런 게임 하나 조절하지 못해?”

 

“...”

 

밤늦게까지 게임만 하는 모습이 싫어 짜증을 부렸다.‘또 실수 했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당황하고 창피해졌다. 

 

안정 애착 쪽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환상이 깨지면서 아들한테‘미안해’를 연발한다. 

 

영화 속의 진주댁과 젊었을 때의 어머니 얼굴이 교차하면서 세대 간의 패턴이 참 변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한다. 아직도 불안정 애착 증세를 보이지만 남 탓 덜하는 변화를 위안으로 삼는다.

  • |
facebook twitter google plus pinterest kakao story band

  • 골프도 독학이 된다

      전세계가 노령화 시대로 접어들었다. 흔히들 노후대책으로 약간의 돈과 친구 그리고 취미가 있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취미는 노후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바쁜 일상에 찌드는 중. 장년에도 필수 불가결인 것이다.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지친 육체와 정신에 휴식과 ...

    골프도 독학이 된다
  • 춘풍낙엽(春風落葉)

    양지에 나서도 한기를 느끼는 봄바람. 품 속을 파고드는 첩의 바람이 두려운 9 월. 벚꽃 화사하게 피었는가 싶더니 아쉽다.     세상구경 급해서 밀고 나오는 것일까?    파아란 새순에게 밀려난 꽃잎들이 훌훌히 떨어져 바람에 나부낀다. 앙탈하듯 어미품을 떠나는 작은...

    춘풍낙엽(春風落葉)
  • 중국의 패권도전, 지정학적 환율변화에 주목하라

    무서운 아이들      미국이 중국과 무역전쟁을 벌이는 와중에 모하메드 살만 사우디 왕자가 카쇼기를 터키 주재 사우디 영사관에서 살해한 혐의로 트럼프 대통령의 분노를 사고 있다.    미국에 살고 있는 카쇼기는 사우디를 맹렬히 비판해온 인물인데 영사관에 들어갔다...

    중국의 패권도전, 지정학적 환율변화에 주목하라
  • 反이민 감정 깔린 ‘NZ 가치 존중법’

      연립정부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윈스턴 피터스(Winston Peters) 부총리 겸 외교장관의 뉴질랜드제일(New Zealand First)당이 이민자를 대상으로 한 ‘뉴질랜드 가치 존중법’제정을 추진하기로 해서 논란을 빚고 있다. 최근 창당 25주년을 맞아 뉴질랜드제일당이 채택...

    反이민 감정 깔린 ‘NZ 가치 존중법’
  • 야생 염소와 결투 벌이는 DOC

      뉴질랜드 자연보존부(DOC)가 ‘야생 염소(wild goat)’의 한 종류로 알려진 ‘히말라얀 타르(Himalayan tahr)’와의 전쟁(?)을 선언하고 나섰다.    생태계 보존을 위해 타르를 적정 개체수 밑으로 유지하고자 몇달 전부터 계획을 짜온 DOC는 10월 18일(목)부터 관련 기관...

    야생 염소와 결투 벌이는 DOC
  • 하이누웰레 소녀 1편

    여성적인 힘   언제부터인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부정적인 이슈들 중 하나로 여성 혐오가 떠오르고 있다. 지난 해 강남역 사건을 계기로 여성 혐오 논란이 더욱 시끄러웠으나 대상이 남성이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굳이 그 사건이 아니더라...

    하이누웰레 소녀 1편
  • 아! 친구야, 너의 모습은 어디로 갔니~

    중,고 시절 극심한 가난에 허덕이던 친구가 있었다. 중학교 2학년 때 같은 반에서 만나 여고 시절에도 친하게 어울렸던 친구는 웃기도 잘하고 명랑하였다. 아버지가 하시던 사업의 실패로 인하여 무척 힘든 학창시절을 보낸 친구는 고등학교 졸업 후 직장생활을 몇 년간 ...

    아! 친구야, 너의 모습은 어디로 갔니~
  • 무지개 색깔은 정말 일곱 가지일까?

    체중이 감당이 안 된다. 아침에 운동장 일곱 바퀴를 걷기로 했다. 차 한잔을 마시고 다른 생각이 파고들기 전에 동네 운동장으로 나간다. 생각하기 시작하면 운동보다 더 중요한 일이 많다. 날씨와 상관없이 무조건 걷는다. 그런데 오늘따라 날씨가 요망하다. 파란 하늘...

  • 생로병사의 비밀

      인간은 누구나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은 욕망이 있다. 웰빙(well-being) 시대에 점점 노령화 되는 과정에 건강에 관심이 높아졌다. 비단 노인뿐만 아니라 누구든 건강은 있을 때 지켜야 한다.    있을 때는 모르지만 없을 때 절실해지는 것이 바로 건강이다. 건강이란...

    생로병사의 비밀
  • 기 죽지 말고 떳떳하게 살자 (VI)

    ■ Catch up with - apologize  골프를 하다 보면 앞 팀의 굼벵이 플레이로 인하여 짜증날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뒤 팀에게 지장을 주지 않도록 신경을 많이 쓰는 편입니다.   한 번은 앞 팀과의 간격을 유지한 채 플레이를 하고 있는 데 뒤 팀의 키위가...

    기 죽지 말고 떳떳하게 살자 (VI)
  • 욕쟁이할머니 맛의 비밀

    퇴근한 후에 산동네를 오르는 동네아저씨들은 길목에 있던 우리집 구멍가게를 그냥 지나 칠 수가 없었다. 한 동네 모두가 이웃이었고 주말이면 벌건 연탄불에 굽는 돼지고기의 냄새가 골목을 진동했기 때문이다. 고단한 하루를 버텨낸 그들은 뜨거운 고기 한점을 들고 소...

    욕쟁이할머니 맛의 비밀
  • 단군조선 역사의 재조명

     ​ 단군조선 역사는 일제 식민사관에 의해 상처를 받았고  중국의 동북공정에 의해 위기에 처해 있다.  홍익인간의 기치아래 8천 5백만 한민족이 똘똘 뭉쳐 ……    초등학교 2학년 때의 기억이다. 장래 희망이 무어냐는 물음에 ‘단군왕검이 되겠습니다’라고 대답한 일이 ...

    단군조선 역사의 재조명
  • 이자율 내려간다

    우리가 늘 긴장해 왔던 미연준 금리 인상과는 달리 뉴질랜드 은행들의 대출 금리는 내려가고 있다. 이 현상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나의 융자 이자율은 2년 이상 장기로 가야 할까? 일시적이라면 단기로 가야 할까? 융자 승인이 어려워진다는 지금, 은행의 ...

    이자율 내려간다
  • 뉴질랜드의 미친 집값

    뉴질랜드 주택가격이 전 세계 주요국 가운데 2010년 이후 상승폭이 가처분소득 대비 가장 크고 임대료 대비 두 번째로 큰 것으로 조사됐다. 또 뉴질랜드 집 값은 두 번째로 과대평가돼 있고 주택시장은 위험도가 가장 높은 다섯 개 국가 중 하나로 지적됐다. 오는 22일부...

    뉴질랜드의 미친 집값
  • 제초제 ‘Round Up’은 발암물질?

    ​   지난 7월초 미국 캘리포니아주 1심 법원에서는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쓰이는 제초제인 ‘라운드업(Roundup)’의 암 발병 관련성을 놓고 역사적인 재판이 열렸다.    한 달여 뒤인 8월에 배심원단은, 라운드업 제조사인 ‘몬산토(Monsanto)’가 원고인 드웨인 존슨(D...

    제초제 ‘Round Up’은 발암물질?
  • 아기장수 지킴이

    나는 아기장수 하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부당한 힘과 권력 앞에서 날개를 접어 넣고 부엉이바위 아래로 떨어져 내린 아기장수가 노무현 전 대통령과 겹친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이 아기장수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 부채감과 함께 하늘로 ...

    아기장수 지킴이
  • 소수점을 잘못 찍어 유명해진 시금치

        경제가 어려운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예전에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 쓰자는 취지의 ‘아나바다’운동이 되살아 나고 있는 듯하다. 그 중 하나가 헌 책방의 변신이다. 예전에는 청계천 헌 책방은 주로 참고서들이었지만 간혹 고서(古書)도 발견되는 곳이...

    소수점을 잘못 찍어 유명해진 시금치
  • 뻔한 스토리

    지금까지의 인생은 아무렇게나 살아왔을 수도 있고 실패했을 수도 있지만 앞으로는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연출해서 첫 장면부터 철저하게 계산해서 가십시오. 좋은영화일수록 불필요한 장면이 거의 없어요. 꼭 그 장면이나와야 되는 이유가 있거든요. 장면, 장면이 다 아...

    뻔한 스토리
  • 다가올 세계적 금융위기에 대비하라

    영국이 지금은 비록 “해가 지는 나라”로 쇠퇴했지만 트라이던트 핵미사일을 장착한 4대의 잠수함을 운용하고 있는 핵강국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고립된 상황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승무원들이 항상 체크하는 것은 BBC 라디오4 투데이 채널이라고 한다. 고립무원의 상...

    다가올 세계적 금융위기에 대비하라
  • 카톡에 웃고, 카톡에 울고

    회의를 마치고 모바일폰을 확인하니 한국의 어머님으로부터 카톡 전화가 와 있었다. 백일이 지난 증손자의 동영상도 함께 첨부되어 있었다.    팔순을 훌쩍 넘기신 아버님과 어머님은 카톡의 광팬이시다. 안부문자는 물론이고, 당신이 좋아하는 사진과 동영상 등을 자식...

    카톡에 웃고, 카톡에 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