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e928bf5ae477ae7eb5fc69172933abe_1516143
 

작년에 죽어간 이에겐 새해가 없다. 

은총으로 맞이한 황금개띠 새해에 

새로운 결심으로 행복이 충만한 삶을……

 

가는 세월 붙잡을 수도 없으려니와 오는 세월 막을 수도 없는 일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가속이 붙어서인지 계속 빨리 지나가버리는 것 같아 안타까운 심정이다. 일주일이 하루같이 빠르고 일 년이 몇 달 같이 지나가버리는데 연초 신년 인사한다고 덕담을 나누다 보면 또 다시 음력 새해가 다가오고 가을은 언제 왔다 갔는지 어느새 겨울 장마철이 찾아온다. 이곳에서는 7월이면 겨울 크리스마스를 축하한다고 파티를 하는 일이 상식이다. 봄이 찾아오는가 했더니 11월이면 벌써 크리스마스, 연말 분위기에 휩싸인다. 

 

어제 죽어간 이에게는 오늘이 없다. 작년에 죽어간 이에게는 새해가 없다. 작년 말 한국 제천에서 빌딩 화재 사고로 29명의 목숨이 희생되었는데 그들은 전혀 새해를 맞이하지 못할 이유가 없는 보통 사람들이었다. 그들 영혼은 지하에서 얼마나 분통터지는 원망을 쏟아내고 있을지 짐작이 간다. 

 

그렇고 보면 살아서 무술년(戊戌年) 새해를 맞이하게 된 사실이 얼마나 큰 은총(恩寵) 속에 이루어진 일일까 하고 감사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다. 그래서 주어진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야 될 일이라고 다짐도 해본다. 빠른 세월인데 그 빠른 세월마저 무료하게 헛되이 보내는 것이야말로 죄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 파피용(Papillon, 1973년도 프랑스)에서 주인공 앙리 사리에르는 술집 근처에서 살인사건이 났을 때 그 근처에 있었다는 이유로 살인범의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하게 된다. 사실은 담당 검사가 실적을 올리기 위해 밀어붙인 결과이다. 

 

주인공은 억울한 처지에서 그 검사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 두 번에 걸친 탈출을 시도하나 실패하고 결국 더욱 가증스러운 환경에서 종신수(終身囚)가 되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탈출을 시도해 극적으로 성공하여 자유인이 된다는 줄거리이다. 

 

파피용이 꿈속에서 유죄 판결을 받는 재판 내용이 의미 심장(意味深長)하다. 파피용이 재판관한테 항의한다. ‘나는 죄 없이 누명을 쓰고 끌려온 몸인데 나한테 무슨 죄가 있단 말이요?’

재판관이 대답한다. ‘당신은 당신의 인생을 허비한 일로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진겁니다’. 

 

파피용이 탈출에 성공했다하나 이미 그 때는 늙은 몸이 되었을 때이다. 처음에 받은 형량을 제대로 마치고 나와 새로운 삶을 개척했다면 젊은 나이에 더욱 더 가치 있는 인생을 꾸려갔을 것이다.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 19182013)는 평생을 반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인종분리정책)에 맞서 싸우다 26년 감옥살이를 하고 나와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고 세계적인 인권 운동가로 추앙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남아프리카 공화국 최초의 민주 선거로 76세에 대통령에 당선되어 81세에 임기를 마치고 여생을 즐기다가 95세에 작고하였다.

 

한국의 넬슨 만델라라고 불리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1924-2009)은 어떤가? 군사 독재에 맞서 싸우다 납치 테러에 직면하여 겨우 목숨을 부지하였으나 가택연금, 망명생활 10년, 투옥 6년으로 이어지는 인고(忍苦)의 세월을 이겨냈다. 

 

민주화가 이루어진 후 네 번째 도전한 대통령 선거에서 74세에 당선되어 한국 역사상 최초로 국민이 선택한 정권교체를 달성하고야 말았다. 

 

대통령 재임 중 2000년에는 한국과 동아시아의 민주화와 인권, 남북 화해 정책을 펼쳐 평화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였다. 

 

그는 고등학교 출신의 정치인이었지만 정치인 중에서 가장 많은 독서량을 기록하였으며 그의 정치적 경륜, 행동철학도 이러한 독서량에서 기인한 것으로 본다. 감옥 생활을 할 때 울분을 품고 절규하며 복수의 칼날을 가는 대신 독서로 자신을 충전시키고 사색으로 미래를 설계하는 계기로 활용했다.

 

조선시대에 다산 정약용 선생과 추사 김정희 선생은 고질적인 당파 싸움의 희생물로 한적한 시골에서 귀양 살이를 하게 되었으나 그들은 이러한 기회를 살려 마음껏 창작욕을 불태울 수 있었고 그 결과 역사에 길이 빛날 저서와 작품들을 후세에 남겨주었다.  

       

금년 새해는 황금개띠의 해이다. 개는 예로부터 집지키기, 사냥, 맹인 안내, 호신(護身) 등의 역할뿐만 아니라, 잡귀(雜鬼)와 병 도깨비, 요귀(妖 鬼) 등에서 재앙을 물리치고 집안의 행복을 지키는 능력이 있다고 전해져 왔다. 

 

개는 인간과 관계를 맺을 때 충성과 의리를 갖춘, 우호적이며 희생적인 행동을 할뿐더러 총명하여 인간을 도우는 역할을 한다. 개는 인간과 함께 오랜 생활을 해오는 동안에 인간과 거의 동일시되어 왔다. 

 

윤동주 시인은 「또 다른 고향」시에서 “지조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 게다.”라고 읊었는데 여기서 지조 높은 개란 일제 암흑기의 세월을 지키는 지식인의 깨어 있는 의식을 상징하고 있다. 

 

원광의 「개」라는 시에서는 “비루먹은 세월 두 발로 살기 힘들어 네발로 뛰지만, 이젠 똥을 똥으로 본다. …… 도둑놈의 집에서 도둑을 지킨다”라고 인간의 작태를 비꼬고 있다. 

 

개의 눈으로 바라보는 현대 인간들은 모두가 도둑놈이며, 그 도둑놈의 집에서 도둑을 지키는 아이러니를 표현하고 있다.

     

새해가 되면 누구나 일 년 동안의 소망을 빌고 그 소망이 이루어지도록 서로가 격려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곳 키위들도 새해 인사로 “Happy New Year!”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What is your resolution for this year?”라고 물으며 새로운 결심이나 소망, 목표 등을 구체화하기를 좋아한다. 은총으로 맞이한 황금개띠 새해에 행복이 충만한 삶을 이루어내야 할 일이다.

 

칼럼니스트 한일수

  • |
facebook twitter google plus pinterest kakao story band

  • 아버지의 겨울

      친정집에서 그리 멀지않은 곳에 살던 시절이었다. 어느날 아버지의 부름을 받았다. 어머니가 병이 나셨나? 자주 있는 일이 아니어서 무슨 일인지 약간의 긴장을 하면서 달려갔다.   함께 살던 아들들 가족 분가시키고 두분만 오롯이 남아 사는 헐헐한 집이었다. 어머...

    아버지의 겨울
  • ‘최후의 날’벙커 만드는 미국의 슈퍼 부자들

    지난 9월 초 국내외 언론들에는 미국 실리콘 밸리 출신의 몇몇 억만장자들이  ‘최후의 날(doomsday)’을 대비한 서바이벌 벙커를  뉴질랜드에 마련했다는 소식들이 일제히 실렸다.      비슷한 내용의 기사들은 이미 수년 전부터 몇 차례 전해졌는데, 그러나 이번에는 벙...

    ‘최후의 날’벙커 만드는 미국의 슈퍼 부자들
  • 먹거리가 두려운 세상

    세상에! 이런 일을 다 겪다 보니 살아가는 일이 무슨 전쟁을 하는 듯하다. 알면 피해 갈 수 있지만 모르고 있으면 당하는 것 같아서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속담이 새삼스럽기까지 하다.    저녁 메뉴로 떡만두국을 끓일까 하는 생각에 떡국떡을 구입하러 가까운 곳에 ...

    먹거리가 두려운 세상
  • 날개

    ‘날개’하면 새, 천사, 비상(飛翔), 비행기, 꿈, 욕망과 같은 단어들 그리고 이상의 단편소설 제목이 떠오른다. 그리고 나에게는 개인적으로 나의 어머니와 Y라는 친구가 생각난다.     어머니는 내가 어린 시절 “새가 되어 훨훨 날아가고 싶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다. ...

    날개
  • 배터리

    며칠전 모바일폰 배터리가 방전된 것을 모르고 잠이 들었다가 아침에 알람이 울리지 않아 낭패를 겪을 뻔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젠 시계대신 전화기가 그 역할을 담당하게 된지 십여년이 지났으니 자명 종을 놓을걸 그랬구나 하는 후회는 유효기간이 지나도 한참 지난 시...

    배터리
  • 아오테아로아의 꿈은 진행형이다

    뉴질랜드 이민 생활은 3차원의 공간과 4차원의 시간이 융합된 시공간의 세계에서 이루어진다. 꿈은 다음 세대로 이어지고……     “전생에 무슨 좋은 일을 많이 했기에 이렇게 아름다운 천국에서 살고 있을까?”어떤 교민이 콘월파크(Cornwall Park)를 산책하면서 나오는 탄...

    아오테아로아의 꿈은 진행형이다
  • 통계자료로 보는 국적별 영주권 취득 분석

    이민부의 회계연도는 매년 7월 1일 새로 시작됩니다. 그렇다면, 지난 6월 30일로 마감된 이전 12개월의 통계자료에는 과연 어떠한 정보가 담겨 있으며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를 전해줄까요? 이민컨설팅 20년차의 공인이민법무사의 의무일 수~~도 있는 최신 이민정보와 통...

    통계자료로 보는 국적별 영주권 취득 분석
  • 파리(Paris)로 떠난 모나리자

    프랑스 VS 이탈리아 (Ⅰ)    카톡이나 안부를 먼저 보내주는 사람이 한가하고 할 일이 없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마음 속에 늘 당신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다툰 후에 먼저 사과하는 것은 잘못이 있어 그러는 게 아니라 당신을 아끼기 때문이다. 이기고 지는 것의 그 깊이...

    파리(Paris)로 떠난 모나리자
  • 텔레비전에 내가 나갔으면 정말 좋겠네…? ... 오, 노우!

    물론 텔레비전에 나가면 좋겠죠? 나쁘다는 게 아닙니다. 그저 전과 같지 않다는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바로 소셜미디어와 유튜브 때문입니다.     소셜미디어가 젊은 세대들의 여가 시간을 장악한지 이제 고작 몇 년입니다.  *** 페이스북 설립 2004년 유튜브 설립 20...

    텔레비전에 내가 나갔으면 정말 좋겠네…? ... 오, 노우!
  • NZ의 새로운 계층 ‘워킹 푸어’

    직장은 있지만 아무리 일을 해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근로 빈곤층이 늘고 있다. 열심히 일해도 급등한 집값과 렌트비, 상승하는 생활비 등으로 여전히 가난한 이들 ‘워킹 푸어(Working Poor)’가 뉴질랜드의 새로운 계층으로 부각되고 있다.        가난한 10 가구 ...

    NZ의 새로운 계층 ‘워킹 푸어’
  • 우리가 생태계 파괴범?

    최근 세계 곳곳에서 고양이가 생태계에 큰 영향을 미치는 존재로 등장하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사랑스런 반려동물이지만 또 다른 이들은 생태계에 악 영향을 주는 범인이라고 지탄한다. 국내에서도 점점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고양이에 대해 알아보자.       <고양이, 언...

    우리가 생태계 파괴범?
  • 텔레비전에 내가 나갔으면 정말 좋겠네…? ... 오, 노우!

    물론 텔레비전에 나가면 좋겠죠? 나쁘다는 게 아닙니다. 그저 전과 같지 않다는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바로 소셜미디어와 유튜브 때문입니다.     소셜미디어가 젊은 세대들의 여가 시간을 장악한지 이제 고작 몇 년입니다.  *** 페이스북 설립 2004년 유튜브 설립 20...

    텔레비전에 내가 나갔으면 정말 좋겠네…? ... 오, 노우!
  • 우뚜리-아기장수 이야기 4편

    우뚜리    옛날 권력자들이 자기 욕심 차리기에 눈이 멀어 백성들의 생활이 매우 어려운 때였다. 그러니 뼈 빠지게 일해도 입에 풀칠도 못하는 백성들의 불만이 하늘을 찔러 세상이 한번 뒤집어져야 한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때 한 마을에 너무 가난하여 품팔이로 간...

    우뚜리-아기장수 이야기 4편
  • 여유 있게 삼 개월

    “벌써 8월 말 이네요. 이제 슬슬 시험준비 좀 해야 할 것 같아요.. 앞으로 여유 있게 3개월이니까 뭐…”   “늦었다..”  “네?”  “늦었다고…”  “에이.. 아무리… 다들 이 무렵에 시험준비 시작해요.. 그래도 점수만 잘 나오던걸요. 뭐..”  “그래? 그런 학생들을 몇 명이나 알...

    여유 있게 삼 개월
  • 정성

    “온갖 정성을 다하여” 라는 말이 있죠?  무슨 뜻이냐 하면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로지 그 생각만 하는 것이 정성입니다.    저는 맛있는 음식을 보면 굉장히 즐거워하면서 먹거든요?  그것을 보고 무슨 도인(道人)이 그렇게 맛있게 먹느냐는 사람도 있어...

  • 디지털 시대에 살아남는 책 만들기란?

      최근 인터넷 조사에서 지하철에서 결혼 이상형을 묻는 질문에 남녀 공히 독서하는 여자, 남자가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어쨌든 책 읽는 모습은 언제 어디서나 항상 아름답다.    하지만 지난해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10세 이상 대한민국 국민 가운데 하루 10분 이상...

    디지털 시대에 살아남는 책 만들기란?
  • 학생증과 ㅇㅇ통, 한강은 알고있겠지!

      종전 소식을 접하고 피난길에서 서울로 되돌아오던 때였다. 한강을 코앞에 두고 노량진에서 길이 막혀 버렸다. 강을 건널 수 없기 때문이었다.    잠시겠지. 생각하고 그 곳에서 임시 집을 얻어 짐을 풀었다. 사는집 길 건너편 국민학교(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매일 군...

    학생증과 ㅇㅇ통, 한강은 알고있겠지!
  • 잘난 당신, 초라한 나, 그리고 상처

    ‘제 주변에는 왜 이렇게 잘난 사람들이 많은지 모르겠어요! 그 사람들 옆에 있으면 주눅이 들고 초라한 내 자신에게도 화가 나요!!’    독자분들의 반응은 대개 두 가지로 나뉠 것이다. 공감하거나. 뜨끔하거나. 혹시, 내가 주변 사람에게 염장질의 도화선이 된 것은 아...

    잘난 당신, 초라한 나, 그리고 상처
  • $1로 인터씨티 버스를 타고

    두 달 전에 처음 인터씨티 버스를 이용하였을 때 일이다. 일단 인터넷 웹싸이트에서 표를 예매를 한 후 시간에 맞춰서 스카이씨티 옆에 있는 터미널에 도착을 하고 보니 많은 사람들이 운집해 있었다. 티켓을 프린터로 출력하지 않고 티켓을 예매한 내역을 폰에 Screensh...

  • 에드먼드 힐러리 경 -뉴질랜드 국민 마음속에 살아있는 키위

    남십자성 아래 사람 향기나는 이야기...;  일요시사      오클랜드 파넬 지역이 차량정체로 시간이 머무는 듯했다. 파넬 성공회 대성당이 가까워지며 더욱 심했다. 뉴질랜드의 영웅, 에드먼드 힐러리경의 장례식에 참석하려는 차량 행렬이 애도의 물결을 이뤘다. 1953년 ...

    에드먼드 힐러리 경 -뉴질랜드 국민 마음속에 살아있는 키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