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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 지성수 칼럼(#1368호, 8/11/2019)은 작가의 요청에 따라 ‘시드니 스캔들(제5화 - 검사와의 악연)’ 연재 대신 아래 내용으로 대체합니다. [편집자 주]

 

지난 주 한인회에서 주최하는 페스티발에 가서 오래 만에 여러 사람을 만났다. 내년에는 나는 호주에 없겠지만 이 행사는 계속 열릴 것이다. 아들 둘이 이미 한국으로 돌아갔으니 나도 갈 수 밖에 없다. 결국은 외로움 때문이다.

 

어렸을 적 저녁밥을 먹고 나서 집에서 나와 가로등도 희미한 어두운 골목길에서 엄지손가락을 쳐들고 “나•하•고• 노~올• 사•람, 여•기• 붙•어•라!”하고 노래를 부르면서 돌아 다녔었다. 그러면 동무들이 한 사람씩 나와서 패거리를 이루어서 뛰어 놀다가 부모님들이 그만 놀고 들어와서 잠을 자라고 아우성을 치면 아쉬운 마음으로 하나씩 자리를 뜨고 부모의 관심을 넉넉히 받지 못하는 아이들만이 남아서 가로등 밑에서 쪼그리고 졸릴 때까지 앉아서 이야기를 하고는 했었다.

 

남의 땅에 몸 붙여 사느라고 눈치 보면서 사는 이민의 삶에서 얼마간의 외로움은 기본일 수밖에 없다. ‘그러려니’ 하는 체념 속에서 살다가도 외로움이 지나쳐 발작을 일으킬 지경이 되면 “어디 말 좀 통할 사람 없소!” 하고 버럭 소리를 지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곤 했다. 그것은 바로 어린 시절 아무도 없는 골목길을 서성이며 “나하고 놀 사람 여기 붙어라”를 외쳐대던 것과 같은 마음이었다.

 

사람 사는 곳이면 어디나 마찬가지이겠지만 특별히 이민 생활은 마음과 뜻이 통하는 사람을 만남이 가장 큰 즐거움이다. 그래서 남은 시간 동안 그들과의 만남을 더욱 소중하게 하려고 한다.

 

외국에서 살면 외롭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 그런데 외로움과 고독은 다르다. 외로움을 혼자 있다고 생각될 때 느끼지는 것이지만 고독은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느껴질 수 있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그런 외로움을 절절히 느끼면서 8, 90년대를 보내다 호주로 왔다. 결코 내세울 만한 일은 못되지만 8,90 년대 엄혹한 세월을 통과하면서 교단에서 유일하게 빈민운동을 하고 경찰서를 들락거리는 목사를 향한 시선은 항상 차가웠다.

 

그러나 지금 나는 비록 외국에 살고 있어서 만날 수 있는 사람은 매우 제한되어 있지만 전혀 고독하지 않다. 그것은 연대하는 일과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과 관심과 신뢰, 사랑을 교통 하고 있기 때문에 고독하지는 않은 것이다. 하지만 만날 사람을 만나지 못해서 외로움을 느낀다. 더욱이 아내가 약해져서 활동이 자유롭지 못하고 둘이서 얼굴만 쳐다보면서 살아야 하는 생활을 해야 하니 피차에 힘이 든 것이다.

사실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바쁘지 않기 때문이다. 바쁘면 외로움을 느낄 여유가 없다. 그러나 고독은 바쁠 때에도 느껴질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은 실존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실존적 존재인 인간은 ‘자기 때문’과 ‘타인 때문’이라는 두 가지 요소에 의하여 행동하게 되어 있다. 여기서 ‘자기’와 ‘타인’의 관계가 단절되어 있을 때 고독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양심수가 되어서 독방에 갇혀 있어도 전혀 외롭지 않을 수가 있고 반대로 대통령을 해도 고독할 수 있다. 전자의 경우는 신영복 선생의 경우에서 볼 수 있고 후자의 경우는 노무현 대통령에게서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이유로든 자기가 속한 집단과 '다르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 외로움을 겪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외로움이다. 인간이 같은 또래에게서 동질감과 편안함을 느끼는 것은 보편적인 것이다. 그래서 또래 친구가 중요한데 나에게는 그런 친구가 없다. 과거에 친했던 친구들도 만나보면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은 그들 탓이 아니고 모두 내 탓이다. 

 

어쩌다가 동창들을 만나 이야기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정치 이야기가 나오면 나이에 어울리게 꼰대스러움(?) 일색이다. 내가 좀 객관적인 이야기를 할라치면 “너 정말 맘에 안 들어!”라고 한다. 심지어는 “넌 북한 방송만 듣고 사냐?”고 몰아세우는 친구도 있지만 이해가 간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기에게 주어진 자료에 의해서만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료가 부족하면 치우친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고 풍부한 자료를 가져야만 균형 잡힌 판단을 내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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