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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캔들'의 어원은 원래 헬라어 ‘스칸달론’이다. 스칸달론은 ‘징검돌’ 혹은 ‘걸림돌’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같은 '돌'이 사람에 따라서 ‘징검돌’이 될 수도 있고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몰라서 저지른 실수

 

이민생활을 하다보면 호주문화를 몰라서 실수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호주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 모두 이민 초짜들인 후배 목사 부부들과 함께 어딘가를 간 적이 있다. 당시는 네비게이션도 없을 때라서 집들이 한참 떨어져 있는 시골 길을 대충 지도를 보고 가다가 길을 잘못 들어서 U턴을 해서 돌아가야 하게 되었다. 어느 집 앞에서 차를 돌리다가 눈이 유난히 밝은 어느 분이 쓰레기통 옆에 뜯지 않은 와인 병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잠깐 스톱!” 하더니 차에서 내려서 와인 병을 집어 왔다. 아무 생각 없이 외인 병을 집어 오기는 했으나 아무래도 뜯지 않은 새 와인 병을 쓰레기통에 넣지 않고 옆에다 버린 것이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왜 그랬을까?”를 두고 이야기를 하다가 누군가가 “호주 사람들은 연말에 한 해 동안 수고한 쓰레기차 운전자에게 와인을 선물하는 문화가 있다는 것을 들은 것도 같다”고 이야기 했다.

그렇다면 결과적으로 한국 목사 4 명이 호주 시골사람의 선물을 훔친 샘인 아닌가? 호주 문화에 대해서 무지해서 어처구니없는 짓을 했지만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려서 와인을 돌려주러 돌아 갈 수도 없는 일이었다. 회개도 너무 늦으면 소용이 없는 것이다. 하는 수 없이 목적지에 도착해서 그날 저녁 식사 시간에 회개하는 마음으로 맛있게 마셨다.

 

보통 이런 경우 자기 집에 있는 와인 중에 한 병을 쓰레기통 옆에 놓아두면 쓰레기차 운전자가 내려서 가져가지만 우리 동네처럼 이민자들이 많이 사는 동네에서는 그런 일이 거의 없다. 그 때 이후 나처럼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은 일부러 와인을 사와야 해서 잊어버리기가 쉬운 법이지만, 그래도 연말이 되면 그것만은 잊지 않고 실천을 한다. 우리는 드문드문 있는 시골이 아닌 복잡한(?) 주택가에 살기 때문에 와인을 쓰레기차 옆에 두지 못하고 쓰레기차가 오는 소리가 들리면 나가서 운전사에게 직접 전해준다. 이렇게 하는 까닭은 남다른 교양이 있어서가 아니라 호주 문화에 대한 무지를 속죄하는 마음 때문이다.

 

어느 해에는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서 나갔더니 6, 7살 자리 꼬마들이 이상한 복장을 하고 문 앞에서 “당연히 우리가 온 뜻을 알겠지?” 하는 태도로 아무 말도 안하고 서 있었다. 나는 잠깐 무슨 일인가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세상을 눈치로 사는 아내가 아이들이 들고 있는 바구니에 과자가 있는 것을 보고 팔러 온 줄 알고 몇 개를 집었다. 아내가 바구니에서 과자를 집는 것을 보고 아이들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아내가 방으로 들어가서 돈을 가지고 나와서 주려고 하자 아이들이 선뜻 받으려고도 하지 않고 쭈뼛쭈뼛하고 있었다.

 

종합(지성수컬럼_제11화_할로윈데이).jpg

 

나는 그 순간 “무엇이 잘못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언뜻 어디선가 들었던 ‘할로윈 데이’라는 것이 생각났다. 할로윈(Halloween)은 매년 모든 성인 대축일 전 날인 10월 31일에 행해지는 전통 행사이다. 이 날에는 죽은 영혼이 다시 살아나며 정령이나 마녀가 출몰한다고 믿고 그들을 피하거나 놀려주기 위해 사람들은 유령이나 괴물 복장을 하고 축제를 즐긴다고 한다.

 

요즘은 한국에서도 아이들이 우리나라 명절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할로윈 데이 를 지킨다고 하니 씁쓸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 유치원, 초등학교 등에서 퍼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에버랜드, 롯데월드 등의 놀이공원이나 클럽 등에서 상업목적으로 할로윈에 맞춰 파티나 이벤트를 열고 있어서 점점 유행이 돼가고 있다고 하니 어쩌겠는가? 그러나 한국은 물론 호주에 와서도 손자 손녀가 없는 우리 부부에게는 사실 할로윈 데이를 기억하기가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한국인의 체면이 있는데 동네 아이들이 동양인 노인들이 할로윈 데이도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면 곤란하지 아니겠는가? 그래서 나는 얼른 과자를 도로 바구니에 놓고 “우리가 과자를 준비 하지 못해서 미안하다. 그러니 이 돈으로 과자를 사라.”고 하고서 10불을 주었더니 아이들이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받아서 갔다.

 

그렇게 해서 그 해의 당혹한 순간을 넘어갔지만 그 다음에 또 다시 할로윈 데이 습격을 당했다. 또 다시 넋을 놓고 있다가 9.11이 아니라 10.31일 할로윈 데이 방문 테러를 당했다. 우리 집에는 과일도 있고 떡도 있지만, 아이들이 없기 때문에 과자를 먹을 일이 없어서 또 다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마침 새우깡 봉투 하나가 있는 것이 생각나서 아이들에게 잠깐 기다리라고 하고서 허둥지둥 찾아서 주었다.

그렇게 두 번씩이나 할로윈 데이 습격을 당한 우리는 다시는 할로윈 데이를 잊지 않기 위해서 그 후로 달력에 표시를 해놓고 과자를 사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동네 아이들은 아시안 노인 부부가 할로윈 데이를 모른다고 판단했는지 더 이상 오지를 않았다.

 

다음호에 계속

 

지성수 / 목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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