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철.jpg

 

국회의원들의 복수국적(Dual Citizenship) 파문이 호주 정가를 강타하고 있다.

지난 7월 서부 호주 퍼스의 변호사 존 카메론은 뉴질랜드 태생인 상원의원 2명이 뉴질랜드 국적을 갖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를 계기로 복수국적 의원들의 명단이 속출했고 현재까지 상원의원 7명과 하원의원 2명이 사퇴하고 두 곳에서 보궐선거가 진행 중이다.

공교롭게 하원의원 2명이 모두 자유당 소속이라 집권 자유국민연합에 타격이 크다. 의석수가 76석에서 74석으로 줄어들면서 산술적 과반이 무너졌다. 보선 결과에 따라 무소속의 지지를 얻어야 정권을 유지하는 옹색한 처지에 빠질 수도 있다. 여당은 야당인 노동당 의원 중에도 상당수가 복수국적자일 것으로 보고 무더기 의혹을 제기할 태세다.

 

연방헌법 44조 1항은 ‘다른 국가(foreign power) 국적자 또는 외국 국적자로서의 권리와 특권을 보유하거나 타국에 대한 충성, 복종 또는 귀속을 인정하는 사람은 상원이나 하원 의원으로 피선 되거나 의정활동을 할 자격이 없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호주는 시민권을 취득하기 전에 갖고 있는 외국 국적을 인정하는 방식으로 복수국적을 허용하는 나라다. 그렇지만 상하원에 출마하는 후보자들에게는 외국 국적을 포기해야 할 헌법적 의무가 주어진다. 의원들의 복수국적 문제는 단순한 선거법 위반이 아니라 위헌 이슈이기 때문에 연방대법원이 결정권을 가진다. 이번에도 연방대법원이 상하원 의원 7명에 대해 최종판결을 내렸다.

 

정치는 살아 있는 생물이다. 선거 때가 되면 그냥 살아 있는 정도가 아니라 당선이라는 지상목표를 향해 요동치는 통제 불가능한 괴물이 된다. 정치적 상황에 따라 출마 결정과 후보 등록이 급박하게 이루어져 후보자 검증 문제를 꼼꼼하게 챙길 여유가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당장 현안이 아닌 후보자의 복수국적 문제를 놓칠 개연성은 충분하다. 베테랑 정치인 중 하나인 바나비 조이스 연방 부총리마저 이번 파문의 와중에 뉴질랜드 시민권을 보유한 것으로 드러나 의원직을 상실하고 보궐선거에 임할 정도다. 처음 정계에 입문할 때 국적문제를 깔끔하게 정리하지 않았다면 나중에는 제대로 검증할 기회조차 갖기 어렵다.

이민자 국가다 보니 당사자들도 자신이 호주 시민권 외에 다른 국적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지낼 수도 있다. 아주 어릴 때 이민을 오거나 호주에서 태어났지만 이민자 부모가 해당 국가에 출생신고를 하면서 자동으로 외국 국적을 보유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올해 68세로 베네롱지역 자유당 의원으로 활동하다가 영국 국적자로 확인돼 사퇴한 존 알렉산더가 그런 경우다. 그가 태어났을 때 영국인 아버지가 출생 신고를 하면서 영국 국적을 취득했는데 최근까지 자신이 ‘영국인’인 줄 모르고 살았다고 한다. 알렉산더는 곧장 영국 국적을 포기하고 12월16일 베네롱 보궐선거에 재출마한 상태다.

총선을 치른지 1년6개월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노동당이 전략 공천한 전 NSW 주총리 크리스티나 케닐리 후보의 거센 도전과 정부 여당의 바닥 인기 때문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노동당은 현 정권의 실정을 심판해야 한다며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말콤 턴불 총리와 빌 쇼튼 노동당 대표는 물론 여야 중진들이 대거 투입돼 당력을 기울인 한판 승부를 벌이고 있다. 복수국적 파문이 일파만파로 번져 난데없이 베네롱에서 미니 총선을 치르는 셈이다.

 

선거는 총성 없는 전쟁이다. 의원직 당선은 전쟁에 승리한 것만큼이나 값진 결과물이다. 이렇게 쟁취한 의원직을 명목뿐인 영국이나 뉴질랜드같은 외국 국적과 바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외국 국적은 누구든 알게 되면 당장 해결될 사안이다. 항상 관건은 타이밍이다. 현역 의원 중 누구라도 작년 7월 총선 때 복수 국적을 갖고 있었다면 그리고 그 사실이 임기 중에 드러나면, 의원직을 걸고 연방대법원 앞에 설 운명을 피할 수 없다. 몇 달째 호주 정가를 뒤흔들고 있는 복수국적 쓰나미는 이제 시작인지도 모른다.

 

(변호사)

 

 

 

 

  • |
  1. 정동철.jpg (File Size:25.4KB/Download:31)
facebook twitter google plus pinterest kakao story band

  • 지성수 칼럼- 외로움과 고독의 차이 file

      * 금주 지성수 칼럼(#1368호, 8/11/2019)은 작가의 요청에 따라 ‘시드니 스캔들(제5화 - 검사와의 악연)’ 연재 대신 아래 내용으로 대체합니다. [편집자 주]   지난 주 한인회에서 주최하는 페스티발에 가서 오래 만에 여러 사람을 만났다. 내년에는 나는 호주에 없겠...

    지성수 칼럼- 외로움과 고독의 차이
  • 시드니 한인작가회 산문광장 file

      나무 그리고 여자   이영덕 / 수필가, 시드니한인작가회 회원   내 나이가 몇 살쯤인지는 모르겠지만 주변의 많은 변화들을 겪어내고 있으니 짧지 않은 세월을 사는 것 같소. 내가 뿌리를 내린 이곳은 오랫동안 강물이 흐르고 숲이 우거진 평화로운 산속이었소. 그런...

    시드니 한인작가회 산문광장
  • 김성호의 호주법 칼럼 - 죄질

      김성호의 호주법 칼럼 - 죄 질   한국을 등 뒤로 적도를 건너 남국 호주에 정착한 한국 사람들에게도 지난 몇 달간 싫건 좋건 조국의 소식을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것의 핵심이 검찰개혁이라는데 이견이나 반대의사를 표명할 사람도 없을 것이다. 1950년대 농경시...

  • 지성수 칼럼 - 시드니 스캔들 (제4화) file

      * '스캔들'의 어원은 원래 헬라어 ‘스칸달론’이다. 스칸달론은 ‘징검돌’ 혹은 ‘걸림돌’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같은 '돌'이 사람에 따라서 ‘징검돌’이 될 수도 있고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사진설명: 1980~90년대 시드니 한인촌은 서부 캠시 ...

    지성수 칼럼 - 시드니 스캔들 (제4화)
  •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를 되새기며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를 되새기며 한국 현대 문학계의 거장중 한명으로 평가받는 여류 문인으로 박완서 씨가 있다. 1970년 불혹의 나이에 문단에 등단해 2011년 1월 타계할 때 까지 40년간을 꾸준히 글을 쓰며, 소시민의 평범한 일상에 서사적 리듬과 입체적인 의미...

  • 시드니한인작가회 <산문광장> file

      최근에 만난 그대   김인숙 / 수필가, 시드니한인작가회 회원   몇 달 전부터 자주 그를 만나고 있다. 우린 금방 친구가 되었다. 사실은 내가 일방적으로 그에게 손을 내밀며 다가선 것이다. 우린 대화 아닌 대화를 어둠이 이슥하도록 나누는데, 대부분 나 혼자만 커...

    시드니한인작가회 <산문광장>
  • 지성수 컬럼: 시드니 스캔달- 제3화 file

    1999년 동티모르 분쟁 당시 유엔 결의에 의해 동티모르에 파견된 동티모르 국제군(INTERFET)의 모습. 동티모르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조직된 다국적 유엔 평화유지군에는 호주군 및 한국군(상록수부대)도 참가했었다.   웨스트 파푸아의 눈물   요즘 서 파푸아 뉴기니 ...

    지성수 컬럼: 시드니 스캔달- 제3화
  • 지성수 칼럼: 시드니 스캔들 - 제2화 file

    한국에서 1997년 IMF 사태가 터지자 학비 조달이 어려워진 한국 유학생들이 대거 귀국하는 상황을 다룬 당시 시드니 모닝 헤럴드 신문 기사. 'Cash crunch forces Korean students to quit studies here' 라는 제목이 당시 상황을 그대로 보여준다.   * '스캔들'의 어원...

    지성수 칼럼: 시드니 스캔들 - 제2화
  • 지성수 칼럼 - 시드니 스켄들 (제1화)

      * '스켄들'의 어원은 원래 헬라어 ‘스칸달론’이다. 스칸달론은 ‘징검돌’ 혹은 ‘걸림돌’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같은 '돌'이 사람에 따라서 ‘징검돌’이 될 수도 있고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나는 내 생애 한국을 떠나려고 3 번의 시도를 했다   첫...

  • 김성호의 호주법 칼럼 - 법대로 합시다

      법대로 합시다   관계없는 퀴즈- What's the difference between a good lawyer and a bad lawyer?   법적으로 계약(Contract)이란 합의(Agreement)를 의미하는 약속이다. 그리고 합의내용을 글로 적은 계약서가 있건 없건 계약은 존재하고 법적으로 인정된다. 허다한 ...

  •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손길, 남태평양에 닿다 file

                                                               ‘남태평양 평화기념식’ 개최예정                                                      14개국에 빗물식수화 시설 설치예정   △ 지난 3월, 서울대 공대는 빗물연구센터(센터장 한무영)가 세계 물의 날을 ...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손길, 남태평양에 닿다
  • 먹어 치우기

    사과 한 상자를 사면 그 중에서 상한 것부터 계속 드시는 분이 있고 좋은 것부터 드시는 분이 있어요. 성격 차이죠.    저는 항상 제일 좋고 맛있게 생긴 것부터 먹어요. 왜냐하면 어차피 썩을 것인데 맛없는 것부터 먹다 보면 계속 맛없는 것만 먹게 되거든요. 사람은 ...

    먹어 치우기
  • <정동철의 시사 포커스> 복수국적 쓰나미 file

      국회의원들의 복수국적(Dual Citizenship) 파문이 호주 정가를 강타하고 있다. 지난 7월 서부 호주 퍼스의 변호사 존 카메론은 뉴질랜드 태생인 상원의원 2명이 뉴질랜드 국적을 갖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를 계기로 복수국적 의원들의 명단이 속출했고 현재까...

    <정동철의 시사 포커스> 복수국적 쓰나미
  • 정동철의 시사 포커스 : 호주 동성결혼 합법화 그 이후

    지난 11월 15일 동성결혼 합법화에 대한 국민우편설문조사(National Postal Survey) 결과가 통계청에 의해 발표 됐다. 예상대로 응답자 중 찬성이 60%가 넘게 나타나 동성결혼 법제화 움직임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이로써 지난 몇 년 동안 끊임없이 논란의 불씨를 이어...

  • 술 석잔이 있는 풍경화

      지루할만큼 질척이던 날씨가 모처럼 화창하다. 비 속에서 외롭게 피어난 자목련의 을씨년스러움도 오늘은 화사하다.    성급하게 봄 냄새가 그리워지는 한나절이다.    “거긴 요즘 날씨 어때요? 춥지않아....”  유난히 손이 시린 친구. 자녀집에 쉬러 왔다가 추위를 ...

    술 석잔이 있는 풍경화
  • 살롱음악

    살롱음악은 이제 상류층의 전유물이 아니다.  뉴질랜드에서는 중산층의 폭이 넓어  누구나 마음먹고 행동하기에 따라 중산층이 되어……     서울에서 살 때 아내와 나는 항상 우리가 중산층(中産層)에 해당되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살아왔다. 강북의 단독주택에서 살...

    살롱음악
  • [송경태 칼럼] 국선 변호사 file

    필자가 처음 법조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이 아마 1970년대 초반 한국에서 시작되었다는 기억이 있습니다. 그 당시 아이들의 로망(?)은 무조건 판검사가 직업 중에 대통령 다음으로 가장 잘 나간다는 생각을 할 시기였습니다.   그 당시는 무조건 판검사를 동경하...

    [송경태 칼럼] 국선 변호사
  • [허재환 칼럼] 소규모 사업체들을 위한 감면혜택 1 file

    금년 5월에 발표된 연방 예산안을 통해 여러가지 변경된 사항이나 새롭게 신설된 조항이 시행됨으로써 소규모 사업체들은 세금 납부 및 신고 옵션 등을 포함해 다양한 세금 감면 혜택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번호에서는 소규모 사업체들이 받을 수 있는 ...

    [허재환 칼럼] 소규모 사업체들을 위한 감면혜택 1
  • [송경태 칼럼] Business for sale (하)

    지난 주 ‘Business for sale’ 즉 사업체 매매에 대한 칼럼을 시작하였습니다. 한국의 경우 어떤 식으로 사업체를 사고 파는지 그리고 반드시 변호사가 필요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가 거주하는 시드니의 경우 사업체 매매를 하면서 변호사 선임은 거진(?) 필수라고 보...

  • [하명호 칼럼] 4차 산업혁명과 영생불멸에 도전하는 과학자들

    1차 산업혁명은 증기기관 발명으로 손으로 하던 일을 기계화 함으로써 대량생산이 시작되었다. 2차 산업혁명은 전기와 컨베이어 벨트를 활용한 대량생산 기술이, 3차 산업혁명은 1980년대 중반 본격화된 컴퓨터와 인터넷의 보급이 주도하였으며, 이 과정에 급격히 발전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