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기자로 시작된 수요저널의 변화  - 홍콩 교민신문 편집장의 독백 (3)

‘나처럼 말고 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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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휴대전화기의 가요 한 곡만 남기고 모두 지워버렸다. 1년간 출퇴근 시간에 한 곡만 들었다. 바로 드라마 ‘미생’에서 OST로 사용된 ‘날아(fly)’라는 곡이다. ‘미생’은 한국에서 사회문제로 크게 떠올랐던 비정규직 문제, 사회 초년생들의 고민과 방황을 소재로 한 드라마다.


미생을 알게 된 건 수요저널에 처음으로 들어온 인턴기자 때문이었다. 기사 몇 개를 읽고 팬이 되고 말았다. 나도 모르게 드라마 속 ‘오 차장’으로 몰입되어 TV 속처럼 직장 상하관계, 거래처와의 갑을관계를 되돌아보았다. 미생을 보면서 ‘을’로 살아온 내 인생에 큰 위로가 됐다. 마치 작가가 “당신만 힘들게 사는 게 아니에요”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첫 인턴기자는 서류면접부터 실수가 잦았다. 자기소개서 끝에 갑자기 웬 욕 한마디? 퇴고하지 못한 파일을 서두르다 그냥 보냈던 것이다. 의도한 것이 아닌 것을 알기에 문제 삼지 않았다. 하지만 출근 첫날 ‘글로 밥 먹고 사는 사람은 단어 하나하나 고심해서 써야 한다’고 엄하게 훈계했다.


그 친구는 보통 깍쟁이 여대생 같지 않았다. 다소 느리고 답답하게 보였다. 쪼잔하고 성질 급한 편집장 눈치를 보는 게 갈수록 안쓰러워 보였다. 웃음꽃 피울 여대생이 나 때문에 숨죽어있는 것 같았다. 갑작스레 오른 홍콩의 비싼 집값에 허덕이는 데다, 내가 요구한 영어기사 번역이나 기사취재는 쉽지 않았을 터. 인턴기자는 ‘미생’의 주인공 인턴사원 같았고, 냉정한 말로 격려하던 나는 ‘오 차장’ 같았다. 그 뒤부터 미생의 주제곡 ‘날아’는 인턴기자를 이해하고 격려하기 위해 내 맘속의 주제곡이 되었다.


두 번째로 만난 두 명의 인턴들에게는 좀 더 신나게 일하도록 해주고 싶었다. 신문방송과 시각디지인을 전공한 친구들이었다. 이들에게도 실수는 잦았다. 하지만 조금 더 나아진 점이라면 ‘나처럼’을 요구하지 않고, ‘네가 좋아하는 것’을 찾도록 함께 노력한 것이다.


덕분에 이 두 명의 인턴기자들은 수요저널의 기획기사와 디자인을 상당 부분 바꿔주었다. 틀리더라도, 실수하더라도 좋아하는 것을 마음대로 표현하게 주문했다. 물론 기사 퇴고나 디자인 수정은 나와 편집기자가 늦은 시간까지 다시 손봐야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좋은 영향을 주었다. 내 관점으로는, 또 편집기자 경험으로는 가질 수 없는 젊은 결과물을 얻었으니까.

 

두 번째 인턴들이 떠날 때는 20페이지 분량의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취업 시 도움이 되고자 했다. 자기들이 6개월간 취재하고 디자인한 기사를 보기 좋게 정리해서 제본해 준 것이다. 세 번째로 와서 지금 열심히 일하고 있는 인턴기자는 좀 더 좋은 포트폴리오를 갖게 될 것 같다.

 

수요저널이 인턴기자와 함께하면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요즘 젊은이’들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오늘의 젊은이들은 나의 아버지 세대와, 작은 삼촌 386세대, 지금의 나의 세대(40대)와 또 다르다. 간략히 말하자면 아버지 때는 개발도상국 시절 참고 노력하면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시대였다. 386세대는 불안한 정치환경 속에서 민주주의를 찾아 나선 격동의 세대, 그리고 90년대를 겪은 나의 세대는 자유와 개인주의를 누리며 성장할 시기였다.


그러나 지금의 젊은이라고 할 수 있는 2000년대 세대는 아버지의 소심한 뒷모습을 보며 자랐다. 폭발적으로 팽창된 자유언론과 인터넷, 열린 교육환경, 다양한 문화생활은 지천으로 깔렸는데 지독한 저성장이 발목을 잡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요즘 젊은이들을 이해하고 같이 일한다는 것은, 수요저널이 미래 잠재적 독자를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를 시사한다. 이미 충분하게 똑똑하고, 알 것은 다 아는 젊은이들이다. 이들은 기성세대가 몸소 체험하며 어렵게 얻은 경험마저 몇 초 만에 ‘검색’해낸다. 괜히 우쭐대며 자랑하려 했다가는 인터넷 검색결과보다 더 낡은 사람으로 외면당한다. 퍼다 나른 기사나 낡은 인터넷 검색결과처럼 되지 않기 위해 어린 인턴기자와 함께 고민하고 있다.

 

수요저널을 비롯한 해외 많은 교민언론은 각자의 나라에서 작은 한인사회에 의존해 운영된다. 해외 한인언론 업계에서는 한인 인구 3만 명 이상만 되면 자체 한인 시장이 가능하다고 본다. 한인만 대상으로 해도 어떤 업종이든 먹고 살 수 있다는 소리다. 홍콩과 인접한 중국 심천도 약간 줄긴 했어도 3만 명을 밑돌고 있고, 광저우는 조금 더 많다고 한다. 싱가폴은 3만 명으로 안정적인 한인 상권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홍콩은 그 절반에도 못 미치는 한인 인구에다 유지비 자체가 만만찮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높은 임대료와 교육양육비 때문이다. 게다가 10년 새 임대료와 인건비는 2~3배 올랐지만, 순수익은 반으로 줄었다.

 

기존의 방법으로 수요저널을 운영하다가는 편집장 자리 마저 유지하기 어려울 것 같다. 이미 비용절감으로 수요저널은 날씬해질 만큼 날씬해졌다. 몸매를 유지하는 데 그치지 말고, 잔 근육이 있는 활달한 몸매로 바꾸어야 한다. 그리고 생각의 전환, 창의적인 혁신이 필요하다. 모바일 환경에 대처하는 뉴스 형태가 될지, 콘텐츠 개발이 될지, 신규사업이 될지 고민은 끝이 없다.


부끄럽게도 그런 아이디어는 나에게서 나오지 못하고 젊은이들을 관찰하면서 얻고 있다. 인턴기자를 통한 실험적인 시도, 유학생들의 피드백, 젊은이들과 페이스북에서 일어나는 가벼운 대화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발견된다. 그래서 젊은이들로부터 얻는 에너지는 수요저널의 미래 원동력이 될 것으로 본다.


짧은 인생 경험이지만 내가 가장 약하다고 인정할 때 큰 성장을 했다. 그런 선물을 신에게서 많이 받았다. 지금도 출근하면 습관처럼 책상에 손을 얹고 잠시 엎드린다. 이 책상과 컴퓨터, 사무실에 앉아 있을 수 있는 것에 감사한다. 내 경험과 지식만 의지하지 않게, 오늘도 새 힘을 달라고. 편집장의 낡은 생각은 어제로 집어 던지고 싶다. 좀 더 재미있게, 좀 더 예쁘게 수요저널을 만들고 싶다. 보수적이고 쪼잔한 내가 좀 더 유쾌한 사람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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